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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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감동적인 독서 했다. 지극히 몰입한. 신은 어디에나 있으며 인간 밖이 안에 있다, 선과 악은 하나로 뒤엉켜 있다, 인간을 삶에서 죽음으로 실어 나르 강과 같은 . 신을 생각하며 쓰고 있는 설이린애처럼 느껴지. 현숙한인을 만나 지혜로 대화 듣는.


책을 읽고 인도 바라나시에 가고 싶다는 생각 굳이 가보지 않아도 있다는 생각 , 인도의난과선이 싫고 명의 관광객으로들에게 가벼이 뜯어먹히고 싶진 않다. 속에 형상화된인간의 깊은 강’으로서의 갠지스 강으로억하리라.


답이 없는문의 답을 찾아듬거리며 나아가 인간의 이야기 언제나 감동을 준다. 아내 잃고늦게 아내와랑을닫게 이소베, 인생에 의미 찾지 못하던 미쓰코, 자신만의 신을 찾아다니는 오쓰가 가 닿았다. 인간의침에 묵묵히 받아들이는 깊은 .

 


강은 그의 외침을 받아 내고 그대로 묵묵히 흘러간다. 그런데 그 은빛 침묵에는, 어떤 힘이 있었다. 강은 오늘까지 수많은 인간의 죽음을 보듬으면서 그것을 다음 세상으로 실어 갔듯이, 강변의 바위에 걸터앉은 남자의 인생의 목소리도 실어 갔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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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대산세계문학총서 62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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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전화벨이 울린다. 그림 속의 왕들은 나라를 다스렸을 모르지만 전화를 받을 없다. 대리석으로 영원히 남겨진 영웅들은 굳어버린 손을 뻗어 전화를 받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반응' 익숙한 예술품들에게 잘못 전화를 어떤 인간, '하지만 그는 엄연히 살아 있다, 그래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실수) 시인은 미술관에 갔다가 우연히 잘못 걸린 전화벨소리를 듣고 시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시는 그런 것이다. '평범하다' 쉽게 얘기하는 일상의 순간이 모두 시다


우연히 깨어난 새벽 시는 '삼십대를 위한 시간'이자 '다른 모든 시간의 바닥' 된다.(새벽

가족 사진첩을 보며 그들이 무심한 세월 극적인 사건 없이 '결국 감기에 걸려 죽었다' 보통의 인간들을 조명한다.(사진첩

'이제는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수많은 나날 하나.'(1973 5 16


평범하다고 말하기조차 평범한 어떤 하루를 호명하며 시인은 시를 쓴다. 우주의 모든 날들을, 60억명의 모든 인간들을 시로 적지 못한 윤리적인 책임감에 시달리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60억의 사람들.

상상력은 그랬듯이 언제나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거대한 숫자는 감당하지 못하고,

사소하고, 개별적인 것에 감동을 느낀다.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가장 앞줄에 있는 얼굴들만 닥치는 대로 비추곤 한다.

그럴 뒷줄에 있는 나머지 얼굴들은 모조리 생략되고 만다.

기억 속에서도, 회한 속에서도 그들은 영원 속으로 도태되고 만다.

-<거대한 숫자>중에서

 

'내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할 없음을'(작은 아래서통감하는 시인은 역사가 쉽게 저지르는 잘못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데, 전쟁이나 강제 수용소의 수많은 죽음을 숫자 하나로 뭉뚱그려버리는 태도를 말한다.

 

역사는 유골들을 어떻게든 제로(0) 상태로 결산하려 애쓰고 있다.

명에다 명이 죽어도, 여전히 명이라고 말한다.

명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어딘가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야스오의 강제 기아 수용소>중에서

 

시는 이래야 하는 것이다. 명에서 누락된 명의 죽음을 목도하고 그를 기록하는 . 내가 잠든 동안 죽어간 목숨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지구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전쟁, 내가 멍하니 흘려보내는 초의 시간들을 놓치지 않고 기억하려 애쓰는 노력. 세상에 평범한 것은 어디에도 없고, 사는지 모르겠는 나라는 존재 자체부터 평범하지 않은 기적과 같은 결과물이니까.

 

우리는 정확한 단어를 찾아(단어를 찾아서) ' 모르겠어' 답을 해결하려 애써야 한다.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에 귀속될 없는

실재하는 무엇인가를.

 

-<가장 이상한 단어>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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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현대 철학 - 아들러, 라캉, 마사 누스바움… 26인의 사상가와 함께하는 첫 번째 현대 철학 수업
안광복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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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결국 시대의 산물이다. 철학의 위대함은 그 시대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안광복, 처음 읽는 현대 철학, 194쪽


생각하기, 다만 생각 없이 생각하지 않고 질문하는 법과 답을 찾는 법을 생각하기.


철학, 하면 무겁고 숨이 막히고 '생각하는 사람' 포즈를 취해야 할 것만 같다.

