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 

이정희가 김해연에게 보낸 편지의 첫 문장이다. 김해연은 연인이 보낸 편지의 첫 문장을 읽은 직후 경찰서로 연행된다. 그리고 "정희씨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묻는 김해연에게 돌아온 대답은 '어젯밤에 죽었다'는 이정희의 부음이었다.
연인의 죽음. 그리고 연인이 남긴 한 장의 편지. 소설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세상은, 우주는 우연한 존재인가. 국경은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인가, 외부에 있는 것인가.
전작『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작가가 던졌던 물음은 여전히 진행 중인 듯하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세상이 사실은 완벽하게 가짜였던 세상이었음을 깨닫고 절망하는 김해연. 세상은 이제 무엇도 분명하지 않으며, 무엇이 옳다 그르다 확신할 수 없는 혼돈으로 변한다.
김해연의 여정에 동참해보지만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내가 맞닥뜨린 것도 역시 '아무 것도 분명한 것이 없다' 다. 구체적으로, 소설을 읽는 동안 가장 궁금했던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이정희는 왜 죽었는가, 자살인가 타살인가, 누가 이정희를 죽였는가에 대한 '상징적인 의문'은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에도 의문으로 남는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 할아버지가 간직했던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다면『밤은 노래한다』는 연인이 남긴 편지에서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소설은 비슷한가, 이번 소설은 혹시 이전 소설의 연장선에 있는 것인가, 자연 궁금해진다. 

두 소설은 여러모로 비교할만 하다. 일단 나의 외부 혹은 내가 사는 세상의 바깥이 (시대적 배경에 충실하여)『네가 누구든』에선 우주였다면『밤은』에선 간도로 좁혀지고, 소설의 주제를 이루는 주요 함의인 '우연한 존재'로서의 인물 역시 이전 소설은 내(주체)가 관찰하는 강시우(객체)였다면 이번 소설에선 김해연인 '나 자신'(주체)으로 좁혀진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공통점이라면 작가는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소설에서도 역시 그 '누구'이면서 아무 것도 아닌 '누구'는 그래서 우연적 존재이면서 또한 필연적 존재인가 고민한다. 

이번에는 손가락이 잘린 사내 하나가 내 얼굴을 골똘히 내려다보고 서 있다. 몇 달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서 자신은 변절하지 않았다고 소리치다가는, 또 얼마간은 자신이 정말 변절하지 않은 것인가고 의심하다가는, 또 얼마간은 자신은 이미 변절한 것이라고 생각하다가는, 또 얼마간은 자신이 변절했는지 변절하지 않았는지 확신하지 못하다가는 결국 일본 경찰의 앞잡이가 된 사람. 최도식.
너, 아직도 안 죽었니? 너는 살려주꼬마. 너만은 살려주꼬마. - p.162
 

'민생단 사건'은 이번 소설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생소한 역사다. 독서 도중에 집중이 흐트러지는 일이 적지 않았던 이유는 '민생단'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했던 탓이다. 그러나 독서내내 씨름 하는 기분이었던 것은 예전 소설과 구분되는 문체 탓이 크지 않았나 싶다.
『밤은 노래한다』는 거의 잊혀지다시피 한,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던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에 한 여자를 지순하게 사랑했던 한 남자의 사랑을 끌어들이는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작가의 다른 소설에 비해 아름다운 문장이 많다. 혹여 관념적인 장문 속에서 길을 잃어 자칫 그 미문들을 놓친다면 아까운 일이다.

소설이 끝나면 한홍구 교수의 해제가 기다리고 있다. 꽤 생소한 역사적 사건 '민생단사건'을 잘 모르면 소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한홍구 교수의 해제 앞 절반을 먼저 읽어보고 소설을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단, 해제 중 '밤이 부른 노래'라는 소제목의 내용은 소설의 줄거리를 A to Z로 아주 친절하게 풀어놓았으므로 스킵하는 주의가 필요하다.

표지의 그림은 에곤 쉴레 Egon Schiele의 자화상인데 민음사판『인간실격』의 표지 역시 쉴레의 자화상이다. 이 외에도 어느 책이었던가, 쉴레의 그림을 표지로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겐, 아직까지는, 이 화가는 멀고 먼 그대라 표지를 볼 때마다 위화감을 느낀다... 

이 소설은 구입 과정에 약간의 사연이 있다.  

