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지금 하세요, 원한다면…


▲ 박종성 서원대학교 교수·정치학과
‘맹자’와 ‘순자’의 꾸준한 복습은 어림없는 일이었습니다. 누가 더 옳은지 가르쳐주실 줄 알았던 선생님들도 더는 말씀이 없으셨지요. 웃다가도 돌아서면 악마가 되고 죽이려 들다가도 살갑게 다시 붙는 것이 사람인 줄 알게 된 건 되레 책 밖에서였습니다. 답이 하나인 줄만 아는 비릿한 청춘의 겉껍질도 세상과 책가방 사이에서 닳다 보면 별 수 없이 깨지나 봅니다.

여태 모를 이치는 그래도 남녀의 일입니다. 조지훈은 ‘사모’란 시를 쓰다가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이라고 느닷없어집니다. 난마 같은 남녀 사이도 이처럼 쾌도 한번으로 정리하는 걸 딴 데서 본 적 있으십니까. 정말 둘 중 하나뿐이었다면 세상은 진작 엉망이었겠지요. 분홍 넘쳐 선홍, 잿빛 겨워 글루미 에브리데이.

그다지도 매력적인지 한사코 하나를 고집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묻습니다. ‘군주론’에서. “사랑 받는 존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두려운 존재가 될 것인가.” 인간은 본시 은혜를 모르고 변덕이 심하며 제 몸만 아끼는 속물이라고 얘기했던 그였지요. 두려운 자보다 사랑하는 자를 더 쉽게 배반한다고 말하는 데도 서슴없었습니다. 정 따윌랑 가차없이 끊어 버릴 수 있는 동물의 이름은 ‘사람’이라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함정을 알아차리려면 여우여야 하고 늑대를 혼내주려면 사자여야 한다”던 그 말. 오죽하면 그랬을까요. 반도의 통일은 지리멸렬하고 정치 또한 엉망이던 500년 전 이탈리아가 그의 눈엔 징그러웠던 모양입니다. 우리요? ‘대통령’과 ‘군주’를 어찌 나란히 견주겠습니까. 당치 않습니다. 철자부터 틀린 걸요.

저자의 독한 경고는 이어집니다. “어떻든 인민들에게 미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 미움을 사는 건 군주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랍니다. 까만 옛날 얘기니 이것도 별 볼 일없는 말일까요. 그런데 어찌합니까. ‘두려운 권력’이길 포기한 지도자가 ‘가없는 미움’ 마저 한 몸에 받는다면.

나뭇잎들이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 떨어질 순 없지요. 자연의 이치인 걸요. 필까 말까 망설이며 그 아래서 담뱃갑 만지작거리고 있는 여러분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압니다. 어른 되기 무지 힘들다는 거. 하지만 군주는 못 돼도 지도자야 어디 도망갈 역할이겠습니까. 무너질망정 폼 나게 허물어져야죠. 세월 빨리 안 간다구요. 오지 말라 몸부림쳐도 그 날은 옵니다. 그것도 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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