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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지대 고라즈데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1.'안전지대 고라즈데'는 여러모로 (김규항이 했던 의미에서의) 불편한 책이다. 사코는 '팔레스타인'에서 보여주었던 그만의 시각으로 보스니아 내전 중에서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쉽게 사라졌던 고라즈데라는 도시에서 벌어진 일을 다룬다. '쉽게 기억속에 사라진 도시'의 이야기를 다시 꺼냄으로써, 아주 간편하게 보스니아 내전을 정의내리려 한 사람들의 의식을 환기하는 한편, 그것을 다양한 포커스로 전개시켜나감으로써 사람들에게 전쟁 속의 삶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성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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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즈데'의 컷 중 하나
2.사코는 (팔레스타인에서도 느낀바지만)매우 영리한 작가이며, 기본적으로 자세가 된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 이 글의 당파성과 그 글을 쓰고 있는 작가 자신의 우월한 위치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고, 그것을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에 집어넣는다.(p146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는 그러한 자각을 바탕으로 통상 전쟁보도라 불리는 여타 방송들의 전쟁취재현실, 중립을 가장한 UN의 안이한 태도에도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그가 '영리하다'라고 판단한 이유는 그가 취한 만화의 구성방식 때문이다. 만화는 전체적으로 시간순, 그러니까 그가 고라즈데를 취재하는 시간을 따르고 있지만, 종종 인터뷰어들의 에피소드를 다룰 때는 그 에피소드가 벌어진 상황을 그려내어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때문에 독자들은 그가 취재하는 상황 속에 있는 것을 추체험할 수 있다. 그 속에서 현실성은 극대화되며, 거기에 곁들어지는 사코의 담담한 어조의 문체와 종종 선보이는 시니컬한 유머는 더 효과적으로 발휘된다.
3.'안전지대...'는 또한 민족주의라는 보이지 않는 신기루에 의해, 얼마나 사악한 일들이 자행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리포트이기도 하다. 한 가지 궁금한 것. 이 책 속에서 종교지도자들은,그리고 세르비아계와 보스니아계 사람들의 종교 생활은 기이할 정도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보스니아 내전은 민족주의가 낳은 참상이며, 거기서 '민족'이라는 것은 혈연이라기 보다는 종교공동체의 성격이 더 강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너무나 예민한 문제여서 사코가 부러 제외시킨 것일까. 전쟁 속에서 종교가 가진 '힘'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소소하기 짝이 없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UN이나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의 역겨운 '중립'이상의 '중립적인 태도'를 보여줘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