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공중파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는 매 회 꼭지가 세 개 정도로 구성되었다. 그 중 세 번째 꼭지는 '무서운 이야기'였는데, 정말이지 무서웠다. 화면이.
사실 나는 좀 심하게 겁이 많아서 공포물이라면 아주 기겁을 하는데 그래서 이 방송을 볼 때마다 거의 매번 기절하기 직전까지 자지러지고는 했다. 그럼 안 보면 되지 않느냐, 싶겠지만 그게 또 그렇다.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궁금하고, 툭하면 시꺼매지는 화면은 무섭고, 인 것. 그리하여 매주 자학하는 심정으로 TV 앞에 앉곤 했는데, 우스운 건 같은 공포물이라도 텍스트엔 그다지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고 보면 내가 공포를 느끼는 감각은 이미지와 시각적인 것에 국한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일례로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는 읽을 때 책 표지에 덮개를 씌우고서야 읽을 수 있었던 것처럼. 각설하고,
쓰네카와 고타로의 『야시(夜市)』는 한 마디로 설명하면 일본 만화 『백귀야행(Ichiko Ima)』류의 소설판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판타지 호러?, 환상 호러? 혹은 괴기 호러?... 뭐라 부르든 그 쪽 장르의 만화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단연 『백귀야행』과 국내에 영화로도 개봉된『음양사』다. 『백귀야행』은 6, 7편서부터 다소 지루하고 긴장이 떨어지는 감이 있어 그 뒤로 열심히 챙겨보지 않지만 1~5권은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이 에피소드가 좋다. 『음양사』는 서울문화사에서 정식 판권을 가지고 출간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절판되어 버렸는데 게으름을 피우다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땅을 쳤다. 결국 아쉬운대로 중고 시장에서 다른 출판사 것으로 구했는데 여러모로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서울문화사판으로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일본은 섬기는 신(神)도 많고 그래서 귀신도 많고, 그에 따른 민간 설화나 괴담도 정말 많은 나라다. TV에선 귀신 체험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끊임없이 방영되고 수많은 제보들이 매주 TV에서 재연된다. TV에서뿐만이 아니다. 주변 사람에게서도 귀신을 봤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주온>이나 <링>같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게 하나도 안 이상한 나라다. 숱한 제보 중엔 가짜도 많지만 그래도 어쨌든 채택되어 재연되는 제보는 늘 무섭다. 다음은 몇 년 전 일본에서 머물 때 아마 후지TV에서 봤던 걸로 기억하는 내용.

사진의 배경은 마루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방이 한 칸 씩 있고 마루 앞은 마당인 구조를 가진 집인데, 마루 중앙에는 커다란 상이 하나 놓여 있고 상 뒤로 문갑 같은 것이 있다. 제보해 온 사진은 마루를 배경으로 어린 딸아이를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사진을 현상한 가족은 경악했다. 분명 사진을 찍을 때 아무 것도 놓여있지 않았던 마루의 상 위에 여자의 머리가 있었던 것. 딸아이 뒤로 시커먼 형체의 여자의 머리가 옆으로 누운채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사실 사진을 현상했더니 찍을 때 없었던 새로운 장면이 나타났다, 라는 내용은 가장 흔한 제보이면서 또 가장 조작이 많다고 한다.) 

