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번역가의 인터뷰집이라, 반짝거리는 책 표지와 빛나는 제목(순수한 것!)의 책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막연히 생각했다. 읽기 어렵지 않을까. 시를 번역하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자마자 쑤욱 빠져들었다.
시에 대하여, 번역에 대하여, 시를 번역한다는 어려운 일을 선택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이의 정체성에 대하여, 희귀한 일과 귀한 나 자신, 이 책은 귀하고 순수한 나라는 존재의 이야기다.
내가 알던 번역가는 정보라의 [저주토끼]를 번역해 부커상 인터네셔널 후보에 지명된 안톤 허 정도였다. 그와 함께 유학이나 이민 후 한국 문학 작품과 만나 번역에 뛰어들게 된 번역가들의 다양한 사연을 흥미롭게 들었다. 인도계 미국인인데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빠져 한국 시 번역까지 하게 된 알차나 번역가의 이야기는 새로웠다. 번역이라는, 그것도 번역이 가장 어렵다는 시 번역을 택한 이들이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귀한 목소리가 책 페이지마다 넘쳐난다.
성 소수자여서, 외국인이어서, 낯선 언어가 쓰이는 낯선 나라에 온 이방인이어서 외롭고 힘들 때, 내 삶을 지켜내는 방법으로 문학을 택한 이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기쁘다. 호영 번역가의 표현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은 문학이다. 그리고 번역가들은 그 아름다움을 최대한 많은 이와 나누기 위해 분투한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