내게 중독이란, 데이트를 마다하고 술을 마다하고 밥을 마다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잠을 마다하는 것.
나는 중독되는 것이 두려워서 일부러 금욕적으로 산다. 예컨대 술에 취하면 더 취해서 밤새 놀고 싶기 전에 집에 간다거나, 멋있는 연예인이 나오는 드라마는 멀리하고, 좋아하는 음식은 일주일에 1번만 먹거나 내일 아침에 먹기로 하는 등 중독에 온 몸을 내맡기진 않는다.
사람에게 중독되는 것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 사람에게 중독되는 것이 정말이지 괴로운 일이라서 한 번 중독되면 아무리 금욕하려 해도 절대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그래서 난 중독되지 않기 위해/벗어나기 위해 만화책을 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인 우라사와 나오키의 신작 [PLUTO]. 그의 그림체는 물론이고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에피소드는 설핏하게 사람 중독증에 발담근 날 휘어잡는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인간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심지어 로봇도 생동감이 넘친다. 10년만 지나면 바로 이런 일이 '당연히' 벌어질 것이라고 상상하게 만드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잔인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무서운 미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악당은 모두 그들만의 사연이 있어서 슬프거나, 매력적이거나, 멍청하거나 귀여워서 미워할 수가 없게 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생각하던 사람이라도 [PLUTO]를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지.
개인적으로 노스2호의 에피소드와 우란 이야기가 좋았다.
이렇게 온 정신을 휩쓰는 이야기를 하루종일 읽고 나면 텅 비워진 마음에 이야기만 가득차게 되고, 그래서 더 견딜 수 없어져서는 [핑거스미스]를 밤새 읽고, 강풀의 신작 [AGAIN]을 눈이 빠져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그제야 잠이 들었다. 사람과 어지러운 생각들을 비워내려면 역시 만화책이나 추리소설이 최고. ㅎㅎ 뒷감당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