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간식집 - 겨울 간식 테마소설집
박연준 외 지음 / 읻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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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간식은 특별하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먹는 간식이니까.

눈썹까지 얼어붙는 혹한기의 추위 앞에서 가슴속에 삼천원 정도 지폐를 품은 채 몸을 옹송그리며 붕어빵 트럭이나 어묵 가게를 찾아 헤맨다.


음식은 따뜻함이다. 같이 먹는 음식은 사랑이다.


겨울 간식을 소재로 한 테마소설집 [겨울간식집]이 유독 따뜻하고 포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겨울이라는 시련을 버텨내며 같이 나눠먹는 간식 이야기.


어긋난 인연을 추억하는 박연준의 <한두 벌의 다른 옷>에서 느껴지는 뱅쇼의 뜨끈한 향기, 뱅쇼를 마시며 읽고 싶었다. 생강차를 우려마시며 데운 술을 나눈 사이에 대해 생각했다.


삶의 문턱을 넘어가지 못한 번지점프대 위 세 사람이 모여 귤을 먹는 김성중의 <귤락 혹은 귤실>을 읽으며 귤을 까 먹었다. 겨울 간식 중 차가운 쪽에 속하는 귤이지만 겨울 간식의 대표주자.


고시텔에서 경계의 삶에 놓여 있는 이들이 타코야끼를 만들어 나눠먹고 문어를 가지고 온 어머니를 찾아가는 대학생의 이야기인 정용준의 <겨울 기도>를 읽으며 타코야끼가 너무 먹고 싶었다. 타코야끼 기계를 검색해 보았다. 타코야끼 트럭을 찾아내고 말리라.


명절에서 비껴났거나 도망친 여자 세 명이 설날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은모든의 <모닝 루틴>을 읽은 뒤 점심에 만두국을 먹기로 결심했다. 직접 빚은 만두는 아니지만 만두 역시 겨울에 먹으면 특별해진다.


할머니에게 호떡을 사다주는 하루의 여정이 묘한 분위기 속에서 전개되는 예소연의 <포토 메일>을 읽고 호떡 믹스를 주문했다. 호떡만큼은 자신있게 만들 수 있다. 추위로부터 몸을 지켜내야 하기에 겨울 간식은 달아야 한다.


리조트로 개발되는 유자밭에서 딴 유자로 유자청을 만들어 유자차를 마시는 유자 이야기 김지연의 <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를 읽으면서 유자차의 향이 느껴졌다. 뱅쇼에서 시작된 소설집이 유자차로 끝났다. 겨울 간식은 따뜻한 음료가 기본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거나,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답을 알지 못해 방황하거나,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없어 답답할 때, 우리의 마음은 겨울이 된다. 겨울이 지속되면 마음은 얼어붙고 영영 회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차를 마시고 호떡과 타코야끼로 열량을 채우고 귤로 비타민을 보충해 감기를 예방해야 한다. 든든해져야 한다. 삶의 추위 속에서 우리는 간식으로 버틴다. 삶에 필요한 겨울 간식에 대한 따끈한 소설이 막 완성되어 우리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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횔덜린 서한집 상응 5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장영태 옮김 / 읻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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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것은 순수하지 않은 것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네.

횔덜린 서한집, 287쪽


편지를 거의 쓰지 않는 시대, 과거에 쓰인 편지를 모은 서한집을 읽는 이유는, 먼 미래 sns를 거의 하지 않을지 모를 시대, 과거에 업로드된 sns의 글과 사진을 읽는 후손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지, 그러니까 호기심. 직접 만날 수 없는 과거의 인물로부터 생생한 목소리를 최대한 가깝게 듣고 싶다는 호기심으로부터.


생전에 크게 인정받지 못했으나 사후 독일의 대표 시인으로 재발견된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서한집을 읽었다. 이름만 겨우 알고 '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빵과 포도주)정도의 인용문만 들어본 시인의 편지들은, 살아 있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어머니와 동생에게, 헤겔과 노이퍼 같은 절친에게, 실러 등 존경하는 이에게 보낸,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 속 횔덜린의 '목소리'는 다정하고, 열렬하며, 애정이 가득하고, 때로 불안하고, 이따금씩 고독했다. 시인으로 살아가고자 다짐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고뇌하고, 자신의 작품이 크게 인정받지 못해 우울해 하고,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면서 동시에 실망하는 그의 목소리들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쁨 없이는 영원한 아름다움이 우리 가운데 옳게 피어날 수 없지. 거대한 고통과 거대한 기쁨이 인간을 가장 훌륭하게 기르는 법이라네.

