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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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 p.150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굉장히 압축적이고 함축적인 문장이다.
그렇다고 이 문장이 소설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스물다섯...'에 덧붙여, 스물다섯 살인 시몽이 사랑하는 그녀 폴은 서른아홉 살이다. 
 

일단 나를 사강에게 이끈 것은 '조제'임을 부인할 수 없다. 

마지막에 오는 감동은 잘 쓴 소설의 힘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청춘의 한 때, 시몽은 폴에게 그 시절을 의미하는 듯. 시몽을 떠나 보낸 것은 청춘이란 영원히 머물 수 없는 한 때임을 청춘을 지나온 서른 아홉의 그녀는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즉, 폴은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는 의미를 이해하는 나이인 것이다. - 굵은 글씨의 출처는 김연수『청춘의 문장들』 
읽는 내내 생각 많은 여자의 혼잣말을 듣는 기분이 든다. 읽을 땐 밋밋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묘한 울림이 있다. 썩 괜찮은 소설이다. 그녀의 다른 소설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소설은 작가가 속한 배경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아마도 작가가 쓰는 언어 탓이 아닌가 싶다. 소설이 1959년에 쓰여진 만큼 대사, 상황, 에피소드에서 올드하고 때론 진부하게 느껴지는 소설적 장치들이 눈에 띈다. 마치 60년대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하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멋이 있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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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백석 - 문학동네 글과 길 2
김자야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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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백석』은 자야 여사가 기생 신분으로 만나 사랑을 나누었던 백석을 추억하며 써내려간 에세이다.
자야가 백석을 만난 것은 백석이 스물 다섯, 자야 여사가 스물 하나. (1936년)
잠시동안일 줄 알았으나 영원이 되고 만 이별을 한 것은 백석이 스물 여덟, 자야 여사 스물 넷. (1939년)
그리고 두어 차례 입원의 위기를 넘기며 4년여에 걸쳐 틈틈이 그녀가 직접 작성한 원고가『내 사랑 백석』이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온 것이 자야 여사 나이 팔순 때 일이다. (1995년)

마치 어제 일처럼 소상하게 백석을 추억하는 그녀의 글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무려 60여년이라는 긴 시간이 거짓말 같다. 그러니 자야 여사가 펼쳐놓는 백석 시인과의 사랑이 어떠했을지 능히 짐작할만 하다. 실제로 두 사람의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는 로맨스를 좇다보면 '참으로 낭만적이구나' 소리가 절로 나온다. 두 사람의 만남부터가 그러하다.
졸업을 앞두고 자신의 유학을 후원한 해관 신윤복 선생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자야 여사는 해관의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 귀국, 무작정 해관 선생이 투옥된 감옥이 있는 함흥으로 향한다. 마침 함흥의 영생고보에는 서울의 조선일보사를 그만 둔 백석이 영어 교사로 부임해 있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함흥에서 우연히 만난다. '자야'는 함흥 시절 백석이 직접 지어준 아호.
백석은 굳이 구분하자면 재북작가로 불려야 마땅하지만 해방 직후의 경직되고 살벌한 분위기 속에 여타 월북작가들과 함께 오랫동안 남한 사회에서 이름을 들을 수 없는 문인이었다. 그러다 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해금되어 뒤늦게 그와 그의 작품이 빛을 보게 되었으니 늦었지만 참 다행한 일이다.

당시 경성에서도 손꼽히는 잘생긴 모던보이 시인이었던 백석은 남아 있는 흑백사진만으로도 굉장히 세련되고 멋진 인물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기껏해야 3년 남짓한 짧은 인연이지만 자야 여사와 사랑에 빠진 그는 참으로 낭만적이고 귀엽기까지 하다.
주위에 사랑에 빠진 친구가 있어본 사람은 다 안다. 그들이 질리는 줄도 모르고 끝도 없이 하고 또 하는 사랑 얘기가 얼마나 유치한지. 자야 여사와 백석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그래도 부럽기는 마찬가지다. 기어이 부러운 한숨을 내쉬게 한다.

