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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갱신의 시대에 성서가 우리에게 더 풍성하게 다가온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교회 논쟁의 불가피한 일상적 구호와 투쟁적 구호 배후에는 오직 중요한 것, 곧 예수 자신을 향한 추구와 질문이 더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예수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예수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오늘 우리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에 예수가 무슨 도움을 주는가?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교회의 이런저런 사람들의 소원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예수의 소원이다. 우리가 설교를 들으러 갈 때, 우리가 듣기를 원하는 것은 예수의 말씀이다. 이것은 단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와 복음을 멀리하고 있는 많은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만약 설교 속에서 예수 자신이, 오직 예수만이 우리에게 들려온다면,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듣겠지만, 어떤 사람은 다시 귀를 막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의 설교가 더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불순한 소리가, 얼마나 많은 인간적이고 딱딱한 율법이, 그리고 얼마나 많은 거짓된 희망과 위로가 예수의 순수한 말씀을 흐려놓고 있으며, 진정한 결단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가!

 <나를 따르라>는 <신도의 공동생활>과 함께 본회퍼 삶의 제2시기(독일에 돌아와 고백교회가 운영하는 휭겔발데 신학교의 책임을 맡아 목회자들을 교육했던 시기)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히는 책으로써 오늘날까지 개신교 교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나치즘을 의식하면서 이 책은 그러한 현실을 두고 해야할 신앙고백에 관해 권고한다. 그에게 있어 그리스도를 제자의 길이란 그리스도에 귀의를 뜻하며, 이렇게 귀의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보냄에 응답해야한다. 그에게 있어 신앙과 순종, 칭의와 성화, 은총과 소명은 구별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오직 믿는 자만이 순종하고, 오직 순종하는 자만이 믿는다(61)".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그는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예수의 산상설교와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주석을 통해서 풀어낸다.  

<나를 따르라>에서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널리 알려져있듯) 현실 그리스도교인들이 전통적인 이신칭의 교리를 왜곡하여 은총을 "값싼 은총"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본회퍼는 값있는 은총을 전제로 한 값진 순종을 바탕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그 표준은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그리스도가 오직 고난을 받고 버림을 받은 자로서만, 오직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자로서만 제자가 될 수가 있다. 제자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의 결속으로서 그를 따르는 자를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곧 십자가 아래 세운다."(93) 십자가를 따르는 길의 첫걸음은 옛 사람의 죽음(즉 회심)과 세상적 가치의 죽음이다. 그리스도가 사람을 부를 때 그 부름은 자신을 따라 옛 자신을 죽일 것을 촉구한다. 성화의 십자가, 혹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을 전제로 한 삶이다.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삶이 펼쳐지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다. 

넓게는 교회의 세속화, 좁게는 나치즘이라는 폭력적인 체제 속에서 자기만족적인 신앙생활에만 집중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나를 따르라>는 경종을 울렸으며, 다름 아닌 본회퍼 스스로가 히틀러 암살계획에 참가함으로써 저 메시지를 실현시켰다. 이후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들부터, 진보적인 신학자들까지 <나를 따르라>를 전거삼아 교회의 세속화 문제와 칭의와 성화의 문제를 다시 곱씹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곱씹음 뒤 본회퍼만큼 자신의 논의들을 스스로의 삶 속에 녹여낸 이는 , 아직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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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Barth
 

 

 

 

 

 

  

 

1.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개신교 신학의 여명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후에 더 이상 신학자들의  발언이 더 이상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동시에 신학의 절정기기도 했다. 2번의 세계대전 전후로 걸출한 신학자들과 그들의 저작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이후 그들만큼의 역량을 보여주는 신학적 작업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혹은, 나올 수 없다). 그리고, 그 신학적 거인들의 명단에는 항상 '칼 바르트'라는 이름이 있다.

2.<복음주의 신학입문>은 바르트가 30년간 교편을 잡았던 바젤대학 신학부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기위해 적어둔 원고 바탕으로, 1963년 미국에서 했던 두 번의 강연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저작이다. 신학자로서의 명성을 알린 <로마서 강해>, 신학적 역량을 총 동원한 신학집성이 <교회 교의학>에 견주면 소품이라 할 수 있다. 
 

3.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 책이 지닌 가치가 낮게 평가될 수는 없다. 이 책은 신학연구자들이 지녀야할 태도와 내용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슐라이어마허의 <신학개요>와 견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신학입문서다. <로마서 강해>와 같은 화려한 수사학이나 <교회교의학>과 같은 방대한 인용은 보이지 않지만 인생의 황혼에 쓰여진 저작답게 한 문장 한 문장이 허투루 읽히지 않는다.

