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
샤론 모알렘 지음, 정경 옮김 / 김영사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히틀러는 T-4작전이라는 문서에 서명하면서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살을 시작했다. 우생학적 믿음에 근거했던 이 정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대인 말고도 장애인, 정신질환자, 범죄이력자 등 사회 부적격자에 대한 청소 정책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 정책을 그들의 논리로 보자면 결핍되고 이상적 변이를 일으킨 유전자들을 소멸시킴으로써 후세는 더 완벽한 인간만이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문의 랄프의 경우를 보자. 그는 완벽한 외모를 가진 덴마크 남성으로 정자 기부를 통해 최소한 44명의 아버지가 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유전자에 '제1형 신경섬유종증'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너무도 완벽한 외모와 성향을 가진 그가 이런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왜 아무도 몰랐을까. 이는 유전발현의 다변성이라는 개념을 간과한 것으로, 유전적 변이나 유전병에 의해 한 사람이 영향 받는 정도를 측정하는 단위를 말한다. 유전자가 전해준 정보는 인쇄된 글씨처럼 명백하지만 발현되는 것에는 차이가 생기게 된다. 이를 통해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일란성 쌍둥이라 해도 외적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유전자가 아닌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개념이 나온다.

 

지난 2013년 헐리우드 스타의 충격적인 수술이 있었다. 섹시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유방젤제 수술이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그녀가 어떠한 병에 걸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단지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선제적으로 유방을 절제했다는 점이었다. 이런 환자를 두고 예방생존환자라고 한다. 그녀는 검사를 통해 유방암 확률이 65%나 되는 BRCA1이라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그녀의 어머니 또한 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녀는 선제적 절제 수술을 선택한 것이다. 유전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대응하는 방식이 이런 것만이 최선은 아니지만 일단 정보를 알게 된다면 그 발병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진행시킬 수는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예이다.  

 

물려 받은 유전자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안 좋은 예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알콜을 분해하는 능력이 선천적으로 부족한데 이를 두고 주변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술은 마시면 는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전혀 틀린 말도 아니어서 대학때 소주 두 잔도 못 마셨던 내가 지금은 한 병 정도를 마시고 있다는 게 그 증거가 될 것이다. 이것은 물론 유전자의 결함을 발견하고 이에 대해 대처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생각과는 정 반대의 케이스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선천적인 유전에도 불구하고 이를 환경에 맞춰 극복(?)해 나가는 선례로는 좋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트런트 러셀이 90이 넘도록 담배를 즐겼다고 해서 원래 담배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도 그래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동료가 매일 밤새 술을 마신다고 해서 나도 그런 행동이 가능하다는 의미도 아니다.

 

저자는 우리 몸에서 취약한 유전자에 대해서 발견하고 이에 대해 미리 대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그래서 첫 장에서는 얼굴의 생김새만으로 어떠한 유전적 결함이 있을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별도의 유전자 지도를 그리지 않고도 우리는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형태에서 수없이 많은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알게된 취약한 유전자에 대해 작게는 생활 습관을 고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선제적 수술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 몸의 입장에서 보자면 왜 우리는 병에 걸려야만 하는 것일까, 혹은 왜 몸에 이상이 있는 채로 태어났어야만 할까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하지만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수십억개의 세포가 하나의 오류 없이 제역할을 해낸다는 것이 더 신기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유전자의 분석을 다 마쳤다고 거기에 대한 완벽한 해석을 마쳤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질병이 어떤 유전자의 오류에 의해 생겨나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희귀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선천성 무통각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이들은 SCN9A라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이런 병이 생겨났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고통에 대한 400여개의 유전자들에 대해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감사하고 미안해 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 아직 우리는 수없이 펼쳐진 유전자 지도의 아주 일부분을 해석했을 뿐이다. 오류가 발생했을 때 이를 역으로 추적하거나 다수의 이상이 발생하는 사람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답을 유추해갈 수는 있지만 그 길은 아직 멀고도 멀다. 하지만, 유전자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앞으로도 무한하고 인류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록실로의 여행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한 노인이 방에 갇혀있다. 하루에 86,400장의 사진을 찍는 카메라가 머리 위쪽에 있지만, 그 사실은 알지도 못한 채 자신을 괴롭히는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모든 물건에는 물건을 가르키는 영어 철자가 붙어 있고, 우리는 그가 그 사물을 말할 때 단어를 읽고 있는 것인지 사물을 보고 구별하는 것인지 조차 알수가 없다. 그는 그 자체로 공백 상태이므로 저자는 이를 Mr. Blank.라고 부르기로 한다. 스스로의 삶을 기억할 수 없는 존재란 어떤 것일까. 더구나 그에게는 도저히 우호적이라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 한번씩 찾아와 분노를 내비친다. 그에 비해 블랭크 씨는 기억이 희미한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운 노인이다. 저항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이에게 끝까지 잘못을 밝혀 내고 책임을 물으려 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노인은 짧아지는 기억력 때문에 사람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기록을 남긴다. 신기한 것은 그 이름을 볼 때 확실하지는 않지만 뭔가 그와 관련된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른다는 사실이다. 독자인 나는 작가의 평소 스타일을 알기 때문에 쉽게 답을 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이로 인해 더 초조해지고 그들의 대화 속에서 뭔가 답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안나, 

