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 관하여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김하현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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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은 이제 고전이고, 고전이란 항상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책이다. 영원한 현재성이 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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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 『죽음의 자서전』, 『날개 환상통』,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합본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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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자서전, 에서

날개 환상통, 에서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까지

세 권의 시집을 한 권으로 이어서, 산문 <죽음의 엄마>까지,


세 권이 한 권처럼 읽히는 마법이

아니 거대한 한 편의 시로 읽히는 기적을 경험하는 [죽음 트릴로지]


지금 이 지구에 탑승하고 있는 사람들 중

백 년 후에 지구에서 하차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인정사정없는 죽음을 생의 앞뒤에 두고,

죽음의 아라베스크 무늬를 짜거나,

죽음의 돌림노래를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았을까.

죽음이 우리 앞뒤에 공평하게 있기에 우리의 영혼은 평등하다.

그러기에 죽음은 가장 사나운 선이며 은총이며, 영원이다.

나는 이 시들을 쓰며 매일 죽고 죽었다.

하지만 다시 하루하루 일어나게 만든 것도

이미지와 리듬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죽음에서 일어날 수도 없는 역설.

시는 죽음에의 선험적 기록이니 그러했으리라.

당신이 내일 내게 온다고 하면, 오늘 나는 죽음에서 일어나리.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시인의 말


시 속에서 시인이 죽는다. 죽음-하다.

시 속에서 시인이 새가 되어 날아오른다. 새-하다.

시 속에서 시인이 사막으로 간다. 모래-하다.

시인이 시-하다. 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심지어 죽음을 할 수 있다.


죽음 트릴로지를 읽는 시간은 죽음하는 시간이다.


내가 죽고, 엄마가 죽고, 아빠가 죽고, 아기가 죽고, 아기를 낳던 여자가 죽고, 여자가 죽고, 지구가 죽고, 우주가 죽고, 죽음하면 태어날 수 있다. 나는 엄마의 엄마가 되어 아기가 된 엄마를 낳는다. '엄마가 된 딸은 죽음과 짝이 된다'(597쪽, 산문 '죽음의 엄마') 나는 '죽음한다', 죽는 게 아니라 한다, 오직 시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죽음 트릴로지는 아주 불편하고 고약하고 냄새나는 불쾌한 책일 것이다. 시작부터 여자가 지하철에서 쓰러져 죽고 아무도 그녀를 신경쓰지 않는데, 죽었는데, 사십 구 편의 시가 한 편마다 죽음하는데, 나는 죽고 싶지 않은데, 아니지, 네가 거부하는 건 죽는 거고 우리는 죽음하는 것, 그건 엄연히 다르지, 새가 되는 게 아니라 새하기, 모래되기가 아니라 모래하기, 시하기, 읽기하기, 노래하기, 노래하다가 어색하지 않은 단어인 건 기꺼운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기꺼이 죽음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


세상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의 무릎 위에 이 책을 한 권씩 올려놓고 다 읽을 때까지 감시하고 싶다. 죽음을 살아보라고 하고 싶다. 일단은 3천 명의 사람들에게, 허공으로 떠올랐던 삼천 궁녀의 숫자만큼이나, 내 순서는 이천백사십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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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로봇 - AI 시대의 문학
노대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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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들은, 지금 내가 고민하는 지점을 짚어주는 책일 확률이 높다. 학교에서 국어 수행평가 계획을 짜면서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챗gpt를 쓰지 않고 본인의 힘으로 글을 쓰게 할 수 있을까?'였으니까. 거기에 더해 '사람들이 이제 로봇에게 진찰을 받아 로봇 약사에게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와 로봇이 내 취향에 딱 맞춰 쓴 소설을 읽는 시대가 오면 인간 소설가는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


노대원 평론가의 평론집 [소설 쓰는 로봇:AI 시대의 문학]은 흥미로운 기획의 글이 많다. 인공지능을 소재로 다룬 소설을 인공지능(챗gpt)과 함께 읽고 평론한 글이라던가, AI에게 시를 쓰게 해 그 시에 대해 대화를 나눈 글이라던가, AI, 트랜스/포스트휴먼, 사변소설, SF 소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고찰하는 비평글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따라 읽었다. 새롭게 알게 된 개념들, 재확인 및 재정립하게 된 용어들, 읽어야 할 SF 독서 목록, 그래서 AI가 인간을 도울 것인지 대체할 것인지 인간을 밀어낼 것인지에 대한 상상, 평론을 읽는데 소설적 상상력이 자극되는 특이점의 책.


