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1 마녀 1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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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는 독자를 공감각적 경험으로 몰아넣는 단편만화들을 묶은 책이다. 그 체험은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 이루어진다. 작화에 볼펜을 사용했다는 <마녀>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불온하게 꿈틀거린다. 글을 읽는다고 해서 머리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아름다운 악몽처럼 읽는 이를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진다. <마녀>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작품 중 처음으로 국내 소개되는 책으로, 2004년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만화 부문 우수상 수상작이다. 한국판에는 일본판에서 빠진 컬러 일러스트 페이지가 실려 있다. <마녀>에는 오컬트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기이한 존재들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복수를 원하는 마녀 니콜라와 그녀 앞에 나타난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스핀들’, 파괴자들에 맞서 숲을 지키고자 했던 인간과 정령들의 이야기 ‘쿠아루푸’. ‘페트라 게니탈릭스’는 우주에서 이상한 사고를 당한 비행사의 몸에서 발견된 돌이 불러온 기이한 사태들을 정리하기 위해 카톨릭 사제들의 부름을 받은 마녀 이야기다. 이 외에도 여러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그 중심에는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기이한 장면들이 있다.

볼펜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그 자신만의 힘으로 꿈틀거리며 자신만의 언어를 내뱉는 듯 보인다. 그 의미를 읽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언어로 생각하는 당신은 언어를 넘어서는 생각할 수 없어요. 당신보다 커다란 것을 당신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당신 자신의 세계를 넓힐 수는 있겠지만 당신 밖으로는 나갈 수 없어요.” 알 수 있는 존재들과 그 정체를 식별할 수 없는 존재들이 두 페이지 가득 메운 장면들을 <마녀>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데, 그 자체가 꿈틀거리는 원초적 생명이다. 그 과정에서 언어를 과하게 사용하고 설명하고 나아가 가르치려 들지 않는 이유는 “‘체험’과 ‘언어’는 함께 쌓아나가야 마음의 균형이 맞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는 남을 저주하며 세상과 불화하는 대신 선험적인 세계, 자연 그 자체를 느끼고 읽는데 중점을 두고 묘사되고 있다. ‘페트라 게니탈릭스’에 이르면 마녀가 이 세계의 구원자가 되기도 한다.

“한 번도 하늘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맑은 하늘은 푸르다’고 해봤자, 말은 틀리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거짓이다.” 언어가 차고 넘치는 세상을 비추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는 그런 언어의 도움 없이도 신비한 울림을 갖는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온 몸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소녀의 경험은 말이 아니라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의 몸과 공명한다. <충사>의 우루시바라 유키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마녀>는 그 말의 뜻을 여실히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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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1
타니가와 나가루 지음, 이덕주 옮김, 이토 노이지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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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간에겐 관심 없습니다. 이중에 우주인, 미래에서 온 사람, 초능력자가 있으면 제게 오십시오.” 이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대사의 주인공은 미소녀 스즈미야 하루히다. ‘어른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이 교복차림의 미소녀는 2006년 시리즈가 국내 첫선을 보인뒤 30만부 가까이 팔려나갔다는 히트작의 주인공이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주변에는 초현실적인 일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난다(귀여운 듯 섹시하고 앳된 듯 하지만 풍만한 가슴의 소녀가 널려있다는 설정부터가 초현실적이다). 화자인 ‘나’는 이상한 하루히의 언행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어느날 하루히가 ‘SOS단’이라는 정체불명의 부활동을 시작하는데 힘을 합하게 된다. 그리고 그저 미소녀로만 보였던 부원들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다양한 사건이 일어난다. 게다가 소동이 일어날 때마다 시간이 기묘하게 엇갈리면서 세계가 바뀐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시작으로 ‘한숨’ ‘무료’ ‘소실’ ‘폭주’ ‘동요’ ‘음모’ ‘분개’ ‘분열’로 이어지는 9권까지 발간되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과 같은 책을 라이트노벨이라고 부르는데 이 책은 그 중 가장 잘 팔렸다. 라이트노벨은 장르를 혼합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이때 장르는 미스터리나 SF식의 장르 구분이기도 하지만 미디어믹스이기도 하다. 한 작품 내에 공포, 로맨스, 미스터리, SF의 요소가 섞여있는 것은 물론이고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 그리고 소설의 요소가 섞여있기 때문이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 책과 애니메니션으로 인기를 끌면서 하루히 댄스를 UCC 동영상으로 만들어 블로그에 올려 공유하는 현상이 ‘하루히즘’이라고 붐을 이루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의 그림체, 캐릭터 설정, 비현실성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제아무리 미소녀라 해도 하루히의 이상한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그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슴이 크고 앳된 얼굴의 여자가 난데없이 바니걸 복장을 입고 등장하는 이야기는 우리 아버지 때부터 인기있었던 어떤 영상문화와 일맥상통하는 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모에 캐릭터가 바로 스즈미야 