횔덜린 서한집, 206쪽


불운한 시인은 결국 정신착란을 일으켜 반평생 유폐되다시피 살아야 했다. 서한집 부록으로 짧게 실린 정신착란 시기의 편지들은 급격히 짧아지며 위태로운 그의 내면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언제나 고통받는 것은 시인인가? 인간을 사랑한 시인의 예민한 영혼은 삶과 세계의 부조리 속에서 고통받았을 것이다. 응답받지 못한 사랑, 인정받지 못한 문학, 이루어지지 않는 사상, 큰 고통 속에서 기쁨처럼 태어난 아름다운 시와 소설, 편지들, 횔덜린이라는 존재 그 자체. 순수한 시인의 목소리는 엉망진창인 이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그의 시와 편지를 통해 영원한 청춘의 목소리를 엿듣는다.


내가 언젠가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한 소년이 되면, 봄과 아침과 황혼은 매일같이 나를 조금씩 회춘케 해서 마침내 내가 최후를 느끼고 야외로 나가 앉아 거기로부터-영원한 청춘을 향해서 길을 떠날 것이다!

횔덜린 서한집,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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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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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신작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완독하고 기념할 겸 출판사에서 준비한 팝업 공간 '무라카미 하루키 스테이션'에 다녀왔다. 가는 길에 비가 내린다. 소설 초반부 주인공 '그'가 '그녀'와의 영속적인 관계를 꿈꾸며 떠올리는, 비가 내리는 바다의 광경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바다 위로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바다는 영원히 바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도 시간은 시간 그 자체.


그 여름,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 그리고 내 안의 시간은 그때 실질적으로 정지했다. 시곗바늘은 언제나처럼 앞으로 나아가며 시간을 쌓아갔지만, 나에게 진짜 시간은-마음의 벽에 박힌 시계는-그대로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그로부터 삼십년 가까운 세월은 그저 공허를 메우는 데 소비해온 것이나 다름없다. 텅 빈 부분을 무언가로 채울 필요가 있기에 주위에 보이는 것으로 그때그때 메워갔을 뿐이다. 공기를 들이마실 필요가 있기에 사람은 자면서도 무의식중에 호흡을 계속한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254쪽

주인공은 열일곱 살에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사랑의 대상을 만나고 영영 잃어버린다. 그녀가 사라진 뒤의 시간은 멈춘 것과 동시에 흘러간다. 시곗바늘이 없는 시계탑이 서 있는 벽 안의 도시와 같이, 내 안의 내면의 시간은 외부에 흐르는 시간과 분리된다. 본체와 그림자가 분리되듯이, 나는 나의 삶과 무관해진다. 가끔 내가 무언가의,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111쪽) 나는 그림자와 본체로 나뉘어 그 사이에 벽을 친다. 왜? 마음의 역병(528쪽)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령 이런 것이다. 소설 중반부 주요 인물이자 가장 인상깊은, 산 속 작은 마을의 도서관 관장이었던 고야쓰 씨가 겪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자. 그는 문학에 뜻이 있었으나 꿈을 이루지 못했고, 꿈을 이루진 못했으나 가업을 이어 성실하게 살아간 사람이었다. 사랑에 빠졌고, 결혼했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얻었고, 아들을 사고로 잃고,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가진 것을 모두 잃었을 때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그는 계속해서 살아나갔다. 가업이었던 양조장을 도서관으로 바꾸고 치마를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기 위해 그는 노력했다.

"가끔 저 자신을 알 수 없어집니다."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혹은 잃는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이 인생을 저 자신으로, 저의 본체로 살고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그저 그림자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그런 때면 제가 그저 나 자신의 겉모습만 흉내내서, 교묘하게 나인 척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해집니다."

"본체와 그림자란 원래 표리일체입니다." 고야스 씨가 나지막히 말했다. "본체와 그림자는 상황에 따라 역할을 맞바꾸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람은 역경을 뛰어넘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랍니다. 무언가를 흉내내는 일도, 무언가인 척하는 일도 때로는 중요할지 모릅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이곳에 있는 당신이, 당신 자신이니까요."

