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 남진영이 옮긴 <기독교 : 기독교의 교리, 유형, 역사에 대한 간결한 입문>은 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펴내는 "A Very short Introduction"시리즈의 기독교편이다. 책 말미에 소개된 도서목록을 옮겨놓는다. 


기독교 일반 















1. Linda Woodhead, An Introduction to Christianit

2. Paul Heelas and Linda Woodhead, The Spiritual Revolution : Why Religion is Giving Way to Spirituality 


제1장 

역사적 예수 









3. E. P. Sanders, The Historical Figure of Jesus

4. Dominic Crossan, Jesus : A Revolutionary Biography(<예수>로 번역출간됨) 


신약성서의 예수 이미지 














5. Paula Friedrikson, From Jesus to Christ : The Origins of the New Testament Images of Jesus 


초기 기독교 

6. Walter Bauer, Orthodoxy and Heresy in Earliest Christianity (Philadelphia, 1971) 


제2장 

어거스틴 














7. Peter Brown , Augustine of Hippo : A Biography(<어거스틴 : 생애와 사상>으로 번역출간) 


예술과 역사 속의 예수 














8. Gabriele Finaldi(ed.), The Image of Christ 

9. Jaroslav Pelikan, Jesus Through the Centuries : His Place in the History of Culture(<예수의 역사 2000년>으로 번역출간) 


기독교문화 












10. Geoffrey Barraclough (ed.), The Christian World : A Social and Cultural History 


기독교 예배














11. James F. White, A Brief History of Christian Worship 


제3장 

기독교와 제국 

12. Ramsey MacMullen, Christianizing the Roman Empire (Yale, 1984) 


기독교왕국의 성장 














13. Judith Herrin, The Formation of Christendom

14. Peter Brown, The Rise of Western Christendom : Triumph and Diversity AD200-1000(<기독교 세계의 등장>으로 번역출간) 


중세 기독교 
















15. R. W.Southern, Western Society and the Church in the Middle Ages(펭귄 교회사 시리즈 중 중세편으로 <중세교회사>로 번역출간) 

16. Jacques Le Goff, Medieval Civilization 400-1500(<서양중세문명>으로 번역출간) 


중세신학














17. Jaroslav Pelikan, The Growth of Medieval Theology (600-1300)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18. Patrick Collinson, The Reformation(<종교개혁>으로 번역출간) 

19. Diarmaid MacCulloch, Reformation : Europe's House Divided 1490-1700 


가톨릭 개혁 














20. Michael Mullett, The Catholic Reformation 


초기 금욕주의와 수도자운동 













21. Peter Brown, The Body and Society : Men, Women, and Sexual Renunciation in Early Christianity 


서방의 수도자운동 














22. C. H.Lawrence, Medieval Monasticism : Forms of Religious Life in Western Europe in the Middle Ages 


신비주의 : 동방과 서방 















23. Bernard Mcginn and John Meyendorff (eds), Christian Spirituality, two volumes 


프로테스탄트 급진주의 

24. George H. Williams, The Radical Reformation(Philadelphia, 1962) 


제5장

신앙고백적 기독교 

25. Felipe Fernandez Armesto and Derek Wilson, Reformation : Christianity and the World 1500-200 (London, 1996)


기독교와 프랑스대혁명 

26. John McManners, The French Revolution and the Church (London, 1969)


미국의 기독교 














27. Sydney E.Ahlstrom, A Religious History of the American People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28. George Marsden, Understanding Fundamentalism and Evangelicalism 


현대 서양 기독교 












29. Hugh Mcleod, Religion and the people of Western Europe 1789-1990 


현대 신학

 