사실은 나도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그러니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직접 겪었던 유일한 체험인데 그 일은 시나가와(品川)에 있는 사촌언니의 집에 놀러갔을 때 일어났다. 엄마와 같이 군마(群馬)에서 온천 여행을 하고 돌아온 날이었는데, 사촌언니는 외출하고 엄마와 나는 옷 방에서 짐을 풀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처음엔 엄마가 투덜 투덜 하는 것을 무성의하게 흘려듣고 있었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엄마의 말이 귀에 쏘옥 들어왔다.
"시계 소리가 어디서 이렇게 나는지 모르겠네. 이 방은 시계도 없는 것 같은데."
그랬다. 옷 방은 말 그대로 옷과 가방, 신발이나 옷장만 있을 뿐 시계라고는 작은 탁상 시계 하나 없었고 엄마와 나는 손목 시계도 차고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시계'과 관련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너무나 크고 뚜렷하게 들리는 커다란 시계의 초침 소리. 왜 있지 않은가. 벽에 거는 커다란 벽시계. 딱 그 소리였다.
이상한 한편 신기했던 엄마와 나는(엄마 역시 살면서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옷 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심지어 옷장 위까지 털었다, 결국 시계는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우리가 소리의 진원지를 찾는 그 와중에도 초침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시계도 못 찾고 소리의 진원지를 찾는 것도 실패한 우리는 나중엔 포기하고 산책을 나갔는데, 놀랍게도 산책에서 돌아왔을 때 시계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후 사촌언니를 비롯 다른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했지만 아무도 우리 얘기를 진지하게 듣지도, 믿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옆 집에서 망치로 못을 박는 소리를 잘 못 들은 게 아니냐" 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나마 나 혼자 안 들은 게 어딘가 싶었다. 적어도 그 얘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는 셈이니까. 안 그랬음 복장 터져서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야시』는 일단 재미있다. 빨간색 표지의 양장 안에는 「바람의 도시」 와 「야시」 두 개의 중편이 있는데 둘 다 재미있다. 이런 류의 얘기들은 하나를 꺼내 먹으면 또 먹고 싶어서 손을 집어 넣게 되는 과자 봉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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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8-30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에 덮개를 씌우면 잘 읽으시는군요ㅋㅋ 야시의 표지는 별로지만 내용은 보고싶네요^^

인삼밭에그아낙네 2010-08-31 09:26   좋아요 0 | URL
워낙 시각적인 공포에 취약해서...(흑흑)지하철 역에서 우연히 영화 '주온'의 포스터와 맞닥뜨리고 심장마비에 걸릴 뻔 한 1인이랍니다;;;
<야시>는 이쪽 장르답게 읽고 나면 그닥 기억에 남지 않지만 읽는 동안은 재미도 있고 책장도 술술 잘 넘어갔던 소설이에요 ^^
 
<가미가제 독고다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가미가제 독고다이 김별아 근대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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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 채플린의 명언은 한 시대를 점령했던 희극인이 남길 수 있는 최고의 말이 아닌가 싶다. 덧붙이면 인생의 페이소스를 모르면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말의 미덕은 '살아 있는 동안은 어떤 인생도 희망적'이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김별아의 신작『가미가제 독고다이』는 마지막까지 유쾌하고 희망적인 그래서 결국 재미있는 소설이다.

제목에서 이미 공표하듯『가미가제 독고다이』의 배경은 일제강점기인데, 그 자체로 민족의 비극인 이 시대도 어쨌든 사람 사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격동의 세상 한 복판에 있는 인물이 하윤식이다. 사실 윤식은 일제강점기가 배경인 소설의 주인공에게 으레 기대하게 마련인 '영웅적' 요소를 요리조리 잘도 피해가는 문제적 인물이다. 그러니까 친일 행위로 벌어들인 아버지의 재산을 자신의 쾌락을 채우는데 쓰기에도 급급한 얄팍한 인물이 바로 하윤식인 것. 그러나 이런 윤식이 못마땅하긴 해도 미운 감정은 안 드는 이유는 본문 pp.339-343에 잘 드러나 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이 소설의 절창(絶唱)으로 꼽고 싶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자를 좋아하는 건 집안 내력이다.'(p.9)는 비극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의 첫 문장으로는 어딘지 생뚱맞다. 하지만 삶, 사람, 사랑은 결국 같은 의미라고 하지 않는가. 그리하여 3代에 걸쳐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자를 좋아하게 되어 버린 남자들의 순정은 때로 시대에 편승하고, 때로 시대를 역행하며 꿋꿋하게 '역사의 귀퉁이'를 차지한다. 물론 이건 개인의 비극이지 역사의 비극은 아니다. 그러니 소설『가미가제 독고다이』는 어찌 보면 비극적 시대를 희극적으로 살아내는 개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유서 깊은' 백정 집안의 내력을 거쳐 태평양을 향해 '가미가제(神風의 독음)'가 몰아치던 해방 직전까지 쭉 이어지는 (화자인)윤식의 걸쭉한 입담에 빠져들다 보면 말 그대로 한 편의 희극을 본 듯한 기분이 드는데, 사실 소설의 중심이 되는 '하 씨 일가'의 내력 자체가 희극이다. 돈으로 백정 신분을 세탁하고 번듯한 족보를 사들인 아버지, 출신이 의심스러운 남편의 돈으로 '홈 스위트 홈'을 연출하는데 혈안이 된 어머니, 그리고 어딜 보나 모범생인 경식과 어딜 봐도 문제아인 윤식 형제까지.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이 희극적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하윤식의 덕이다.
같은 얘기도 어떤 사람이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얘기가 되듯, 하필 작가가 비극적 인물이랄 수 있는 경식이 아닌 희극적 인물인 윤식을 화자로 삼은 것은 이 소설을 읽는 방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가늠하게 한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만약 윤식이 아니라 경식이 화자였다면 이 소설은 전혀 다른 감성, 다른 방향으로 읽혔겠구나, 였다. 기실 경식과 윤식 두 형제의 대비되는 삶을 쫓아가다 보면 삶의 비극과 희극을 가르는 것은 삶을 흔드는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다루는 인물의 속성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보편적인 기준으로 외모, 지성, 인품 어느 면을 보아도 윤식이 열성인자라면 경식은 우성인자다. 윤식이 '모던 가족'의 틈을 비집고 일찌감치 환락의 세계에 빠져들었다면, 경식은 그 시대 이 땅의 청년이라면 가져야 마땅할 애국심의 발현으로 독립 운동- 좀 더 분명하게는 '주의(ism)'에 빠져 드는 차이만큼이나 두 사람의 희/비극성은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그에 더해 '카인과 아벨'의 인용에 이르면 이 소설의 희극성과 비극성이 적절하게 균형을 잘 이루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책 표지를 다시 살폈다. 태양인지 달인지에 걸터앉아 우주를 올려다 보는 제복을 입은 청년이 보인다. 어쩐지 친근한 기분이 든다. 아, 네가 하윤식구나?

