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읽은 책은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2000년대편 1권' (++)과 마이클 더다의 '오픈북'(SB+).
아마도 먼 훗날 리영희선생과 견줄 수 있을 몇 안될(혹은 유일한) 인물일 강준만의 마스터워크라 할만한 한국 현대사 산책시리즈의 2000년대 편의 첫번째 책인 제1권은 김대중 정부의 몰락과 노무현의 상승, 그외 한국의 문화적 풍경(영어 자본의 권력화, 한류의 등장, 금연의 정착화를 대표로하는)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김대중 정부의 몰락과 노무현의 상승은 일종의 동전의 앞뒷면과 같으니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 방대한 자료들을 일정하게 배치해 이를 연대기적으로 묶어낼 수 있는(더 나아가서는 하나의 사관으로 응집시킬 수 있어야겠지만, 비역사 전공자인 그에게 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의 능력에는 그저 감탄이 나올 뿐이다. 기력을 잃어가는 사자를 공격하는 하이에나를 묘사하듯 김대중 정부와 '조중동'의 관계를 서술한 그의 글솜씨(편집능력이라고 해야 온당할지도 모르겠다)를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픈북'은 일종의 성장기라 할 수 있는데, 현직 서평가답게 그를 성장케 한 중심요소는 다름아닌 책이다. 그가 책 전체를 통해 하고자 하는 바는 "어린 나에게 책들이 가져다 준 즐거움을 생생하게 증언하면서, 내가 책들을 발견하게 된 과정, 내가 책들에게서 얻은 느낌"(서문중)이라지만 초반부까지 읽은 바로는 책과 얽힌 이야기보다는 1950년대 이주민 출신 노동자계급 가족의 풍경에 대한 간결한 묘사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문장들. "어머니는 가난한 과부가 꾸려 가는 10남매 가정에서 자랐으며 그녀의 집은 사우스 로레인의 철길 근처에 있었다. ...어린 소녀 시절 어머니와 형제들은 겨울의 난방을 위해 철로 주위에 떨어진 석탄을 긁어모아야 했고, 집안의 가난한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해야 했다. ...진주만이 폭격 당한 후에 어머니는 소녀에 불과했지만 로레인에서 8마일 떨어진 일리리아에서 드릴 프레스를 돌리며 나사와 볼트를 만드는 전쟁 지원을 했다. 어머니처럼 프레스를 빠르고 정확하게 다루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 나는 어머니가 햇빛 환한 딸기밭에서 딸기를 따 바구니에 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따서 넣는다기보다 탈곡해서 던져 넣는다는 표현이 더 옳았다."(19) "이곳(핫 워터스)은 이리 호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인근의 전기 공장에서 나온 전기 덕분에 물이 뜨거워 핫 워터스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즐겨 낚시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번은 아버지와 내가 한두 시간 안에 농어를 50마리나 잡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청소년이 되었을 때 잡히는 농어,창꼬치,베스 등은 독성이 너무 많아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으로 판정되었다"(95)
앞의 두 책들 처럼 집중해서 읽지는 않았지만 허문영의 영화 비평집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SB+)또한 드문드문 읽었다.(이전에 '씨네21'을 통해 보았던 미션투마스와 우주전쟁에 대한 평을 제외하고) '한국영화의 소년성'과 봉준호에 대한 몇 개의 글은 흥미롭게 읽었고 '폭력의 역사'와 '다크나이트'에 대한 분석은 감탄하면서 읽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분석, 그리고 문장들.
"(폭력의 역사에서) 첫 시퀀스에서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이 생략은, 톰의 까페 신에서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과잉과 미묘하게 조응한다. 관객에게 까페에서의 톰의 살해 행위는, 첫 시퀀스의 두 사내의 만행에 대한 응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우리는 폭력의 과잉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못 본 척하다. ...징벌의 폭력은 약간 넘치는데, 죄악의 폭력은 약간 모자란다. ...혹은 결과는 넘치는데 원인은 약간 모자란다. .. 폭력의 과잉의 거처는 어디인가. 우리 모두는 답을 알고 있다. 그것은 관객인 우리의 욕망이다. ...크로넨버그는 폭력으로 우리를 만족시킨 다음, 거의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윤리관이 해소하지 못하는 미세한 잉여를 남겨둔다"(322-3)
"...'다크 나이트'에선 스펙터클의 난폭한 급류가 퍼즐의 섬세한 회로와 만나는 길을 찾아냈다. 이 영화의 아찔한 속도감은 질주와 폭파와 추락이 조합된 개별 장면들의 시청각적 자극의 효과라기보다(이것에 의존한 영화는 너무 많다), 두 기사를 암흑의 심연으로 내던지는 듯한 끝없는 퍼즐의 중첩이 만들어내는 서사의 효과다."(417)
의외로 "그의 영화가 나의 윤리학"(30)이라는 고백을 담아 공들여 쓴 홍상수에 대한 글들은 잘 읽히지 않는다. 아마, 홍상수를 통해 '비평가'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그의 몸부림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