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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평점 :
누군가의 책장에 '불안'이라는 책이 손때가 많이 묻은 채로 꽂혀있다면 보는 이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너도 사는게 힘들구나'라고. '불안'의 원서 제목은 'STATUS ANXIETY', 지위 불안이다. 불안이라는 한국 제목에서 느껴지는 삶 전반에 대한 불안은 아니라는 점을 일단 짚고 시작해보자.
어쩐지 불안하더라니, 그래서 그랬구나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의, 원인, 해법이다. 정의는 사전적 의미의 불안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불안의 원인이 시작하는 첫장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다.
이후로도 불안의 원인에 대한 절묘한 표현이 나오지만, 챕터 첫머리에 나오는 이말처럼 명확한 설명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양귀자는 '모순'에서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 뿐이다'고 냉정하게 말하지 않았던가. '상대성'이라는 기준만 제외한다면 우리는 불안해할 이유가 사라진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왜 그토록 높은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지부터 이야기 한다. 단순한 명예욕이 아니라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불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관점이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보다는 타인의 관점에서 안정을 찾고 위안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불안해 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을 평가할 때도 사회적 지위로 차별을 하는 '속물근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재미있는 불안의 원인 중 하나는 '평등'이다. 과거 사회의 경직된 신분제도는 왕을 왕으로, 귀족을 귀족으로, 노예를 노예로 태어나게 했다. 귀족은 왕이 아니라는 사실에 좌절하지 않았고, 노예는 귀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신분제가 사라지고 평등이 정착되면서, 우리는 나의 지금 모습이 아니라 지금 모습일 수.도. 있는 모습을 갈망하게 되었다. 결국 평등은 무한한 가능성을 주었음과 동시에, 그의 지위가 그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 법칙일 때는 아무리 불평등한 측면이라도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불안을 날려 버리는 법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첫번째 방법은 역시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남들의 평가에 일희일비 하지 않은 채 나의 평가를 나의 이성이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를 위해 '철학'이 필요하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일 청중이 한두 사람만 빼고는 모두 귀머거리라면 그들의 우렁찬 박수갈채를 받는다 해서 연주가가 기분이 좋을까?" 이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평가가 지극히 주관적이면서 편협하고, 곱씹어볼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그들의 칭찬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가 제시하는 다른 해법은 '예술'이다. 예술은 우리가 가진 도덕적 위엄과 감수성이 현실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감상에 지나지 않음을 한탄하며, 그들의 고매한 인품이 결국은 진정한 삶의 요소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비극을 접할 때 우리는 오이디푸스의 불운한 운명이 결국 우리에게도 다른 모습으로 찾아올 수 있음을 느끼며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고, 농담이나 희극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에 공감한다.
이에 덧붙여, 스파르타 시대에는 전투적 역량, 서유럽에서 11세기까지는 성자적인 삶, 20세기 브라질에서는 재규어를 죽이는 사람이 최고의 능력자였으며, 단지 지금의 평가 기준이 '경제적인 성취'가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상이 아무리 자연스럽게 보인다 해도, 정치적 시각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듯이, 이것은 단지 인간이 만든 것일 뿐이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이집트의 람세스 2세의 상 받침대에는 이런 비문이 적혀있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중왕이라
너희 힘 있는 자들아 내가 한 일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그는 왜 절망하라고 했을까. 나는 이토록 대단한 업적을 이룩했으니 너희의 어떤한 업적보다 위대할 것이라는 자만심의 표현일까. 아니다. 그의 말은 그가 이룩한 모든 것들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던 이들과 함께 폐허에 묻혔음을 말하는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스티브 잡스의 말은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내가 언젠가는 죽게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선택을 할 때 큰 힘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여전히 우리는 세속적인 삶에 머물러 있을 것이며, 경제적 성취에 목말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매주 고해성사를 하면서도 죄를 짓는것처럼, 언젠가는 도덕적 숭고함 혹은 정신적 완결을 이룰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세속적 기준에 저항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보헤미안의 마음처럼, 우리 삶의 목표는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함이 아닌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기 위함임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