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rl Barth

1.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개신교 신학의 여명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후에 더 이상 신학자들의 발언이 더 이상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동시에 신학의 절정기기도 했다. 2번의 세계대전 전후로 걸출한 신학자들과 그들의 저작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이후 그들만큼의 역량을 보여주는 신학적 작업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혹은, 나올 수 없다). 그리고, 그 신학적 거인들의 명단에는 항상 '칼 바르트'라는 이름이 있다.
2.<복음주의 신학입문>은 바르트가 30년간 교편을 잡았던 바젤대학 신학부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기위해 적어둔 원고 바탕으로, 1963년 미국에서 했던 두 번의 강연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저작이다. 신학자로서의 명성을 알린 <로마서 강해>, 신학적 역량을 총 동원한 신학집성이 <교회 교의학>에 견주면 소품이라 할 수 있다.
3.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 책이 지닌 가치가 낮게 평가될 수는 없다. 이 책은 신학연구자들이 지녀야할 태도와 내용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슐라이어마허의 <신학개요>와 견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신학입문서다. <로마서 강해>와 같은 화려한 수사학이나 <교회교의학>과 같은 방대한 인용은 보이지 않지만 인생의 황혼에 쓰여진 저작답게 한 문장 한 문장이 허투루 읽히지 않는다.
4.하여, 이 책은 신학 일반 뿐 아니라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바르트 신학의 좋은 입문서가 되어주기도 한다. 바르트의 신학은 결국 이 시대에 신학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신학 연구자들에게 있어 반드시 제기되어야할 질문이나 쉬이 잊혀지곤 하는 문제의식을 평생 두고 나온 학적 소산이기 때문이다. 성서의 구절들과 이런저런 신학적 논의들이 책 전면에 다루어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현대적 상황이라는 현실 인식이 분명하게 자리잡고 있다. 바르트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저 상황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선포할 것인지에 답하고 있고, 또 읽는 이에게 자신이 가리키는 길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