피터 스틸먼 주니어

팬쇼.

.....

존 트로즈,

소피, 

대니얼 퀸, 


이름을 보니 왠지 좀 익숙한 느낌이 처음부터 있었다. 뭔가 알것 같긴 한데. 미스터 블랭크, 아니면 폴 오스터 이제 깜짝 놀랄 결론을 내란 말이야. 도대체 그 이름들이 뭐야. 하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 아 맞다. 이 사람들. 폴 오스터 작품 속 주인공들. 아. 그러면 이제야 들어 맞는다. 그가 어려운 임무를 맡기고 위험한 곳에 보냈던 인물들은 죄다 폴 오스터 본인이 만들어 낸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자신을 죽을 위기까지 몰아 넣었던 작가에 대해 단체로 반기를 들고 일어난 셈이다. 그러고 보니 이 노인 이야기 지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의사 새뮤얼 파가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고 하자 기억이 가물가물한 노인의 머리에서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나는 책을 하나씩 열어서 주인공 이름을 확인해 봤다. 뉴욕3부작을 열자 마자 나오는 이름 스틸먼. 그러면 내내 미안하다고 하면서 노인을 위해 어떤 어려움도 감수하겠다는 안나라는 인물은 어디서 나왔을까. 안나 블롬은 디스토피아를 그린 '폐허의 도시'에서 오빠를 찾기 위해 도시로 취재를 떠난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그의 첫 번째 탐정이자 이제는 변호사가 된 남자 '퀸'은 뉴욕3부작 '유리의 도시'에서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고 탐정이 되어버린 남자이다. 그리고 그 첫장면에서 온통 하얀 옷을 입은 피터 스틸먼이 등장한다. 뉴욕3부작의 마지막인 '잠겨있는 방'에는 드디어 팬쇼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끔 폴 오스터의 글을 볼때면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커다란 오스터 공화국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곳에서는 작가와 등장인물 간의 차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유리의 도시'에서도 탐정 놀이가 뜻대로 되지 않는 퀸이 실제 탐정인 폴 오스터라는 인물을 찾아가기도 한다. 폴 오스터도 등장인물이고 등장인물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실존이다. 그가 만들어 낸 세계는 '기록실로의 여행'으로 다시 한번 선명해진 느낌이다. 그가 등장인물들에 가졌던 미안한 마음이 하나의 모티브가 되어 쓰여진 이 작품은, 그들을 하나의 단독한 존재로서 인정한다는 그의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다. 


오스터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에 대해, 자신이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만큼이나 기묘한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그의 소설에서는 우연의 요소가 모든것을 바꿔 놓기는 하지만 판타지나 있을 수 없는 일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희박한 확률로 일어날 법한 일을 쓰기 때문에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면서도 조금은 비현실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믿을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믿기 힘든 일이라고 해서 가능성을 0으로 놓는 삶이란 얼마나 무미건조 할 것인가. 폴 오스터의 글이 흥미를 끄는 것은 있을법 하지만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일어난 일처럼 이야기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폴 오스터는 다시 그 노인을 소설의 첫 문장으로 돌려 버린다. 그리고 마치 남의 일인양 너스레를 떨며 말을 한다. 