집안의 명령으로 세 번 결혼하였으나 세 번 모두 자야 여사에게로 도망쳐 오는 백석. 신분과 시대의 한계를 실감하며 툭하면 백석에게서 달아나 숨는 자야. 그러면 또 귀신같이 그녀가 숨어 있는 곳을 찾아내는 백석.
한 번은 또 다시 달아나 숨은 자야를 찾아낸 백석이 그녀에게 詩 한 편을 던져주고 가는데 그 詩가 바로「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비록 자야 여사가 확신하는 것처럼 詩 속의 나타샤가 자야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인지는 백석 본인만 알겠지만 그러나 나 역시 나타샤가 자야 여사일 거라고 믿고 싶은 것은 그만큼 자야 여사가 추억하는 그들의 사랑이 예쁜 탓이다.

『내 사랑 백석』은 갑작스런 집안의 몰락으로 기생이 되지 않았더라면 훌륭한 문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자야 여사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당대의 멋쟁이 모던보이 문학청년과 나누는 예쁜 사랑 얘기 외에도 자야 여사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20세기 초 우리나라 근대의 풍속을 엿보는 재미가 제법 실하다. 또한 책 중간 중간 그리고 책의 말미에 백석의 詩가 실려 있어 백석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의 시를 알리고자 하는 자야 여사의 배려를 엿볼 수 있다.
참고로 시인과 시집에 수여하는 백석문학상은 자야 여사가 백석을 기리기 위해 사재를 들여 제정했다.

물론 이들에겐 아직 남아 있는 얘기들이 더 많지만 그러나 자야 여사의 백석으로만 기억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장국영, 매염방 주연의 영화<인지구>는 영원한 사랑의 맹세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영화에서 사랑에 빠진 부잣집 도련님과 기생 여화는 현세에선 그들의 사랑을 이루지 못할 것을 알고 내세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음독으로 동반자살한다. 그런데 그렇게 끝나고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내세에서 도련님을 기다리던 여화는 도련님이 오지 않자 인간 세상으로 왔다가 사실은 도련님이 살아 남았으며 뿐만 아니라 칠순의 초라한 노구를 이끌고 지금껏 목숨을 연명해 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떤 인연은 미완인 채로 끝나서 더 아름다울 수 있다. 피천득 시인이「인연」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아니 만났으면 더 좋았을 '세번째 만남'도 있는 것이다.

백석을 따라가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자책하며 평생을 연인을 그리워하면서 혼자 살았던 자야 여사. 비록 사랑하는 연인을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그와의 아름다운 추억만 가지고 갈 수 있었던 그녀는 한편으로는 행복한 사람이다. 

