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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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첫 책이다. 글이 참 예쁘다. 담긴 생각도 곱다. 지은이는 성찰적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자신의 경험, 가족, 유년의 추억에서 쓸만하고 아름다운 실을 뽑아낸다. 하루하루 일기를 적는 일조차 버겁고, 일상에서 무엇을 하나 깨닫는 일이 어려운 나에게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지은이의 삶의 농도는 나보다 훨씬 짙은 것 같다. 늘상 하는 다짐이지만, 새해에는 좀 더 두터운 삶을 살고 싶다.

사람은 저마다 개별적인 존재이다. 모든 환경과 경험도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 비슷한 경험은 있지만 똑같은 경험은 없다. 그러므로 나도 너와 똑같이 경험해봤다는 말이나 한 발 더 나아가 해봐서 안다는 말은 매우 신중히 해야 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 많은 인생을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시련에 혹독하거나 냉정하기 쉽다. 경험이 누군가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고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 준다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이지 타인의 삶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첫마디는 ‘나는 너를 모른다’여야 할 것이다. - P46

사람도 그렇고 사물도 그렇고 작품도 그렇고 좋고 빼어난 것은 흔하지 않다. 신인의 것이든 기성의 것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원고지 백 장, 천 장을 채운다는 건 도깨비 방망이로 금 만들 듯 맘만 먹으면 뚝딱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천 장을 쓰고 버려야 백 장의 소설이 나오고, 만 장을 쓰고 버려야 헌 장의 소설이 나오는 건,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은 누구나 아는 법칙이다. 그 시간과 노력에 헌신한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그 예의는 단 하나, 그들의 수고가 담긴 작품을 끝까지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P48

그러다 서른 살이 되었다.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서른 살은 온다’ 했는데, 나는 조금 반대였다. 서른 살이 되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일만 생겼다. - P63

되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모든 자리는 무모하게라도 시도했을 때 한 걸음이나마 앞으로 나아갔다. 염려하고 망설이고 현실과 타협하면서 이루고 성취한 일은 없었다. - P71

어쩌면 행복이란 즐겁고 만족 가득한 상태, 그 자체를 말하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정지되고 멈춰있는 어떤 순간이 아니라 생의 움직임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낙천적이고, 그리하여 생의 곳곳에서 행복을 찾는 이들과 틈만 나면 삶의 비의를 찾는 이들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움직임에 있는 것 같다. - P90

아니다 싶을 때 과감히 돌아서는 용기도 중요하지만, 아니다 자신 없을 때는 한 발 더 내디뎌보는 용기도 필요할 것이다. 삶의 소망은 문을 열었다고 해서 이룬 것이 아니라 그 문을 연 이후에 또 한참을 더 가야 하는 법. 어찌 방향을 바꾸는 것만 터닝 포인트일까. 한 단계 깊어지는 것은 변화가 아닌가. 삶이 제자리뛰기라고 투덜거리지 말자. 잘만 뛰면 제자리에서 뛰어도 한 계단 위니까. - P97

그래도 한 가지는 배웠다. 순간의 경험이, 체험이 삶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 지나가는 자는 머무는 자의 고충을, 행복을 절대 알 수 없다는 것. 안다는 말은, 알겠다는 말은 매우 오만하고 경솔한 말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농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아니, 농사 흉내를 그만두기로 했다는 말이 맞겠다. 땅을 대한다는 건, 삶을 이해한다는 건, 폼으로 낭만으로 자랑삼아 될 일이 아니었다. - P148

자식 키우는 일이 농사와 아무리 비슷해도 다른 건 다르다. 밭이야 내가 들인 노고만큼 내 것이지만 아이는 내가 들인 노고가 얼마든 내 것이 아니다. 밭에서는 내가 심은 열매가 나지만, 아이는 저 홀로 심은 꿈으로 열매를 맺는다. 그런 마음으로 보면 안 자란 열매도 없고, 잘못 자란 열매도 없다. 우리가 들여야 할 정성은 밭을 향한 것이지 열매를 향해서는 안 될 일. 그러니 밭만 가꾸어주고 열매는 간섭하지 말자 수시로 다짐하는데, 사춘기 농사가 여름 농사라 그런지 마음속 천불 다스리기가 쉽지는 않다. - P150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말하고 싶어하면서 네가 누구인지도 내가 규정하고 싶어하는 이기심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 P153