철학이란 '나는 왜 사는가?' 같은 질문의 답을 찾는 학문이다, 라고 풀어 쓰면 조금 낫지만 여전히 무겁다. 무겁게 느껴지는 건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철학이란 '인공지능이 무섭게 발달하고 있는 현재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모색하는 학문이다, 하면 이제 할 말이 많아진다.


철학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시작되는 철학의 역사가 머나먼 고대 그리스 시대와 현대 한국의 간극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지금 이 시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고찰하는 '현대 철학'이 필요하다.


한국의 몇 없는 철학 교사인 안광복 선생님이 친절한 문장으로 소개하는 현대 철학자들의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철학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진다.

목차를 보고 지금 내게 필요한 질문을 제시하는 철학자들을 발췌하여 읽어도 좋은 책이다. 


이번 독서에서 내가 짚은 이름들은 모방된 욕망이라는 르네 지라르의 이론, 경제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치 상황을 분석한 칼 폴라니, 상징형식의 에른스트 카시러, 전 세계적으로 특히 한국에서도 첨예한 문제인 혐오와 관련된 마사 누스바움의 철학 등등.


개인적으로 최근 고민했던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카를 야스퍼스의 실존철학으로 이 대목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정 자기답게 사는 사람들은 '철학적 신앙'을 품기 마련이다. 이는 인간의 삶에는 이익을 좇고 번식과 생존에 매달리는 차원을 넘어선, 고귀하고 숭고한 무엇이 있다는 믿음을 일컫는다. 초월적인 가치를 믿고 이를 향해 나아가는 자들은 결코 무너지거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세상이 그를 죽일 수는 있어도 이길 수는 없는 사람' 야스퍼스가 말하는 실존적인 삶이란 이런 자세를 뜻하는 듯싶다.


결국 인간이 철학이라는 학문을 발명하고 발전시킨 건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지,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답이 없기에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근원적인 질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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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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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작가란 제 언어를 선택하고, 그 언어에 지배당하지 않는 자다. 그는 어린아이와 정반대다. 자신을 지배하는 것에 구걸하지 않고, 그것에서 해방되려고 힘쓴다.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19쪽, 을유문화사


파스칼 키냐르는 숙제처럼 느껴지는 이름이다.

처음으로 [은밀한 생]을 읽었을 때의 충격.

이건 소설인가, 에세이인가, 이런 책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구속되지 않는 작가, 언어로 쓴 책 속에서 언어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려 애쓰는 작가, 띠지에 적힌 '사유하는 독자라는 즐거운 착각을 안겨 주는' 작가(ㅋㅋ).


파스칼 키냐르 본인이 자신의 문학관과 문체론 등을 서술한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역시 너무나 키냐르스럽다.


'사색적 수사학'이라 명명한 키냐르 자신만의 글쓰기 방법과 철학-'나는 콩트, 플롯, 뒤얽힘, 함축, 스토리, 이야기, 계보, 연대기, 시퀀스들의 정연한 질서 가운데 벌어진 일들의 열거를 구별 짓지 않는다.(126쪽)' 얼핏 다양한 종류의 파편들을 두서 없이 모아놓은 잡동사니 상자 같은, 무엇을 발견할지 알 수 없는 설렘을 즐기는 독자들에겐 꼼짝없이 취향저격인, 키냐르 수사학.


인간에게 익숙한 언어, 소설이라는 틀 그 무엇과도 일치하지 않는 키냐르만의 독보적 스타일이 맞지 않는 이라면 이게 무슨 글이냐며 화를 내며 책을 던질 것이고, 나 같은 인간들은 맹목적으로 동경하고 경외하며 이해할 수 없음 그 자체를 사랑하며 책을 끌어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안내가 없다. 어떤 신도 보여 주지 않고 부르지도 않는다. 모든 진정한 작품은, 모든 진정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과도 부합하지 않기에 무엇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이르기 위해 알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작업해야만 한다. 따를 스승도 없고, 비평가도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그것을 기다리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시장 조사를 할 것도 없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위한 어떤 학문도, 어떤 비평도, 어떤 조언도, 어떤 의지도 있을 수 없다. 안내하는 별도 없으니 언어의 부재하는 별을 단호히 따라가야 한다.

같은 책, 106쪽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이르기 위해 알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작업하기,

문학이란 무엇인가 묻는 질문보다 문학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가부터 질문하기.

답이 없는 질문을 하는 방법, 그래서 사실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을 읽고 쓰는 이 글의 결론 역시 답은 없다.


이 책을 읽고 어떤 답을 얻었나요?

처음부터 답이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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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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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절판 상태였던 [다락방의 미친 여자] 재출간 펀딩 알람이 뜨자마자 주문했다.


9월 초 책을 받아 오늘까지 두 달 넘게 천 페이지가 넘는 '다락방'에 갇혀 탐독했다.