맛있는 과자와 맛없는 과자가 있을 때, 물론 개인차가 있겠으나 내 경우 맛없는 과자를 먼저 먹는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것일수록 뒤로 남겨 아끼는 습성이 있는데 이러한 습성은 소설을 읽을 때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그에 더해 소설이 재미있을수록, 내 취향일수록 아끼고 아껴서 천천히 읽는 버릇이 있는데 좋아하는 사람과는 더 오래 같이 있고 싶고, 빨리 헤어지고 싶지 않은 기분이 이런 걸까 싶기도 하고.
결론은, 오랜만에 재미있는 소설 한 권을 읽었다. 사실 내가 이 작가의 소설을 이렇게나 재미있게 읽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말하자면 전작주의인데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묻지도 않고' 일단 무조건 책장에 꽂아두어야 직성이 풀린다. 문제는 김별아는 그 대척점에 있는 작가였다는 사실. 몇 번 시도했다가 결국 완독에 실패한『미실』의 작가이니, 내가 이 작가의 소설과는 연이 없겠구나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그녀의 신작 소설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다른 의미에서 소설을 읽기까지 꽤나 미적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펼쳤을 때, 첫 장 이후로 내 입에서 가장 자주 나온 말은 "우와아, 재밌다!" 였다.
그리하여 맛난 음식을 배불리 먹은 포만감을 느끼면서 책장에 책을 꽂으며 든 생각은 그간 취향이 아니라고 밀쳐버렸던 작가와 작가의 소설을 다시 살펴봐야겠다는 반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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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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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TV 방송 중에 '카메라가 보고 있다'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마트 내에 설치되어 있는 CCTV에 찍힌 만비끼(まんびき: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는 사람)를 보여준다. 방송을 보면 별의 별 만비끼가 다 등장하는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대충 걸친 것 같은 옷 안에 참으로 많이도 집어 넣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이다. 
방송에서 눈에 띄는 점은 그들 대부분이 노인들이나 부녀자라는 사실이다. 내게 없는 것을 보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남의 것을 집어 오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의 삶은 물론 동정 받을 가치는 없지만 그들이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은 있어 보였다. 