얼마 안 있으면 한 여인이 그 방으로 들어가 그에게 음식을 먹여줄 것이다. 나는 아직 그 여인을 누구로 할 것인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때까지 일이 순조롭게 풀려 간다면 안나를 보낼 작정이다. (p. 2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파즈 - 무라카미 류 걸작선
무라카미 류 지음, 김지룡 옮김 / 동방미디어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토파즈를 검색해 보면 우정, 인내, 결백한 마음과 부활을 뜻하는 보석이라는 설명을 볼 수 있다. 기원은 여러 설이 있지만 이 소설의 내용이 비추어 보면 그리스어의 '토파지오스'에서 유래한 '찾아다니다'의 뜻이 가장 알맞을 듯 하다. 무언가를 찾아 다니는 삶은 언제나 괴롭다. 특히 그가 처한 상황이 무엇이냐에 따라, 가끔은 아주 작은 바람조차도 그들의 삶을 더 힘들게 하기 도 한다. 


주인공은 몸을 파는 여자이다. 그 분야에도 분명이 급이 있기 마련일텐데 소설 속의 내용으로 봐서 그녀는 그 중에서도 최하급이라고 볼 수 있다. 외모가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일반적인 관계보다는,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관계의 손님을 상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녀 앞에 중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남자가 등장해 맘을 흔든다. 그녀는 그가 들어갔다 나온 이태리 식당 옆의 보석상에 들어간다. 그녀가 들어오자 마자 상점 주인은 토파즈가 어울리는 손이라고 한다. 그녀는 마치 그의 선물이라도 받아들인양 토파즈 반지를 사고 나와서 그가 갔었던 이태리 식당에 들어간다. 그가 다녀간 곳을 따라가며 그녀는 마치 그의 정부라도 된 것처럼 맘이 설렌다. 그때 마담 언니로부터 야마기시라는 손님을 접대하라는 전화를 받는다. 


야마기시라는 손님은 그녀의 머릿속에는 똥만 가득차 있을 뿐이라며 그녀를 비인간적으로 대하며 가학적인 행위를 한다. 그녀는 오직 가슴과 성기로만 말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흥분한다. 머릿속으로는 온통 아까 본 남자에 대한 환상이지만 그녀의 몸은 현실에서 여전히 충실히 반응한다. 그녀의 정신은 이상에서 현실로, 달콤한 환상에서 육체적 쾌락으로 반복적으로 오고 간다. 현실 그 너머의 것을 소망하면서도 여전히 땅에 발을 디딜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절망적이면서도 다행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 딜레마다. 4시간의 영업을 마치고 오다가 토파즈 반지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신체의 한 부분이 빠져 나간 것 같은 허탈함을 느낀다. 


이 책은 무라카미 류의 단편집이다. 이 소설집에는 비슷한 등장인물이 여러편에서 등장한다. 화류계에서 최하에 속하는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자장가라는 단편에서는 같은 직업의 여자가 결혼해 살면서 좋아했던 음악가의 소식을 티비로 듣고 그의 집을 찾아가기로 맘먹는다. 그녀의 현실은 흐물흐물한 빵을 먹고 있는 보잘것 없는 남편이지만, 그녀는 어쩌면 그 음악가가 자신의 남편이었고 자신이 그의 부인이었을 수도 있다는 환상을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의 집으로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의 꿈은 하나같이 좌절된다. 꿈이 좌절 됐을 때 그들이 가장 처음 알게되는 것은 '현실'이다. 그들이 속해있는 현실은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꿈을 꾸고, 또 결국에는 그들은 '달'에 이르지 못한채 '6펜스'로 돌아오는 삶이다. 그러면서도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들의 소소한 희망들이 왠지 모르게 맘 한켠에 끝내지 못한 숙제처럼 자리를 잡는 기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중병에 걸렸을 때 생기는 변화 하나는, 믿음이 가던 말들과 익숙한 원칙들을 다시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p. 87)