가족은 지겹고 무겁지만, 그 하중으로 나를 지그시 눌러주는 어떤 안온함도 있는 것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많은 일들이 가족이기 때문에 견뎌지기도 하는 것이다. 증오와 애정 사이의 연민과 이해의 공동 운명체, 가족이란 건 결국 그런 게 아닐까. - P189

희망이 외려 아픈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꿈은 꾸는 자의 몫이 아니라 컨트롤하는 자의 몫이라는 생각을 한다. 성장에도 통이 있고, 씨앗도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발아열을 견뎌야 한다. 마라토너들은 달리다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사점死點과 만나게 된다고 한다. 그 사점을 통과하고 나면 다음은 비교적 쉽게 달리게 된단다. 아프고 괴롭고 불안하고 막막한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도망치지 마라. 원래 희망은 아프다. 그래서 꽃이 피는 것이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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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논쟁(?)의 중심에 있던 그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어떤 이야기가 풀어질지 너무 분명해서 불편했고, 내가 거기에 취할 입장이 어떤 것일지 불안하기도 해서였다. 그 책이 영화화됐다고 아내가 보러 가자고 했지만, 호기롭게 그러마고 대답하지 못했던 이유다. 하지만, 막상 보고 나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영화였다.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질 만큼 공감했다. 연기자들의 연기도 하나같이 훌륭했다. 어디서 이런 배우들을 데려다 놨는지 놀라웠다. 물론, 이야기가 너무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워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영화 속에서 김지영이 하는 집안일들의 대부분을 내가 하고 있기 때문에 아내에게는 내가 바로 김지영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집안일의 분장이 김지영이 겪고 있는 고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된다등등의 말은 자주 들어왔던 말이다. 공공화장실에서의 불안 등 갖가지 형태의 불안도 모두 현실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불안과 차별이 얼마나 많을 것이고, 그런 크고 작은 차별들이 행동과 사고를 얼마나 제약할지 생각하면 정말 슬픈 일이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결혼의 문제, 육아의 문제도 엄연한 현실이다. 육아 때문에 희생되는 여성의 삶, 딸만큼은 자기처럼 살게 하지 않으려고 딸들의 어머니들이 짊어지는 육아의 고통, 개인의 삶에 너그럽지 않은 회사, 육아휴직을 내지도 안 내지도 못하는 남자들의 고민 등. 어디 하나 가짜가 없다. 82년생 김지영의 세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허상이 아니다. 우리 세대라면 남자든, 여자든 충분히 공감할만한, 그리고 공유하고 있는 세계다.

 

  하지만 이 영화가 논란이 되고, 별점 테러를 당하는 것을 보면, 00년생 김철수가 82년생 김지영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들에게는 분명 이와는 다른 고민과 고통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00년생 김철수의 세상과 82년생 김지영의 세계를 비교하여 누구의 고통이 더 무거운지 비교할 이유는 없다. 왜 우리는 내 고통이 더 크므로 네 고통은 별게 아니라고 꽥꽥 소리를 지를 만큼 각박해졌을까. 82년생 김지영의 세계를 개선해야 00년생의 세계가 행복해진다. 그 세계는 이 세계의 연장이므로. 누가 불행해지는 만큼 내 이웃이, 내 가족이 아픈 것이므로. 00년생 김철수의 고통은 다른 무대에서 심도 있게 다뤄져야 한다. 82년생 김지영의 무대에 난입해서 주장할 이유는 없다.

