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은유 지음, 이지선 북디자인 / 읻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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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시는 번역하기 어렵죠. 시는 어쨌든 언어를 극한으로 밀어붙이고, 특별히 이해받고 싶어 하지 않는 경험을 만드는 장르니까 더 어렵죠. 근데 우리가 소통을 할 때 오해를 감수하고 말하는 것처럼 시 번역도 그냥 사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 중에 하나 아닌가 싶어요. 그걸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다면, 그걸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면...

은유,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47쪽


시 번역가의 인터뷰집이라, 반짝거리는 책 표지와 빛나는 제목(순수한 것!)의 책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막연히 생각했다. 읽기 어렵지 않을까. 시를 번역하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자마자 쑤욱 빠져들었다.


시에 대하여, 번역에 대하여, 시를 번역한다는 어려운 일을 선택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이의 정체성에 대하여, 희귀한 일과 귀한 나 자신, 이 책은 귀하고 순수한 나라는 존재의 이야기다.


내가 알던 번역가는 정보라의 [저주토끼]를 번역해 부커상 인터네셔널 후보에 지명된 안톤 허 정도였다. 그와 함께 유학이나 이민 후 한국 문학 작품과 만나 번역에 뛰어들게 된 번역가들의 다양한 사연을 흥미롭게 들었다. 인도계 미국인인데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빠져 한국 시 번역까지 하게 된 알차나 번역가의 이야기는 새로웠다. 번역이라는, 그것도 번역이 가장 어렵다는 시 번역을 택한 이들이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귀한 목소리가 책 페이지마다 넘쳐난다.


성 소수자여서, 외국인이어서, 낯선 언어가 쓰이는 낯선 나라에 온 이방인이어서 외롭고 힘들 때, 내 삶을 지켜내는 방법으로 문학을 택한 이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기쁘다. 호영 번역가의 표현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은 문학이다. 그리고 번역가들은 그 아름다움을 최대한 많은 이와 나누기 위해 분투한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싸움. 


작가로 살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서 좋은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계속 읽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 감수성을 유지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싶고, 그렇게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은유, 같은 책, 227쪽


*본 서평은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 1기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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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르게 읽는 제로베이스 철학
이인 지음 / 그린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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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책이 도착했다. 한글날 연휴가 끝나기까지 2주 간 느긋하게 하루 두 명에서 세 명의 철학자를 만났다. 사실 부지런히 읽은 셈이다. 이인 작가님의 [게으르게 읽는 제로베이스 철학]은 하루에 한 명의 철학자를 만날 수 있도록 총 31개로 구성된 , 한 달 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루에 한 명 한 달에 서른한 명이면 나 이제 철학 좀 안다고 뽐낼 수 있다. 온라인서점에서 포인트로 받을 수 있는 사은품인 스티커와 모의고사 학습지로 철학의 기초를 확실히 다질 수 있는 것도 중요한 부분.

철학자의 이름에 스티커를 붙이며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이 알차고 재미있는 철학 입문서를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을까...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가 권하지 않아도 이미 읽고 있을 것이다. 관심이 없는 사람은 표지를 보고 '핑크색 애벌레(동네서점 판은 핑크색이다) 귀엽네...'하다 내려놓을 것이다. 내려놓는 손을 덥썩 잡고 이렇게라도 말을 걸어보고 싶다.

헥토파스칼을 아십니까?
누구세요?
이 짤 한 번이라도 보신 적 없어요?
아니, 이건 아는데 갑자기 왜...
헥토파스칼에서 파스칼은 철학자 이름으로 그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으며....
(이미 도망감)

우리는 철학을 왜 알아야 할까?
먹고 살기 바쁜 이 세상에서 철학이 존재 가치가 있을까?

간결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는 지혜로워지기 위해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내가,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

세부적으로 주석을 달면 이렇게,

철학이고 뭐고,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
96쪽,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을 원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 모르는 셈이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을 통해 행복을 얻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탁월성에 따르는 행위는 그 자체로 즐겁고 좋으며 고귀한 것이다. 탁월성을 획득한 상태가 진정한 행복이다. 예를 들어서 춤꾼이라면 최고의 춤을 출 때 행복하고, 작가라면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탁월한 작품을 완성할 때 행복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활동이 곧 행복이다.