같은 책, 452쪽

결코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삶의 충격에 나가떨어진 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삶의 목적도 상실했으나 시간은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 시간은 가차없이 흐르고 나는 삶을 이어가야 한다. 나를 분리해 벽을 치고 외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건 진짜 내가 아니야, 나는 나를 연기하는 가짜일 뿐이야, 괴로워하는 내게 속삭이는 어떤 목소리, 괜찮다는 목소리, 믿는 마음을 잃지 말라는 목소리가 소설 속에서 새어나온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이 주는 해소되지 않는 슬픔은 하루키의 가장 유명한 소설인 [노르웨이의 숲]의 중심 정서와 이어진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이미지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장소다. 나는 이 두 소설의 장점만이 집결된 완결판이 이번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하루키의 단점은 쏙 빠지고(뜬금없는 성적 묘사 같은) 하루키의 장점이 두드러지는 소설이라 생각하며 아껴 읽었다.

그의 최고작이라기보다 완결작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한 명의 작가가 쓸 수 있는 이야기 모티프는 한정되어 있고, 하루키가 쓸 수 있고 써야만 했던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비로소 당신은 벽을 넘어 그 도시에 도착하는데 성공하셨군요,


기쁜 마음으로 읽다가 한편으로 그의 나이를 떠올리고 불안해졌다.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애정하는 작가의 시간만큼은 불공평하게 주어지기를 바라는 독자의 이기적인 마음 역시 자꾸만 벽을 탈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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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원 - 시리 허스트베트 에세이
시리 허스트베트 지음, 김선형 옮김 / 뮤진트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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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는 이른바 '어머니'가 아니다. 그러니까 어머니들을 떠올릴 때마다 불가피하게 등장하는 전형이나 클리셰도 아니고, 남녀의 위계질서에 갇힌 사람도 아니고, 위대한 어머니나 동정녀 마리아나 대자연이나 육아 잡지에 실리는 부드러운 광고에 등장하는 어머니상의 컬트도 아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관념들은 선악의 대비가 노골적인 엄격한 도덕주의로 어머니 노릇을 침범한다.

시리 허스트베트, 어머니의 기원, 뮤진트리, 40쪽


시리 허스트베트 개인의 어머니로 시작되는 에세이는 세계 전체의 '어머니'라는 관념-버지니아 울프가 '집안의 천사'라 정의한 가부장적 세계 속 어머니라는 개념-을 고찰하며 뻗어나가는 지적 여정을 거침없이 수행한다. 이 묵직한 에세이는 작가의 어머니로 시작해 여성혐오를 고찰하는 연구로 확장되며 한없이 깊어진다. 작가 본인이 겪은 여성혐오 사례들, '뇌 문신'이라 이름붙인 수많은 사례를 열거하며 여성혐오의 시작을 고대 그리스부터 추적해 현대 과학 연구까지 침범한 고정관념을 발견하고 타파한다.


시리 허스트베트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줄리엔 반 룬의 [생각하는 여자]라는 책에서였다. 철학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여성 사상가들을 찾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책으로 책 자체도 인상깊었고 책에서 소개된 이름을 전부 적어두었다. 시리 허스트베트의 데뷔작을 찾아 읽었고 작가 폴 오스터와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아내, 무의식적인 여성혐오적 사고방식, 에세이에서 허스트베트는 자신의 작품을 남편이 썼다고 굳게 믿는 기자와 독자들을 만났던 경험을 언급한다. 에세이에 실린 문학-과학-철학-사회학-기타 수많은 학문의 장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유하는 그의 글을 읽으면 빛나는 지성을 결코 의심할 수 없다. 내 안에도 자리한 여성혐오적 사고방식을 발견하는 건 고통스럽다. 이 에세이는 불편하다. 그렇기에 반드시 읽어야 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훌륭할 리 없다는 선입견의 안경을 쓴 이들이 '감히 글을 쓰지 말고 아이를 낳고 키워라!' 외치며 분노하며 날뛰게 내버려 두고, 그는 유유히 자신의 글을 쓴다. 이제 반대로 정의한다. 폴 오스터가 시리 허스트베트의 남편이라니, 얼마나 좋을까!


