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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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통일적인 규칙을 발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일상의 무게를 견디면서도 예술가로서 업적을 쌓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습관말이다. 어느 정도의 공통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읽을수록 그런 건 전혀 없었다. 누군가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쓰라고 했고, 어떤 이는 시간에 맞춰 억지로 쓰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일관된 법칙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허무하다.

 

  지은이는 여러 인터뷰와 기록들을 뒤져 여성 예술가들의 습관이나 일상과 관련된 부분을 추렸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그 수집능력과 성과는 분명 인정해야 옳다. 하지만 몇몇 인물들에 집중해서 그들의 습관과 루틴을 파고들었다면, 뭔가 더 가치 있는 결론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몇몇 꼭지는 그저 가십에 불과한 정도의 정보도 있고, 이것이 예술하는 습관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되는 이야기도 많았다. 산만하고 어지럽다. 어디서 손절매하고 읽기를 중단해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많았다. 오탈자도 눈에 띄었다. (27, 88, 264)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일까,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의 얼굴을 바꿔놓듯이 습관은 인생의 얼굴을 점차적으로 바꿔놓는다. (버지니아 울프) - P7

자신에게 양분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본능적인 리듬과 일정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도리스 레싱) - P31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서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동요하지 않고 일하는 것이다. 둘째는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고, 셋째는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활동을 할당하는 하루 일정을 정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사전에 계획해두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예기치 못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두어야 한다. (엘리너 루스벨트) - P69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올바른 상태가 되는 게 어렵다." (매기 햄블링) - P77

"삶이란 에너지 수준의 문제" - P91

"내가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는 건 인정해야겠지.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이유를 아신다." (캐서린 맨스필드) - P101

"주기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요하지 않고 듣는 거죠. 작업이 전혀 진척되지 않을 때는 견디기 힘들어도 기다려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보는 거죠.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면 내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또 한 번 격하게 몰입해서 작업을 할 수 있다면 말이죠." (리 크래스너) - P132

"남편은 글과 싸우죠. 남편에게는 글쓰기가 일이에요. 적어도 남편은 그렇게 부르죠. 하지만 저한테는 글쓰기가 휴식이에요. 제가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니까요." (셜리 잭슨) - P163

"일정을 세워놓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고 하죠. 무엇이든 ‘써야’ 한다고요. 하지만 그렇게 앉아서 의무처럼 ‘글을 쓴다니’ 그건 지독하게 어리석은 짓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그런 집필 습관을 크게 찬사하죠. 그래야 작가가 그렇게 불안정한 인간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로레인 한스베리) - P225

"많은 예술가들과 지성인, 소위 출세가도를 달린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그중 몇몇은 행복하다고 허세를 떨었지만 그 이면을 꿰뚫어보면 별다를 것 없는 불안과 고통을 찾아볼 수 있다." (이사도라 덩컨) - P235

"인간이 만든 시계의 시간을 엄격히 따르지는 않는다. 난 그렇게 기능하지 않는다." (르네 콕스) - P277

이런 말을 하기는 아주 쉽죠. "음, 오늘 일진이 나빠. 아이들은 말을 잘 안 듣고, 부엌은 문질러 닦아야 하고. 하지만 내일은 더 나을지도 몰라." 다음 주나 아이들이 좀 더 크고 나면 더 나을 거야라고 자신을 다독일지도 모르죠. 그러다가 결국에는 자기개발에 손을 놓고 말아요. 방해를 받더라도 자신이 하는 일을 놓지 않으면 저 이면에서 아이디어를 키워나갈 수 있죠. 사실은 그게 훨씬 더 빨리 성숙해지는 길이에요. 조각할 시간은 적어질지 몰라도 항상 조각을 했던 것처럼 그와 똑같은 비율로 성숙해질 수 있죠. (바버라 햅워스) - P301

"일정을 융통성 있게 짜두는 거예요. 패턴이 있으면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맞춰 넣을 수 있죠. 하지만 패턴이 너무 많으면 이도 저도 못 하게 되요." (안드레아 지텔)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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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풀꽃도 꽃이다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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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도 그랬지만 2권까지 읽다 보면, 정말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일종의 팸플릿이라는 생각이 든다. 등장인물들은 불현듯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각자 맡은 역할만 충실히 수행하고, 퇴장한다. 그 이후의 행적은 알 수도 없고. 이러니 인물들에 애착을 두거나 집중할 여지가 없다. 결국, 성적 중심, 암기 중심의 교육을 벗어나 자기 주도적, 자율적인 교육체계를 만들자는 지은이의 주장만 남을 뿐이다. 아무리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옳아도, 그것이 곧바로 좋은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초고 단계에서 사건과 개요를 엮어놓은 것을 그대로 출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로 실망스럽다.

