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과 영향력 - 자기만의 범주를 만드는 글쓰기에 관하여
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에트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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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쪽, 나는 글을 쓸 때 본능을 따라가는 편이고, 내 충동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글을 고쳐 쓰고 싶으면, 이걸 고쳐 써봤자 쓸 데도 없다고 되뇌지는 않는다. 그냥 본능을 따라간다. 내가 어떤 일을 한다면 거기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는 그 순간에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해질 것이다.


리디아 데이비스, 형식과 영향력, 에트르


이제니 시인님의 첫 에세이 [새벽과 음악] 출간기념 북토크에서, 같은 출판사의 기획 시리즈인 '말들의 흐름' 다른 책을 집필한 금정연 작가님과 윤경희 작가님이 함께 참석했고, 세 작가님 각각 추천하실 책이 있냐 묻는 독자의 질문에 입을 모아 한 권의 책을 강력 추천하셨다. 그게 이 책이다.


한국에는 아직 낯선 리디아 데이비스의 글쓰기 관련 글을 모인 책 [형식과 영향력]의 부제는 '자기만의 범주를 만드는 글쓰기에 관하여'. 자신감 넘치는 부제에 걸맞는 독특한 형식의 산문을 창조한 리디아 데이비스의 글을 읽어보고 싶다면 봄날의책에서 출간한 작품집 [불안의 변이]를 꼭 읽어보면 된다. 나도 이 작품집에 반했고, [형식과 영향력]을 샀고, 작가님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추천한 날 책을 읽었다.


직업적 특성 때문에 글쓰기를 주제로 한 책에 높은 평가를 내리는 건 아니다. 글쓰기는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게 하는 좋은 기술이다. 나는 나를 알고 싶어 글을 쓴다. 일기를 쓰고 블로그에 비공개 글을 올리고 아무도 읽지 않을 시나 소설을 완성한 뒤 감춘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변을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흘려들을 누군가의 대화를 노트에 기록한다. 수첩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메모한다. 짧은 글 한 줄이 시 한 편이 되거나 소설이 된다. 글을 쓴다. 글을 쓰면서 나는 더 나은 내가 된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내용도 비슷하다.


-256쪽, 독창적인 글을 쓰고 싶다면, 독창적이려고 애쓰지 마라. 그보다는 당신 자신에, 당신의 정신에 공을 들이고, 그런 다음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라. 이것은 스탕달이 한 조언이다. 그가 실제로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재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개성에 공을 들이고 매번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라." 내가 이 인용구를 어디서 찾았냐고? 내가 가진 [새로운 기본 요리책]에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조언을 다음과 같이 나에게 맞게 각색한 것을 더 좋아한다.독창적인 작가가 되고 싶다면 자신을 갈고닦고,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만들고, 공감 능력과 다른 인간 존재들에 대한 이해력을 키우고, 그런 다음 글을 쓸 때는 당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말하라.


리디아 데이비스, 형식과 영향력


스탕달의 조언을 리디아 데이비스 버전으로 다시 쓴 버전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 쓴다면, 독창적으로 살고 싶다면 글쓰기로 나를 갈고닦고,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공부하면서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고, 공감 능력과 이해력을 키우고, 더 나아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이면서 그 말을 글로 써라. 그 글이 곧 내가 되고 나의 삶이 된다. 우리는 죽기 직전까지 성장한다. 성장기는 끝나지 않는다. 글을 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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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과 영향력 - 자기만의 범주를 만드는 글쓰기에 관하여
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에트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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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 퍼주시면 남는 게 있습니까? 책 귀퉁이를 하도 접어서 책이 닳아 없어질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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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 데뷔 30주년 기념 초기단편집
듀나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읻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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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물성만으로도 기쁘기는 정말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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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과 음악 말들의 흐름 10
이제니 지음 / 시간의흐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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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 이제니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과 수첩과 만년필을 챙겨 집을 나섰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버스를 탔다. 도망치듯 도달한 카페는 작고 포근하고 훌륭한 모서리 자리를 가졌다. 나를 위해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동그란 테이블과 의자 두 개, 어느 의자에 앉든 벽과 마주보아야 하는 모서리는 편안하게 고일 수 있는 완벽한 장소였다. 그곳에서 고여 있던 두 시간에 대해 뭔가 써 보려 노력한다. 뭔가 쓰려 애쓴 시간,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듯 책을 펼쳐 읽은 순간, 칼바람에 베인 두 발의 감각이 돌아오고 흐릿하던 마음이 커피로 또렷해지고 어둠밖에 보이지 않던 눈 앞에 빛이 스치던 기억에 대하여. 지금 내가 쓰는 글은 그때의 시간을 정확하게 되살릴 수 없고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죽어가며 살아간다. 죽음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느라 여유가 없던 새벽에 우연히 가닿은 음악과 같은 책에 대하여, 나는 설명하려 노력하고 실패한다. 이 글은 이 책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하는 데 실패했고 그래서 마음에 든다.



-23쪽, 어떤 음악은 눈물처럼 쏟아진다. 군더더기가 될 것이 뻔한 수사를 허락하지 않는다. 불과 몇 줄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처럼. 그러나 문자가 전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물성으로. 이 추상적인 물성에 대해, 언어화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해 늘 명확한 언어로 쓰고 싶었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일은 매번 실패로 귀결된다. 당신의 마음속에서 흐르고 있는 음악은 무엇입니까. 나는 내 마음속에서 배음으로 흐르는 음과 색을 언어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음 하나 모음 하나를 조합해나가면서 이 티끌의 시간을 모아 음과 색에 언어를 덧입히는 것은 언제나 늘 뒤늦고 허망한 일처럼 여겨질 뿐이었다. 말해질 수 없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되는 무엇을, 그럼에도 끝끝내 써나가는 일이란 무엇일까.

새벽과 음악, 이제니, 시간의흐름


-54쪽, 어둠으로 기우는 마음을 전적으로 다 믿지 말고, 그 감정의 결을 보다 세심하고 다정하게 들여다보면서, 어두운 감정에 속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들에 대해 좀 더 섬세하고도 고유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언어로 이름 붙일 수 있다면.

새벽과 음악, 이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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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과 음악 말들의 흐름 10
이제니 지음 / 시간의흐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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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요한 요한슨의 <오르페>를 들으며 천천히 읽는 새벽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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