『쓰리』는 처음엔 목적이었지만 어느새 사슬이 되는 욕망이 그들 각자의 인생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등장하는 인물 중 화자인 니시무라, 이시카와(신미), 기자키는 '소매치기' 세계에 속한 인물들로 책은 이들의 제각각 다른 욕망을 보여주는데 이들 중 특이한 인물은 이시카와다.
가진 자들이 소유한 것(=돈)을 훔쳐내는 것, 즉 그 행위 자체에 기쁨을 느낀다는 이시카와는 천만 엔이라는 거금을 소매치기하지만 그것을 소유하지 않고 대부분 어느 해외 단체에 기부해버린다. 그런 점에서 '소유라는 개념이 없으면 절도라는 개념도 없다'고 주장하는 이시카와는 일견 욕망을 채우기 위해 소매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소매치기를 하기 위해 욕망을 비우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어느 사건에 연루되어 해외로 도피했다가 신분을 세탁하고 신미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온 이시카와의 욕망과 얽힌 인물이 바로 니시무라다.
책은 시작부터 니시무라가 소매치기 하는 장면을 집요하게 보여주는데 그 장면들이 색을 거세한 흑백화면처럼 보이는 것은 작가의 건조한 어조 탓이 크다. 
이시카와와 달리 니시무라는 사에코를 잃은 후 상실감을 이기지 못해 거리로 나가 닥치는 대로 남의 주머니를 탐했고 나중에 그의 손에는 영수증 조각까지 들려 있었다는 장면까지 읽다 보면 그의 행위가 타인의 소유물에 묻어 있는 타인의 욕망을 훔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연장으로 니시무라가 수퍼에서 우연히 만난 만비끼 모자, 그중 아이와 나누는 잠깐의 대화에 나오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끝은 대개 마지막이 비참하다'는 말은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욕망은 빈 껍데기라는 것을 니시무라도 알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기자키는 이사카와와 니시무라 두 사람에 비하면 자신의 욕망에 가장 충실하고 그래서 가장 능동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욕망과 행위가 감상적인 불순물이 없이 서로 직선으로 닿아 있는 기자키에겐 거칠 것이 없고 때문에 한 발은 물에, 다른 한 발은 땅에 딛고 선 사람들이 풍기는 특유의 위태로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시카와나 니시무라에겐 무엇보다 두려운 존재일 수가 있는 것이다. 즉 기자키의 욕망은 오롯이 자기 자신의 순수한 욕망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의 결말은 처음부터 예정된 것처럼 보인다. 

처음『쓰리』라는 제목을 봤을 때, 나는 '3'이라는 숫자를 떠올렸는데 친구는 곧장 '소매치기' 아니냐고 했다. 혹시나 해서 책 속 출판 정보를 확인했더니 정말 원제가 '쓰리'(SURI)다. 이 단어가 일본어인 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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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외에는>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죽음 이외에는 머독 미스터리 1
모린 제닝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피시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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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주 오래 전에 TV에서 본 <셜록 홈즈의 눈물>이라는 영화가 여전히 인상적인 영화로 기억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영화 전반에 걸친 어둡고 음울하고 엽기적인 정서 때문이다. (검색 해보니 비디오로 출시된 제목은 <살인 지령>이다)
매음굴에서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셜록 홈즈가 사건을 쫓는데 단순한 치정 살인인가 했던 사건은, 점차 사건의 중심에 부패하고 잔혹한 권력이 연루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셜록 홈즈의 눈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사건 전체를 파악한 셜록 홈즈가 분노하는 장면이었는데, 부패한 권력이 벌이는 그들만의 잔치에 사회의 가장 최하층이라고 할 수 있는 매춘부들이 희생된 것에 대한 분노였다. 여기엔 사건의 전말이 모두 드러났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성역에 대한 분노도 포함된다.
소위 말하는 셜록키언은 아니지만 '셜록 홈즈'를 읽은 이래 나는 아마 그때 처음으로 셜록 홈즈가 어둡고 피폐한 탐정 소설이었던가 의심했던 것 같다. 실제로 어려서 읽은 셜록홈즈는 사건의 미스테리를 푸는 탐정의 활약에 시선을 빼앗겼다면, 최근 다시 읽은 셜록 홈즈는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둘러싼 군상들의 모습과 당시 사회의 분위기가 눈길을 끈다. 

