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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말 - 소박한 개인주의자의 인터뷰 ㅣ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8년 7월
평점 :
어떻게 마흔에
등단했을까? 그보다 젊은 나는 해가 갈수록 꿈이란 꿈은 다 사그라드는 것 같 같은 말이다. 그런 스토리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박완서의 글이 참 좋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전집도 오래전에 집에다 모셔놨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연애할 때도 「카메라와 워커」라는 박완서의
단편을 감명 깊게 읽고, 그 감동에 대해 맥주 몇 잔을 비우며 신나게 얘기했더랬다. 다행히 와이프도 박완서의 팬이기도 했고.
시인 고정희의 평가대로, 박완서의 글은 ‘편안한가 하면 날카롭고 까다로운가 하면 따뜻하며
평범한가 하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이 책은 박완서가 생전에 남긴 인터뷰 몇 개를
모은 것으로, 대부분 여성지나 문학 잡지에 실렸던 것들이다. 문학적인
질문도 있지만, 개인사나 일상에 대한 질문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특히, 어떻게 가톨릭 신자가 되었는지 등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생각이 비슷해서 관심 깊게 읽었다.
편안한가 하면 날카롭고 까다로운가 하면 따뜻하며 평범한가 하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작가가 박완서다. (고정희의 박완서에 대한 평가 중에서) _ 18쪽
박완서의 열혈팬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지만, 인터뷰집의 특성상 질문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흥미나 피로도가 확 차이가 난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을 물어봐 주지 않으면, 또는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물어보면 정말 피곤해진다. 차라리 작가와 직접 얘기하거나 작가의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 실린 어떤 대담은 좋았고, 어떤
인터뷰는 정말 별로였다. 특히, 몇 달 새 남편과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작가에게 ‘혈육의 죽음을 통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인생관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묻는
건 너무 심했다. 이 외에도 질문자의 편견이나 한계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아쉬움은 조만간 박완서의 소설을 찾아서 읽는 것으로 대신해야겠다.
그래도 꾸준히 책을 샀고 꾸준히 읽었어요. 그보다 더 젊었던 때도
그랬어요. 6.25 때는 이북 쪽으로 잠깐 피난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들고 간 책이 없어서 우리가
묵는 방에 도배된 낡은 신문지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죠. 나중엔 짐 보따리를 놓고 올라가 천장에 도배된
신문까지 다 읽었어요.” _ 123쪽
편안한가 하면 날카롭고 까다로운가 하면 따뜻하며 평범한가 하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작가가 박완서다. (고정희의 박완서에 대한 평가 중에서) - P18
사태를 깨달은 할아버지께서 어머니더러 "네가 공부공부 안 해도 걔는 벌써 <천자문> 떼고 <동몽선습> 배우는 중이다"라고 점잖게 나무라시자 "그게 어디 공부하는 겁니까? 재롱 보시는 거죠. 전 걔도 공부를 시키고 싶어요"하고 어머니가 말대답을 해서 집안이 발칵 뒤집혔어요. - P41
날 자꾸 페미니즘 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은데……억지로 무슨 주의를 붙이자면 난 그냥 자유민주주의자예요. 개인주의자구, 그냥 소박한 민주주의 개념 있잖습니까? 자기가 이 사회에 필요한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면 항상 떳떳할 필요가 있고, 자기 일을 남에게 존중받고 싶고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것만큼 남에게 대접하는 게 옳고, 남에게 당하기 싫으면 남한테 그러지 않는다든가 하는 아주 기본적인 개념 있잖아요. 평등 개념이라고 할까.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거지만. - P89
어떻게 보면 난 좋은 의미의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해요. 내가 중하니까 남도 중한 거지, 전체를 위해서 나 개인을 희생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런 소박한 민주주의 개념이 남자와 여자 사이라고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정도의 생각밖에 전 없습니다. 여자도 그런 기본적인 인간 대우를 받아야 하고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 이거지 어떤 굉장한 이론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사회가 싫은 거죠. 남자가 여자를 억압하는 사회도 싫고, 여자가 남자를 억압하는 사회도 싫어요. - P89
