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지음, 이훤 사진 / 디플롯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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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끝내주는 인생이었어."

임종 직전 이 말을 하늘 한 점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인생이란,

가령 이슬아의 '끝내주는 인생' 행보를 따라가 본다면


성실히 노동하고(그녀는 글을 쓴다, 마감에 괴로워하며..)

꾸준히 운동하고(태권도장과 요가원을 다니고 달리기를 한다)

가까운 이를 사랑하고, 사랑의 기록을 남기고, 

고양이 탐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살처분되는 돼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고기를 먹지 않고

영어 공부를 하고 영어 선생님과 친해지고 같이 작업을 하고

군부대에서 강연하는 실수(ㅋㅋㅋ)를 하고, 기타 등등


이슬아 작가님의 글을 읽고 나면 나를 둘러싼 세상의 빛이 조금 달라지는데

그 빛은 깊은 밤 적당한 조도의 조명을 켠 책상 위 빛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세상을 조금 더 깊게 볼 수 있는 빛이다.


내 주변의 세상이 나의 인생이다.

그녀의 끝내주는 인생의 여정을 꾸준히 글로 따라잡으며 나 역시 나의 인생을 '끝내준다'는 수식어로 꾸밀 수 있기를 조금은 소망한다. 

살아남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나이 든 언니들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말하곤 한다. 하나의 고생을 지나면 또 다른 고생이 있는 삶이었다고. 그중에서도 어떤 언니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끝내주는 인생이었다고. 그 언니의 말을 들으면 너무 용기가 나서 막 웃는다.
나는 내가 고생 한복판에서도 이렇게 농담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희망한다. "오, 끝내주는데?" 임종 직전에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말이지 끝내주는 인생이었어." 그날이 죽는 날임을 미리 알아차릴 행운이 주어진다면 말이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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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밤과 화해하기 원한다 (알라딘 한정판 북커버 에디션) - 엘제 라스커 쉴러 시집
엘제 라스커 쉴러 지음, 배수아 옮김 / 아티초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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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작가님 번역이라 더 기대되는 시집 새롭게 발견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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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미쳐 있는 - 실비아 플라스에서 리베카 솔닛까지, 미국 여성 작가들과 페미니즘의 상상력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류경희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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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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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암실문고
브라이언 무어 지음, 고유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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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무조건적으로 사랑스러워야 할까?


몰입도 높은 이 소설의 주인공 주디스 헌 양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일찍 부모를 잃고 아픈 이모 병수발하다 혼기를 놓친 독신녀 헌 양은 재산도 거의 없고 외모는 못생긴, 재산도 미모도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인물이다. 


그가 가진 건 끝을 모르는 망상, 약간의 연금. 자수와 피아노를 가르치며 하숙집을 전전하는 그는 알코올 의존증을 가지고 있고, 소설 본편 속 라이스 부인의 하숙집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 알콜중독으로 급격하게 내리막을 탄다. 상대의 말을 부풀려 해석하고 쉽게 의지하다 상대가 손절하면 악한 인물로 매도하고 공격하며 집착한다. 절망 속에서 술을 마신다. 계속해서 마신다.


-393쪽, 당신에게는 남은 희망이 없어요, 모이라. 그럼 당신도 나처럼 되는 거예요. 대낮에 망상이나 하면서 그 꿈을 붙잡고 싶어 하는 거죠. 하지만 붙잡을 수 없어요. 그래서 술을 마셔요. 그 망상을 실현해주는 힘을 얻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모이라, 그 인간이 실제로는 어떤 인간이건 간에, 그는 당신에게 상냥한 말을 건네는 왕자님이 되요.


내 주변에 헌 양 같은 이가 있다면, 술을 마시고 한밤중에 집 문을 두드리며 내 얘기 좀 들어 달라 절규하는 이가 있다면 순순히 받아줄 자신은 없다. 조용히 손절하고 외면하지 않을까..


