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토파즈 - 무라카미 류 걸작선
무라카미 류 지음, 김지룡 옮김 / 동방미디어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토파즈를 검색해 보면 우정, 인내, 결백한 마음과 부활을 뜻하는 보석이라는 설명을 볼 수 있다. 기원은 여러 설이 있지만 이 소설의 내용이 비추어 보면 그리스어의 '토파지오스'에서 유래한 '찾아다니다'의 뜻이 가장 알맞을 듯 하다. 무언가를 찾아 다니는 삶은 언제나 괴롭다. 특히 그가 처한 상황이 무엇이냐에 따라, 가끔은 아주 작은 바람조차도 그들의 삶을 더 힘들게 하기 도 한다.
주인공은 몸을 파는 여자이다. 그 분야에도 분명이 급이 있기 마련일텐데 소설 속의 내용으로 봐서 그녀는 그 중에서도 최하급이라고 볼 수 있다. 외모가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일반적인 관계보다는,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관계의 손님을 상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녀 앞에 중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남자가 등장해 맘을 흔든다. 그녀는 그가 들어갔다 나온 이태리 식당 옆의 보석상에 들어간다. 그녀가 들어오자 마자 상점 주인은 토파즈가 어울리는 손이라고 한다. 그녀는 마치 그의 선물이라도 받아들인양 토파즈 반지를 사고 나와서 그가 갔었던 이태리 식당에 들어간다. 그가 다녀간 곳을 따라가며 그녀는 마치 그의 정부라도 된 것처럼 맘이 설렌다. 그때 마담 언니로부터 야마기시라는 손님을 접대하라는 전화를 받는다.
야마기시라는 손님은 그녀의 머릿속에는 똥만 가득차 있을 뿐이라며 그녀를 비인간적으로 대하며 가학적인 행위를 한다. 그녀는 오직 가슴과 성기로만 말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흥분한다. 머릿속으로는 온통 아까 본 남자에 대한 환상이지만 그녀의 몸은 현실에서 여전히 충실히 반응한다. 그녀의 정신은 이상에서 현실로, 달콤한 환상에서 육체적 쾌락으로 반복적으로 오고 간다. 현실 그 너머의 것을 소망하면서도 여전히 땅에 발을 디딜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절망적이면서도 다행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 딜레마다. 4시간의 영업을 마치고 오다가 토파즈 반지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신체의 한 부분이 빠져 나간 것 같은 허탈함을 느낀다.
이 책은 무라카미 류의 단편집이다. 이 소설집에는 비슷한 등장인물이 여러편에서 등장한다. 화류계에서 최하에 속하는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자장가라는 단편에서는 같은 직업의 여자가 결혼해 살면서 좋아했던 음악가의 소식을 티비로 듣고 그의 집을 찾아가기로 맘먹는다. 그녀의 현실은 흐물흐물한 빵을 먹고 있는 보잘것 없는 남편이지만, 그녀는 어쩌면 그 음악가가 자신의 남편이었고 자신이 그의 부인이었을 수도 있다는 환상을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의 집으로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의 꿈은 하나같이 좌절된다. 꿈이 좌절 됐을 때 그들이 가장 처음 알게되는 것은 '현실'이다. 그들이 속해있는 현실은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꿈을 꾸고, 또 결국에는 그들은 '달'에 이르지 못한채 '6펜스'로 돌아오는 삶이다. 그러면서도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들의 소소한 희망들이 왠지 모르게 맘 한켠에 끝내지 못한 숙제처럼 자리를 잡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