저자 사인본 예약 이벤트를 발견한 그날 바로 예약 주문을 하고 원래 날짜보다 거의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손에 받아든『밤은 노래한다』, 그.러.나. 조심조심 펼친 책 안에 저자의 사인이 없는 것이다! 보고 또 봐도 없다! 우째 이런 일이...
실망해서 앉아 있는데 마침 두 통의 전화가 차례로 왔다. 처음은 B양. 책에 사인이 없다고 했더니 우짜노~ 라면서 그냥 웃기만 했다. 다음 전화는 M군. 역시 책에 사인이 없다고 했더니 내게 몇 가지를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M군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내가 책을 구입했던 온라인 서점에서 배송에 실수가 있었다고 사인본으로 책을 다시 보내 줄 거라는 얘기였다. 만쉐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색, 계
장아이링 지음, 김은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그녀가 소곤거리듯 외쳤다.
"어서 가요!"
잠시 어리둥절하던 그가 곧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출입문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렸다. 입구에 사람이 없긴 했지만 달려나가면서 바로 어둡고 비좁은 계단 난간을 잡으려면 문기둥을 잡고 돌아나가야만 했다. 연거푸 몇 개의 계단을 한꺼번에 뛰어 내려가며 울리는 쿵쿵 소리가 그녀의 귀를 때렸다. - p.59


여자는 남고, 남자는 달아났다. (그리고)
도로는 봉쇄되고, 여자는 도로에 갇혔다.

동명의 소설을 각색, 감독한 이안 감독의 영화《색,계》를 보고 난 후 계속 궁금했다.
"어서 가요!" 여자의 말을 들었을 때, 혼자 달아날 때, 여자의 처형을 묵인할 때, 남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서 가요!" 남자에게 그 말을 할 때, 홀로 인력거를 탈 때, 흔들리는 인력거 위에서 거리가 봉쇄되는 것을 보면서, 여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상대방의 사랑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 사랑이 산산히 부서지는 순간을 맞이한 여자와 남자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했다.

『색, 계』는 영화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그 인기를 배경으로 주목을 받게 된 소설로 국내에 출간된 장 아이링의 다른 책이 그렇듯 이 책 역시 7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 단편집이다 (다만, 첫번째 수록작「망연기」는 소설이 아니고 작가의 짤막한 작품 소개글이다).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연극과 현실 속에서 진행되는 실제 삶의 다른 점은 '내가 아닌 남의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반면 연극과 실제 삶의 공통점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은 누구나 일정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하는 책임을 가진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의 딸, 누구의 친구, 누구의 상사 혹은 직원, 누구의 이웃 등등...
그러므로 연극에서 막이 내리는 것과 인생이 종착역에 다다르는 것은 어떤 점에선 같은 의미를 지닌다. 연극이든 삶이든 어느 한 쪽이 끝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맡았던 역할과 함께 소멸되어 진다. 하물며 실제 삶이 연극이 되어 버린 이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러니까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인데, 여자는 모든 것을 '끝내려는' 순간 남자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느끼고, 남자는 모든 것이 '끝난' 순간 여자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구나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럼 그들은 자신의 마음은 어디에 두었을까.

영화는 많은 여운과 해석을 낳게 했으나 의외로 소설은 짧은 길이만큼이나 서사가 단순하게 다가온다. 사실 소설『색,계』는, 그녀의 다른 소설집『경성지련』『첫번째 향로』도 그렇지만, 읽고 났을 때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그녀의 소설을 읽다 보면 끝내 집을 뛰쳐나가지 못한 노라의 정서가 느껴진달까, 그런 면에서 전근대 격동기를 살아내는 여성을 지면 속에서 다루는 힘은 여성 작가인 장아이링보다 오히려 남성 작가인 쑤퉁 쪽이 한결 노련해 보인다. 시대를 거스르지도, 시대에 순응하지도 못한 못한 작가의 재능에 연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참고로『색,계』의 단편 목록 중에선 동명인「색,계」가 가장 낫다.

원작인 소설보다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영화가 더 좋았던,『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과『색, 계』의 공통점은 영화 말미의 시퀀스가 소설과 다르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원작과 별개로 감독이 자신만의 해석을 덧입히는 것인데 감독의 이러한 재해석으로 이들 두 영화는 원작과 또다른 독자적인 서사를 가지게 되고 원작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된다.    