외로움,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능동적인 고독과 수동적인 외로움의 어마어마한 차이. 외로움은 형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도 독신 남성과 독신 여성의 차이를 비교하며 묘사하듯, 과거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외로움을 견디기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멀리 여행을 떠나기도 어렵고, 돈을 버는 일에도 한정적이고, 수입 자체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종착지는 수녀원이나 요양원 뿐이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책임질 방법이 없다. 그러니 술을 마시며 망상 속으로 도주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독신 여성에 대한 경고나 풍자, 조롱이 주제가 아니다. 동정하기 쉽고 받아들이긴 어려운 이 주인공은 외로움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발버둥치는 실존적인 인간이다. 배우자와 친구에게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삶을 욕망했고, 그 단순하고 평범한 욕망은 충족되지 못할 수록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망상이 비대해져만 갔다. 욕망이 좌절될수록 발버둥치고 발버둥칠수록 더 낮은 곳으로 추락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불편하다. 그리고 좋은 소설은 불편한 소설이다. 


'너는 추하고 가난하여 외롭게 살아야 한다'는 선고에 납득하지 못하고 애써 보지만 카프카적인 소송은 집행되고 주디스 헌은 병원에 갇힌다. 우리는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함부로 그의 노력을 비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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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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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시간으로 뭘 했던가?' 스스로 이렇게 묻지 않고 지나가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파스칼 메르시어, 언어의 무게, 94쪽


[리스본행 야간열차]로 유명한 파스칼 메르시어의 최신 소설의 제목은 제목부터 묵직한 [언어의 무게]. 사실 이 두 소설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언어에 예민한 주인공,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그레고리우스는 고전문헌학 교사, [언어의 무게]의 레이랜드는 번역가이자 '지중해를 둘러싼 나라의 언어를 전부 배우고 싶다'는 욕망에 충실히 살아 온 인물이다. 이들은 언어라는 종교의 성자들이다.


이 성자들과 마주한 소설 속 주변인물들은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선의를 베풀며 숭배의 감정을 느낀다.


소설의 중심 사건이자 갈등의 주 요소는 우연히 삶을 뒤바뀐 사건,


그레고리우스는 우연히 포르투갈 여성과 마주쳐 학교를 무단결근하고 헌책방에서 우연히 구한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를 읽고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충동적으로 오른다.


레이랜드는 편두통으로 쓰러졌다가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고 운영하던 출판사를 파는 등 주변 정리를 하다 오진이었음이 밝혀지면서 극적으로 삶을 되찾는다.


'나'라고 확신하던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우연한 사건들, 혼란 속에서 나를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그레고리우스와 레이랜드에겐 언어였다. 얇은 삶을 문진과 같이 지그시 누르는 언어의 무게.


[언어의 무게]가 [리스본행 야간열차]보다 심화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건 앞의 소설보다 더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되고(아마데우의 삶이 극적이고 훨씬 열정적인 부분이 있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덩달아 뜨거워지는 경향이 있다), 그레고리우스는 고전 언어의 해석자로 남았으나 레이랜드는 소설 끝에 가서 자신만의 소설을 쓰는 것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시간으로 뭘 했던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언어를 사용해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경건해지는 마음.


그리고 한창 이 소설을 읽는 동안 파스칼 메르시어, 본명 피터 비에리로 철학자이자 작가분이 6월 말 타계하셨다는 뉴스를 접했다. 신작 소설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선생님, 귀국을 환영합니다."


내가 나였던 게 얼마나 오래전인지 떠올려 보면 정말 기이해. 내가 여전히 그때의 나라는 사실도 무척 놀라워. 나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서 오늘날의 나까지 왔다는 것도 깊은 놀라움을 불러일으키지. 내가 당시에 내 스스로에게 있다고 느끼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니면 결국은 전혀 그렇지 않았나? 그 어디에도 있다고 느끼지 못하면서 세상을 지나온 건가? 말하자면 내 안의 중간 틈새에 있으면서, 어딘가에는 존재해야 하니 나 자신에게 있다고 부정확하게 착각한 걸까? 혹시 언제나 이런 건가? 자기 안에서 그저 중간 틈새에만 살 뿐 자기 자신에게는 결코 도달하지 않고, 그저 그 틈새에서 커지기만 하는 걸까?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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