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읽는 한국 전래동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코리아
주민주 지음|온누리|56쪽|1만원


서울 외국어학교 12학년 학생이 한국 전래동화 다섯 편을 영어로 번역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인 저자는 영어 소설 ‘작은 아씨들’의 한국어판을 읽을 때 가장 쉽게 우리말을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영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Long ago, there was a tiger who lived deep in the mountains. (옛날에 산 속 깊은 곳에 사는 호랑이가 있었습니다.)” “The mother frog was always sad because her son never listened to her.(엄마 청개구리는 아들 청개구리가 말을 듣지 않아서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국과 미국 문화를 둘 다 접해 본 10대가 구어체 영어로 ‘곶감과 호랑이’ ‘청개구리 이야기’ 등을 읊는다. 어린이들에게 딱딱한 교과서 문장을 달달 외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영어공부가 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옷장 안에 들어가면 이상한 나라로 슝~


나니아 연대기
C.S 루이스 지음|햇살과나무꾼 옮김|시공주니어 1080쪽|3만2000원


 
흥미로운 모험담을 통해 ‘선(善)과 용기’가 중요하다는 성서적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전하는 책이다. 판타지 소설 연작 ‘나니아’ 모험담 일곱 편을 연대순으로 엮었다. 나니아는 선택받은 동물이 말을 하면서 사람과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땅. 마법사인 삼촌 때문에 이곳으로 이끌린 디고리는 그 땅에서 엄마의 병을 낫게 해 줄 사과를 얻어오고, 그 사과의 씨앗은 ‘마법의 옷장’이 될 나무로 자란다.

다음 편부터 등장하는 아이들은 옷장 안에 들어가는 순간 나니아에 발을 디디게 된다. 아이들이 나니아를 들락거리면서 겪는 모험, 나니아의 멸망 과정을 통해 정의로운 마음, 믿음, 용기가 있어야 위험을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두꺼운 책이지만 긴장이 흐르고 재미가 있어 어린이들이 읽기 어렵지 않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12월 중 개봉 예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군주론’


지금 하세요, 원한다면…


▲ 박종성 서원대학교 교수·정치학과
‘맹자’와 ‘순자’의 꾸준한 복습은 어림없는 일이었습니다. 누가 더 옳은지 가르쳐주실 줄 알았던 선생님들도 더는 말씀이 없으셨지요. 웃다가도 돌아서면 악마가 되고 죽이려 들다가도 살갑게 다시 붙는 것이 사람인 줄 알게 된 건 되레 책 밖에서였습니다. 답이 하나인 줄만 아는 비릿한 청춘의 겉껍질도 세상과 책가방 사이에서 닳다 보면 별 수 없이 깨지나 봅니다.

여태 모를 이치는 그래도 남녀의 일입니다. 조지훈은 ‘사모’란 시를 쓰다가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이라고 느닷없어집니다. 난마 같은 남녀 사이도 이처럼 쾌도 한번으로 정리하는 걸 딴 데서 본 적 있으십니까. 정말 둘 중 하나뿐이었다면 세상은 진작 엉망이었겠지요. 분홍 넘쳐 선홍, 잿빛 겨워 글루미 에브리데이.

그다지도 매력적인지 한사코 하나를 고집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묻습니다. ‘군주론’에서. “사랑 받는 존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두려운 존재가 될 것인가.” 인간은 본시 은혜를 모르고 변덕이 심하며 제 몸만 아끼는 속물이라고 얘기했던 그였지요. 두려운 자보다 사랑하는 자를 더 쉽게 배반한다고 말하는 데도 서슴없었습니다. 정 따윌랑 가차없이 끊어 버릴 수 있는 동물의 이름은 ‘사람’이라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함정을 알아차리려면 여우여야 하고 늑대를 혼내주려면 사자여야 한다”던 그 말. 오죽하면 그랬을까요. 반도의 통일은 지리멸렬하고 정치 또한 엉망이던 500년 전 이탈리아가 그의 눈엔 징그러웠던 모양입니다. 우리요? ‘대통령’과 ‘군주’를 어찌 나란히 견주겠습니까. 당치 않습니다. 철자부터 틀린 걸요.

저자의 독한 경고는 이어집니다. “어떻든 인민들에게 미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 미움을 사는 건 군주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랍니다. 까만 옛날 얘기니 이것도 별 볼 일없는 말일까요. 그런데 어찌합니까. ‘두려운 권력’이길 포기한 지도자가 ‘가없는 미움’ 마저 한 몸에 받는다면.

