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 며칠, 손가락에 전류라도 흐르는 양 계속해서 가전제품들을 고장내고 있다. 하드가 나가서 복구해보려고 오만 난리를 다 치다가 결국엔 a/s 기사를 불렀는데 15만원이란다. 없으면 안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지불. 기다리며 새로 산 하드에 프로그램들 설치중. 누구 말마따나, 컴퓨터 작업은 기다리는 것이 반 이상이다.  

지난 주 내내 컴퓨터가 살아나길 바라며 이것 저것 만지작거리면서 기다리는 동안, 노트북으로 급한 일들을 보고 있는데 파워가 나간다. 아마 파워 회로가 나간듯.  

전화를 하려고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니, 뾰로롱 소리가 나며 전화기도 먹통이 된다. 이쯤되면 손가락 사이로 정말 전류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할만 하다. 

**
고장난 컴퓨터 따위 안중에도 없었던 주말엔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했다. 

자전거를 끌고 나가니 밤새 온 비의 기운이 아직 남아 공기가 청명했다. 바람을 가르고 달려 운전면허 학원에 가서 등록을 했고, 가격이 싼 대신 평일에만 시험을 볼 수 있단 말에 충격을 받았다. 직장인은 뭘 해도 힘들다며 중얼대고,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을 받고 사랑니 수술을 받기로 했다. 나는 스케일링을 정말로 싫어하는데 다음에 갈 땐 귀마개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절판된 [우부메의 여름]이 동네 도서관에 있길래, 대출증을 만들었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니 새삼 기분이 좋았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잠시 채팅을 하고 노닥거리다가 씻고 종로로 향했다. 

약간 걱정했는데, 뒷풀이에만 낑기겠다는 꼽사리를 의외로 다들 반겨주셔서 참 다행이었다. 나는 "미모가 무기이실만 하군요." 따위의 찝적헛소리를 계속해서 내뱉었고 술에 취할수록 아치님이 예쁘다고 생각했고, 휘모리님이 귀엽다고 생각하며 쉬운 여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푸하님은 당연히 나보다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정말 놀랐다. 사람들이 뽀님이라고 해서 Forgettable을 언급했을 때 상당히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귀여운 면모에 나도 놀랐다. 승주나무님은 같은 학교 출신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ㅎㅎ 라님의 유쾌하고 편안한 모습은 내가 봐왔던 이미지 그대로였는데, 의외로 사람들은 까칠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던가보다. 

여튼 즐거운 저녁.... 밤..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일요일이 엄청나게 짧아져버렸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 모두 행복한 일이다. 

***
아침에 기분 좋은 문자를 받고, 월요일의 우울함을 다독거리며 출근하는데 소나기가 쏟아져서 다 맞았다. 흑 

****
[상실의 시대]를 읽는 중이다. 역시나 내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나 목요일까지 읽어두어야 한다. 대단히 남성적인 소설이라고 하여, 그 점을 유의해서 보고 있는데 이 사람 참 마초아닌가 싶은 부분이 많이 보인다. 경비실에 맡겨져 있던 토요일에 도착한 책들을 일요일에 받았다.  

 

 

 

 

[죽은자의 몸값]은 새책인데도 중고책보다 더 허름한 책이 왔다. 99년도 초판 발행인데, 초판이 왔다. 10년도 넘은 새책이라.
필립 말로우와의 기대되는 첫만남.
중고샵에서 보면, 평소에 알고만 있고 관심은 가지 않던 책들이 참 유혹적으로 보인다. 술먹고 보면 평소에 알고만 있고 관심은 가지 않던 남자들이 그렇게 보이듯이. ㅎㅎ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09-10-19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상실의 시대를 왜 남성적인 소설이라고 할까요? 갸웃. 저는 두번 읽었는데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상실의 시대는 완전 제 스타일이에요. ㅎㅎ

Forgettable. 2009-10-19 12:4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하루키 사랑은 저도 알고 있지요 ^^ 저도 지금 두번째 읽는거에요, 첫번째는 굉장히 오래 전에 읽었던 거라 아예 생각 안날 줄 알았는데 지금 읽으면서 보니 [상실의 시대]가 제 연애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거 같아요-_-

남성적인 소설이라는 의견에 공감하는 이유는, 아직 초반부분을 읽는 중이긴 하지만 아직까진 여성들이 굉장히 수동적으로 보여서요.
그리고 나오코의 "어째서 그때 나와 잠자리를 함께 한거야? 말해줘. 왜 나를 내버려두지 못했지?" 이런 대사라던가..
뭐, 뭐눈엔 뭐만 보인다고 ㅎㅎ '남성적'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그런 면모만 보이네요 ^^

무해한모리군 2009-10-19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그린 여자의 욕망은 '남자가 보는 여자의 욕망'인거 같아요.
여자들이 이렇게 느끼는거 같다 혹은 느꼈으면 하는 남자들이 생각하는 방식인 거 같아요..
여성상들도 그렇고.