30. David Ford (ed.), The Modern Theologians (<현대신학과 신학자들>로 번역출간) 


제6장 

세계기독교 역사














31. Adrian Hastings (ed.), A World History of Chrisianity 


정교회 














32. J. M.Hussey, The Orthodox Church in the Byzantine Empire 

33. Stephen Runciman, The Orthodox Churches and the Secular State 

34. Jane Ellis, The Russian Orthodox Church : A Contemporary History 


정교회 신학 














35. Jaroslav Pelikan, The Spirit of Eastern Christendom (600-1700) 


선교 














36. Andrew Walls, The Missionary Movement in Christian History : Studies in the Transmission of faith 


은사주의의 급증  














37. David Martin, Pentecostalism : The World thier Par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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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훑어본 책은 우리말 운동가인 최종규의 <사랑하는 글쓰기>(SB+). 이오덕 선생의 <우리 문장 쓰기>(FB+)의 2010년도 개정 요약본이라 할 만한 이 책은 흔히 잘못쓰기 쉬운 겹말(한문과 우리말을 섞어쓰는 데서 나오는 동어반복)문제를 중심으로 바른 한국어 문장을 쓰기 위한 간략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문장 쓰기>가 그렇듯 이 책 역시 한 문장을 소개하고, 그 문장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자신이 다듬은 문장을 제시하고 있다.

소개한 문장들에 대한 그의 지적은 날카롭고, 크게 공감한 경우가 대부분이나 그런 지적을 거쳐 최종적으로 만들어낸 그의 새로운 문장들이 모두 만족스럽지는 않다. 이를테면 그가 "언어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이다"를 "말은 사람 생각과 느낌을 담아내는 그릇이다"(43)로 다듬을 때 별다른 이물감이 없으나 "학문을 출세의 도구로 삼고 싶지는 않다"를 "학문을 이름날릴 발판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43)로 다듬을 때는 눈에 걸린다. 즉 그가 부러 꼬아놓은 문장이나, 쓸데없는 개념어의 남발, "~의" "~적" "~하는 것"등의 표현을 다듬을 때는 이견이 없지만 '언중'에 이미 정착된 표현들을 바꾸고자 할 때('광장'을 '너른터'로 바꾼다거나(51), '세대의 차이'를 '나이때가 다름'으로 바꿀 때)는 나는 반신반의한다. 이오덕 선생의 '순수주의'에 고종석이 (존경과 함께)슬며시 비판의 칼을 들이대듯, 최종규가 '언어민주주의'를 넘어 '순수'를 강조할 때 난 (고종석에 깃대어)이런저런 군말을 달고 싶어진다. 하지만 약간의 불평과 언어관의 차이를 들어 이 책이 지향하는 바와 쓸모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비틀린 글버릇"(36)을 돌아보게 해주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책과 그의 다른 책인 <생각하는 글쓰기>를 사서, 두고 틈틈이 볼 참이다.
 


 

 

잠시 미루어두었던 <오픈북>도 일독했다. 다 읽어보니 "청소년들의 독서 지도에 어떤 힌트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11)는 지은이의 희망이나 "미국의 대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또 어떤 책을 읽는지, 무슨 문제로 고민하는지 등이 잘 다루어져 있어서 대학 생활에 도움"을 줄꺼라는 '옮긴이의 말'은 그냥 희망과 말로만 남겨둬야할 듯하다. 적잖은 책들과 저자들이 등장하지만 구체적으로 소년 더다에게 어떤 식으로 작용했는지 구체적으로 진술되어있지 않을뿐더러(구태여 읽어내자면 클리프트 패디먼의 '평생 독서 계획'이 그의 중학교 시절 중요한 독서 가이드였으며(159) 모티머 J.애들러의 '책에다 표시하는 방법'이라는 글을 읽고 책에 메모하는 법을 익혔다(230)는 것 정도?), 지은이가 입학한 대학(에벌린 칼리지라는 인문자유대학)과 그의 대학생활 당시 미국의 시대적 분위기(저 뜨거웠던 60년대!)는 오늘날 한국의 대학생들이 처한 상황과는 맥락이 달라도 한참 다르기 때문이다. "독서 가이드"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불품없다. 좋은 독서 가이드라면 "지혜와 세련됨에 대한 파우스트적 욕구"(109)가 어떻게 불러일으켜지고, 어떻게 다듬어져야하는지가 설명되어야 하나 이 책에는 그러한 설명은 빠져있다. 하지만 그러한 측면과는 무관하게 이 책은 빼어난 자서전이다. 자칫하면 폼재기 쉬운 자신의 인생-공장 노동자의 아들에서 일류대학을 나온 지성인으로의 성장기. 허다한 '자기계발서'들이 좋아할 법한 주제 아닌가-,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함께 한 책들에 대한 애정을 이 책은 위트있게 기술한다.