덧.
남자가 달아난 후 혼자 거리로 나와 인력거에 탄 그녀가 인력거꾼에게 가자고 한 곳은 친척이 사는 '위위엔루'인데 '위위엔루'의 한자가 '愚園路'(우원로)이다. 이것이 실제 지명인지 작가의 의도적인 작명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번역되어진 것보다 장아이링의 문장이 한층 은유적이고 다층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찜찜함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옛날옛적 한 신앙이 돈독한 영주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파수병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홍수가 났다고 보고했다. 그 영주는 얼른 성당으로 가서 신에게 구원을 빌었다. 곧 물은 성당계단까지 밀려 왔다.
그때였다. 한 농노가 조그만 나뭇배를 저어오며 영주에게 타라고 재촉했다. 영주는 말했다. "고맙지만 괜찮네. 나는 신을 믿고 또한 정의를 믿네. 신이 나를 구원해 줄걸세." 그러는 사이 물은 점점 차올라 왔고 영주는 설교단 위로 몸을 옮겼다.
이때 갑자기 모터 보트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나타났다. "영주님, 어서 뛰어 오르세요." 그러나 고결한 영주는 고개를 저었다. "걱정말게. 난 신을 믿네. 내게 시끄러운 기계 따윈 필요치 않아." 마침내 물은 성당 전체를 삼켜버렸다.
영주가 가까스로 성당 꼭대기의 첨탑 하나를 거머쥐었을 때 세찬 바람에 물살이 갈라지더니 머리 위로 헬리콥터 한 대가 나타났다. 조종사가 외쳤다. "영주님, 제발 이 줄사다리를 잡고 올라오십시오." 영주는 외쳤다. "걱정말게. 난 아직도 신을 믿네. 그분이 나를 구해 주실 거야." 얼마 후 물은 불어나 영주는 익사했다.
영주는 천국에서 신을 만났다(그는 착한 영주였던 모양이다.) 영주는 항의했다. "신이시여, 저는 당신을 일생 동안 숭배했습니다. 성직자들의 말씀을 하나도 어기지 않았고, 다른 이들이 당신을 의심하여 기계에 의지할 때에도 저는 끝까지 당신의 구원을 확신했습니다. 어찌하여 저를 익사시키셨나이까?" 신이 되받았다. "이 멍청아! 너에게 나뭇배, 모터 보트, 헬리콥터를 보내 준 사람이 대체 누구라고 넌 생각하느냐?" - p.172,「격분한 현자 카를 마르크스」

사실, 나는 인용한 문장, '신앙심 깊은 영주' 에피소드를 작가의 의도와 전혀 다른 의도, 다른 목적으로 끌어다 인용하곤 한다.

지금도 심심하면 가끔 아무 챕터나 펼쳐서 읽는 토드 부크홀츠의『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학부생 때 리포트를 쓸 때 참고하려고 읽었던 책으로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비유와 만담등을 섞어가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경제(사)학 분야의 교양 입문서다.   

전공이 전공이니만큼 이 부문에 신간이 나오면 의무적으로라도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임감 같은 게 있는데, 읽어야 할 책 목록의 상위에 늘 올라가 있는 마르크스의『자본론』은 그의 유물론의 핵심 내용인 '잉여 가치'를 여전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안 읽는다기보다는 못 읽고 있는 고전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K.마르크스 역시 생전 그의 개인적인 행적을 보면 "아니, 이런 인물이 경제사적, 철학사적 분야에 그토록 크고 방대한 영향을 끼쳤단 말인가" 놀라게 된다. 하지만 다행히 역사는 인간을 심판하지 않고 그 인간의 업적을 심판하는 너그러운 잣대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건, 4대 성인에서 히틀러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녔던 재능인데 마르크스 역시 그 재능이 있었으니 타고난 달변, 문장력, 그것을 이용한 대중적 설득력이 바로 그 것이다.

히틀러 얘기가 나온 김에, 언젠가 M군과 "지구에 멸망이 온다면 어떤 형태로 올까?" 라는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종교 분쟁이 원인이 되지 않을까" 라고 했고, M군은 "어설픈 영웅 한 사람 때문일 것 같다" 고 했다. 생각해보면 꽤 타당성이 있는 숫자다. '1'이라는 숫자 말이다. 

*『자본론』을 읽기 전, 가볍게 읽기 좋은 몇 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젠 분당 초당으로 쪼개진다는 시청률에서 늘 나쁜 성적을 내면서도 마니아를 몰고 다니는 드라마 작가 노희경. 나는 그녀가 책을 낼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그리고 기다렸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연말, 아마도 마지막이 될 책 주문을 하려고 온라인 서점에 접속하고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신작 에세이 출간 소식을 봤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아, 드디어"였다. 그러고도 망설였다. 실망하면 어쩌지. 실망하면,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장바구니. 그리고 예정된 시간보다 더 일찍 내 손에 들어온 그녀의 책...

나는《화려한 시절》과《바보 같은 사랑》을 제외하곤 그녀의 드라마를 제대로 끝까지 본 것이 없다. 그녀가 만든 세계에서 사는 '그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날카로운 창 끝이 가슴을 겨누고 있는 듯 답답하고 위태로워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파묻혀 TV 너머 그들의 세상을 마냥 구경할 수 없게 만든다. 한마디로 내 여리고 보드라운 정서는 그녀의 건조하고 날 선듯한 목소리를 버거워했다. 한 주에 몇 개씩 쏟아지는 많은 작가들의 고만고만한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랑과 그녀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랑은 도대체 무엇이, 왜 다른가. 그래 봤자 사랑 아닌가?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녀의 드라마는 매번 이런 내 생각을 비웃었다.

