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아이브 - 위대한 디자인 기업 애플을 만든 또 한 명의 천재
리앤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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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없이 애플을 따라가다 보면 어떻게 여기에 이런 기능을 넣을 생각을 했지? 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있다.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배려하는 세심함과, 나에게 아무 필요없는 제품이지만 갖고 싶게 만드는 제품이 애플이다. 이쯤되면 또 잡스의 '인문학'을 들먹이는 게 아닌가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번엔 잡스가 아니라 '조너선 아이브'다. 



변기 디자인에 실패하다


조너선 아이브 이야기를 더욱 드라마틱 하게 할 때 존 스컬리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기 위해 당시 펩시 부사장으로 있던 존 스컬리에게 잡스는 이런 말을 했다. "평생 설탕물만 팔면서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까?" 결국 1983년 존 스컬리는 애플에 합류한다. if, 조너선 아이브가 변기 디자인 하던 중소 업체의 이름 없는 능력자였으면 더 신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래서 잡스가 "평생 남의 엉덩이만 보고 살겠습니까. 미래를 함께 그리겠습니까?"라고 했다면 더 극적이었을텐데. 


물론 이야기는 이렇게 흐르지 않고 아이브가 속한 회사 텐저린이 아이디얼 스탠더드로부터 변기와 비데, 세면대 디자인을 의뢰 받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아이브는 해양 생물학 관련 서적으로부터 자연의 영감을 얻어 디자인을 완성했다. 하지만, 회사 CEO는 그들에게 호된 비판을 쏟아 부으며 '제품화 하기 용이한' 디자인을 요구한다. 이 사건은 아이브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며, 외부컨설팅 회사의 한계는 결국 고객의 입맛에 맞게 원하는 대로 만드는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음을 다시한번 절감한다. 


산업디자인이냐 프로덕트 디자인이냐


아이브가 애플의 디자인 팀으로 옮기게 된 이유중에 하나가 그 팀이 내부 컨설팅 스튜디오에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는데 우선은 내부에 있지만 별도의 팀이기 때문에 회사의 종속을 덜 받고, 기업 외부 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디자인에 대한 자기주장이 가능하다. 이것은 앞의 변기 사건에 알 수 있듯이, 디자인을 하는 이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단순히 제품의 외향만 채우는 디자인이 아니라 흐름을 이끌 수 있는 디자인을 하는 것, 그것만이 아이브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디자인 팀은 엔지니어에 집중되어 있던 무게중심을 자기네 쪽으로 옮겨오고 싶어했다. 


잡스의 복귀와 함께 아이맥과 아이북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애플의 중심 권력은 산업디자인 팀이 되었다. 디자인 팀은 그저 완성품의 케이스를 만들어 내는 팀에서 벗어나 디자인을 창조하고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고, 프로덕트 디자인 팀은 기술적 역량을 총동원 해서 디자인대로 제품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마저리 안드레센은 이렇게 회상한다. 


산업디자인 팀과 일할 때 유념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그들에게 '노'라고 말해선 안 된다는 것였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 것으로 보이든 불합리해 보이든 불가능해 보이든 그들이 원하는 그대로 따라야 했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이원하는 바를 구현해줘야 했습니다. (p.209)


이 말의 의미는 전에는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전기 설계)과 프로덕트 디자인(기계 공학)이 주도하던 디자인 과정을 산업디자인 팀에서 주도하게 됐다는 뜻이다. 이는 곧 이전에는 기술적인 제약을 감안해서 디자인 하던 것을, 디자인에 맞춰 기술적 역량을 맞춰가는 식이 됐다는 의미이다. 사실 문제는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디자인이야 뭐 어짜피 예쁘게 팔기 위해서라고 정도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조너선 아이브는 분명히 'stupid'라고 했을 법 싶다. '바보야, 문제는 디자인이야.'

 

엔지니어들은 현재 시점에서 가능한 조건들에 얽매이게 마련이지요. 반면에 산업 디자이너들은 내일 혹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가능해질 수도 있는 조건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합니다. (p.178)

 

애플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1990년 서른두 살의 나이에 애플의 산업디자인 책임자로 합류한 브러너는 이런 조건을 내세웠다. 자체적인 디자인 팀을 만들기를 바라지만, 대기업에서 흔히 보이는 관료적인 조직이 아닌 그룹 내 소규모 디자인 팀을 만들어 주길 바랐다. 사실 애플이 디자인 팀에 특별한 재량을 주고, 자체적으로 느슨한 관리 시스템을 확보한 것은 지금의 애플을 있게한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지만 말이다. 아이브의 졸업 작품을 보고 그의 재능에 감탄한 바 있는 브러너는 팀이 꾸려지자 아이브를 영입했다. 