책을 읽는 동안 내 알고리즘에 김애란 작가님의 최인호 청년문학상 수상소감이 들어왔다. 챗gpt와의 대화를 통해 작가가 풀어낸 어떤 답에 대하여, 완벽한 답은 아닐지라도 실마리 하나가 떠올랐다.


거의 모든 순간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대답을 내놓는 챗GPT 와 달리 인간은 때로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는 선택을 하고, 누군가는 어리석다 할 만한 희생과 도전 그리고 헌신을 하는 존재이니까요. 몸이 있어 비루하고, 몸이 있어 질병과 죽음과 이별을 겪고, 몸이 있어 슬프고, 몸이 있어 전 생애에 걸쳐 한 문장을 여러 방식으로 경험하는 인간 작가 중 한 명으로 이 자리에 서서 제 동료들을 바라봅니다. 몸이 있어 부채감을 느끼고, 몸이 있어 허리 숙여 감사 인사도 전합니다


김애란, 최인호 청년문학상 수상소감 중, 강조는 인용자


-54쪽, AI 문학이 문학의 미래를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인간은 여전히 문학의 창작과 향유 과정에서 항상 핵심 주체로 남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문학은 인간 진화의 문화적 산물이자 욕망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신체화된 인간의 정서적 체험에 기반하고 있으며, 마음이론, 마음 읽기 능력과 서사적 역량 등 인간 인지와 삶에 뿌리내리고 있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AI 기술의 발전이 인간 이상의 탁월한 문학을 생성할 수 있어도, AI가 인간의 몸과 체험이 없다면, 그 생성 과정은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른 과정이며, 인간처럼 문학을 향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노대원, 소설 쓰는 로봇, 문학과지성사


소설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몸'에서 태어난 문화이기에 AI가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은 다소 낙관적으로(혹은 비관적으로?) 보일 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지금 내 고민에 대한 완벽한 답이 될 수도 없겠지만, 원래 완벽한 답이란 없고 인공지능조차 100프로 완벽한 답을 내릴 수 없기에, 다소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글을 쓴다. 오직 내 손으로 내 머릿속에서 자아낸 문장들을 나열한다. 지금 이 글에는 단 한 줄의 인공지능이 섞이지 않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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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과 규칙 따르기 -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를 찾아서
김경만 지음 / 궁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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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라 작가의 단편소설 <신시어리 유어스>에는 잊기 힘든 인상깊은 인물이 등장한다. 명문대에 입학하고 연극반 활동을 하다 생태극이라는 희귀한 장르에 빠져 일본 극단에 들어가 일본 전역을 떠돌다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극단 자문위원인 재일 교포 남자와 결혼해 쌍둥이 딸을 낳고 제주도로 이주한 문규라는 인물은 말을 키운다. 유기묘나 유기견 입양하듯 퇴역마를 '반려마'삼아 입양한 것이다. 문규와 동갑인 소설 속 화자 '나'는 문규의 급격한 삶의 여정에 흥미를 보이면서도 '옹졸한 마음'이 든다. '그도 이제 자유의 대가를 치를 때가 오지 않았나....' 문규를 향한 나의 불편한 마음은 제주도에 내려가 문규와 실제로 마주한 뒤로도 계속 이어진다.


왜 '나'는 문규를 불편해 하는 것일까? 김경만의 [비트겐슈타인과 규칙 따르기]를 읽고 난 뒤 화자가 느끼는 불편함의 감정을 해석할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 '나'는 문규가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규칙 따르기'에 순응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기에 이를 불편해 하는 것이다. 명문대를 순순히 졸업해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하는 '규칙'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37쪽, 이제 앞의 논의를 정리해보면 우리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때 어떤 지침이 있다는 것은, 즉 구조를 따르는 것은, 어떤 '규칙'을 따라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규칙은 따라갈 수는 있고, 또 언제 위반했는가는 알 수 있지만, 불행히도 그 전체를 다 쓰고 셀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거나 깊은 독서를 해 볼 기회가 없었다. 교육사회학에서 배운 몇몇 지식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개념 정도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비트겐슈타인과 규칙 따르기]는 모범적인 사회학 입문서이자 개론서이다. 사회이론의 가장 중심적인 개념으로 비트겐슈타인의 '규칙 따르기'를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놓고, 수많은 예시와 사례와 친절한 해설을 따라붙여 사회학의 기본 틀을 잡게 해 준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나는 가족에, 학교 혹은 직장에, 세대 안에, 사회 속에, 한 국가에, 세계 속에 속해 있다. 우리는 타자와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상호작용을 할 때 지켜야 할, 그러나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암묵적'규칙을 사회성원이 '익혀 나가는'과정을 우리는 사회화 과정이라고 부른다.'(37쪽) 그러나 그 규칙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문규 같은 인물이 등장해 암묵적으로 지키고 있던 규칙에 균열을 내고, 응원봉을 휘두르며 규칙의 재해석과 재정립을 요구한다. 규칙이 바뀌고 세상이 달라진다. 투표권은 당연한 권리가 되고 체벌은 아동학대가 되고 결혼의 의미가, 효도의 정의가, 다시 쓰여진다.