누구든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모든것에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일생에서 잘못된 부분을 생산벨트에서 불량품 찾아내듯 발견하려 할 것이다. 특히, 이러한 과정은 종교인이 바라보는 무신론자에게 매우 유의미 하고 기대감이 들게 하는 순간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평소 ‘신은 위대하지 않다’던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생각할 때 일부 극렬한 종교인들은 그에 대해 서슴없이 악담을 쏟아 부었다. 대표적인 주장은 신을 모독하던 그에게 목소리를 잃게 만드는 식도암에 걸리게 된 것은 틀림없는 신의 징벌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내심 기대를 걸고 있던 이들은 히친스가 자신의 평생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며 사실 신은 실재하면서 나같은 이에게 이토록 큰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히친스는 이러한 소소한 기대를 저버리며 말하기를, 신의 복수라는 것이 고작 과거 자신의 생활방식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암’ 뿐이라면 그의 무기고는 텅 빈 것에 다름 없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벼락을 내리거나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처벌을 가하는 것이 훨씬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유용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그의 걱정은 그가 회복했을 때 이것은 신도들의 기도 덕분이라는 주장 같은 것들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극심한 고통과 방사선 치료를 견뎌 내며 잠깐 잠깐 의식이 돌아오거나 몸이 안정을 찾았을 때 생각나는 것을 모아 놓은 책이다. 삶의 여분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언제 오는지 알 수 없을 때 내가 쓰는 말은 어떨 것인가. 조금도 진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사사로운 말보다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수백가지 말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말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에 대한 비난이나 악의를 두는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죽음을 앞두고 어울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쩌면 우선순위에서 더 중요한 말들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가 어떤 존재에게 악의에 가득찬 말을 쏟아 낸다면 그것은 그에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이 그것이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삶은 죽음을 이해할 수 없다


니체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너를 죽일정도의 고통이 아니라면 너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이 말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누군가에게 들린다면 어떤 생각이 들것인가. 저자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런 격언들이 갖는 무책임함에 대해 냉소한다. 폴린 케일의 말을 인용해 ‘그곳을 사람이 격려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곳’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긍정적인 마음이나 희망적인 생각이 강요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스스로 잘 견뎌내고 있고, 내가 암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암과 나와 싸우고 있는 저자에게도 사람들의 격려는 때때로 오히려 힘빠지게 하는 어떤 것이 되기도 했다. 니체의 이러한 격언 또한 사람들이 죽음을 경험하지도, 눈 앞에 두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저 죽음을 지금의 고통에 비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한다. 사실 우리에게 죽음은 그저 비교 대상이거나, 상대적인 고통의 크기를 비교 할 때 인용되는 정도였던 것이다. 


끝까지 웃을 수 있게


고통의 순간에도 나를 구원해 주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긍정적인 마인드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유머’라고 하고 싶다. 물론 크게 범주화 시키자면 같은 쪽에 속하겠지만 유머는 조금 냉소적인 태도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는 4기 암의 좋은 점이 5기 암은 없는 점이라고 한다거나, 영국을 못 볼것 같냐는 질문을 하는 친구에게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니, 너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는 식의 생각은 보는 우리에게 안타까운 웃음을 준다.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는 사람들에게 이런 느낌을 안겨주는 대표적인 강의였다. 그는 암 말기 환자이지만 여전히 여기 있는 분들보다 팔굽혀 펴기를 잘 할 수 있다고 시범을 보이고, 암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경건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가지고 암 환자를 대하는 이에게 재미 없게 구는 것 만큼 서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없다. 아마도 죽음을 앞둔 변화에서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3분의 1이나 줄어버린 몸무게도, 갑자기 나오지 않게된 목소리가 아닌 그를 불쌍하게 여기는 타인의 시선이었던 같다. 


그의 마지막 장은 아주 짧은 문장들로 이뤄졌다. 글의 길이가 짧아진다는 의미는 그가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짬짬이 여유가 생길 때 온 정신을 끌어모아 글을 썼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일찌감치 죽음의 과정을 인정하고 글을 쓰면서 그에 대한 반응까지 보았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죽고 난 후에 들었을 말들을 여전히 살아서 읽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이는 한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겠지만, 한편으론 괴로운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마지막까지 그는 신이 내리는 벌이 고작 암이라면 그는 그야말로 안쓰러운 존재라고 말하는 자신감을 보이면서도, 오히려 타인의 동정에 대해서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약간의 동정이 서린 말은 의도와 달리 최종적인 느낌을 준다. 과거시제, 도는 마치 고별사 같은 느낌 때문이다. 꽃을 보내는 것은 생각만큼 좋은 일이 아니다. (p. 1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명 그 자체 - 40억년 전 어느 날의 우연
프랜시스 크릭 지음, 김명남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명의 기원을 찾으려는 문제는 항상 양갈래 길에 설 수 밖에 없다. 이 생명체들이 어느날 갑자기 완성된 형태로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가장 작은 원자 단위부터 우연히 생성되어 진화에 진화를 거쳐 여기까지 온 것인지이다. 진화론의 반대편에서 종교적 의미를 과학적으로 윤색한 '지적설계론'이라는 이론이 있다. 지적설계론이란 인간을 비롯한 고도로 정교한 시스템에는 반드시 설계자가 존재할 수 밖에 없으므로 인간은 진화가 아닌 외부의 절대적 존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론이다. 그렇다고 프랜시스 크릭이 '지적설계론'을 뒷받침 하기 위해 과학적 근거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가 그 이론에서 따온것은 바로 무언가가 생명체를 지구에 가져다 놓았다는 사실이다. 종교에서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신'일 것이라는 주장이고, 크릭은 그것이 바로 외계의 이름 모를 생명체라는 주장이다. 


