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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 20세기 신학의 교부, 시대 위에 우뚝 솟은 신학자 하나님의 사람 14
에버하르트 부쉬 지음, 손성현 옮김 / 복있는사람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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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한 획을 그은 신학자의 생애에 걸맞은 부피의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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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상페
장 자크 상뻬 지음, 허지은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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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도 할 수 있을거야"가 "언젠가는 행운이 올거야"하고 생각했지요. 그게 좀 다르거든요.-30쪽

풍자화는 (실용적인 기능이 없다는 점에서) 사치품입니다. 사람들은 사치품없이 살 수 없어요. 산다고해도 재미없게 살게되지요. 사치품은 무지개입니다. 항상 비가 내리는 브르타뉴 지방에서 산다고 해봅시다. 살기야 살죠. 하지만 하늘에 뜬 작은 무지개를 보면 기분이 한결 좋아지겠지요.-71쪽

(정신분석과 풍자화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해)정신분석은 내가 범접하기에는 너무도 중대하고 복잡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 말은 마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인류에 기여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말도 안되는 소리죠. 인류에 기여하는 사람은 독감예방주사같은 것을 개발하는 사람이잖습니까? ...인류에 기여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요-75쪽

내가 하는 일은 좀 애매한 일입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갈거예요.-75쪽

내가 하는 일은 약간 변형된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변형된 것이 확실한 게, 내가 기록하는, 내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는 것이니까요. 사람들의 행동, 그들의 번민, 혹은 존재에 대한 불안, 혹은 두려움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을 일시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덧없는 기록이라고나 할까요?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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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효정 옮김 / 까치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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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에 나는 끔찍하게 예민하다. 이미 가는 장소에서만 나는 평온을 느낀다. -17쪽

내 인생의 중요한 비극은 모든 비극처럼 운명의 장난이다. 나는 형벌과도 같은 실제 현실을 거부한다. 나는 비열한 해방과도 같은 꿈을 거부한다. 그러나 나는 실제현실의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지저분한 부분을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가장 강렬하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 꿈의 일부를 살고 있다. 나는 휴식을 취하는 동안 술에 취하는 노예같다. 요컨대 한 몸에 두 개의 불행이 산다.-31쪽

글을 읽을 줄 몰라도, 누구와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진정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면 의장 앉아서 온 세상을 구경할 수 있다. ...존재의 변화가 없을 때까지 존재를 단조롭게 하라. 가장 사소한 것이 흥미로운 일이 될 때까지 하루하루 감정을 이완하라. 지루하고, 똑같고, 불필요한 노동에 날마다 몰두하면...탈출의 환영이 나타난다. 머나먼 섬에 대한 상상 속 이미지가, 과거에 있었던 공원의 거리 축제가, 다른 감정이, 다른 내가 나타난다. -38쪽

...그에게는 영혼이 있었다. 이것은 틀림없다. 자살하려면 그것은 필수였다. -53쪽

시골에서 새벽을 맞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허나 도시에서의 새벽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하기 때문에 나는 더 마음이 편안하다. -56쪽

우리가 보는 사물 속에서 중지된 것은 모두 우리 내면에서도 중지된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것은 우리가 그것을 보았다면 그것이 떠날 때에, 우리내부에서 제거된다.-59쪽

일생은 잠이다. 아무도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아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며, 아무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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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 - 현대인이 잃어버린 안식의 참 의미를 말하다
아브라함 J. 헤셸 지음, 김순현 옮김 / 복있는사람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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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에게, 아니 기독교인들에게, 아니 보다 좁게 기독교인을 자칭하는 나에게 도대체 주일, 혹은 안식일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걸까? 아니, 나에게서 안식일의 의미를 찾기 이전에 안식일의 본래 의미는 무엇일까? 본래 의미로서의 안식일과 오늘날 기독교에서 행해지는 '주일'은 어떤 점을 공유하고 있으며, 어떤 것이 다른가? 주일날 예배 드리기가 점점 더 귀찮아지고 있을 때 이 책을 집어들었다. 주일은 형식적으로는 '주님의 날'이지만, 기본적으로 창세기에 그 연원을 있으며, 그것에 근거해 최초로 '안식'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 '안식일'에 지켜야할 조항등을 만들어낸 것은 유대교이기 때문이다.

