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공중파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는 매 회 꼭지가 세 개 정도로 구성되었다. 그 중 세 번째 꼭지는 '무서운 이야기'였는데, 정말이지 무서웠다. 화면이.
사실 나는 좀 심하게 겁이 많아서 공포물이라면 아주 기겁을 하는데 그래서 이 방송을 볼 때마다 거의 매번 기절하기 직전까지 자지러지고는 했다. 그럼 안 보면 되지 않느냐, 싶겠지만 그게 또 그렇다.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궁금하고, 툭하면 시꺼매지는 화면은 무섭고, 인 것. 그리하여 매주 자학하는 심정으로 TV 앞에 앉곤 했는데, 우스운 건 같은 공포물이라도 텍스트엔 그다지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고 보면 내가 공포를 느끼는 감각은 이미지와 시각적인 것에 국한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일례로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는 읽을 때 책 표지에 덮개를 씌우고서야 읽을 수 있었던 것처럼. 각설하고,
쓰네카와 고타로의 『야시(夜市)』는 한 마디로 설명하면 일본 만화 『백귀야행(Ichiko Ima)』류의 소설판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판타지 호러?, 환상 호러? 혹은 괴기 호러?... 뭐라 부르든 그 쪽 장르의 만화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단연 『백귀야행』과 국내에 영화로도 개봉된『음양사』다. 『백귀야행』은 6, 7편서부터 다소 지루하고 긴장이 떨어지는 감이 있어 그 뒤로 열심히 챙겨보지 않지만 1~5권은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이 에피소드가 좋다. 『음양사』는 서울문화사에서 정식 판권을 가지고 출간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절판되어 버렸는데 게으름을 피우다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땅을 쳤다. 결국 아쉬운대로 중고 시장에서 다른 출판사 것으로 구했는데 여러모로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서울문화사판으로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일본은 섬기는 신(神)도 많고 그래서 귀신도 많고, 그에 따른 민간 설화나 괴담도 정말 많은 나라다. TV에선 귀신 체험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끊임없이 방영되고 수많은 제보들이 매주 TV에서 재연된다. TV에서뿐만이 아니다. 주변 사람에게서도 귀신을 봤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주온>이나 <링>같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게 하나도 안 이상한 나라다. 숱한 제보 중엔 가짜도 많지만 그래도 어쨌든 채택되어 재연되는 제보는 늘 무섭다. 다음은 몇 년 전 일본에서 머물 때 아마 후지TV에서 봤던 걸로 기억하는 내용.
사진의 배경은 마루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방이 한 칸 씩 있고 마루 앞은 마당인 구조를 가진 집인데, 마루 중앙에는 커다란 상이 하나 놓여 있고 상 뒤로 문갑 같은 것이 있다. 제보해 온 사진은 마루를 배경으로 어린 딸아이를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사진을 현상한 가족은 경악했다. 분명 사진을 찍을 때 아무 것도 놓여있지 않았던 마루의 상 위에 여자의 머리가 있었던 것. 딸아이 뒤로 시커먼 형체의 여자의 머리가 옆으로 누운채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사실 사진을 현상했더니 찍을 때 없었던 새로운 장면이 나타났다, 라는 내용은 가장 흔한 제보이면서 또 가장 조작이 많다고 한다.)
사실은 나도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그러니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직접 겪었던 유일한 체험인데 그 일은 시나가와(品川)에 있는 사촌언니의 집에 놀러갔을 때 일어났다. 엄마와 같이 군마(群馬)에서 온천 여행을 하고 돌아온 날이었는데, 사촌언니는 외출하고 엄마와 나는 옷 방에서 짐을 풀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처음엔 엄마가 투덜 투덜 하는 것을 무성의하게 흘려듣고 있었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엄마의 말이 귀에 쏘옥 들어왔다.
"시계 소리가 어디서 이렇게 나는지 모르겠네. 이 방은 시계도 없는 것 같은데."
그랬다. 옷 방은 말 그대로 옷과 가방, 신발이나 옷장만 있을 뿐 시계라고는 작은 탁상 시계 하나 없었고 엄마와 나는 손목 시계도 차고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시계'과 관련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너무나 크고 뚜렷하게 들리는 커다란 시계의 초침 소리. 왜 있지 않은가. 벽에 거는 커다란 벽시계. 딱 그 소리였다.
이상한 한편 신기했던 엄마와 나는(엄마 역시 살면서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옷 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심지어 옷장 위까지 털었다, 결국 시계는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우리가 소리의 진원지를 찾는 그 와중에도 초침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시계도 못 찾고 소리의 진원지를 찾는 것도 실패한 우리는 나중엔 포기하고 산책을 나갔는데, 놀랍게도 산책에서 돌아왔을 때 시계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후 사촌언니를 비롯 다른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했지만 아무도 우리 얘기를 진지하게 듣지도, 믿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옆 집에서 망치로 못을 박는 소리를 잘 못 들은 게 아니냐" 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나마 나 혼자 안 들은 게 어딘가 싶었다. 적어도 그 얘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는 셈이니까. 안 그랬음 복장 터져서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야시』는 일단 재미있다. 빨간색 표지의 양장 안에는 「바람의 도시」 와 「야시」 두 개의 중편이 있는데 둘 다 재미있다. 이런 류의 얘기들은 하나를 꺼내 먹으면 또 먹고 싶어서 손을 집어 넣게 되는 과자 봉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