참으로 건조한 목소리로 사랑, 사랑, 지치지도 않는지 사랑 타령을 하는 작가가 당연히 궁금했다. 사랑 때문에 깊이 상처받아 "사랑 따위!" 조소하고, 상대를 저주하고, 자신을 한없이 뭉갠다 싶더니 언제 그랬나 싶게 "그래도 사랑만이 구원" 이라고, 뻔뻔하게 사랑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인물들을 날 것 그대로 보듬는 작가의 그 끈질긴 정서가 궁금했다.
한 때는 "이 작가는 로맨스랑 어울리지 않아" 단정 짓기도 했다. 지금은, 지금은 조금이지만 어쩌면 알 것도 같다. 흉내낼 줄 모르고 꾸밀 줄 모르고 부서질 줄 알면서도 온 몸으로 부딪치는 무모한 그들을 보듬는 이 사람이야말로 사랑을 얘기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라마 작가의 에세이답구나 싶은 그녀의 첫 책『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는 작가의 치열했던 한때, 작가 자신, 사랑, 일, 주변인을 향한 사적인 고백으로 채워져 있다. 책 사이 사이에 꽂혀 있는(물론 빠지지는 않는다) 내지에 작가의 필체로 쓴 짤막한 독백이 인상적이고 간간이 등장하는 드라마 얘기는 훔쳐보기 같은 가벼운 즐거움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드라마에 등장했던 독백톤의 대사들을 활자로 보니 새삼 그녀의 드라마를 소설로 읽고 싶었던 갈증이 이것 때문이었구나 했다.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소설 출판을 제의하는 출판사의 전화에, "나는 드라마 작갑니다. 때문에 소설을 쓸 생각이 없습니다." (뚝!) 응대하는 장면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내 기분은 조금 이율배반적이었는데 첫째, (보지는 않았지만)그녀의 대본이 산문적(?) 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나만이 아니었구나 하는 거였고 둘째, 소설은 안 쓰겠다는 작가의 단언에 실망보다는 안도감을 느꼈다는 점에서 그렇고 셋째, 그럼에도 그녀의 소설이 나오면 제일 먼저 살 테다,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드라마 작가로서 자존심이 단단한 그녀. 같은 극작가로서 그녀가 영화를 보는 관점은 어떨까. 나는 그녀의 드라마로 그녀가 꽤나 현실적인 강심장을 가졌을 거라고 막연히 추측했다. 하지만 영화《화양연화》속 불륜을 바라보는 그녀의 글과 소통하면서 이젠 그녀가 참 섬세하고 로맨틱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구나 한다.

책의 마지막은 그녀와 작업했던 이들의 메시지가 채우고 있다. 그들의 말처럼 나 역시 그녀가 책을 내주어 고맙다.

책을 읽을 때 보통 책갈피를 이용하는데 이 책은 책갈피 없이 읽었다. 한 번에 한 호흡으로 읽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나간 페이지를 다시 더듬는 것이 기꺼웠다는 의미다. 책을 읽다가 이유도 없이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는데 정작 울먹울먹 한 것은 책 읽는 도중에 친구의 전화를 받았을 때였다. 드라마를 거의 안 보는, 그래서 노희경이 누군지도 모르는 친구를 붙들고 코맹맹이 소리를 낸 것이다. 오랜만에 바보같은 짓을 했다. 

드문 일이지만 내가 책과 혹은 작가와 사랑에 빠졌구나, 할 때가 있는데 그것을 구분하는 가장 뚜렷한 지점은 같은 책을 여러 권 사서 책장에 쟁여두고 싶을 때다. 나머지는 책장 가장 좋은 위치에 귀하게 모셔 놓고 한 권을 줄기차게 읽고 또 읽고 그리하여 다자이 오사무가 단언했던 것처럼 두 손의 때로 책이 검게 빛날 때까지 읽고 또 읽고 싶은 때가 그것이다.

남의 상처는 별거아니라
냉정히 말하며
내 상처는 늘 별거라고
하는, 우리들의 이기.  - p.112

라고 말하는 당신, 당신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초등학생 때 전학을 세 번 다녔는데, 이미 어색하고 수줍은 단계를 거치고 서로 익숙해진 아이들 속으로 끼어드는 일은 전학생 아이에게는 인생의 대단한 모험이다. 즉 나로서는 그러한 모험을 세 번이나 한 셈인데 그 때의 영향인지 낯선 곳은 기피하고, 혹 가더라도 본능적으로 불편해하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또한 그 덕분인지 적응력은 나름 강한 편이니 이쯤되면 일장일단인 셈인가 싶기도 하고.
이곳 서재도 마찬가지. 알라딘서점이야 물론 낯익고 친숙한 곳이지만, 알라딘서재는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익숙해지기 전까지 시행착오가 예상되지만 어쨌든 일단은 열심히 친해져볼 결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