"저녁이 절반쯤 지나갔을 때, 어머니가 한구석에 처박혀 책을 읽는 나를 발견하고서 코카콜라와 부드러운 호밀빵에 달콤한 피클을 얹은 햄 샌드위치를 가져다 주었다. ...옆에서는 주방 테이블 위에 떨어지는 5센트와 10센트의 동전소리들이 은은하게 들려왔고 이모들은 선물들로 밝게 장식된 거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들의 자녀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은 워즈워스가 말한, 인생의 기력을 회복시키는 '한 점의 시간'이었고, 잡티가 전혀 들어있지 않은 완벽한 행복의 시간이었다"(99)

""미국적 생기가 곧 천재의 시금석이었던 휘트먼의 이 땅에 대한 증언. 완전판" 광고가 이렇다 보니 삭제된 불완전판을 산다는 것은 야만적인 일이었다"(161)

"파리에서 처음 발간된 올림피아 판의 무삭제 판본이라는 설명은 음란 서적임을 확인해 주었다. '무삭제'와 '파리'같은 무한히 암시적인 말은 이 책을 집으로 가져가야겠다는 내 마음을 굳혀주었다"(241)

"고2가 지나가고 고3이 시작되었는데도 나는 여학생 문제라면 손을 한 번 잡은 것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나는 교사들을 비웃었고 내 성적표의 D를 개의치 않았고, 나 자신을 비순응주의자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 내가 얼었단 말인가? 결코 그럴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약간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햄릿처럼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면서 결승점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를 자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11월 6일, 17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전에 부드러운 살을 가진 어린 여자의 입술에 키스를 하겠다고 스스로 맹세했다"(251)

"...거시 경제학은 나처럼 꿈많은 학생에게 아주 매력적인 과목이었다. 나는 헨리 조지와 단일세에 대한 리포트를 제출했는데, 이런 논평과 함께 내게 돌아왔다. "더다군. 당신은 헨리 조지처럼 글을 잘씁니다. 그러나 당신이나 조지나 경제학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군요"(318)

지은이는 "처음의 실패 뒤에 반드시 성공하려는 충동, 존경하는 스승의 반복적인 등장, 특정 이야기들에 대한 선호, 새로운 작가, 장르, 문학에 대한 집착, 로레인, 오벌린, 멕시코, 유럽으로 점점 넓어지는 지평"(381)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오늘의 성숙한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다루되 결코 자신의 과거를 부러 볼품없게 다루거나 깎아내리지 않는다. 혹은, 그 성숙함을 바탕으로 자신이 '오독'한 과거와 화해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자신의 과거를 담담히 곱씹어보기, 그리하여 다시금 성숙해지기. 이 책이 오늘날 학생들에게 하나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바로 이런 측면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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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1-11-15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글쓰기>나 <생각하는 글쓰기>에서 '순수'를 이야기한 적 없어요. '다른 길'을 이야기했을 뿐이에요. 여느 제도권교육을 받고 제도권언론을 듣는 사람들한테 익숙한 말투를 그대로 쓸 수 있겠지만, 이와 달리 이야기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책을 잘 살피시면, 모든 '다듬은 글' 맨밑에 '...(말줄임표)'를 넣었어요. 일러두기에서도 밝히지만, 글쓴이가 밝힌 '다듬은 글'이 가장 좋은 '다른 길'은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사람 스스로 '더 낫다고 여길 글다듬기'를 하기를 바라면서, 보기글마다 '...(말줄임표)'를 하나씩 꼭 넣었습니다.

이오덕 님 또한 '언어 민족주의나 언어 순수주의'가 아니에요. '이렇게 써 볼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새로운 길을 하나하나 열었을 뿐이에요. 이러한 새 길로 더 많은 사람이 즐거이 걸어갈 수 있기도 할 테지만, 새 길이 그닥 내키지 않을 때에는 사람들마다 또다른 새 길을 낼 수 있겠지요. 말과 글을 다듬는 일은 '순수'나 '민족'이 아닌 '대안'을 찾는 새로운 삶이랍니다.

우리 말이 한 자리에 고여 썩지 않도록 하고 싶은 꿈이에요.

Viator 2011-11-15 08:13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새겨두고 읽겠습니다.
 