-185쪽, 그리고 결단코 말하지만, 문학이 늘 편안한 여흥에 머물지는 않는다. 편안한 여흥일 때는 문학이 당신의 미래를 바꿀 수 없다. 개념적 틀과 반복되는 삶의 학습된 패턴에 갇힌 당신을 끌어낼 수도 없다. 편안한 여흥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나는 193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들에 약하고, 그런 영화들은 걸출하지 않더라도 내 허기를 충분히 채워준다. 문학이 대구 간 기름처럼 매일 아침 건강을 위해 삼켜야 하는 영양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오트밀에 잘못 부은 오렌지 주스와는 상당히 비슷할 수 있다.이게 대체 뭐지? 뭔가 잘못됐어. 내 예상과 전혀 다르잖아. 가끔 우리는 위대한 문학이 방향의 재설정을 요구하기 때문에 반감을 느낀다. 그런 책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방어기제를 내려놓아라. 심호흡하라. 예술은 섹스와 같다. 긴장을 풀지 않으면 즐길 수 없다.


-413쪽, 여자는 꼭 어머니가 되지 않더라도 처벌대상이 된다. 오히려 '자식이 없다'는 말은 이기적이다'와 동의어가 된다. 모든 여자는 부조리한 문화적 절대명령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이에 따르면 여자인 나는, 오로지 당신, 영원한 남자-아이를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남자-아이를 달래주고, 진정시키고, 먹여주고, 품어주고, 우러러보고, 열렬히 사랑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충분히 만족할 만큼 내가 이 역할을 이행하지 않으면, 나는 버르장머리 없고 사악하고 매정한 나쁜 년, 즉 마녀가 된다. 내 앞에 쏟아지는 욕설과 주먹다짐과 발길질은 다 내가 자초한, 말하자면 당해 마땅한 처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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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
요나스 메카스 지음, 금정연 옮김 / 시간의흐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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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와 타자기. 종이를 보면 나는 글을 쓸 생각부터 하고, 타자기를 보면, 완전 미쳐버린다. 글쓰기는 다른 무엇과도 별 관계가 없다. 종이와 타자기가 전부다. 그래요, 데리다 선생님. 여기, 아마도 제가 궁극의 해체주의자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더라도요. 실로 의미 있는 어떤 것도 없다. 단어들, 단지 단어들. 혹은, 좀 더 정확하게는, 문자들. 당신은 그냥 앉아서 타자기를 두드린다. 그게 전부다. 문자에 이어지는 문자, 단어에 이어지는 단어. 어떤 단어일 수도 있고, 다른 단어일 수도 있다-별 차이는 없다. 그저 타이핑일 뿐. 문학은, 친구여, 저기 바깥의, 현실 세계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네, 현실 세계 같은 게 있다면 말이지만.


요나스 메카스,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 시간의흐름


지난 가을, 책과 노트를 챙겨 자전거를 타고 야외 좌석이 있는 카페로 달려갔다. 집에서 자전거로 십 분 거리에 있는 카페는 유치원이 바로 앞에 있어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잘 들린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긍정하게 된다. 지금처럼, 무엇이든 쓰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쓰는 것보다 낫다고 긍정하는 긍정법.


글쓰기는 종이와 펜만 있어도 된다. 노트북이 서운해 할 수 있으니 슬쩍 껴 준다. 이 글의 초고는 노트에 썼다. 이렇게 한 글자씩 이어가며 썼다. 이 글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틈도 주지 않고 썼다. 그게 전부다....방금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었다. 기도 소리 같은데 뭔가 비밀스러운 종교의 배 안쪽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아-소리 같은 이 소리는 뭐지? 


고개를 들어 보니 카페가 위치한 건물 3층에 스피치 교습소가 있었다. 평일 오전에 스피치를 연습하러 학원에 와서 발성 연습을 하는 사람들의 긍정성에 대하여 쓰기...지금 11시가 넘었으니 점심 시간에 틈을 내어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달려온 갓생 직장인일수도 있다. 과연 우리는 어른이 된 뒤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점심시간이 되었고 곧 이 글을 마무리한 뒤 가장 좋아하는 김밥집에서 김밥을 포장해 근처 공원으로 갈 것이다. 무엇이든 썼다. 이것도 문학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 문학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나는 뭘 썼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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