 

  아직 책은 읽지 못했지만, 영화가 책보다는 부드럽게 다뤄졌다고 한다. 일단 남편의 모습이 공유로 형상화 되어 현실성을 많이 잃기도 했고. ㅎㅎ 사실 내가 가장 마음이 쓰이는 인물은 지영이 아버지였다. 그라고 딸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차별할 마음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자기가 경험한 지식과 경험 때문에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준다. 우리는 오랜 세월 그렇게 자라왔다. 그 결과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하지만 이제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았으면 바뀌어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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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 - 개정증보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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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문유석 판사가 법관 게시판이나 법원회보등에 올렸던 글을 모은 책이다. 그래서인지 개인주의자 선언과 같이 정돈된 느낌은 없다. 하지만 글쓴이에 대한 팬이라면 한 번쯤 찾을 법한 책이다.

 

 

  회사의 직원 게시판에 누군가가 글을 줄곧 올리면 이 친구 할 일이 없나?’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성 들여, 또 재미있게, 여러 번 올렸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 게다가 실명으로! 아마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닐까 싶다. 어쩌면 글쓴이의 평상시의 태도나 글에 담긴 위트가 동료들의 질시로부터 지켜준 것도 같다.

 

 

  언제 읽든 글쓴이의 글은 늘 유쾌하고 공감이 간다. 이 책에서도 법원 조직, 더 나아가 공무원 조직의 생리에 대해 분석하고,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려는 글이 참 좋았다. 그리고 판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화들을 소개한 꼭지도 재미있었다. 9쪽과 25쪽에 밑줄 그은 문장은 당분간 내 삶의 죽비소리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책으로서의 짜임새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Anyone can be cynical.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가나 할 수 있어.
Dare to be an optimist.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구. - P9

법복을 벗으면 저는 그냥 삼십대 초반의 젊은이일 뿐이었습니다. 저라는 개인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 남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신해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라는 직책을 맡았기에 그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 P25

야근이 생활화된 파산부에서 일하다보면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도 돌려막기를 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돌려서,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할 시간을 돌려서, 아름다운 음악과 책을 즐길 시간을 돌려서, 그저 몰려드는 일을 막아내는 데 쓰며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일만 하다보면 어느새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서 하고 있는지를 잊기 쉽습니다. 그게 진짜 중요한 것인데 말입니다. - P50

결국 사람들은 자기 수입의 범위 내에서 근검절약하던 미덕을 촌스러운 시대착오적 행동으로 치부하게 되고, 실현 가능성 없는 미래의 수입을 당겨쓰기 시작합니다. (중략) 유감스럽게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전장은 게임의 규칙을 지배하는 극소수의 승자들이 독식하는 피비린내 나는 곳입니다. 감히 어리바리한 양민들이 들어와 푼돈이라도 건져 살아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 P104

소크라테스는 무지를 자각하게 하기 위해 평생을 가르쳤는데, 한국의 인터넷상에는 한국 경제의 모순구조, 국제사회의 역학관계, 한국 근현대사의 진실, 국제 과학계의 파워게임과 음모 등을 훤하게 꿰뚫는 현자, 예언자들이 득시글거립니다. - P148

그런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시스템의 차이, 학문 풍토의 차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차이는 이곳(미국학교)에서는 ‘정성’, ‘성실’ 같은 평범해 보이는 가치를 우리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당연한 문화. 교수들도, 학사 행정을 담당하는 직원들도, 도서관의 사서들도,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들도 다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 것 같습니다. 밥벌이하려고 마지못해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 P172

다른 것이 있다면 각자의 일에 대한 존중인 것 같습니다. 자기 일을 소중히 여기기에 남의 일도 존중합니다. 그 일에 관한 한 그 사람의 권한과 판단을 존중해줍니다. 아무리 바빠도 민원 창구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창구에 자기 서류를 들이밀며 빨리 처리해달라고 빽빽 소리 지르는 경우는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일 미터 뒤에서 묵묵히 기다리다가 다음 사람 오라는 허락이 떨어져야 앞으로 갑니다. 은행에 가도, 슈퍼 계산대에서도, 지하철 매표소에서도 손님은 왕이 아닙니다. 일하는 사람이 왕입니다. 일하는 사람이 기다리라면 기다려야 하고, 안 된다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런 문화가 어느 일을 하든지 자기 일과 자기 권한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게 하는 것 같습니다. - P173