4.하여, 이 책은 신학 일반 뿐 아니라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바르트 신학의 좋은 입문서가 되어주기도 한다. 바르트의 신학은 결국 이 시대에 신학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신학 연구자들에게 있어 반드시 제기되어야할 질문이나 쉬이 잊혀지곤 하는 문제의식을 평생 두고 나온 학적 소산이기 때문이다. 성서의 구절들과 이런저런 신학적 논의들이 책 전면에 다루어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현대적 상황이라는 현실 인식이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다. 바르트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저 상황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선포할 것인지에 답하고 있고, 또 읽는 이에게 자신이 가리키는 길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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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존 맥쿼리는 1919년 스코틀랜드 렌프류에서 태어났으며, 1936년부터 43년까지 글래스고 대학에서 수학했다. 이후 군목 생활을 하고, 1948년부터 53년까지는 교구사제로 성직을 수행했으며, 53년부터는 다시 모교인 글래스고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며 신학자의 길을 걷는다. 1957년 3월부터는 미국 뉴욕 유니온신학교에 초빙되어 불트만의 신학을 가르쳤는데, 미국 신학계에 불트만 신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친 첫번째 경우로 평가받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1962년 유니온 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 부임했으며 1970년까지 그곳에서 철학적 신학을 가르쳤다. 이 기간 그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영역하는데, 지금까지도 그의 영역본은 영미군에서 널리 읽힌다.  

1970년에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교수로 정년퇴직할 때까지 활동했으며, 동시에 사제로도 활동했다. 

2.맥쿼리의 철학적 신학은 그의 <기독교신학의 원리>(이하 원리)에서 함축적으로 다루고지고 있다. 그에게 있어 철학은 신학적 이해의 매우 중요한 도구이며, 철학 없는 신학은 불가능함을 누누이 강조했다. <원리>의 서문에서 그는 자신이 영향을 받은 5명의 학자들을 밝히는데, 첫번째는 하이데거이며, 두번째는 개신교 신학자인 칼 바르트와 에밀 브루너와 카톨릭 신학자인 칼 라너, 세번 째는 앞서 언급한 루돌프 불트만이다. 그에게 있어 하이데거는 자신을 포함한 20세기 철학적 신학의 형성에 자극을 준 결정적 인물이며, 라너는 이 하이데거의 철학을 신학과 연계지어 이해할 수 있게끔 도움을 준 인물이다. 불트만은 이러한 '철학적 신학'과 성서 이해를 연결시키는데 도움을 준 주요한 안내자이며, 바르트와 브루너는 기독교의 원초적 메시지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 스승들이다.  

3.<원리>는 1부 철학적 신학, 2부 상징신학, 3부 응용신학 총 3부 21장 90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에게 있어 신학은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서술하는 학문이며 그 바탕에는 종교적 신앙에 의한 참여와 반성이 이루어지는 삶이 자리잡고 있다. 신앙과 이성, 혹은 이성과 계시의 상관관계를 신학의 주요 주제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는 틸리히와 비교될 수 있으나, 맥쿼리는 하이데거의 실존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학방법에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보기에, 삶이라는 터에서 이성과 신앙의 균형을 잃을 때 한편으로는 자기도착적 이기주의로, 한편으로는 자기포기적 신비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다. 신학은 이 두 양극의 긴장과 균형을 도모해야하며, 그 속에서 기독교의 메시지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4.20세기 기독교 신학사에서 맥쿼리의 공헌은 영미권에 당대 독일에서 진행되었던 심도깊은 철학적, 신학적 작업들을 온전히 소개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좀 더 작은 범주, 즉 자신이 속해있던 성공회라는 교파 내에서 그는 상대적으로 전례학 쪽으로만 관심이 기울어져있던 성공회 신학에 신학적 깊이를 부여한 이로 평가받을 수 있다. <원리>는 그러한 맥쿼리의 신학방법과 그 깊이를 엿볼 수 있게해주는 핵심저작이다. 