아이브는 애플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 몇가지 디자인을 했지만 역시나 외부업체에서 컨설팅하는 수준을 못벗어나는 관료적인 조직에 실망한다. 1997년 스티브잡스가 애플에 복귀하면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진다. 잡스는 디자인 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으며, 그들의 상상력이 실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1998년 드디어 '아이맥'이 그 베일을 벗었다. 이는 애플의 기사회생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첫 제품이었다. 

 


 

역시, 사람이다


1997년 9월 잡스가 구상한 NC 사양을 반영한 디자인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졌을 당시를 회상하며 아이브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기술적인 문제부터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사람'에서 시작했지요. 우리는 사람들이 이 제품을 어떻게 느끼기를 바라는가? 이 제품은 사람들 마음의 어떤 부분에 가닿을 것인가? (p.164)


'애플'과 다른 기업간의 차이점을 찾을 때 분기 순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판매량에 열을 올린다면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 그들은 잘 팔리는 제품이 아닌, 역사에 남을 제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기업이 말은 그렇게 해도 결국은 수익 낼려고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가 겪어본 애플의 제품은 그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걸 느끼게 해주었다. 


조너선 아이브 체제


2008년 애플의한 행사에서 아이브는 특별한 발표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유니보디' 프로세스였다. 이는 기존의 노트북이 용접과 나사로 강화판을 결합해 튼튼하지만 조금은 조잡한 노트북을 만들었던 단점을 해결한 방법이다. 유니보디는 알루미늄판을 통째로 잘라서 거기에서 나사가 들어갈 부분 키보드나 접합부분을 남기고 갉아내는 형식이다. 이로 인해 비슷한 제품에서 서른 부분이나 생기던 연결부위가 다섯군데로 줄어들었으며, 디자인은 획기적인 전기를 맞은 것이다. 

 

애플은 지난 6월 운영체제의 새로운 버전 ios7을 내놨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이전에는 하드웨어 디자인에만 관여하던 조너선 아이브가 마침내 소프트웨어 디자인까지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주관했던 스콧 포스톨이 물러나고 아이브가 영향력을 확장한 것이다. 가장 큰 차이는 이전 버전까지 적용되던 스큐어모피즘(실제 사물의 형태와 개념을 모방)을 버리고, 아이브가 항상 추구하던 미니멀리즘(특징을 살리되, 최소한의 표현)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미니멀리즘은 조너선 아이브가 1980년대 중반의 과다 표현주의에 대한 거부감으로 추구하기 시작했던 디자인 철학이다. 


잡스가 사라진 애플에게 가장 붙이기 쉬운 말은 '혁신이 사라졌다'이다. 그런데 잼있는 사실은 아이폰 발표때마다 그런 언론기사가 나왔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잡스가 없으니 그런 기사는 더욱 힘을 얻는다. 하지만, 애플에는 아직 잡스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한 이들이 많이 남았다. 그 중에 한 명이 조너선 아이브다. 나는 혁신이 사라졌다는 애플에서 여전히 그의 열정에 기대를 걸어본다. 

 

p.s 이 책에 다만 아쉬웠던 점은 삽화가 한 장씩 껴들어 있다면 그때 그때 제품을 검색해 보지 않아도 됐을텐데 하는 점이다. 책의 중간에 사진이 몇 장 들어있긴 하지만 제품이 언급되는 부분에서 나왔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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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 - 교토의 역사 “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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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교토편이다. 굳이 한국편을 다 마무리 짓지 않고 일본으로 넘어간 이유에 대해 저자는 경직된 한일관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국미술사는 일본 미술 언급없이도 서술할 수 있지만, 일본 고대 미술사는 그럴 수 없다는 말은 다시 하면 일본은 우리 미술사에서 뻗쳐나가 새로 낸 가지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일본인들은 한일고대사의 긴밀한 교류를 통한 영향을 인정하고, 한국인들은 일본이 중세 이후 고유의 문화적 성취를 이뤘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때문에 일본의 유적지를 다니면서도 유홍준 교수님은 한국 고대사와의 관련성에 집중한다. 

 

간단히 구성을 살펴보면 차례는 시대별로 기술되어 있다. 제1부는 헤이안 이전의 시대로 광륭사, 하타씨 유적 순례 등이 있고, 제2부는 헤이안 시대로 후시미 이나리 신사 고려사터, 우지 평등원 등 제3부는 가마쿠라 시대로 낙남의 동복사, 인화사와 고산사가 실려있다.

