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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행복 - 행복해지고 싶지만 길을 몰라 헤매는 당신에게
법륜 지음, 최승미 그림 / 나무의마음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행복’을 이야기 할 때 나는 종종 원주민들의 원숭이 잡는 방법을 떠올린다. 원주민들은 원숭이를 잡기 위해 나무에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을 내고 그 안에 그들이 좋아하는 먹이를 넣어둔다. 먹이를 잡은 원숭이는 그것을 쥔 채로는 손을 뺄 수 없다. 유일한 방법은 먹이는 놓는 것인데 이를 포기하지 못해 그들은 끝내 사람 손에 잡힌다. 법륜 스님의 ‘행복’을 읽을 때 이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요즘은 특히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그 말은 곧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행복’ 자체를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감은 마음의 안정과 위안이 찾아온다면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감정임에도, 수많은 책과 매체는 '행복'이라는 목표물에 직진하는 방법만을 이야기 한다. 법륜스님의 ‘행복’이라는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행복’ 자체를 목표로 삼는 삶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알게 된다. 열반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깨달음’ 자체를 배우는 것이 어리석은 까닭은, 깨달음은 마음의 욕심을 버리고 무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충만감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행복해지기 위해 '행복' 그 자체를 알려고 하는 것도 주객이 전도된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 삶이 행복해지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법륜스님이 행복한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업은 바로 그 원인을 찾아내는 일이다. 나를 불행하게 하는 원인만 수정할 수 있다면 행복은 멀지 않다.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 나보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화를 참을 수 없는 상황,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가족들처럼 우리에게는 수없는 불행의 요인이 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거기서 거기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기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행복이 단순해 보이는 것과 불행이 해결하기 힘들고 복잡해 보이는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다. 불행한 것은 모든 개인에게 나름의 이유를 만들게 하고, 이것은 결코 내가 약해서나 못돼서가 아니라 이 ‘불행’의 모습이 너무 불가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법륜스님의 이야기로 이를 풀어보자면 이렇다. “그렇다면 그 모든 상황에 모두 다 관계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피해자든 가해자든 모든 상황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답은 당연히 ‘나’이다.
모든 상황에 ‘내’가 들어 있는데도 답이 내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면 정말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법륜스님은 법구경의 한 구절을 빌려 이렇게 말씀 하신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고,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모든 상황에는 그 상황을 돌이킬 수 있는 단서가 있는 법, 법륜스님은 그 답을 ‘나’에게서 찾으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려놓은 후에 내가 다시 집어 들지만 않는다면 고통은 다시 생기지 않는다. 원숭이가 눈 앞의 먹이를 놓고 손을 뺀다면 다시 열매가 널린 숲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그것을 못 잊고 다시 와서 집어 든다면 그 먹이는 그의 마지막 지상의 양식이 될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그래 그렇다면 이 책에서 스님께서 하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이더냐. 라고 묻는 다면. 나는 '기준을 정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기준을 정하는 삶은 지금보다 똑똑한 내가 되어야 하고, 상상 속의 성공에 근접해야 하며, 타인까지 나의 기준에 부합해야 하는 삶이다. 내가 정한 기준을 달성해야 행복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면서 스스로를 옭아매는 발상이다. 행복은 드래곤볼 일곱 개를 모아 단숨에 달성하는 경지가 아닌 구슬을 모으는 지금 순간순간의 느낌인 것이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위로해줄 친구가 있고, 매번 다투지만 아침이면 함께 밥먹을 가족이 있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별탈 없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만든 기준 안의 ‘무언가’가 ‘완성’ 되어야 한다는 생각만 버릴 수 있다면, ‘행복’이 달성되어야할 목표라는 생각만 내려놓는다면 행복이 시작되는 곳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