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B의 질문에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오직 그를 침묵시키려고만 했을 뿐이다. 그의 책들을 찢고 금지하고 불태우고 압류했다. 정치적인 압력수단을 동원해 그가 다른 지역에 머물러 있어도 집필금지령을 내렸다. 그가 대답할 수 없고 보고도 할 수 없게 되자마자, A의 패거리는 그를 향해 온갖 험담을 퍼부어댔다. 그것은 더 이상 싸움이 아니라 방책 없는 자에 대한 유린이었을 뿐이다.
B는 말할 수도 쓸 수도 없게 되었고, 그의 저서들은 서랍 속으로 말없이 들어가야만 했다. A는 인쇄소, 설교단, 대학 강단, 종교국, 국가공권력 전부를 장악했다. 그리고 그 모든 기구를 거침없이 가동시켰다. B는 발걸음 하나까지 감시를 받았고, 그의 말 한마디까지 누군가 엿들었으며, 편지는 모두 누군가 가로챘다. 단 한 사람에 대해서 머리가 백 개나 달린 조직이 우세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도 없다. 다만 때 이른 죽음만이 B를 망명이나 화형대에서 구원해주었다.
그의 시체를 앞에 두고도 승리에 찬 교조주의자들은 눈이 뒤집힌 증오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갉아먹는 석회처럼 의심과 비방을 그의 무덤 속에까지 던져넣고, 그의 이름 위에도 재를 뿌렸다. oo의 독재뿐 아니라 모든 정신적 독재의 원칙 자체에 대항해 싸웠던 이 유일한 인물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잊어버리고 사라지게 만들려고 했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중

* A는 칼뱅, B는 카스텔리오.  

인명은 일부러 A와 B로 표기했다.
역자도 언급하듯이,

이 두 인물의 대립적 초상화에서 주인공들의 이름을 빼면 이런 전체적인 구도는 극히 보편적인 모습을 보인다. (중략) 등장인물의 이름과 구체적인 상황은 바뀌어도 근본적인 구조는 늘 비슷한 것 

이니까. 
어디서 본 듯 익숙한 본문의 내용은, 16세기 한 인문학자의 투쟁은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과 중첩되어 수시로 책을 덮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5세기 전에 일어난 일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재와 놀랄만큼 닮아 있다. 

1월은 츠바이크와 함께 보낸 달이라고 해도 무색하지 않다. 지난 달 구입 목록에서 밀려난 츠바이크의 책을 월 초에 도서관에서 잔뜩 짊어지고 왔는데 결국 세 권은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 이 중『어제의 세계』는 구입해서 읽을 생각. 

많은 양의 독서와 깊은 사유를 통해 인간의 심리와 타인의 삶을 통찰하는 것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츠바이크는 무엇보다도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이 돋보인다. 인간 심리와 행동의 저변을 들여다보는 츠바이크의 통찰력은 언제나 놀랍고 신비하다.
나는 인물 평전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렸을 때 문학전집과 함께 재미나게 읽었던 위인전이 실은 미사여구 일색의 미화담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서부터 영- 재미가 없어졌다. 츠바이크의 소설은 그렇게나 좋아하면서도 그래서 늘 좋아하는 작가 목록에 이름을 올려 놓고도 그의 평전을 읽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 것도 그런 기억 탓이다. 혹시 나처럼 안 좋은 기억 때문에 평전을 멀리 해 온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 츠바이크의 평전을 시도해봐도 괜찮을 듯 하다.

- 1월에 읽은 츠바이크의 인물 평전

『천재광기열정1』
1권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니체' '클라이스트'를 다룬다. 2권에 등장하는 인물은 '발자크' '디킨스' '스탕달' '카사노바'.
첫번째 등장인물 '톨스토이'편에서부터 쏟아지는 관념적인 문장들의 소나기에 작가님 너무 하삼!!! 내내 칭얼칭얼 하면서 겨우 읽고 2권은 다음 기회로...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정치적, 종교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타인을 유린하고 짓밟는 권력을 보면서 장면마다 구절마다 참 가슴 아프게 읽은 책. 우리는 모두 누구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고, 내 의견이 존중받길 원하듯 다른 이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나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헤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와 다르니까, 내 맘에 안 드니까, 라는 이유로 상대를 제거한다면 우라사와 나오키의『몬스터』에 등장하는 괴물처럼 결국 혼자 남게 되어 누구도 내 이름을 불러 줄 이가 없게 될 것이다.

『메리 스튜어트』
동 시대를 살았던 두 여왕, 엘리자베스와 메리는 원하는 것을 스스로 얻어야 하는 사람과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삶에 대처하는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실례(實例)다.
개인적으로 나는 메리보다 엘리자베스에게 끌린다. 츠바이크가 비열하고 저급하다고 비난하는, 엘리자베스가 메리를 감금하기로 한 선택은 (그녀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택으로 보인다.

『아메리고』
신대륙의 최초 발견자는 콜럼버스인데 어쩌다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이 대륙을 차지하게 되었는가 하는 해프닝의 전말을 들려준다. 내용 중 심히 공감이 갔던 부분은, '당시의 아메리카를 오늘의 아메리카와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부분. 사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땅에 누구의 이름을 붙이든 관심이 없던 시절이었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 심리 묘사가 탁월한 츠바이크의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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