* 다음은 백석과 관련되어 전해지는 에피소드  

- 당시 말 한 필이 오원 이었는데 백석의 시집「사슴」이 이원 하였다 한다. 100부 한정 판매를 하였는데 시인 윤동주는 이 책의 필사본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 한다. 백석의 시「흰 바람벽이 있어」와 동주의 시「별 헤는 밤」을 살펴보면 동주가 백석을 얼마나 좋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그리고 흰 당나귀는 백석과 동주 모두 좋아하는 이미지 인데 프란시스 잠이 좋아하는 이미지라 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조사의 차이가 주는 감상이 이렇게나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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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고 - 역사적 오류에 얽힌 이야기 혹은 우리 가슴속에 묻어둔 희망을 두드리는 이야기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삼우반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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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저자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을 것이나 읽다 보면 껄껄껄 웃게 되는 장면이 두엇 있다.
지동설이 천동설을 완전히 밀어낸 그 시절, 유럽인의 관심은 온통 황금과 꿀이 넘치는 지상의 낙원인 인도에 '보다 빨리 가는 길'의 개척에 쏠려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항로가 발견되던 시절에 가장 인정받던 항해사 콜럼버스도 큰 소리 탕탕 치고 뱃길에 오른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알려진 동쪽 항로로 향하던 때, 영리하게도 서쪽 항로를 선택한 콜럼버스는 오랜 항해 끝에 마침내 육지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곳은 황금도 꿀도 없는 황량한 대지일 뿐이다. 실망하여 돌아온 콜럼버스, 역시 기쁜 소식을 기다리다 실망하는 사람들.
나를 웃게 한 부분이 여기서 등장한다. 콜럼버스가 새로 발견한 대륙이 인도의 어느 한 자락이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세계 지도의 크기가 확 줄어든 것이다. (아메리카)대륙 한 개가 통째로 사라졌으니 당연한 결과다. 생각보다 작은 지구의 크기에 실망했을 사람들의 표정이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책은, 신대륙의 최초 발견자는 콜럼버스인데 어쩌다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이 대륙을 차지하게 되었는가 하는 해프닝의 전말을 들려준다. 내용 중 심히 공감이 갔던 부분은, '당시의 아메리카를 오늘의 아메리카와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부분.
사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땅에 누구의 이름을 붙이든 관심이 없던 시절이었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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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B의 질문에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오직 그를 침묵시키려고만 했을 뿐이다. 그의 책들을 찢고 금지하고 불태우고 압류했다. 정치적인 압력수단을 동원해 그가 다른 지역에 머물러 있어도 집필금지령을 내렸다. 그가 대답할 수 없고 보고도 할 수 없게 되자마자, A의 패거리는 그를 향해 온갖 험담을 퍼부어댔다. 그것은 더 이상 싸움이 아니라 방책 없는 자에 대한 유린이었을 뿐이다.
B는 말할 수도 쓸 수도 없게 되었고, 그의 저서들은 서랍 속으로 말없이 들어가야만 했다. A는 인쇄소, 설교단, 대학 강단, 종교국, 국가공권력 전부를 장악했다. 그리고 그 모든 기구를 거침없이 가동시켰다. B는 발걸음 하나까지 감시를 받았고, 그의 말 한마디까지 누군가 엿들었으며, 편지는 모두 누군가 가로챘다. 단 한 사람에 대해서 머리가 백 개나 달린 조직이 우세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도 없다. 다만 때 이른 죽음만이 B를 망명이나 화형대에서 구원해주었다.
그의 시체를 앞에 두고도 승리에 찬 교조주의자들은 눈이 뒤집힌 증오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갉아먹는 석회처럼 의심과 비방을 그의 무덤 속에까지 던져넣고, 그의 이름 위에도 재를 뿌렸다. oo의 독재뿐 아니라 모든 정신적 독재의 원칙 자체에 대항해 싸웠던 이 유일한 인물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잊어버리고 사라지게 만들려고 했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중

* A는 칼뱅, B는 카스텔리오.  

인명은 일부러 A와 B로 표기했다.
역자도 언급하듯이,

이 두 인물의 대립적 초상화에서 주인공들의 이름을 빼면 이런 전체적인 구도는 극히 보편적인 모습을 보인다. (중략) 등장인물의 이름과 구체적인 상황은 바뀌어도 근본적인 구조는 늘 비슷한 것 

이니까. 
어디서 본 듯 익숙한 본문의 내용은, 16세기 한 인문학자의 투쟁은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과 중첩되어 수시로 책을 덮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5세기 전에 일어난 일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재와 놀랄만큼 닮아 있다. 

1월은 츠바이크와 함께 보낸 달이라고 해도 무색하지 않다. 지난 달 구입 목록에서 밀려난 츠바이크의 책을 월 초에 도서관에서 잔뜩 짊어지고 왔는데 결국 세 권은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 이 중『어제의 세계』는 구입해서 읽을 생각. 

