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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손가락에 전류라도 흐르는 양 계속해서 가전제품들을 고장내고 있다. 하드가 나가서 복구해보려고 오만 난리를 다 치다가 결국엔 a/s 기사를 불렀는데 15만원이란다. 없으면 안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지불. 기다리며 새로 산 하드에 프로그램들 설치중. 누구 말마따나, 컴퓨터 작업은 기다리는 것이 반 이상이다.
지난 주 내내 컴퓨터가 살아나길 바라며 이것 저것 만지작거리면서 기다리는 동안, 노트북으로 급한 일들을 보고 있는데 파워가 나간다. 아마 파워 회로가 나간듯.
전화를 하려고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니, 뾰로롱 소리가 나며 전화기도 먹통이 된다. 이쯤되면 손가락 사이로 정말 전류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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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컴퓨터 따위 안중에도 없었던 주말엔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했다.
자전거를 끌고 나가니 밤새 온 비의 기운이 아직 남아 공기가 청명했다. 바람을 가르고 달려 운전면허 학원에 가서 등록을 했고, 가격이 싼 대신 평일에만 시험을 볼 수 있단 말에 충격을 받았다. 직장인은 뭘 해도 힘들다며 중얼대고,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을 받고 사랑니 수술을 받기로 했다. 나는 스케일링을 정말로 싫어하는데 다음에 갈 땐 귀마개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절판된 [우부메의 여름]이 동네 도서관에 있길래, 대출증을 만들었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니 새삼 기분이 좋았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잠시 채팅을 하고 노닥거리다가 씻고 종로로 향했다.
약간 걱정했는데, 뒷풀이에만 낑기겠다는 꼽사리를 의외로 다들 반겨주셔서 참 다행이었다. 나는 "미모가 무기이실만 하군요." 따위의 찝적헛소리를 계속해서 내뱉었고 술에 취할수록 아치님이 예쁘다고 생각했고, 휘모리님이 귀엽다고 생각하며 쉬운 여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푸하님은 당연히 나보다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정말 놀랐다. 사람들이 뽀님이라고 해서 Forgettable을 언급했을 때 상당히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귀여운 면모에 나도 놀랐다. 승주나무님은 같은 학교 출신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ㅎㅎ 라님의 유쾌하고 편안한 모습은 내가 봐왔던 이미지 그대로였는데, 의외로 사람들은 까칠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던가보다.
여튼 즐거운 저녁.... 밤..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일요일이 엄청나게 짧아져버렸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 모두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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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기분 좋은 문자를 받고, 월요일의 우울함을 다독거리며 출근하는데 소나기가 쏟아져서 다 맞았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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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를 읽는 중이다. 역시나 내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나 목요일까지 읽어두어야 한다. 대단히 남성적인 소설이라고 하여, 그 점을 유의해서 보고 있는데 이 사람 참 마초아닌가 싶은 부분이 많이 보인다. 경비실에 맡겨져 있던 토요일에 도착한 책들을 일요일에 받았다.
[죽은자의 몸값]은 새책인데도 중고책보다 더 허름한 책이 왔다. 99년도 초판 발행인데, 초판이 왔다. 10년도 넘은 새책이라.
필립 말로우와의 기대되는 첫만남.
중고샵에서 보면, 평소에 알고만 있고 관심은 가지 않던 책들이 참 유혹적으로 보인다. 술먹고 보면 평소에 알고만 있고 관심은 가지 않던 남자들이 그렇게 보이듯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