지긋지긋한 정치인들...이런 똥밭에 굳이 내가 투표를 해야 해?
322쪽, 랑시에르는 자신의 정치철학 이론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의문을 던진다. 어쩌면 문제는 답답한 현실의 정치 자체가 아닐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정치를 거론하면 곧장 인상을 찌푸리도록 습관화된 우리의 감성이 아닐까? 정치를 잘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넌덜머리를 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감성이 치안 질서에 사로잡혀 있다는 징후가 아닐까? 정치인들을 모두 나쁜 놈이라고 욕하면서도 나쁜 놈들을 내버려 두는 우리야말로 어쩌면 진정으로 나쁜 놈들인지도 모른다.

하...나는 누구이고 왜 살아야 하는가...
66쪽,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찾아서 열어 밝힐 수 있다. 어둠 속에 은닉되어 있던 우리의 존재에는 밝게 빛나는 본래의 가능성이 있다. 나의 존재를 열어 밝히는 일은 자기 자신에 대해 걸고 있던 '위장'이라는 빗장이 풀리며 수행된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런 질문을 하이데거는 '존재물음'이라고 지칭했다. 존재물음이란 묻고 있는 자를 그 존재에서 투명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모든 동물 가운데 오로지 인간만이 존재물음을 한다. 그동안 '나의 존재'는 쓸데없는 이야기에 뒤덮여 있었다. 그러다 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쓰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질문으로 폭발한다. 그제야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하게 된다고 하이데거는 설명했다.

기타 등등, 질문은 많고 그 질문에 대한 철학의 답은 무수하다.

책을 읽은 뒤 특히 나와 '통했다!'고 생각되는 철학자를 골라 그가 직접 쓴 원전을 찾아 읽으면 그때부터 진짜 시작이다. '나, 철학 좋아하네'라고 말할 수 있는 때가. 내 경우엔 원래 좋아하는 철학자(니체, 쇼펜하우어, 하이데거)에서 이번에 새롭게 눈이 맞은 철학자들(칸트, 가다머, 찰스 테일러)이 추가되면서 서점 장바구니가 묵직해졌다.

게으르게 철학의 기초를 차곡차곡 쌓았으니, 이제 부지런하게 나만의 철학을 쌓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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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의 말들 -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정확한 연습 문장 시리즈
재수 지음 / 유유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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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 연휴가 길어지면서 일정도 길어졌다. 긴 연휴에 챙긴 책은 따끈따끈한 신간인 재수 작가님의 [자기계발의 말들]. 얇고 묵직한 유유출판사의 책을 예약구매로 받자마자 가방에 챙겨넣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고 짧은 여행을 다녀오면서 일에 대한 생각으로 초조해하는 대신 읽을 책으로 고른 것이다.


자기계발이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자주 반복되고 숱한 해석과 오해가 난무하며 말하는 이도 듣는 사람도 지치게 만든다. '재수의 연습장'이라는 계정에 그림을 올리면서 다양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재수 작가님이 정의하는 자기계발의 정의는 간결하다. '더 나은 내가 되는 방법'


자기계발과 사랑은 연결되어 있다. 사랑을 하면 실제로 생각과 활동에도 좋은 변화가 생긴다. 자기계발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재수, 자기계발의 말들, 유유출판사, 57쪽


올해 유독 내가 나인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하는 일, 수입을 가져다 주는 일이 일치하지 않으면서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 바닥을 쳤다. 이 책의 제목과 책의 저자가 나란히 적힌 책의 표지를 본 순간 현재 내 고민에 대한 답이 들어 있으리라 직감했다. 직감은 정확했다.


나는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나는 나의 일-작가님은 그림, 나는 소설-로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다.

나는 내 창작 활동을 지속적으로 사랑하며 평생 유지하고 싶다.


이를 위한 태도-평안하게, 고요하게, 정확하게, 아름답게(87쪽).


이를 위한 방법들, 모닝페이지와 프리라이팅을 조합한 아침 글쓰기, 하루 루틴 만들기, 충분한 수면과 운동으로 몸의 건강 유지하기, 그 밖에 다양한 책에서 찾아내 작가님이 만들고 체화한 방법들.


약간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우리 뇌에 필요한 것들.