 

한국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상(왼쪽),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미륵반가상'(오른쪽)

 

첫번째 광륭사에서는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미륵반가상'을 보여주는데 이는 우리의 금동반가상과 매우 유사하다. 이는 한편 이 책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국의 고대 문화와 일본의 문화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의 반가상의 소재는 소나무인데 아스카시대 일본 불상이 보통 녹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것으로 보기도 한다. 누가 누구에게 전해준 것을 떠나 양국이 과거에 긴밀한 교류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광륭사 태자전 바로 옆에는 우즈마사전이라는 작은 신사가 하나 있는데, 이는 5세기 후반 한반도에서 도래한 집단인 하타씨의 제를 지낸 신사이다. 자연스럽게 하타씨의 유적인 누에 신사, 오사케 신사, 헤비즈카가 다음 행선지가 된다. 눈치챘겠지만 시대적 흐름에 따라 정리는 되었지만 이 책은 우리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쓴 기행기라고 생각하면 더 편하다.

 

무라이 야스히코가 편집한 도래인들 이야기를 다룬 '교토학의 초대'라는 책의 내용을 일부 이야기 하는데, 고구려계 도래인 야사카노 쓰쿠리씨가 야사카 신사를, 신라계 하타씨는 마쓰오 신사와 후시미 이나리 신사 등을 세웠음을 기록하고 있다. 유교수는 일본인 내의 도래인에 대한 우호적이 객관적인 시선에서 한일관계의 가능성을 엿보기도 한다. 2부에서도 역시 우리와 관련 있는 도래인들이 창건한 후시미 이나리 신사나 고구려계 도래인이 자리 잡고 살아온 고려사 터 같은 유적지를 주로 돌아본다. 그렇다고 그러한 기술이 우리 위주라는 말은 아니고, 그 안에서 일본인들의 특질과 역사를 잘 우러내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포함되지 않은 동복사가 마지막 장을 차지하게 된 데는, 저자의 개인적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안 해저에서 발굴한 유물에 '동복사 공물'이라는 물표가 있어 얼마나 큰 절인지 궁금했었던 것이다. 큰 절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그 발견량이 3만 여 점에 달했기 때문이었는데, 신안 앞바다에서 난파된 것으로 보이는 그 배는 중국에서 일본으로 물품을 싣고 가는 무역선으로 추정되었다. 처음으로 일본 무인사회로 들어간 가마쿠라시대의 유적으로,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확립하기 위한 집권자들은 '선종'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동복사의 시작이었다. 저자는 유적지 곳곳에서 우리와의 차이를 발견하고 기술해 놓았다. 어느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 이러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해 준다.

 

우리나라 건축에서 마당은 어떤 식으로든 각 건물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준다. 그러나 동복사 본당 앞 공간은 우리가 항신 보는 마당도 뜰도 아니고 그냥 비어있음으로 끝나 있다. 그래서 건물의 독립성이 아주 강하게 드러난다.

 

각각의 장이 유기적이면서도 개별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일관되게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느 편을 펼쳐도 쉽게 읽을 수 있다. 규슈편을 보면서도 느낀점이지만 유홍준 교수님은 우리나라 문화재에만 관심있고 잘 아는 줄 알았는데 일본 역사나 문화재에 대한 식견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 일본의 유적 뿐만 아니라 역사적 배경에 흥미를 끄는 각종 에피소드까지 이전 우리나라 문화유산답사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일본 역사에 워낙 문외한이다 보니 그 부분이 잘 와닿지 않은 점이 아쉽다. 하지만, 의외인 곳에 종종 숨겨져 있는 우리 고유 문화와 관련된 부분이나, 우리와 일본의 문화적 차이를 되짚어 가다보면 한국편 못지 않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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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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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책장에 '불안'이라는 책이 손때가 많이 묻은 채로 꽂혀있다면 보는 이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너도 사는게 힘들구나'라고. '불안'의 원서 제목은 'STATUS ANXIETY', 지위 불안이다. 불안이라는 한국 제목에서 느껴지는 삶 전반에 대한 불안은 아니라는 점을 일단 짚고 시작해보자.


어쩐지 불안하더라니, 그래서 그랬구나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의, 원인, 해법이다. 정의는 사전적 의미의 불안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불안의 원인이 시작하는 첫장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다.