나뭇잎들이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 떨어질 순 없지요. 자연의 이치인 걸요. 필까 말까 망설이며 그 아래서 담뱃갑 만지작거리고 있는 여러분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압니다. 어른 되기 무지 힘들다는 거. 하지만 군주는 못 돼도 지도자야 어디 도망갈 역할이겠습니까. 무너질망정 폼 나게 허물어져야죠. 세월 빨리 안 간다구요. 오지 말라 몸부림쳐도 그 날은 옵니다. 그것도 금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간디·만델라도 평범한 인간이었다


20세기를 만든 사람들(전 12권)
사이먼 애덤스 등 지음|김석희 옮김|어린이작가정신
각 권 116~144쪽|각 권 8500원


역사를 만드는 건 언제나 위인(偉人), 성인(聖人)들이 아니다. 인류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 희대의 악인 또한 역사의 물줄기를 뒤바꿀 뿐 아니라, 그 이름을 남긴다.

마하트마 간디에서 시작해 쿠바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로 완간된 시리즈 ‘20세기를 만든 사람들’은 이 같은 전제에서 출발한 의미 있는 전기물이다. 역사 속 인물을 무조건 미화시키거나 사실보다는 감성으로 접근하는 기존 상투적인 위인전들과는 거리가 멀다.

세심한 관찰, 꼼꼼한 기록, 이제껏 보지 못했던 풍부한 사진들로 어린이들로 하여금 세계와 역사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처음부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범접 못할 위인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도 이 시리즈의 미덕이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간디 역시 끊이지 않는 선택의 순간에서 갈등했던 평범한 인간이었으며,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어머니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마더 테레사는 고집 센 성격 때문에 껄끄러워하는 사람도 많았단다.


시리즈는 또 20세기 역사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히틀러와 루스벨트, 처칠을 통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20세기 최대의 재앙을 보여주고, 만델라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투쟁을 통해서는 인권운동의 역사를 증언한다.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도 각별하다. 20세기에 이뤄진 인간의 정신과 과학의 진보를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권마다 특유의 생동감이 넘치는 이유는 사진 덕분이다. 무명천을 걸치고 군중과 함께 행진하는 간디의 ‘소금행진’ 장면을 비롯해 게릴라전을 펼치는 피델 카스트로, 흥분한 여성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히틀러, 안네 프랑크의 단란했던 가족사진, 덩치 큰 백인 경찰에게 체포되는 킹 목사 등 역사적 현장을 포착한 수많은 사진들은 역사 속 인물을 눈앞으로 불러낸 듯 기묘한 감동을 자아낸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나 쿠바의 최고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처럼 아직 생존해 있는 인물들에 대해선 가족이 함께 토론의 주제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엄정한 사실을 토대로 했으되, 마치 소설을 읽는 듯 극적인 효과를 적절히 가미한 글쓰기로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시리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프리카 아프리카’

자연이 주는 풍요


▲ 김병종·화가·서울대 교수화가
요즘 아이들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우수(憂愁)의 하나는, 그들이 자연과 멀어져도 너무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땅의 기운을 받지 못하고 자란 그들에게서는 바람의 냄새가 없으며 나무의 씩씩함도 보기 어렵다. 컴퓨터, MP3, 핸드폰 같은 기기들이 밤낮 없이 새로운 ‘자연’의 자리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음지 식물처럼 커가는 오늘의 아스팔트 킨트(Asphalt Kind·아스팔트만 보고 자란 도회의 아이)들에게는 소년다운 싱그러움이나 생기 같은 것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아프리카 아프리카’(생각의나무). 시인 황학주와 사진작가 김중만이 함께 엮어낸 이 책에는 지구의 저편에서 살아가는 다른 아이들의 삶이 담겨져 있다. 사진과 시라는 두 장르가 오버랩되면서 엮어지는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삶의 보고서 같은 책이다. 자연의 교실, 광야의 학교에서 자라나는 그들의 삶은 가난하다. 그러나 맨발로 땅을 딛고 불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이 대지의 아이들은 당당하고 싱그럽다. 그들의 몸에서는 남루로 가리워 질 수 없는 생명의 기운들이 분출되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가 예찬했던 칼 루이스의 아름다움마저 느껴진다. 피사체로 서있는 그들은 가난과 부요(富饒)의 가름마저도 무색하게 만들뿐 아니라 오히려 참다운 가난이란 생기의 빈곤과 정신의 빈곤이 아니냐고 묻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닥 슬픔의 그림자는 이 책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깊게 패인 웅덩이처럼 아이들의 발목을 잡는 숙명의 그림자이다.

이 책이 단순한 현장보고서 이상인 것은 그 그늘을 향해 던지는 따뜻한 시선 때문이다. 서로 맞잡고 싶어 내미는 손길 때문이다. 두 사람의 저자는 아프리카를 구경거리로 그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시인의 시에서처럼 ‘노을로 된 가슴’을 안고 제각기 ‘먼 길’을 걸어와 마침내 그 ‘걸음들이 환한 물에 와 있으라’고 기원한다. 어른들만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제각기 ‘자연’과 ‘문명’의 길을 걸어왔을지라도 ‘환한 물에서’ 함께 만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