하루히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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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책 - 죽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들에 대한 기록 지식여행자 2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언숙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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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마녀의 한 다스>를 읽고 그녀의 글쓰기에 홀딱 반했던 터라, 그녀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몹시도 알고 싶었다. <대단한 책>은 요네하라 마리의 사후에 엮여 세상에 나왔다. 2006년 5월25일 난소암으로 세상을 뜬 그녀가 2005년까지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서평들을 모았다. 책의 부제인 ‘죽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들에 대한 기록’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해석해도 좋을 듯하다. 요네하라 마리가 암과 싸우면서도 읽어내려갔던(그래서 이 책에 실린 독서 주제 목차에는 ‘내 몸으로 암 치료 책을 직접 검증하다’라는 항목도 있다) 수많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빼곡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책에는 국내 미출간작이 다수 섞여있다. 한 권의 책에 대한 나의 감상과 그녀의 감상을 비교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대단한 책>이 재미없어지지도 않는다. 요네하라 마리는 일본, 러시아, 북한, 남한이 얽힌 국제정세에 관심이 많은데, 그런 국제정세와 독서 경험, 그리고 개인사를 잘 녹여내 재미있게 들려준다. ‘사람은 왜 애완동물을 먹지 않을까’라는 장에서는 국제 정세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더니 <터부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소개하며 “인간에게는 사랑하는 대상과 동화되어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근원적인 욕망이 있으며, 그래서 애완동물이나 연인을 먹거나 동물과 교미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에도 어서 소개되었으면 하는 책들도 많다. 브루스 포글의 <고양이의 정신세계>라는 책은 설득력 있는 고양이 언어 해설서로, 고양이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한다. 유명한 저술가로 한국에도 여러 권의 책이 소개되었던 다치바나 다카시의 비서가 쓴 책에는 다치바나 다카시가 인터넷이나 컴퓨터의 가능성을 그렇게 역설하면서 정작 본인은 컴맹인 데다 원고도 모두 손으로 쓴다고 폭로했다니, 읽지 않아도 키득키득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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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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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아, 이제 이걸 알아야 한다. 잘 기억해둬라.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단다. 언제나 말이다. 그걸 명심해라, 마리암.” 마리암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하녀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부유하지만 마리암과 어머니는 아버지의 다른 아내들과 이복 형제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은 듯 살고 있다. 극장에 가고 싶었던 마리암은 만류하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아버지를 찾아가는데, 작은 모험은 아버지 집 앞에서의 노숙과 어머니의 자살로 끝맺는다. 결국 열 다섯 살인 마리암은 아버지와 그 가족에게 떠밀리듯이 마흔 다섯의 구두장이에게 시집간다. 그리고 내전 때문에 가족을 잃은 열세 살난 소녀 라일라가 마리암 남편의 두 번째 아내로 시집온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상처입은 두 여인이 서로의 삶을, 나아가 자신의 삶을 위무하기까지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읽는 이를 강렬하게 빨아들인다. 호세이니는 1965년 카불에서 태어났지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한 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의사가 되었다. 의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 발표한 <연을 쫓는 아이>에서 아프가니스탄 소년의 이야기를 그렸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두 번째 소설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뚝뚝하게 느껴질 정도의 간결한 문장들로 두 여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들을 둘러싼 세상이 이미 미쳐있기 때문이며, 그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이상의 슬픔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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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소년 1 - 한정판
S.M. 지음, 김헌우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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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이 쓰고 김현우가 그린 <순결소년>은  학교 화장실 낙서처럼 쓰인 표지의 문구들 ‘이자식 콘돔 가지고 다닌다’, ‘우리 옆집누나 졸라 섹시’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어린 수컷들의 뜨거운 번민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변태라고 불리는 발기부전 소년 심해용과 변태를 부르는 초절정 육감 소녀 송아리가 중심 인물이며, 무관심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혼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전인교육의 포스 오충만 선생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해용이네 집은 러브호텔을 한다. 스스로를 양성구유라고 믿는 해용이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데, 늘 치한들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아리는 그런 해용을 편하게 생각한다. 이들 주변에는 눈만 뜨면 흥분하고 숨만 쉬어도 흥분하는, 성에 굶주린 십대들이 호기심어린 눈을 두리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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