많은 양의 독서와 깊은 사유를 통해 인간의 심리와 타인의 삶을 통찰하는 것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츠바이크는 무엇보다도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이 돋보인다. 인간 심리와 행동의 저변을 들여다보는 츠바이크의 통찰력은 언제나 놀랍고 신비하다.
나는 인물 평전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렸을 때 문학전집과 함께 재미나게 읽었던 위인전이 실은 미사여구 일색의 미화담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서부터 영- 재미가 없어졌다. 츠바이크의 소설은 그렇게나 좋아하면서도 그래서 늘 좋아하는 작가 목록에 이름을 올려 놓고도 그의 평전을 읽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 것도 그런 기억 탓이다. 혹시 나처럼 안 좋은 기억 때문에 평전을 멀리 해 온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 츠바이크의 평전을 시도해봐도 괜찮을 듯 하다.

- 1월에 읽은 츠바이크의 인물 평전

『천재광기열정1』
1권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니체' '클라이스트'를 다룬다. 2권에 등장하는 인물은 '발자크' '디킨스' '스탕달' '카사노바'.
첫번째 등장인물 '톨스토이'편에서부터 쏟아지는 관념적인 문장들의 소나기에 작가님 너무 하삼!!! 내내 칭얼칭얼 하면서 겨우 읽고 2권은 다음 기회로...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정치적, 종교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타인을 유린하고 짓밟는 권력을 보면서 장면마다 구절마다 참 가슴 아프게 읽은 책. 우리는 모두 누구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고, 내 의견이 존중받길 원하듯 다른 이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헤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와 다르니까, 내 맘에 안 드니까, 라는 이유로 상대를 제거한다면 우라사와 나오키의『몬스터』에 등장하는 괴물처럼 결국 혼자 남게 되어 누구도 내 이름을 불러 줄 이가 없게 될 것이다.

『메리 스튜어트』
동 시대를 살았던 두 여왕, 엘리자베스와 메리는 원하는 것을 스스로 얻어야 하는 사람과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삶에 대처하는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실례(實例)다.
개인적으로 나는 메리보다 엘리자베스에게 끌린다. 츠바이크가 비열하고 저급하다고 비난하는, 엘리자베스가 메리를 감금하기로 한 선택은 (그녀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택으로 보인다.

『아메리고』
신대륙의 최초 발견자는 콜럼버스인데 어쩌다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이 대륙을 차지하게 되었는가 하는 해프닝의 전말을 들려준다. 내용 중 심히 공감이 갔던 부분은, '당시의 아메리카를 오늘의 아메리카와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부분. 사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땅에 누구의 이름을 붙이든 관심이 없던 시절이었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 심리 묘사가 탁월한 츠바이크의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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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은 실내를 빙 둘러보더니 발은 안 아프고 소리만 요란한 것들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쓰레기통이나 입구에 줄지어 선 링거 걸이 같은. 조폭? 입 모양만으로 김 간호사가 묻자 최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원장 안 나와? 이거 병원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외친 놈이 양복 윗도리와 쫄티를 순식간에 벗어던지며 앞으로 나섰다. 비늘 하나하나가 선명한 용의 목이 젖가슴을 향해 내려와 있고 나머지 부분은 등 쪽으로 넘어가도록 그려진 문신이었다. 초음파나 엑스레이 기사를 하다 보면 갖가지 모양의 문신을 보게 되고 어지간한 건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배꼽이나 젖꼭지의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문신을 한 사람이 와도 겁날 건 없었다. 촬영을 위해 불쾌한 액체를 삼킨 채 기계 위에 누운 인간처럼 겸손하고 무욕한 사람을 딴 곳에서 찾아보기는 어려우니까.
침묵을 깬 건 최 간호사였다.
"어머, 컬러 문신이야." - p.24,「나릿빛 사진의 추억」