 

 

 

    

 

 

 

 

 

 

 

 

 

 

밤새 근무하면서 읽은 책은 이용재의 '딸과 함게 떠나는 건축여행2'(+). 알라딘에서 일하던 시절 을 재미있게 읽었고, 어딘가로 슬며시 떠나고 싶은 생각도 들어 도서관에서 빌렸다. 이리하여, '언젠가 갈 곳' 리스트만 에 몇 개의 건축물과 도시가 추가된다. 일단은 추가되기만 한다. 

 

허다한 건축 에세이와 답사기가 있지만, 적어도 (한국 근현대사와 맞물려 있는)근현대 건축물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이시리즈를 일종의 입문서로 읽는 것이 적절하다. 난잡한 책 편집이 눈에 거슬리지만, 이용재의 입담은 그런 편집의 부실함을 넘어선다. 건축과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 그리고 이런저런 인맥과 본인의 체험을 통해 얻은 잡식은 툭툭 끊겨진 단문의 구어체에 담겨 독특한 풍취를 풍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부분. 


'아라리오의 대표 김창일은 1970년대 일찍이 주식에 손을 대 떼돈을 번다. 1978년 구 천안시 시외버슽미널에 4개의 점포를 내고 장사 시작. 꿈은 화가. 그림 그리기 위해 돈을 번다. ...1986년 아예 터미널을 사들이고. 마침 터미널이 1989년 신도시인 신부동으로 이전한다. 250억을 투자해 1만 평의 대지에 아라리오 시티 조성. 터미널과 백화점, 영화관을 아우르는 멀티공간. 한화의 갤러리아백화점도 유치. 이제 아라리오 시티는 천안의 명소가 된다. ...이제 돈 쓰는 일 시작. 5층짜리 1500평 규모의 허름한 극장 리노베이션 착수. 옴니디자인의 이종환이 나선다. 지하층,1,2층은 임대주고 임대료 받아 3,4층의 아라리오 갤러리 적자 운영 메우고. 돌리고 돌리고. 외장 마감재로 코르텐 강판 붙이고 끝. 이종환이 원래 최소의 디자인만 하는 분이라. 장난치는 거 싫어한다. ...갤러리아 백화점 앞마당에 1천 평의 아라리오 푸른조각공원. 삐까번적한 140여점의 조각품들. 정말 장난이 아니다. 이 조각공원은 2007년 제2회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국무총리상 수상. 평당 수천만운 하는 사유지를 천안 시민들을 위해 도네이션한 배짱. ...코르텐의 입구에 ...데미안 허스트의 <hymn이 서 있다. 2003년 20억 주고 사들인 명품. ...박서보,박윤영,권오상 등의 30여명의 전속작가에게 매달 2천만원 지원. 제주도 성산포에 화실 만들어 젊은 화가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2010년 완공을 목표로 4천평 규모의 아라리오 뮤지엄 추진 중. ...이제 전 세계로 나간다. 2007년 세계적인 미술잡지 아트리뷰 매거진은 ...대한민국 미술권력가로는 유일하게 김창일 지명. ...눈치 빠른 굿모닝신한증권은 120억의 서울아트펀드를 만들어 김창일에게 맡긴다. ...아라리오 그룹의 금년 매출은 1천억. 이익금은 죄다 아트에 투자.'(270-6) 

 

 틈틈이 읽은 '오픈북' (SB+)은 이제 중반부에 접어들었다. 중반부에서 저자는 자신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다루고 있는데, 그 전까지 추리물과 모험물에 국한되어 있던 그의 독서리스트는 중학교에 들어와 한결 넓어지고, 깊어진다. 일종의 '비약'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결정적인 계기는 자신이 속해 있던 "우등반"을 도맡아 가르치던 사회선생님,영어선생님과의 만남, 그리고 우연히 발견하게 된 "클리프트 패디먼의 '평생 독서 계획'"(159)을 구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저 계기들을 통해 그는 자신 안에 있는 "지혜와 세련됨에 대한 파우스트적 욕구"(109)를 적절하게 분출할 수 있게된다. 내 경우에는 어땠더라? 독서 리스트가 한결 풍성해진 것은 아마도 중학교 3학년 시절 국어 선생님이 방과 후 논술교육을 할 때 독서리스트를 일종의 특별서비스로 제공한 이후였을 것이다. 문득, 그 리스트에 열거된 책들의 이름들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2006년 그때까지 모았던 많은 책들과 함께 월곡동 집에 묵혀있다 이내 버려졌을 그 리스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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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은 책은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1권' (++)과 마이클 더다의 '오픈북'(SB+). 