요컨대 자기계발은 편의성이 아닌 불편함을 추구함으로써 정신과 몸을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일이다. 신체와 정신의 관계, 심심함에서 비롯하는 창의성, 약간의 불편함과 괴로움이 끌어내는 몰입감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자기계발에 임하면 쉽게 흥미를 잃거나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같은 책, 75쪽


스마트폰 같은 즉각적인 쾌락에 빠지지 않고 독서와 글쓰기라는 이로운 고통을 택해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며 꾸준한 운동으로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체력 기르기...뻔한 방법 아니야? 중얼거리며 책을 덮고 유튜브 어플을 켜는 당신이라면, 숏츠 영상 기록이 쌓여 알고리즘을 형성하듯 오늘의 시간이 쌓여 어떤 미래가 형성될지, 선택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나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나는 평생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 이 책에서 배운 방법들을 고요한 서재 안에서 차분히 노트에 옮겨적으며 되새긴다. 오늘보다 조금 더, 아름다운 한 문장이나 정확한 한 단어를 쓸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하여.


제습기에 가득 찬 물을 비우며 글쓰기 같다고 생각했다.

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것을 물질로 만드는 것. 생각을 물질로 만드는 것. 그렇게 더 쾌적한 삶이 되는 것.

같은 책,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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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 속의 유령 암실문고
데리언 니 그리파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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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여성의 텍스트다.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 다른 누군가의 옷을 개는 동안에 쓰였다.내 심장이 이것을 단단히 품으면, 이것은 내 두 손이 자질구레한 일들을 수없이 수행하는 동안 부드럽게, 천천히 자라난다.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 죄책감과 욕망에서 태어나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에 꿰매진 텍스트다.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 존재하는 것조차 작은 기적인 텍스트다. 이것이 활자라는 평범한 경이를 만나 또 다른 의식까지 들어올려진 지금 이 순간처럼. 평범, 그래, 지금 내 몸에서 튀어나온 생각이 당신의 몸을 덮치는 것, 그 또한 평범한 일이다.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 21세기에 쓰였다. 얼마나 늦었는지. 얼마나 많은 게 변했는지. 얼마나 변한 게 없는지.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 또한 애가 caoineadh이기 도 하다. 장송곡이자 노동요, 찬양을 위한 송가, 노래이자 통곡,애도이자 메아리, 합창이자 성가다. 함께하라.

데리언 니 그리파, 목구멍 속의 유령, 을유문화사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다.

네 명의 아이를 낳고 키우는 시인의 텍스트,

시인이 추적하는 200년 전 단 한 편의 시를 남긴 그녀의 텍스트,

그녀들이 낳은 아이들이라는 텍스트,

그 아이들을 먹이고 키워낸 모유라는 텍스트,

여성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텍스트,

여성의 이름이라는 너무나 쉽게 지워진 텍스트,

그 모든 텍스트.


아기띠에 아기를 안아 재우며 빈 손에 책을 들어 본 여성이라면 이 책의 첫문장을 읽는 순간 직감한다.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다' 텍스트text는 실을 엮어 직물을 짠다는 단어로부터 기원한 개념이다. 실과 같은 유방의 유선으로부터 생산된 모유를 아기 입에 물리고 실로 아기 옷을 엮어 내듯 키우는 감각을 아는 여성이라면, 작가라면, 200년 전의 시인과 현재의 시인이 합창하는 이 책, 이 책의 텍스트는 곧 나의 것이 된다. '이것은 나의 텍스트다'


기꺼이 네 명의 아이를 낳고 키우며 아이들이 흘린 빵가루를 줍기 위해 마룻바닥을 기어가며 나 자신이 아닌 그림자로 존재하는 것에 순응하면서도 한 가닥의 분노 속에 붙잡는 지푸라기.


나는 소설이었고 그녀는 시다.


아일랜드의 학교에서 배우는 긴 시 한 편, 아일린 더브라는 여성이 살해당한 남편을 기리며 썼다는 <아트 올리어리를 위한 애가>라는 시와 시인을 추적하며 작가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텍스트를 쓴다. 아일린 더브의 희미하게 지워진 인생을 다시 쓴다. 아이를 키우며 희미해지는 자기 자신을 쓴다. 텍스트는 쓰여진 것과 쓰는 행위를 모두 포함하고, 이 책은 쓰여져 완성되는 동시에 계속해서 쓰여진다. 책을 읽는 여성 독자들로 인해, 반복된다.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다. 수수께끼는 계속된다.