이를 다룬 영화가 종종 있는데, 멀게는 1968년에 만들어진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가깝게는 지난 12년 리들리 스콧이 '에일리언'의 프리퀄 형식으로 제작한 '프로메테우스'가 있다. 특히 프로메테우스는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단순히 외부에서 돌기둥을 하나 세워주는 것에 비해 외계 생명체의 유전자가 우리에게 전해졌다는 근본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초반부에 외계의 생명체는 어떤 이유에선지 지구에 홀로 남겨져 어떤 액체를 마시고 산산히 분해되어 그의 DNA가 지구에 흐르던 물에 뒤섞인다. 이것이 바로 인류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그럼, 책으로 돌아오자. 이 책의 저자 프랜시스 크릭은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생물학자이다. 그렇다고 이 이론이 절대적이라는 근거는 아니지만, 그의 주장이 단순한 상상이나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과학적 근거에 의한 것임을 알려주는 정도는 될 것이다. 그는 레슬리 오겔과 이러한 가설을 주장한다. 수십억년 전 알 수 없는 외계에서 무인 우주선의 머리 부분에 실려 지구에 떨어진 미생물들이 지구 생명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이를 '정향범종설'이라고 한다. 이는 프로메테우스에서 외계의 생명체를 지구에 떨어뜨려 지구 생명의 기원을 만들었다는 이론과 매우 흡사하다. 


저자는 원시수프에서 지금의 생명체들이 생겨났다는 주장에 대해 여러 근거를 제시하며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원시 지구의 대기에서 생명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보자. 1953년 스탠리 밀러는 실험을 통해 원시 지구와 같은 상황이라면 유기화합물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실험을 성공시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때는 크릭이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발견해 발표한 시기이다.) 스탠리 밀러의 실험은 이런 식이다. 원시대기와 비슷한 성분인 메탄, 암모니아, 수소, 수증기를 단힌계에 담아 놓고 방전시킨 뒤 기체를 순환시킨다. 이러한 조건이라면 원시 대기의 성분들은 번개, 자외선, 열 같은 외부 에너지를 통해 유기물의 형태로 바뀔 수 있다는 가설이었다. 이 실험 결과 물 속에는 단백질에서 발견되는 글리신과 알라닌을 포함한 유기 화합물들이 다양하게 들어있었다. 하지만 이 실험의 문제점은 원시 대기에 산소가 어느정도 포함되어 있다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실험은 원시 지구의 대기가 환원성(수소가 다량 함유되고 산소는 없는)이라는 것을 가정했으나, 지금의 연구는 원시 지구가 산화성(산소가 포함된 오늘날 비슷한 대기)이었다는 증거를 여럿 찾아내기도 했다. 물론 여러 증거에도 불구하고 원시 대기의 지구 성분을 밝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저자는 그밖에 여러 근거를 통해 원시 지구에서 생명체가 생겨나는 것은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외부로부터 생명체가 유입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외계의 어떤 생명체들이, 무슨 이유에선지 머지 않아 종말을 앞두고 있을 때 가장 가까운 별 중에서 생명체가 전혀 없는 지구를 발견을 했을 수 있다. 그들이 옮겨 가기에는 가장 가까운 별이 수십 광년이 떨어져 있다면, 이주는 할 수 없지만 자신들의 별에 있던 생명체를 옮길 수 있다면 이는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산소 없이도 살 수 없는 세균이었고, 그들이 지구의 어느 곳에 떨어져 지금의 지구 생명체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큼직한 주장만 모아 놓으니 공상과학소설 같은 면도 없지 않지만 책을 읽다보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이라는 것이 철저한 실험과 증거를 통한 증명의 과정이지만 그 시작은 '가설'로부터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괴리감이 많이 사라진 것은 그의 이론이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면서도 터무니 없지는 않은 그의 이야기를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