당장에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암울해 보일 때도 있지만 장기적인 눈으로 보면 우리나라같이 모든 분야에서 대단히 발전하고 있는 기적 같은 나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P186

또 설령 자기 결론이 틀렸다고 비판받더라도 그건 그 결론이 틀렸다는 것이지 나라는 존재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니 자기 방어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없습니다.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봐서 수긍이 가면 바로 쿨하게 시인하고 결론을 바로 수정하면 되지요. - P219

문제는 재판이라는 사법 서비스의 수요자는 재판 당사자, 즉 국민인데 얼마나 열심히 좋은 재판을 해서 당사자가 만족했는지는 쉽게 비교 가능한 수치로 환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건처리 수 통계, 판결문의 길이와 형식 등 법원 내부에서 평가받기 쉬운 양적인 측면에만 경쟁이 집중되기 쉽다는 것이죠. - P250

그래서 합격-불합격Pass/Fail식의 절대평가 방식 업무평가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국민, 당사자에게 피해를 주는 수준의 허용 불가능한 나태함은 당연히 엄격하게 평가해 페널티를 주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에는 차이를 줄이고 다양한 재능을 인정하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 P286

게다가 인간에겐 인정 욕구라는 엄청나게 강렬한 욕구가 있기 마련이고, 피라미드식 행정조직은 더더욱 그것으로 돌아가기 마련. 어느새 애초에 왜 이 일을 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성찰은 사라지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잘해내서 ‘아주 칭찬해~’, ‘수고 많았어~’라는 당근을 베어 물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 그러다보면 아주 괜찮은 판사라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 정도까지는 괜찮아’, ‘이게 다 사법부를 위한 일인데 누군가는 궂은일도 해야지’ 등등 다양한 자기합리화 기제가 발동되면서 선을 넘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 P298

사실 저는 다른 월급쟁이들처럼 적당히 나쁜 짓 할 때도 있고, 게으름도 피우고, 불평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지독한 이기주의자에 개인주의자라서 멸사봉공할 뜻도 없고 제 자유와 행복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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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말 - 소박한 개인주의자의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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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마흔에 등단했을까? 그보다 젊은 나는 해가 갈수록 꿈이란 꿈은 다 사그라드는 것 같 같은 말이다. 그런 스토리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박완서의 글이 참 좋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전집도 오래전에 집에다 모셔놨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연애할 때도 「카메라와 워커」라는 박완서의 단편을 감명 깊게 읽고, 그 감동에 대해 맥주 몇 잔을 비우며 신나게 얘기했더랬다. 다행히 와이프도 박완서의 팬이기도 했고


시인 고정희의 평가대로, 박완서의 글은 편안한가 하면 날카롭고 까다로운가 하면 따뜻하며 평범한가 하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이 책은 박완서가 생전에 남긴 인터뷰 몇 개를 모은 것으로, 대부분 여성지나 문학 잡지에 실렸던 것들이다. 문학적인 질문도 있지만, 개인사나 일상에 대한 질문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특히, 어떻게 가톨릭 신자가 되었는지 등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생각이 비슷해서 관심 깊게 읽었다.


편안한가 하면 날카롭고 까다로운가 하면 따뜻하며 평범한가 하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작가가 박완서다. (고정희의 박완서에 대한 평가 중에서) _ 18

박완서의 열혈팬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지만, 인터뷰집의 특성상 질문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흥미나 피로도가 확 차이가 난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을 물어봐 주지 않으면, 또는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물어보면 정말 피곤해진다. 차라리 작가와 직접 얘기하거나 작가의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 실린 어떤 대담은 좋았고, 어떤 인터뷰는 정말 별로였다. 특히, 몇 달 새 남편과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작가에게 혈육의 죽음을 통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인생관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묻는 건 너무 심했다. 이 외에도 질문자의 편견이나 한계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아쉬움은 조만간 박완서의 소설을 찾아서 읽는 것으로 대신해야겠다.