만약 하루하루가 글자들로 가득한 페이지라면 나는 거기 적힌 글자들을 문질러 닦으며 내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그 속에서 내 노동은 내 존재를 지우는 행위가 된다.

같은 책,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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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기초 - 수와 인류의 3000년 과학철학사 Philos 시리즈 21
데이비드 니런버그.리카도 L . 니런버그 지음, 이승희 옮김, 김민형 해제 / arte(아르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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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무수한 별들이 빛나는 하늘을 관리하는 힘과 인간 내면의 삶을 움직이는 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우주에 대한 지식과 인간 정신에 대한 지식, 즉 물리학과 심리학, (비교 대상을 확장한다면)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 자연법칙과 인간의 자유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지식의 기초, 데이비드 니런버그&리카도 니런버그, 15쪽

[지식의 기초]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묵직한 제목 아래 '수와 인류의 3000년 과학철학사'라는 무시무시한 부제가 붙어 있다. 수, 수학, 수학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글을 써서 논술로 대학을 간 전형적인 수포자가 이 책을 읽어도 될까...두려움 속에서 펼친 책은 보르헤스의 단편으로 시작하며 나를 안심시킨다.



이 책은 수학과 과학에 대한 책이기보다, 수학과 과학을 포함한 인류 지식학 전체의 역사를 아우르는 책이다. 범위가 훨씬 넓다. 그렇기에 아주 무겁진 않다. 책의 핵심 키워드 두 개만 머릿속에 박고 읽으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동일성과 차이.



인류는 3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알아야 할 지식과 지식을 얻는 방법에 대해 '동일성'과 '차이'라는 두 의견으로 나뉘어 충돌하고 분열되었다. 동일성이란 이성, 과학, 불변의 틀,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특성-그리스어로 '아패틱'이라 이름붙인-을 말한다. 쉬운 예로 2+2의 결과가 4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차이는 혼돈, 감성, 인간의 심리, 변화하고 전환되기 쉬운 것-패틱-을 말한다. 차이의 관점에서 2+2는 4가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의 마음을 생각해 보면 나는 초콜릿을 좋아하니까 초콜릿을 먹으면 반드시 기분이 좋아진다, 2(우울한 마음)에 2(초콜릿)를 더하면 4(행복한 마음)가 변함없이 도출될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안다.



- 수(여기서 수는 공리에 기초한 전체 수학을 의미한다)는 아패틱을 요구한다.

- 절대적으로 패틱하거나 아패틱한 것은 없다. 우연에 따라 패틱하거나 아패틱해질 뿐이다.

같은 책, 259쪽

현대의 우리는 절대 불변의 진리란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양자역학만 하더라도 인간의 관측에 따라 입자 혹은 파동으로 바뀌는 세계를 설명한다. 모든 지식은 동일성 혹은 차이를 향한 우리의 의지에 좌우된다(260쪽) 중요한 건 우리의 의지, 우리의 자유와 우리의 선택이다.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동일성에만 치우쳐 절대적인 진리에 목을 메는 태도는 독단적인 폐단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2+2는 4일 수밖에 없어! 라는 세계는 마치 인간을 MBTI결과에 따라 직업을 정해 주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예외를 가차없이 제거하는 파괴적인 곳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2+2는 5이기도 하고 10이기도 하니까 다 정답으로 체택하자!는 세계는 집을 지을 때 왼쪽 벽과 오른쪽 벽 높이를 제멋대로 측량해 결국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없는 혼돈과 비이성의 결과만 존재하는 곳이 될 수 있다. 2+2가 4라는 암묵적인 규칙을 모두 인정하는 태도는 분명 필요하다.



필연적인 동일성이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지식의 완전히 안정된 기초는 없다. 일자와 다자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결정해 주는 공리도, 사유법칙도, 수학적 유추도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책, 404쪽

책의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의 선택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틀도, 대신 선택해 주는 신도, 진리도 없다. 우리 자신 안에 동일성과 차이라는 동시적 신비를 키우려고 노력하기.(406쪽) 나라는 존재의 변화무쌍함을 인정하면서도 '나'라는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틀을 발견하기. 성격유형검사로 나라는 인간을 파악하면서 나 자신의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마음 같은 것.



책을 읽으면서 동일성과 차이라는 개념만 확실히 파악해도 두 개념을 통한 지식 추구의 방법을 깨닫는 것이 훨씬 안전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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