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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과 규칙 따르기 -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를 찾아서
김경만 지음 / 궁리 / 2025년 5월
평점 :
강보라 작가의 단편소설 <신시어리 유어스>에는 잊기 힘든 인상깊은 인물이 등장한다. 명문대에 입학하고 연극반 활동을 하다 생태극이라는 희귀한 장르에 빠져 일본 극단에 들어가 일본 전역을 떠돌다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극단 자문위원인 재일 교포 남자와 결혼해 쌍둥이 딸을 낳고 제주도로 이주한 문규라는 인물은 말을 키운다. 유기묘나 유기견 입양하듯 퇴역마를 '반려마'삼아 입양한 것이다. 문규와 동갑인 소설 속 화자 '나'는 문규의 급격한 삶의 여정에 흥미를 보이면서도 '옹졸한 마음'이 든다. '그도 이제 자유의 대가를 치를 때가 오지 않았나....' 문규를 향한 나의 불편한 마음은 제주도에 내려가 문규와 실제로 마주한 뒤로도 계속 이어진다.
왜 '나'는 문규를 불편해 하는 것일까? 김경만의 [비트겐슈타인과 규칙 따르기]를 읽고 난 뒤 화자가 느끼는 불편함의 감정을 해석할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 '나'는 문규가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규칙 따르기'에 순응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기에 이를 불편해 하는 것이다. 명문대를 순순히 졸업해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하는 '규칙'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37쪽, 이제 앞의 논의를 정리해보면 우리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때 어떤 지침이 있다는 것은, 즉 구조를 따르는 것은, 어떤 '규칙'을 따라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규칙은 따라갈 수는 있고, 또 언제 위반했는가는 알 수 있지만, 불행히도 그 전체를 다 쓰고 셀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거나 깊은 독서를 해 볼 기회가 없었다. 교육사회학에서 배운 몇몇 지식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개념 정도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비트겐슈타인과 규칙 따르기]는 모범적인 사회학 입문서이자 개론서이다. 사회이론의 가장 중심적인 개념으로 비트겐슈타인의 '규칙 따르기'를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놓고, 수많은 예시와 사례와 친절한 해설을 따라붙여 사회학의 기본 틀을 잡게 해 준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나는 가족에, 학교 혹은 직장에, 세대 안에, 사회 속에, 한 국가에, 세계 속에 속해 있다. 우리는 타자와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상호작용을 할 때 지켜야 할, 그러나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암묵적'규칙을 사회성원이 '익혀 나가는'과정을 우리는 사회화 과정이라고 부른다.'(37쪽) 그러나 그 규칙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문규 같은 인물이 등장해 암묵적으로 지키고 있던 규칙에 균열을 내고, 응원봉을 휘두르며 규칙의 재해석과 재정립을 요구한다. 규칙이 바뀌고 세상이 달라진다. 투표권은 당연한 권리가 되고 체벌은 아동학대가 되고 결혼의 의미가, 효도의 정의가, 다시 쓰여진다.
-156쪽, 우리에게 '밖에서'주어지는 어떤 고정된, 진리라고 생각되는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규칙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고 '정상'인가는 사회구성원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재구성되고, 재협상되고, 그 결과 새로운 묘사와 규칙이 등장하는 것이다. 베티 프리단을 위시해서 여성해방운동을 주도한 사람들,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틴 루터, 그리고 아동학대의 탄생은 새로운 규칙이 어떻게 출현하고 받아들여지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들은 무엇이 옳고 그르고,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고 안 되는가에 대한 기존의 분류, 즉, 기존의 규칙 따르기를 '거부'하고, 기존의 규칙 따르기를 재해석한 사람들이다.
내가 당연하게 따르고 있는 규칙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나는 그 규칙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좋은 책은 물에 넣은 공룡알 장난감처럼 새로운 생각들을 튀어나오게 한다. 쉽게 읽혀지는 책이 있고 잘 읽히는 책이 있다. 쉽게만 읽히는 책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잘 읽히는 책은 다 읽은 뒤 어느새 내 머릿속의 일부로 스며든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