-156쪽, 우리에게 '밖에서'주어지는 어떤 고정된, 진리라고 생각되는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규칙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고 '정상'인가는 사회구성원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재구성되고, 재협상되고, 그 결과 새로운 묘사와 규칙이 등장하는 것이다. 베티 프리단을 위시해서 여성해방운동을 주도한 사람들,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틴 루터, 그리고 아동학대의 탄생은 새로운 규칙이 어떻게 출현하고 받아들여지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들은 무엇이 옳고 그르고,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고 안 되는가에 대한 기존의 분류, 즉, 기존의 규칙 따르기를 '거부'하고, 기존의 규칙 따르기를 재해석한 사람들이다.


내가 당연하게 따르고 있는 규칙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나는 그 규칙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좋은 책은 물에 넣은 공룡알 장난감처럼 새로운 생각들을 튀어나오게 한다. 쉽게 읽혀지는 책이 있고 잘 읽히는 책이 있다. 쉽게만 읽히는 책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잘 읽히는 책은 다 읽은 뒤 어느새 내 머릿속의 일부로 스며든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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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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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라 작가의 첫 단편집의 제목은 불가해하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뱀'과 '양배추'가 나란히 있어야 할 이유가 뭐지? 단편소설이 이런 것이다. 평소에 둘이 나란히 있으리라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들이 한 장면에 모인 순간 발생하는 힘, 감정, 느낌. 보통은 '불편함'이라 표현할 감정을 구현하는 예술적 장르.


-82쪽, 오래전에 호경이 내게 준 그것을 나는 베란다에 서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새하얀 캄보자꽃과 원숭이, 노을에 물든 논밭 같은 상투적인 그림들을 제쳐두고 그애가 굳이 골라 내게 선물한 것. 아무런 맥락이 느껴지지 않는, 텅 빈, 이해 불가능한 어떤 것.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조는 인용자)


강보라의 소설 속에서 '이해 불가능한 어떤 것'은 다른 작가의 단편들보다 유독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주인공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인물 옆을 맴돌며 그들이 주는 불편함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티니안에서>의 민지와 수혜의 관계, <신시어리 유어스>에서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문규씨를 바라보는 '나'의 묘한 시선, 곧 떠날 동네라고 되뇌면서도 이웃집 여자를 훔쳐보는 일에 집착하는 <직사각형의 찬미>의 새댁, 소설은 불안감을 품고 유려하게 흔들리며 달려가다 쾅! 하고 폭발...하지는 않고 어떤 풍경으로 독자를 데리고 간다.


-219쪽, 얼음이 얼지도 녹지도 않는 이상적인 온도에 다다른 기분. 완전한 고체도 완전한 액체도 아닌 무언가의 표면을 손끝으로 만진 듯한.... (빙점을 만지다)


-169쪽, 어린 은화는 배우로서 그 비참함을 잘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만큼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그녀 자신만의 것이었으므로. 작고 파란 불씨 하나가 그녀의 정원 안에서 고요히 타올랐다. (바우어의 정원, 25년 젊은작가상 수상작)


그 풍경은 고체도 액체도 아닌 '무언가'이고, 크고 강렬한 불이 아닌 '작고 파란 불씨 하나'이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그게 무엇인지 그들은 우리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의 깨달음은 '그 자신만의 것'이니까.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지 소설을 읽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생각한다. 책을 덮고 밖에 나가 타인과의 대화에 끼어들었을 때, 어떤 모임에 참여했을 때, 무슨 장소에 당도했을 때, 문득 조금 전 읽었던 소설의 어떤 부분이 떠오르고 우리는 깨닫는다. '그게 이거구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맥락에서 벗어난, 이해 불가능한 어떤 것을 깨닫는 순간. 앞으로 이런 순간을 나는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이라 이름붙여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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