그래도 꾸준히 책을 샀고 꾸준히 읽었어요. 그보다 더 젊었던 때도 그랬어요. 6.25 때는 이북 쪽으로 잠깐 피난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들고 간 책이 없어서 우리가 묵는 방에 도배된 낡은 신문지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죠. 나중엔 짐 보따리를 놓고 올라가 천장에 도배된 신문까지 다 읽었어요.” _ 123

편안한가 하면 날카롭고 까다로운가 하면 따뜻하며 평범한가 하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작가가 박완서다. (고정희의 박완서에 대한 평가 중에서) - P18

사태를 깨달은 할아버지께서 어머니더러 "네가 공부공부 안 해도 걔는 벌써 <천자문> 떼고 <동몽선습> 배우는 중이다"라고 점잖게 나무라시자 "그게 어디 공부하는 겁니까? 재롱 보시는 거죠. 전 걔도 공부를 시키고 싶어요"하고 어머니가 말대답을 해서 집안이 발칵 뒤집혔어요. - P41

날 자꾸 페미니즘 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은데……억지로 무슨 주의를 붙이자면 난 그냥 자유민주주의자예요. 개인주의자구, 그냥 소박한 민주주의 개념 있잖습니까? 자기가 이 사회에 필요한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면 항상 떳떳할 필요가 있고, 자기 일을 남에게 존중받고 싶고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것만큼 남에게 대접하는 게 옳고, 남에게 당하기 싫으면 남한테 그러지 않는다든가 하는 아주 기본적인 개념 있잖아요. 평등 개념이라고 할까.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거지만. - P89

어떻게 보면 난 좋은 의미의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해요. 내가 중하니까 남도 중한 거지, 전체를 위해서 나 개인을 희생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런 소박한 민주주의 개념이 남자와 여자 사이라고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정도의 생각밖에 전 없습니다. 여자도 그런 기본적인 인간 대우를 받아야 하고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 이거지 어떤 굉장한 이론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사회가 싫은 거죠. 남자가 여자를 억압하는 사회도 싫고, 여자가 남자를 억압하는 사회도 싫어요. - P89

사람은 서로 매여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또 그 반대로 자기가 굉장히 증오하던 사람이 없어졌을 때도 허전하고 그렇죠. 인간이란 게 그렇게 복잡한 거고. 그러니까 인간에게만 문학이 있는 거 아니에요? 다른 동물에게는 이중성, 삼중성이 없으니까. - P98

교회에서 설하는 기독교하고 내가 이해한 기독교하고 맞지 않아서 회의를 하거나 싫은 적도 있고, 또 안 나가면 가톨릭에서는 고백성사를 봐야 하는데 고백성사를 안 봐도 내 나름대로 가책을 안 받는다든가 하는 것도 있고, 그것은 내가 이해한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편안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며칠 전에 피천득 선생하고 점심을 했는데, 그분도 가톨릭 영세를 받으셨다고 해서 "어떻게 하셨어요?" 하니까 아름다워서 했다고 하셨는데 그게 되레 좋더라고요. 아름다워서 사랑하는 게 당연하다는 거죠. 어떤 여자를 사랑하는데 그 여자가 아름다워서 사랑했다는 게 맞지 그 여자가 진리이기 때문에 사랑한 건 아니잖아요. 내가 어떻게 편안한지 모르겠어요. 너무 억압하는 건 진리가 아닌 것 같애요. 사실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나니‘ 그러면서도 진리의 이름으로 억압하는 게 너무 많거든요. - P116

그래도 꾸준히 책을 샀고 꾸준히 읽었어요. 그보다 더 젊었던 때도 그랬어요. 6.25 때는 이북 쪽으로 잠깐 피난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들고 간 책이 없어서 우리가 묵는 방에 도배된 낡은 신문지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죠. 나중엔 짐 보따리를 놓고 올라가 천장에 도배된 신문까지 다 읽었어요." - P123