 

  책의 말미에 대안학교와 혁신학교를 찬탄하고 있는데, 정말 그 학교들은 무조건 좋기만 할지, 모든 아이가 대안학교를 갈 수 있는지,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화하면 문제가 해결될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진보 교육감의 당선 혁신학교의 전국화 교육제도의 전면개혁이라는 도식은 너무 순진하게 느껴진다.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가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거니와 소위 교육개혁을 요구하는 세력의 안에서도 그 방식을 둘러싸고 의견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시 확대를 둘러싼 복잡한 논쟁을 보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바꾸느냐의 문제가 간단한 것 같지는 않다. ‘아이를 부모의 소유로 보지 말자는 관점의 전환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이 책은 소설적으로도 고민의 숙성 차원에서도 충분치 않게 느껴진다.

 

부모와 잦식은 절대 변할 수 없는 한 핏줄이되, 그 생명체로서의 존재는 완전히 별개의 독립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개성도, 능력도, 성격도 다 다르다는 사실, 그래서 그들의 인생도 다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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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17: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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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9 17: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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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풀꽃도 꽃이다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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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정래 작가의 소설은 현실 르포에 가깝다. 뉴스 기사와 각종 통계 데이터를 확보하여 시의적절하게 인용한다. 아이들이 쓰는 줄임말, 은어 등도 자주 사용한다. 물론, 쓰임이 전체적으로 어색하긴 하다. 나이 든 어른이 아이들을 흉내 내는 느낌이랄까? 소설은 우리나라의 여러 교육 문제를 다루고 있다. 굴절된 교육열, 학교폭력, 공교육의 붕괴 등. 아직 2권이 남았지만, 결국엔 현실감이 떨어지는 이상적인 결론으로 끝맺을 것 같다. 이미 『천년의 질문』에서 익히 봤듯이. 하지만, 소설은 소설대로의 역할이 있는 법.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중요한 듯싶다.

 

 

* 교육은 그 어떤 경우에도 단 한명의 학생이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교육은 단순 지식을 무조건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바르게 육성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_ 256쪽

 

  다소 아쉬운 점은, 작가가 사회적 사건에 대해서는 굉장히 진보적이지만, 일상생활이나 여성에 대해서는 다소 보수적이라는 느낌을 받아서다. 주인공 강교민의 아내는 혼전순결을 지킨 여자,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경제적 궁핍을 견디는 현모양처로 그려진다. 자식을 서울대 보내는 것을 목표로 공부를 강요하는 김희경이나 최민혜는 본인의 이름도 가지고 분량도 확보했지만, 강교민의 아내는 이름조차 없고, ―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 분량도 적다. 작가가 김희경이나 최민혜의 비뚤어진 교육열을 비판하는 것은 분명한데, 그 반대의 ‘권장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강교민의 아내’와 같은 삶을 이상으로 삼는 것은 다소 시대착오적이다. 작가가 이 인물에 대한 애정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 물론, 2권에서 반전이 있을 수 있지만 ―  사족으로, 혁신학교는 왕따도, 학교 폭력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과연 사실인지 궁금하다. 정말 사실이라면 흥미로운 사실이라,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자료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아이들은 제각기 개성이 다르듯, 공부하는 능력도 다 다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단순한 경쟁 자극만으로 모두가 최상위권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노력이란 기본적인 능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이고, 저런 방법을 계속 쓰게 되면 능력의 한계를 지닌 아이들은 상처 위에 또 상처를 입고, 그 위에 또 상처를 입어 한없이 불행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 P14

그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원인을 규명하고, 그걸 근거로 사회적인 논의를 냉정하게 진행해서, 원인을 제공한 제도를 과감하게 혁파하게 하는 것이 정도였다. 그러나 역시 한국은 한국적인 방법으로 도덕 감정을 자극해 범인을 패륜아로 매도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버렸다. - P35

이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 문제 가정, 문제 학교, 문제 사회가 있을 뿐이다. - P36

"그건 아니지. 왕성한 기업 활동 없이는 우리 사회가 안 돌아가니까 기업 종사자들은 최선을 다해 뛰어야지. 단, 시나 책들을 꾸준히 읽어 인간성을 고양시켜 가면서 말이지." - P64

어린 자식이 있다면 최선의 능력을 다해 돕고 지도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일이다. 존재할 공간을. 아이는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당신의 것’이 아니다. (에크하르트 툴레) - P116

"엄마, 제발 생각을 좀 바꿔. 엄마와 난, 엄마와 딸의 관계일 뿐이지 내가 엄마의 소유물은 아니야.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고,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거야. 서로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거라고. 엄마들은 다 대학 나왔으면서도 왜 그 쉬운 걸 구별할 줄 모르는지 몰라." - P187