다락방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자, [제인 에어]의 미친 여자가 갇혀 있던 '다락방'이자 수많은 여성들이 가부장의 명령에 복종 혹은 불복종한 대가로 감금된 방이다. '집안의 천사'라는 이미지에 끼워맞춰야만 했던 재능 있는 여성들에게 주어진 두 가지 길-패배하거나, 미치거나. 그리고 지지 않기 위해, 미치지 않기 위해 소설과 시로 새로운 길을 찾아나섰던 19세기 여성 작가들-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브론테 자매, 조지 엘리엇, 에밀리 디킨슨, 선배 작가의 작업을 이어나가는 20세기의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스, 도리스 레싱...그녀들의 ‘다시 쓰기’.

앞으로 보겠지만, 여성 작가는 남성 작가가 만들어놓은 '천사'와 '괴물'이라는 양극단의 이미지를 특별히 더 읽어내고 적응하고 초월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쓸 수 있으려면 먼저 '집 안의 천사를 죽여야 한다'고 선언했다. 다시말해 여성은 자기를 '살해해' 예술에 가두어놓았던 미학적 이상을 죽여야 한다. 모든 여성 작가는 천사와 정반대쪽에 있는 대립쌍인 집 안의 '괴물'도 죽여야 한다. 메두사의 얼굴을 한 이 괴물도 여성의 창조력을 죽이기 때문이다. 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 [다락방의 미친 여자], 95쪽

가부장이 선점 언어를 빼앗긴 여성들은 스스로를 정의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분열된다. '오히려 미친 여자는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분신이고 작가 자신의 불안과 분노의 이미지다. 실제로 여성이 쓴 많은 소설과 시에는 미친 여자가 출현한다.' (189쪽)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오래도록 사랑하며 반복해서 읽어 왔던 내 눈 앞에 이 책이 펼쳐 보인 제인 에어-버사의 분열된 자아 분석은 충격적이었다.


마찬가지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의 핵심적인 커플, 캐서린 언쇼-히스클리프의 자아 분열 과정을 목도하는 건 익숙한 작품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만들었다.

미치지 않기 위해 미친 여성을 소설 속에 풀어놓는 전략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 작가들, 아예 '흰옷을 입은 여자'로 미친 여성 그 자체가 되는 것으로 예술의 궁극을 탐구한 시인.


내게 이 책은 분투하는 등장인물로 가득한 한 편의 교양 소설로 읽힌다. 교양소설이 내면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묘사한 소설이라면, [다락방의 미친 여자] 속 수많은 여성들이야말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일에 온 존재를 바친 진정한 주인공들이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 대처하기 위해 다시 쓰기를 선택한 여성 작가는 비록 자신의 분노를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는 있었을지라도, 남성이 만든 장르나 인습 안에서 여성의 비밀을 은폐하며 양피지에 덧쓰거나 암호화된 예술 작품을 생산했다. [폭풍의 언덕]을 비롯해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도깨비 시장>, 버지니아 울프의 [올란도], 실비아 플라스의 [에어리얼]같은 좀 더 최근의 여성(페미니즘적이기까지 한)신화들은 바로 이런 방법을 선택한 여자들의 작품이다.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 [다락방의 미친 여자], 413쪽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여자는 타자의 통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해방을 통해서 권력을 찾고자 한다. 여자들에게 권력 자체는 치명적이지 않아도 위험한 것처럼 보인다. 사회에 수용될 수 있는 통로를 제공받지 못한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여자는 교활한 마녀로 낙인 찍힌다. 만약 그녀가 예술가가 된다면, 그녀는 자아 파괴의 가능성에 직면하고, 만일 그녀가 예술가가 되지 않는다면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파괴할 것이다. 와스디가 여성의 예술성이 불러올 고통을 구현하고 있다면, 마담 발라펜스는 예술가가 되지 못하고 불구의 '비여성화된'역할에 갇힌 자의 무시무시한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 예술가는 자신을 부활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 [다락방의 미친 여자], 753쪽


로세티와 브라우닝 같은 작가들, 우리가 보았던 모든 소설가가 허구를 만들어낼 때 몽환에 도취되어 표현했던 분노와 죄의 환상을 디킨슨은 삶과 그녀 자신의 존재로 글자 그대로 수행했다. 조지 엘리엇과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파괴와 체념의 천사에 대해 썼던 반면, 디킨슨은 스스로 그런 천사가 되었다. 샬럿 브론테가 자신의 불안을 고아의 이미지에 투사할 때, 에밀리 디킨슨은 스스로 그 아이의 역할을 재연했다. [래크랜트 성]의 마리아 에지워스에서 [제인 에어]의 샬럿 브론테, [폭풍의 언덕]의 에밀리 브론테, [미들마치]의 조지 엘리엇에 이르는 18세기 말과 19세기의 거의 모든 여성 작가는 '미친 여자'라는 씁쓸한 자화상을 자기 소설의 다락방에 은닉시켰던 반면, 에밀리 디킨슨은 스스로 미친 여자가 된 것이다. 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다락방의 미친 여자], 9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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