『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첫번째 수록인「나릿빛 사진의 추억」을 읽을 때였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각이었는데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책장을 펼치고 예의 조근조근 차분하고 감성적인 문장들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웃고 말았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한 남자가 한 여자랑 연애를 했는데 이 남자가 정말정말 가난한 남자였던 거다. 얼마나 가난한가 하니 연애를 하는 동안 찍은 사진을 현상할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결국 여자랑 헤어지고 1년이 지나는 동안 현실을 받아들인 남자는 한 개인 병원에 엑스레이 사진사로 취직한다. 덕분에 헤어진 여자랑 찍은 사진도 현상할 수 있게 됐다. 근데 이게 문제의 시발점이 된다.
맥주 한 잔 하면서 현상한 (야한)사진들을 보니 취기도 오르고 아무래도 여자에게 돌려줘야겠다 싶다. 그래서 여자한테 전화를 하지만 1년 전에 헤어진 여자는 이미 예전의 그 여자가 아니다. 게다가 여자는 냉정하게도 사진은 남자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한다. 통화 직후에 남자는 사진과 필름을 모두 오려서 쓰레기 봉투에 넣어서 버린다.
그런데 이튿날, 갑자기 불쑥 찾아온 여자가 사진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여자는 제법 유명세를 가진 남자와 결혼을 목전에 앞두고 있었던 것. 문제는 남편 될 남자가 여자한테 사진과 필름을 찾아오라고 시킨 것이다. 남편 될 남자는 여자의 과거에는 관대하지만 여자의 옛애인이 사진을 가지고 협박하는 건 용납 못한다고 한다. 물론 남자는 협박할 생각도 없고, 사진과 필름도 모두 버렸다고 솔직하게 얘기하지만 그 날부터 남자의 직장에 무시무시한 문신을 한 남자들이 죽치고 앉아 사진과 필름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기 시작한다.
없는 사진과 필름을 내놓으라고 하니 남자는 난감해진다. 여자는 매일같이 징징대고, 어깨들은 매일같이 병원 로비를 차지하고 앉아서 남자를 겁준다.

숨넘어가게 웃다가 이쯤에서 M군에게 전화했다. 위의 줄거리를 들려줬더니 M군이 웃지도 않고 "그럼 사진을 다시 찍어야지" 했다. 물론 소설의 결론도 그러하다. 남자와 여자는 다시 한번 옛정을 불태우고 여자의 사진을 찍고 그리고 해피엔딩인 거지. 

보통 독서는 독서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정미경 작가는 온라인 서점에 신작 소개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클릭했다가 거기에 달린 리뷰를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 작가.
마침 우리 동네 도서관에 그녀의 소설이 있어서 읽어 보고 구매를 결정해야지 했는데 늘 그렇듯이 도서관에서 내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참 뜬금 없고 기약이 없는 일이라 에라, 모르겠다, 출간 소설 중 한 권을 제외하고 신작 소설을 포함한 그녀의 소설을 모두 주문했다. 빠진 한 권은『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인데 운동권 후일담 소설. 나는 공모 작가님의 영향으로 (특히 여성작가가 쓴)운동권 후일담 소설에 알러지가 있다.
이전에 접한 적이 없는 생소한 작가의 소설을 한번에 주문한다는 건 확실히 모험이지만 신작『내 아들의 연인』을 제외하고 내리 세 권을 차례로 읽은 소감은 일단 '만족'이다. 작가의 감각적인 정서가 감각적인 문체로 잘 정서된 느낌이 든다.
소설 속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차분하고 조근조근하지만 무거운 내용에 비해 막상 읽히는 건 그다지 무겁지 않다. 깊긴 하되 바닥이 맑은 우물 같다고나 할까. 각양의 인물들이 간직한 상처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보듬어 안는 방식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작가의 기본 정서는 '가벼움'이 아닐까 추측하게 한다. 자기 안으로 파고들다 못해 침잠해버려서 나중엔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몰라 헤매는 작가들이 많은데 정미경 작가는 그들에 비하면 영리하구나 싶다. 
깊이와 무거움이 다르듯 가벼움과 경박 역시 다르다. 개인적 소감으로 정미경 작가는 그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장밋빛 인생』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단편 소설집이고 남자와 여자의 얘기다. 작가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화자가 대부분 남자인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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