"글세, 우리 선생들도 현상을 힘겹게 겪으면서도 원인을 분명히 몰라서 답답한 게 이 문제잖아. 어쨌든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서 나타나는 병적 증상이야. 아마도 제일 큰 게 과도한 공부 스트레스인 것 같고, 그 다음이 약자를 괴롭혀 자기 힘을 과시하는 인간의 악한 지배욕의 발동 같고, 한 공간을 자기네 세계로 장악하고자 하는 패거리 의식이 또 하나고, 괴로움을 당하는 자의 고통스러움을 보면서 점점 승리감과 쾌감이 커져가는 악마적 가해 의식, 이런 것들이 뒤섞여 있는 게 아닌가 싶어." - P201

교육은 그 어떤 경우에도 단 한명의 학생이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교육은 단순 지식을 무조건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바르게 육성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 P256

사회의 폭력성이 그대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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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로 출근하려면,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 인천1호선을 타고, 부평역에서 다시 1호선을 갈아타야 한다. 어렵게 회사에 도착하면 집에서 나선 지 1시간 50분에서 10분이 더 되거나 덜되거나 하는 시간이 지나있다. 송도살이에 무척 만족하고 있지만, 일주일에 5~6, 매일 4시간씩 출퇴근에 보내고 있으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출근 시간은 비몽사몽이라 항상 졸거나 눈을 감고 있는데, 1호선에서는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일들이 종종 생긴다.

 

  지난 주말에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데, 어디선가 , 하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 손톱을 깎는 소리다! ‘아니, 지하철에서 누가 감히 손톱을 깎는단 말이야!’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노약자 우대석에 앉은 할아버지가 손톱을 깎고 계신다. 주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 손톱을 깎는다. 주말 아침이라 지하철에 사람이 별로 없기도 했고, 주변에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그 할아버지 쪽을 바라보는 얼굴들에는 불쾌함이 엿보인다. 손톱깎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도 의외지만, 지하철 바닥에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손톱을 떨어뜨리는 것은 정말이지 충격이다.

 

  검사와 판사는 법을 집행하지만, 자신들은 늘 예외라고 생각하고, 언론인은 공정과 정의를 위해 펜을 놀리지만, 본인들은 항상 열외라 여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는 모르나 많은 어르신이 공중도덕을 말씀하시지만, 그것이 젊은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이 노인의 행선지는 어디일까? 탑골공원이 있는 종로3가역인가, 풍물시장이 있는 동묘앞역인가, 아니면 매일같이 시위가 있는 서울역이나 시청역인가. 혹시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넘치는 그곳에서 젊은이들의 무례함을 욕하고, 정부의 무능함을 성토하고, 노인공경이 무너진 사회를 한탄하시는 것은 아니겠지? 부디, 자기에게 관대한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한 분이었으면 좋겠다. 사회의 발전도, 아무리 좋은 가치도 항상,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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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미 대중들이 널리 알고 있는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라, 굳이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었나 싶다. 박용각, 곽상천, 김규평 등 극중 인물의 이름이 귀에 착 감기지 않는다. 성이라도 실존인물과 일치시켰으면 좋았을 텐데, 마지막까지 ? 누구?’ 하면서 보았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혼란스러울 뿐, 스토리는 정돈되어 있고, 영상은 꽤 차분하게 흘러간다. 2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극장 안에 사람이 가득 차 있었지만, 너나없이 조용했다. 영화는 꽤 흡입력 있다.

 

   다만, 나이 든 어르신 중 몇 분은 정치적인 이해가 다른 때문인지, 지루해서인지 종종 휴대전화 화면을 껐다 켰다 했다. 같이 보았던 아내도 살짝 졸았다고 하니 생각보다 재미없다는 평가도 꽤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대단하기 때문이다. 이성민은 '박통'에 완전히 녹아들어 있었고, 곽도원, 이희준도 제 몫을 다한다. 이병헌도 종종 구설에 많이 오르지만 왜 이병헌인지를 증명했다. 배우들의 표정과 행동, 대사만 지켜봐도 흥미로운 영화다.

 

   이 영화는 사실 정치적인 이상보다는 한 인간의 비애를 담고 있다. 정의감과 사명 의식에 움직이는 인간보다는, 믿음과 배신, 경쟁과 공포, 기대와 선망, 그 안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 그 인간의 비애를 담고 있다. 권력은 비정하고, 승자도 정의도 없다. ‘임자 하고 싶은 대로 , 임자 옆엔 내가 있잖아.’라는 무한한 신뢰와 응원의 말이 실제는 책임회피이자 함정임이 밝혀질 때, 그 비참함과 환멸을 극복할 수 있을까.

 

   결국 승자는 누구인가. 혼란의 와중에 박통의 금괴를 들고 사라졌다가 화려하게 복귀하는 '전두혁'일까. 참 어려운 시대를 살았다. 세상은 점차 나아질까. 우리 조직의 생리가 조폭과 같다면, 우리는 여전히 남산의 부장들이 살았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아직 주변 곳곳에서 그 잔상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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