  지은이 혜셸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안식일의 가장 큰 의미는 '시간의 가치',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인간의 공간과 대비되는 하나님의 성스러운 시간의 가치를 이 땅에 회복하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문명화'된 오늘날은 지나치게 공간 중심적이며, 시간의 가치를 망각케한다.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은 이러한 오늘날 원래 이 공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시간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다. 작게 보면 그것은 하루를 '성화'시키는 것이지만, 크게 보자면 이 하루로 인해 일주일 전체를 '성화' 한다고 혜셸은 확신한다. 시적인 문구(원서로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각각의 문구들은 아름답다.) 속에 그는 유대교가 지닌 고유의 가치를 당당히 선언한다.

 안식일, 기독교에 있어서 '주일'의 가치를 다룬 기독교 계열의 책들이 이 책을 참고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몇몇 책들은 이 책에서 나온 논의들을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해서 확장할 수도 있으리라. 이 책은 결국 유대교의 가치를 옹호하는 책이므로,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이 책은 상대적으로 '율법주의적'으로 비쳐질 테니, 그것을 지양하거나, 혹은 좀 더 확장해서 일주일 모두를 '성화'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그런 책들을 굳이 택하지 않아도, 몇몇 기독교인들은 고전적인 기독교가 이러한 논의들을 좀더 세세하게 구분해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혜셸은 시간을 또 다시 구분하지 않지만, 기독교는 시간을 두 차원으로 나눈다. 하는 통상적인 의미의 시간을 뜻하는 '크로노스'와 그러한 통상적인 시간을 꿰뚫고 오는 신적인 시간인 '카이로스'가 있다. 혜셸의 메시지를 기독교적 언어로 해석하면 '주일은 일주일이라는 '크로노스'속에 '카이로스'의 가치를 다시 드러내는 것' 정도가 된다.)시키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보다 더, 혹은 동시에 필요한 것은, 보다 실제적으로 주일, 혹은 안식일이 지닌 본래의 의미를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이 아름다운 책은 그 '어떻게'의 질문에 대해서 매우 추상적인 논의의 실천이나 원칙을 제외하고는 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혜셸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충실히 수행하면 , 하나님은 그에 대한 올바른 은혜를 선사하실 것이라는 올바른 의미에서의 '율법주의 유대교 신앙'을 지녔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현대 사회에 대한 관찰이 부족해서 일 수도 있다. 설령 혜셸이 전자의 위치에서 이 책을 썼더라고 보더라도, 이 책에서 영감을 얻어 '안식일의 가치'를 되새기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설득시키고자 한다면 후자를 염두해 두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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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 역사의 가장 위대한 수수께끼를 추적한 BBC 다큐멘터리
톰 라이트 지음, 이혜진 옮김 / 살림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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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던과 더불어 각광받는 신약학자 중 하나(신약전공을 하는 이들의 세미나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오갔다.)인 N.T.라이트의 대중을 위한 예수, 혹은 복음서 입문서. 대중서적 답게 아주 쉽고, 평이한 문장으로 꾸며져있지만 예수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빠짐없이 기록해 놓아, 신학생들도 '필수 암기 사항'을 정리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책이다.

내용도 마냥 기본적인 데이터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의 동향과 그에 대한 지은이의 견해('예수 세미나'에 대한 지은이의 비판은 꽤나 날카롭다.)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유익하다. 정승우의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과 병행해서 읽거나, 이 책을 먼저 읽고 정승우의 책을 읽는다면 예수와 복음서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정확히 말하자면 예수와 복음서를 읽기 위한 사전지식)은 숙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진보와 보수, 신약학에서 고전적인 저작과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시도(아주 최근은 아니지만)를 아우르는 참고문헌목록을 참조할 수 있다는 것도 덤이라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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