아마도 먼 훗날 리영희선생과 견줄 수 있을 몇 안될(혹은 유일한) 인물일 강준만의 마스터워크라 할만한 한국 현대사 산책시리즈의 2000년대 편의 첫번째 책인 제1권은 김대중 정부의 몰락과 노무현의 상승, 그외 한국의 문화적 풍경(영어 자본의 권력화, 한류의 등장, 금연의 정착화를 대표로하는)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김대중 정부의 몰락과 노무현의 상승은 일종의 동전의 앞뒷면과 같으니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 방대한 자료들을 일정하게 배치해 이를 연대기적으로 묶어낼 수 있는(더 나아가서는 하나의 사관으로 응집시킬 수 있어야겠지만, 비역사 전공자인 그에게 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의 능력에는 그저 감탄이 나올 뿐이다. 기력을 잃어가는 사자를 공격하는 하이에나를 묘사하듯 김대중 정부와 '조중동'의 관계를 서술한 그의 글솜씨(편집능력이라고 해야 온당할지도 모르겠다)를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픈북'은 일종의 성장기라 할 수 있는데, 현직 서평가답게 그를 성장케 한 중심요소는 다름아닌 책이다. 그가 책 전체를 통해 하고자 하는 바는 "어린 나에게 책들이 가져다 준 즐거움을 생생하게 증언하면서, 내가 책들을 발견하게 된 과정, 내가 책들에게서 얻은 느낌"(서문중)이라지만 초반부까지 읽은 바로는 책과 얽힌 이야기보다는 1950년대 이주민 출신 노동자계급 가족의 풍경에 대한 간결한 묘사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문장들. "어머니는 가난한 과부가 꾸려 가는 10남매 가정에서 자랐으며 그녀의 집은 사우스 로레인의 철길 근처에 있었다. ...어린 소녀 시절 어머니와 형제들은 겨울의 난방을 위해 철로 주위에 떨어진 석탄을 긁어모아야 했고, 집안의 가난한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해야 했다. ...진주만이 폭격 당한 후에 어머니는 소녀에 불과했지만 로레인에서 8마일 떨어진 일리리아에서 드릴 프레스를 돌리며 나사와 볼트를 만드는 전쟁 지원을 했다. 어머니처럼 프레스를 빠르고 정확하게 다루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 나는 어머니가 햇빛 환한 딸기밭에서 딸기를 따 바구니에 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따서 넣는다기보다 탈곡해서 던져 넣는다는 표현이 더 옳았다."(19) "이곳(핫 워터스)은 이리 호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인근의 전기 공장에서 나온 전기 덕분에 물이 뜨거워 핫 워터스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즐겨 낚시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번은 아버지와 내가 한두 시간 안에 농어를 50마리나 잡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청소년이 되었을 때 잡히는 농어,창꼬치,베스 등은 독성이 너무 많아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으로 판정되었다"(95) 
 

  

 

 

 

 

 

 

 

 

 

 

 

앞의 두 책들 처럼 집중해서 읽지는 않았지만 허문영의 영화 비평집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SB+)또한 드문드문 읽었다.(이전에 '씨네21'을 통해 보았던 미션투마스와 우주전쟁에 대한 평을 제외하고)  '한국영화의 소년성'과 봉준호에 대한 몇 개의 글은 흥미롭게 읽었고 '폭력의 역사'와 '다크나이트'에 대한 분석은 감탄하면서 읽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분석, 그리고 문장들.