덧.맥쿼리의 또 다른 대표저작으로는 <20세기 종교적 사유>가 꼽히는데, <기독교 신학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한글로는 번역되지 않았다. 현재 한국에 소개된 맥쿼리의 저작은 그가 옥스퍼드 핸슨강연의 강의내용을 담은 <하이데거와 기독교>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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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테 죌레 

 

1.현대신학자 중, 현대'여성'신학자 중에서도 도로테 죌레는 퍽 친숙한 학자다. <사랑과 노동>, <다른 행복의 권리>,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녀의 말년작인 <신비와 저항>등 적지않은 저서가 우리말로 옮겨졌고 또 (신학책치고) 널리 읽혔기 때문이다. 그녀를 여성신학자, 즉 페미니스트 신학자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녀는 여성운동 보다는 좀 더 넓은 범주, 평화운동에 주로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2.도로테 죌레는 1929년 9월 30일, 쾰른에서 태어났으며, 쾰른과 프라이부르크에서 고전문학과 철학을, 괴팅엔에서 신학과 독문학을 공부했다. 1972년 쾰른대학에서 계몽주의 이후의 신학과 문학의 관계에 관한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취득했고, 1975년 이래 뉴욕에 있는 유니온신학교의 교수로 매년 한 학기씩 강의를 했다. 저서를 펴내고 적잖은 지명도를 얻은 뒤에도 그녀는 독일에서 교수가 되지 못했는데 이는 그녀의 사생활(이혼 경력과 가톨릭 사제였던 슈테펜스키와의 재혼)에 대한 적대자들의 험담, 정치적 급진성(그녀는 1968년 10월 쾰른에서 시작되어 기독교인의 평화를 위한 연대와 정치적 결단을 호소하는 '정치적 밤의 기도회'를 주도했다), 당대 신학계와의 불화가 적잖이 작용했다.  

3.신학자로서의 도로테 죌레를 저평가하는 이들은 그녀를 신학자라기보다는 에세이스트, 혹은 독문학자로 보려하지만, 그녀의 저술활동의 밑바탕에 신학이 자리잡고 있음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현대신학의 패러다임>은 그녀가 20세기에서 간과될 수 없는 신학자임을 보여주는 저작이다.  

4.<현대신학의 패러다임>에서 그녀는 신학의 패러다임을 정통주의, 자유주의, 해방주의로 나누어 자신의 견해를 개진해나간다. 패러다임의 전환의 끝을 해방주의로 논다는 점에서, 그녀는 자신이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신학자임을 감추지 않으며, 패러다임이 어떻게 전환되어 가는지를 살피면서 '성서와 실천' '창조와 인간과 세계' '죄와 소외' '은총' '십자가와 부활' '하나님나라와 교회'등의 개념들이 어떤 식으로 변천되어가는지, 각 패러다임들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논하고 있다.  

5.도식화의 함정을 벗어나기는 힘들지만, 사상의 전개를 살피며, 그 안에 절박한 현실에 참여해, 그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열망을 담아 신학의 방향전환을 논하는 것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죌레는 이를 이루었으며, 그 자체로 높게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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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희망의 신학>은 20세기 후반 현대신학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 중 하나이고,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읽힌 신학저작이기도 하다. 1964년 출간된 이후, 이 저작은 유럽 정치신학의 모체로, 남미의 해방신학이 태동하게 된 하나의 계기로, 20세기 후반 세계 전역에 걸쳐 일어난 기독교인들의 정치신학적 활동의 기초로 평가받았다. 

2.젊은 시절 몰트만은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을 읽고 난 뒤, 더 이상 조직신학책을 쓸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그가 보기에 <교회교의학>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신학적 진술을 집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날 몰트만은 이 책이 빠뜨린 중요한 기독교 주제를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종말론이었다. 몰트만이 보기에 바르트의 글에서는 종말론이 이렇다할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비단 바르트가 아니더라도 종말론은 신학의 마지막 부분, 부록으로 취급되곤 했다. 이에 반해 몰트만은 이 저작에서 종말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종말론은 기독교 신학의 마지막 부분 혹은 부록에 위치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신학 그 자체가 종말론적으로 정립되어야한다고 역설한다. 

3.기독교신앙과 신학이 본질적으로 종말론적이어야 함은 기독교신앙과 신학이 이미 시작된 하나님나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을 중요 요소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기존의 질서를 변혁하는 종말론적인 세계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역사의 마지막 날에 나타날 세계이지만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현재화되기 시작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통치와 함께 역사 안에 현존하기 시작했다고 그는 파악한다. 

4.이것을 믿는 이들,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를 희망하는 이들은 현재 주어져 있는 고통의 현실에 안주할 수 없다. 고통의 현실은 하나님께서 바라는 현실이 아니며, 그 이전에 예수를 통해 이미 결정적으로 극복되었으며, 그러한 극복은 우리의 현재 삶속에서도 드러나야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희망은 현존하는 질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신학적으로 온건한 흐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이 책이, 정치적 변혁을 꿈꾸는 이들이 영감을 준 것에는 바로 이러한 논의들이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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