이후로도 불안의 원인에 대한 절묘한 표현이 나오지만, 챕터 첫머리에 나오는 이말처럼 명확한 설명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양귀자는 '모순'에서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 뿐이다'고 냉정하게 말하지 않았던가. '상대성'이라는 기준만 제외한다면 우리는 불안해할 이유가 사라진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왜 그토록 높은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지부터 이야기 한다. 단순한 명예욕이 아니라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불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관점이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보다는 타인의 관점에서 안정을 찾고 위안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불안해 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을 평가할 때도 사회적 지위로 차별을 하는 '속물근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재미있는 불안의 원인 중 하나는 '평등'이다. 과거 사회의 경직된 신분제도는 왕을 왕으로, 귀족을 귀족으로, 노예를 노예로 태어나게 했다. 귀족은 왕이 아니라는 사실에 좌절하지 않았고, 노예는 귀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신분제가 사라지고 평등이 정착되면서, 우리는 나의 지금 모습이 아니라 지금 모습일 수.도. 있는 모습을 갈망하게 되었다. 결국 평등은 무한한 가능성을 주었음과 동시에, 그의 지위가 그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 법칙일 때는 아무리 불평등한 측면이라도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불안을 날려 버리는 법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첫번째 방법은 역시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남들의 평가에 일희일비 하지 않은 채 나의 평가를 나의 이성이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를 위해 '철학'이 필요하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일 청중이 한두 사람만 빼고는 모두 귀머거리라면 그들의 우렁찬 박수갈채를 받는다 해서 연주가가 기분이 좋을까?" 이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평가가 지극히 주관적이면서 편협하고, 곱씹어볼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그들의 칭찬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가 제시하는 다른 해법은 '예술'이다. 예술은 우리가 가진 도덕적 위엄과 감수성이 현실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감상에 지나지 않음을 한탄하며, 그들의 고매한 인품이 결국은 진정한 삶의 요소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비극을 접할 때 우리는 오이디푸스의 불운한 운명이 결국 우리에게도 다른 모습으로 찾아올 수 있음을 느끼며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고, 농담이나 희극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에 공감한다.


이에 덧붙여, 스파르타 시대에는 전투적 역량, 서유럽에서 11세기까지는 성자적인 삶, 20세기 브라질에서는 재규어를 죽이는 사람이 최고의 능력자였으며, 단지 지금의 평가 기준이 '경제적인 성취'가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상이 아무리 자연스럽게 보인다 해도, 정치적 시각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듯이, 이것은 단지 인간이 만든 것일 뿐이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이집트의 람세스 2세의 상 받침대에는 이런 비문이 적혀있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중왕이라

너희 힘 있는 자들아 내가 한 일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그는 왜 절망하라고 했을까. 나는 이토록 대단한 업적을 이룩했으니 너희의 어떤한 업적보다 위대할 것이라는 자만심의 표현일까. 아니다. 그의 말은 그가 이룩한 모든 것들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던 이들과 함께 폐허에 묻혔음을 말하는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스티브 잡스의 말은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내가 언젠가는 죽게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선택을 할 때 큰 힘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여전히 우리는 세속적인 삶에 머물러 있을 것이며, 경제적 성취에 목말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매주 고해성사를 하면서도 죄를 짓는것처럼, 언젠가는 도덕적 숭고함 혹은 정신적 완결을 이룰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세속적 기준에 저항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보헤미안의 마음처럼, 우리 삶의 목표는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함이 아닌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기 위함임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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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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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응' 하고 시마모토는 말했다. '세상에는 돌이킬 수 있는 일과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잖아. 이만큼 와버렸으니 이제와서 뒤로 되돌아갈 순 없잖아. 그렇지?' (p.25)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상상한다는 것, 사람들이 많이 간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택한 나, 너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붙잡았을 나를 상상한다는 것에 대한 기록이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의도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책이 100여 페이지가 남아 있다고 할 지라도 느닷없이 자살을 한들 이상하지 않다. 닻만큼 무거운 추억의 무게는 현실의 바다로 떠나야하는 주인공들을 한없이 바다 속으로 끌어들이고 만다. 


외동아이가 흔치 않던 1950년대 일본에서 외동 아들과 외동 딸로 서로의 상처를 이해해주던 두 초등학생이 등장한다. 하나는 '나(하지메)'이고 하나는 '시마모토'이다. 그 둘은 서로 다른 중학교를 가게 되면서 볼 수 없게 되어버리지만, '레스토랑의 구석진 자리에 예약석이라는 팻말을 세워놓듯' 서로는 서로의 자리를 남겨 놓는다. 그 자리는 예약한 사람이 왔을 때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자리로 남겨진다. 중학교에 가서 이즈미란 여자친구를 만나는 '나'는 첫 키스를 하고 깊은 고독을 느낀다. 어쩌면 그것은 시마모토의 자리를 채워버린 다른 존재에 대한 고독감 같은 것이었다. 