"(폭력의 역사에서) 첫 시퀀스에서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이 생략은, 톰의 까페 신에서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과잉과 미묘하게 조응한다. 관객에게 까페에서의 톰의 살해 행위는, 첫 시퀀스의 두 사내의 만행에 대한 응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우리는 폭력의 과잉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못 본 척하다. ...징벌의 폭력은 약간 넘치는데, 죄악의 폭력은 약간 모자란다. ...혹은 결과는 넘치는데 원인은 약간 모자란다. .. 폭력의 과잉의 거처는 어디인가. 우리 모두는 답을 알고 있다. 그것은 관객인 우리의 욕망이다. ...크로넨버그는 폭력으로 우리를 만족시킨 다음, 거의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윤리관이 해소하지 못하는 미세한 잉여를 남겨둔다"(322-3)

"...'다크 나이트'에선 스펙터클의 난폭한 급류가 퍼즐의 섬세한 회로와 만나는 길을 찾아냈다. 이 영화의 아찔한 속도감은 질주와 폭파와 추락이 조합된 개별 장면들의 시청각적 자극의 효과라기보다(이것에 의존한 영화는 너무 많다), 두 기사를 암흑의 심연으로 내던지는 듯한 끝없는 퍼즐의 중첩이 만들어내는 서사의 효과다."(417) 

의외로 "그의 영화가 나의 윤리학"(30)이라는 고백을 담아 공들여 쓴 홍상수에 대한 글들은 잘 읽히지 않는다. 아마, 홍상수를 통해 '비평가'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그의 몸부림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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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갱신의 시대에 성서가 우리에게 더 풍성하게 다가온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교회 논쟁의 불가피한 일상적 구호와 투쟁적 구호 배후에는 오직 중요한 것, 곧 예수 자신을 향한 추구와 질문이 더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예수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예수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오늘 우리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에 예수가 무슨 도움을 주는가?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교회의 이런저런 사람들의 소원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예수의 소원이다. 우리가 설교를 들으러 갈 때, 우리가 듣기를 원하는 것은 예수의 말씀이다. 이것은 단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와 복음을 멀리하고 있는 많은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만약 설교 속에서 예수 자신이, 오직 예수만이 우리에게 들려온다면,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듣겠지만, 어떤 사람은 다시 귀를 막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의 설교가 더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불순한 소리가, 얼마나 많은 인간적이고 딱딱한 율법이, 그리고 얼마나 많은 거짓된 희망과 위로가 예수의 순수한 말씀을 흐려놓고 있으며, 진정한 결단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가!

 <나를 따르라>는 <신도의 공동생활>과 함께 본회퍼 삶의 제2시기(독일에 돌아와 고백교회가 운영하는 휭겔발데 신학교의 책임을 맡아 목회자들을 교육했던 시기)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히는 책으로써 오늘날까지 개신교 교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나치즘을 의식하면서 이 책은 그러한 현실을 두고 해야할 신앙고백에 관해 권고한다. 그에게 있어 그리스도를 제자의 길이란 그리스도에 귀의를 뜻하며, 이렇게 귀의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보냄에 응답해야한다. 그에게 있어 신앙과 순종, 칭의와 성화, 은총과 소명은 구별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오직 믿는 자만이 순종하고, 오직 순종하는 자만이 믿는다(61)".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그는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예수의 산상설교와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주석을 통해서 풀어낸다.  

<나를 따르라>에서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널리 알려져있듯) 현실 그리스도교인들이 전통적인 이신칭의 교리를 왜곡하여 은총을 "값싼 은총"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본회퍼는 값있는 은총을 전제로 한 값진 순종을 바탕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그 표준은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그리스도가 오직 고난을 받고 버림을 받은 자로서만, 오직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자로서만 제자가 될 수가 있다. 제자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의 결속으로서 그를 따르는 자를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곧 십자가 아래 세운다."(93) 십자가를 따르는 길의 첫걸음은 옛 사람의 죽음(즉 회심)과 세상적 가치의 죽음이다. 그리스도가 사람을 부를 때 그 부름은 자신을 따라 옛 자신을 죽일 것을 촉구한다. 성화의 십자가, 혹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을 전제로 한 삶이다.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삶이 펼쳐지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다. 

넓게는 교회의 세속화, 좁게는 나치즘이라는 폭력적인 체제 속에서 자기만족적인 신앙생활에만 집중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나를 따르라>는 경종을 울렸으며, 다름 아닌 본회퍼 스스로가 히틀러 암살계획에 참가함으로써 저 메시지를 실현시켰다. 이후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들부터, 진보적인 신학자들까지 <나를 따르라>를 전거삼아 교회의 세속화 문제와 칭의와 성화의 문제를 다시 곱씹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곱씹음 뒤 본회퍼만큼 자신의 논의들을 스스로의 삶 속에 녹여낸 이는 , 아직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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