섬나라는 대륙과 달리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육로가 끊어지는 데서 오는 폐쇄성과 고립성 때문인지 유독 엽기적인 사건이 많은 듯 느껴진다. 모린 제닝스의 추리소설『죽음 이외에는』의 배경은 캐나다지만 영국 태생인 로즈 부인의 청교도적인 분위기나 눈이 펑펑 내리는 얼어 죽을 듯 차가운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으로 인해 안개 자욱한 영국의 음울한 정서가 연상된다. 여기에 더해 추운 겨울 밤 나체로 얼어 죽은 채 발견된 어린 소녀의 신분과 종교로 인해 시작부터 편견과의 힘겨루기를 하는 머독 형사의 모습 역시 우울하게 다가온다. 
지금이야 인터넷의 보급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온갖 엽기적인 사건 사고들을 접하면서 '엽기'에 대한 감각이 무뎌질만도 하지만 여전히 청교도적 정서의 영향을 받았던 19~20세기 초반의 유럽은 어땠을까. 아마도 어리고 예쁜 하녀가 추운 겨울 거리에서 얼어 죽은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 큰 파문을 일으켰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것도 아이를 임신한 상태이고 사체에서 마약 성분이 발견되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가난한 사람들의 범죄는 보통 생계에서 비롯된다. 먹고 살려고, 죽지 않으려고 벌이는 생계형 범죄가 대부분이다. 반면 가진 사람들의 범죄는 대개 그들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불행은, 가진 사람들의 탐욕이 불러 들인 비극에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희생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자신의 탐욕을 다스리지 못해 벌어지는 (소위)'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범죄야말로 엽기적인 것이 아닐런지. '일어나지 않아도 됐을'과 '일어날 수 밖에 없었을'의 간극은 뚜렷한데, 전자(가진자)는 개인의 책임이고 후자(가지지 못한 자)는 사회의 책임인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셜록 홈즈의 눈물>에 비하면 (대체로) 권선징악이라는 결론에 이르는『죽음 이외에는』는 그나마 희망적이다. 
'머독 시리즈'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모린 제닝스의 탐정 추리소설이 TV시리즈로도 제작, 방영되었다니 언제 기회가 있으면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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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이슬람 정육점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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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성장소설'이라는 타이틀만 붙이고 말기에는 책 전체에 걸쳐 밑줄을 긋고 싶게끔 만드는 곡진하게 다가오는 문장과 표현들이 참 많다.
처음 보는 작가의 소설을 대하는 기분은 기대 없이 나간 소개팅이랄까, 그랬는데 막상 페이지 수가 늘어갈수록 이 작가를 향한 호감이 깊어지고 종내에는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슬람 정육점』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인상을 풍기는 이 소설은 최근 몇 년 새 부쩍 흔해진 새로운 표현인 '다문화'와 (유사 형태의)대안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에 대해 부연하면 무슬림인 하산이 정육점을 하고 돼지고기를 직접 손질해서 판다는 내용은 그 자체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데 공존, 공생, 화합을 말하고자 하는 상징인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화자인 '나'가 몇 살인지 혹은 순수 한국인인지조차 알 수 없는 채로 끝을 맺는 소설은 몇 곳 고아원을 전전하다 하산을 따라 서울 어딘가 높은 지대의 동네로 오게 된 '나'의 시선을 통해 '안네의 일기'를 '안내양의 일기'로 잘못 읽었다는 안나 아줌마, 전쟁으로 입은 상처와 공포를 피해 또 다른 전쟁(한국전쟁)으로 도피한 야모스, 잃어버린 기억을 타인의 기록으로 채운 대머리,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말더듬이 유정, 말 그대로 '맹랑'한 맹랑한 녀석 등 소외된 이들, 비주류로 낙인찍힌 이들의 일상과 내면을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벙어리 신부님 일화였다. 전체 분량에 비하면 아주 짧은 얘기였지만 울림이 꽤 크고 깊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는 키워드를 꼽으라면 '흉터'와 '그림자'를 들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흉터에 대한 비밀은 끝내 비밀로 남지만 뭐 어떠랴 싶기도 하고. 안나 아줌마 말대로 모르는 게 약이고, 모든 것을 꼭 다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이야,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 있는 이들 가운데 백 년 뒤에도 이곳에서 숨 쉴 자는 단 한 명도 없단다. 우리 모두 이 아름다운 하늘과 땅과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이곳을 떠나야 하는 존재들이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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