사람은 서로 매여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또 그 반대로 자기가 굉장히 증오하던 사람이 없어졌을 때도 허전하고 그렇죠. 인간이란 게 그렇게 복잡한 거고. 그러니까 인간에게만 문학이 있는 거 아니에요? 다른 동물에게는 이중성, 삼중성이 없으니까. - P98
교회에서 설하는 기독교하고 내가 이해한 기독교하고 맞지 않아서 회의를 하거나 싫은 적도 있고, 또 안 나가면 가톨릭에서는 고백성사를 봐야 하는데 고백성사를 안 봐도 내 나름대로 가책을 안 받는다든가 하는 것도 있고, 그것은 내가 이해한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편안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며칠 전에 피천득 선생하고 점심을 했는데, 그분도 가톨릭 영세를 받으셨다고 해서 "어떻게 하셨어요?" 하니까 아름다워서 했다고 하셨는데 그게 되레 좋더라고요. 아름다워서 사랑하는 게 당연하다는 거죠. 어떤 여자를 사랑하는데 그 여자가 아름다워서 사랑했다는 게 맞지 그 여자가 진리이기 때문에 사랑한 건 아니잖아요. 내가 어떻게 편안한지 모르겠어요. 너무 억압하는 건 진리가 아닌 것 같애요. 사실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나니‘ 그러면서도 진리의 이름으로 억압하는 게 너무 많거든요. - P116
그래도 꾸준히 책을 샀고 꾸준히 읽었어요. 그보다 더 젊었던 때도 그랬어요. 6.25 때는 이북 쪽으로 잠깐 피난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들고 간 책이 없어서 우리가 묵는 방에 도배된 낡은 신문지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죠. 나중엔 짐 보따리를 놓고 올라가 천장에 도배된 신문까지 다 읽었어요." - P123
우리 부부도 서로 리듬이 달라서 서로 구박을 했는데, 그래도 지내고 보면 그게 좋았어요. 제 몸 같은 건 역시 남편뿐이에요. - P140
1년에 몇 차례 나가요. 자주는 못 가지만 가톨릭이란 종교를 좋아해요. 특별히 어떤 종교의 테두리에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심성은 가톨릭에 가까워요. 그래서 가끔 아내와 함께 성당에 나가곤 해요. (피천득의 말 중에서) - P178
저도 가톨릭이 좋은데 고해성사는 참 싫어요. 아무리 하기 싫어도 1년에 두 차례 부활절과 성탄절에는 해야 하잖아요? 한번은 동화 쓰시는 정채봉 씨에게 말했어요. 나는 고해성사 때문에 언젠가 가톨릭에 대해 냉담해지고 말 것이라구요. 그게 왜 의무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억지로 만들어갖고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말해야 하나요? 정채봉 씨에게 그런 말을 막 했더니, 웃으면서 피천득 선생님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선생님께서는 성당에서 나눠준 성사표(부활절과 성탄절에 고해성사를 하고 나서 확인받는 표)를 그냥 통 속에 집어넣어버린다면서요? 한번은 그러시다가 신부님께 들키기까지 하셨다면서요? (박완서) - P180
뭐, 들켰다기보다…..난 말할 게 없으니까. 물론 따져보면 나도 죄가 있겠죠.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다 아실 텐데 한 다리 걸쳐서 그럴 필요가 있어요? 하느님이 다 아실 것 아녜요? (피천득) - P180
선생님께 신부님이 그러셨다면서요?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도 죄가 된다구요. 정채봉 씨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아, 그것도 맞겠다‘ 했어요.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도 죄가 되겠구나 했어요. (박완서) - P180
선생님의 늙음은 기려도 좋을 만한 늙음으로 여겨지니 신기해요. 저도 역시 같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참을 수 없는 게 추하게 늙어가는 정정한 노인들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확실해지는 아집, 독선, 물질과 허명과 정력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집착 같은 것을 보면 차라리 치매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늙음을 추잡하게 만들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로부터 훌쩍 벗어나 있는 선생님을 뵈면 연세와 상관없이 소년처럼 천진난만해보여요. 그렇게 벗어나는 일이 어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요. 늙음조차도 어떻게 늙느냐에 따라 뒤에 오는 사람에게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과 희망을 주는 것 같아요. (박완서이 피천득에게하는 말 중에서) - P182
어느 추모 시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부재 속에서도 존재한다"라는 구절을 읽었어요.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이 세상에, 그리고 내 곁에 없는 사람들을 우리는 평소에 많이 생각하잖아요? 제 경우도이미 없는 이에 대한 생각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부재하지만 제 생각 속에서는 공존하고 있는 것이죠.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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