15만원이라니 --;;
그리고 술취해 부린 난동은 연애하더니 없던 버릇이 생겼나봐요 ㅠ.ㅠ

Forgettable. 2009-10-19 12:57   좋아요 0 | URL
아, 제말이네요. 난 언제나 느끼지만 콕 집어내는 능력 매우x100 부족 -_-

15만원은 제돈나가는게 아니라 ㅎㅎㅎ 괜찮습니다.
난동이라뇨, 전혀 아니었는데ㅋ 볼 때마다 새로운 머리슷하일뿐 아니라 새로운 면모도 보여주시니 저야 고맙지요. ㅋㅋ 다음 만남도 기대할게요! :)

Joule 2009-10-19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마고에서 나온 살바도르 달리의 전기 참 재미있죠.

Kitty 2009-10-19 16:18   좋아요 0 | URL
헉 살바도르 달리 재밌다구요
여기서 또 하나 담아갑니다 ㄷㄷ

Forgettable. 2009-10-19 16:49   좋아요 0 | URL
꺄 쥴님이닷 >.<
저 이거 아직 못봤는데, 재밌나봐요!! 오오 득템이다 ㅎㅎㅎㅎ

키티님 제가 페이퍼에 담아놓은 이 책은 절판됐고, 다른 출판사에서 비스무리한 책이 나온걸로 알고있어요. 전 이거 중고샵에서 건졌어요 ㅎㅎㅎ

Arch 2009-10-19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컴퓨터 무사히 고치면 좋겠어요. 언제, 뽀님 손을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난, 뽀가 보여주는 자상함이나 유연함이 좀 부러워요. 술 먹고 꼬박꼬박 조는 모습도 참 예뻤고.

앞으로 뽀에게 술을 더 많이 먹게 해야겠구나^^

Forgettable. 2009-10-19 16:53   좋아요 0 | URL
전 저를 마냥 예뻐해주시는 아치님이 정말 좋아요. 흐흐흐
내가 어딜가서 이렇게 나 좋아해주는 분을 만나겠어요. ^^
졸았던건 비밀인데 ㅠ.ㅠ

좀 더먹이면 예전처럼 손잡고 막 흔들거리며 갈거에요, 머리아프고 어지럽게;;;
그러다가 '오늘따라 언니 왜케 예뻐요,' 라고 느끼하게 말하거나 ㅋㅋ

2009-10-19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여기 오면, 본문도 그렇고, 댓글 달아주신 분도 그렇고,
책에 대해 많이 아시니까, 읽을 거리들이 자꾸 늘어나니 좋네요 ㅎㅎ
도서관 가서, 마치 이 책들에 대해 잘 아는 듯이 우아하게 빌려봐야겠어요.
그런데 아직 통역사도 다 못 봤네요; 버스에서 무리하며 읽었더니, 이제 책만 펼쳐도 멀미 기운이 느껴져요;;

Forgettable. 2009-10-20 09:29   좋아요 0 | URL
코님도 책을 좋아하셔서 저도 좋아요. ㅎㅎ
[통역사]는 중반부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던 것 같네요. 버스에서 읽으면 멀미하고 눈도 나빠지니 창밖을 바라보세요. ㅋㅋㅋ

lazydevil 2009-10-20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밸로우... 진짜 마초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맬랑콜리 센치멘털 마초^^.. 북하우스 번역이 좀 딱딱하긴 해도 괜찮습니다. 챈들러 소설은 좀 고지식한 번역이 좋은 거 같더라구요.

Forgettable. 2009-10-20 10:06   좋아요 0 | URL
ㅋㅋ 기대됩니다. ^^ 필립말로의 명성은 데빌님 서재에서도 몇번 본거 같아요 ㅎㅎ
제가 산 건 동서문화사 책인데, 번역이 어떨런지..

너무 힘든 아침이네요. 휴, 좋은 하루 보냅시다!

Joule 2009-10-20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하이드 님도 댓글에서 같은 말씀 하셨는데 북하우스에서 나온 박현주 씨 번역의 챈들러는 꽤 괜찮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번역문이 원문보다 나을 정도로요.

Forgettable. 2009-10-21 11:51   좋아요 0 | URL
아, 그때 두분께서 말씀하시던 챈들러의 번역이야기가 이것이었군요.
쥴님의 말씀을 참고하여, 동서문화사 책 번역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북하우스 버전을 기대해보아야겠네요 ^^ 고맙습니다~

머큐리 2009-10-20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좋은 시간들을 가진 걸 난 왜 모르고 그냥 지나갔는지....(연락을 안해주니까 --;)
애고 부러워라...다들 보고 싶은 사람들이넹~~

Forgettable. 2009-10-21 11:52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러게요, 저도 꼽사리 끼는 처지라 누구 부를 처지가 아니어서. ㅠㅠ
그 날 머큐리님 이야기도 했어요. 머큐리님도 보고싶은데..
여튼,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