우리 부부도 서로 리듬이 달라서 서로 구박을 했는데, 그래도 지내고 보면 그게 좋았어요. 제 몸 같은 건 역시 남편뿐이에요. - P140

1년에 몇 차례 나가요. 자주는 못 가지만 가톨릭이란 종교를 좋아해요. 특별히 어떤 종교의 테두리에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심성은 가톨릭에 가까워요. 그래서 가끔 아내와 함께 성당에 나가곤 해요. (피천득의 말 중에서) - P178

저도 가톨릭이 좋은데 고해성사는 참 싫어요. 아무리 하기 싫어도 1년에 두 차례 부활절과 성탄절에는 해야 하잖아요? 한번은 동화 쓰시는 정채봉 씨에게 말했어요. 나는 고해성사 때문에 언젠가 가톨릭에 대해 냉담해지고 말 것이라구요. 그게 왜 의무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억지로 만들어갖고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말해야 하나요? 정채봉 씨에게 그런 말을 막 했더니, 웃으면서 피천득 선생님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선생님께서는 성당에서 나눠준 성사표(부활절과 성탄절에 고해성사를 하고 나서 확인받는 표)를 그냥 통 속에 집어넣어버린다면서요? 한번은 그러시다가 신부님께 들키기까지 하셨다면서요? (박완서) - P180

뭐, 들켰다기보다…..난 말할 게 없으니까. 물론 따져보면 나도 죄가 있겠죠.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다 아실 텐데 한 다리 걸쳐서 그럴 필요가 있어요? 하느님이 다 아실 것 아녜요? (피천득) - P180

선생님께 신부님이 그러셨다면서요?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도 죄가 된다구요. 정채봉 씨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아, 그것도 맞겠다‘ 했어요.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도 죄가 되겠구나 했어요. (박완서) - P180

선생님의 늙음은 기려도 좋을 만한 늙음으로 여겨지니 신기해요. 저도 역시 같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참을 수 없는 게 추하게 늙어가는 정정한 노인들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확실해지는 아집, 독선, 물질과 허명과 정력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집착 같은 것을 보면 차라리 치매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늙음을 추잡하게 만들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로부터 훌쩍 벗어나 있는 선생님을 뵈면 연세와 상관없이 소년처럼 천진난만해보여요. 그렇게 벗어나는 일이 어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요. 늙음조차도 어떻게 늙느냐에 따라 뒤에 오는 사람에게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과 희망을 주는 것 같아요. (박완서이 피천득에게하는 말 중에서) - P182

어느 추모 시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부재 속에서도 존재한다"라는 구절을 읽었어요.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이 세상에, 그리고 내 곁에 없는 사람들을 우리는 평소에 많이 생각하잖아요? 제 경우도이미 없는 이에 대한 생각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부재하지만 제 생각 속에서는 공존하고 있는 것이죠.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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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하면 자신의 본성을 드러낸다. 아무 잘못 없는 나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것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난데없이 집을 잃고,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한 가족이 겪게 되는 이야기인데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았다. 아이가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겪을 외로움과 부끄러움에 마음이 아팠지만, 특히 자신과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어머니가 느꼈을 어려움과 막막함이 새삼 느껴져 코끝이 찡해졌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을수록 감동의 포인트가 달라지는 것 같다.

 

  결국은, 환경을 이겨내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흔들릴 수 있지만, 최종적인 선택은 내가 해야 한다. 하루하루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고난 속에서 판단이 흔들리지 않는 지혜를 가질 수 있기를……. 좋은 책은 신문의 서평란이나 서점의 매대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직장동료가 휴가 때 한번 읽어보라며 권해서 읽게 되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아이들에게도 좋지만, 어른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 좋은 책은 항상 그렇듯이.

저 낡아빠진 자전거 한 대만 가지고도 저렇게 행복해할 수 있다는 게 상상이 되니?" - P210

나는 모퉁이를 돌아 고속도로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막 길을 벗어나기 직전, 자신도 모르게 내 발밑을 흘깃 내려다보았다. 길가에 쌓인 모래 위로 자박자박 내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무키 아저씨와 아저씨의 신조가 떠올랐다. 살면서 뒤에 남겨놓은 자취가 앞에 놓인 길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말.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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