인간이란 건 어떤 경우에는, 그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p.46)


이즈미와의 사랑이 영혼없는 만남처럼 텅빈 공허감을 주게되자 '나'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나조차도 나를 설득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이즈미 역시 설득할 수 없다. 이즈미의 친한 사촌언니와 잠까지 자버린 '나'는 결국 이즈미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그녀를 떠난다. 그리고 30대가 되기까지 12년 간의 '냉동'된 세월을 살게 된다. 하지메는 그 후 여름 휴가 때 우연히 만난 여자와 서른 살에 결혼을 하고, 장인의 도움으로 큰 어려움 없이 바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이건 왠지 내 인생 같지 않다고. 마치 누군가가 마련해둔 장소에서 누군가가 준비해 마련해준 방식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p.114)


어느 밤 우연히 시마모토가 주인공이 운영하는 바에 찾아오고 '나'는 심하게 동요한다.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내가 평생을 공허하게 살았던 것이 그녀 때문인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공백이 결국은 자신의 현재를 먹어 삼키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방황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것은, 주인공이 그것을 끝내려 한다는 의미다. 이는 평범한 생활을 내던지고 다시 시마모토가 있는 추억의 세계로 모험을 하겠다는 의미기도 하다. 하지만 시마모토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상하네. 넌 그 세월의 공백을 메우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야. 난 그 세월을 조금이라도 공백으로 놔두고 싶은데 말이야. (p.226)


다시 시마모토의 첫 마디로 돌아가본다. 


'세상에는 돌이킬 수 있는 일과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해. 


하지메의 기억 속에서 시마모토는 다리를 절었지만, 그녀는 이제 다리를 절지 않는다. 이제 다리를 절며 지나가는 여자만 봐도 그녀를 떠올리던 '나'의 기억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잃었다. 그녀는 여기 오지 않을 때는 여기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중간은 없다. 국경의 남쪽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환상과는 달리, 그 곳에는 멕시코라는 현실이 있었을 뿐이었다. 다만, 끝없이 놓여진 지평선을 향해 걷는 태양의 서쪽에서는 오직 신기루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다시 알마니 와이셔츠와 BMW가 존재하는 현실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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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깨달음 - 하버드에서의 출가 그 후 10년
혜민 (慧敏)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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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까지 졸업하고서 구도자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라면 뭔가 더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내가 '혜민' 스님에 가지는 생각이었다. 이런 나의 속물적 생각을 반영하듯 이 책의 부제 선정에서도 '하버드' 세글자를 넣어달라는 출판사와, 당황스러워 하는 저자의 실랑이가 있었다. 이렇다할 성공이 보장 되지 않은 이의 출가는, 마치 결혼 못할 것 같은 이가 독신을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 맘에 비겁한 의심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나는 '하버드'가 써 있는 혜민 스님의 말에 귀 기울여보는 '속물'이 되고만다. 


뻔하지만 흔하지 않은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산다. 하지만, 누구도 행복을 얻지는 못한다. 그래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눈 앞의 성공만 바라보고 달려가기만 한다면 마지막 순간에 어떤 생각이 들겠냐이다. 중학교 때는 1등, 고등학교 때는 명문대, 명문대에서는 대기업, 대기업에서는 승진.. 이 꼬리를 물고 우리를 옥죈다. 그리고 혜민 스님 역시 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싶어서 스님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작은 것도 베풀고, 순간순간에 집착없이 잊어버리면서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뻔한 소린가. 어쩌면 이 책 제목만 보고도 이런 말은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의 가치를 곱씹어 보는 것이다.


무소유


스님들이 쓰시는 책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 모든 소재와 주제들은 결국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새로운 옷을 입혀서 내 놓은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학벌에 집착하는 것, 상품에 집착하는 것, 외관에 집착하는 것들은 결국 우리가 내려 놓기 전까지 벗어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는 그 것들을 소유하고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우리가 거기에 얽매인 것이다. 법정 스님이 난초를 소유한 순간, 난초는 법정 스님을 옭아 매고 있었다. 결국 불가의 가르침은 이 깨달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해석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책의 선택은 지금의 나를 보여준다


지쳤다. 그것 밖에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다. 시험을 보고 답을 맞춰 보는 학생의 마음처럼, 내 남은 문제에서 동그라미가 아니라 작대기가 그어질까봐 조마조마한 것에 지쳤다. 그래서 한 발짝 물러서서 편한 말을 해주는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맘은 조금 더 복잡해졌다. 거지가 부러워 하는 것은 백만장자가 아니라 자기보다 형편이 좀 더 나은 거지라지 않았나. 그저 주변에서 좀더 못한 비교 대상을 찾았어야 했는데, 실천과 거리가 한 참 먼 대상을 찾는 바람에 나의 현실이 더 명징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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