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후쿠모토 노부유키 원작, 카와구치 카이지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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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후쿠모토 노부유키라면 딱히 떠오르지 않더라도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아는 사람은 꽤 있을 것이다. 모든 승부를 다루는 소설이나 만화가 인생을 축소해 놓은 것이긴 하지만,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그 중에서도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가장 잘 다룬 만화이다. 더구나 고작 가위바위보 같은 게임이나, 조작이 불가능할 것 같은 머신에서 반전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가히 천재적이다. 그의 작품은 지금 현재, '도박묵시록 카이지'가 있고, 만화로는 그가 글을 쓴 '생존' 1,2와 '고백'까지 우리나라에 출판되어 있다. 카이지의 외모를 보고 있자면 이 분은 만화는 남에게 맡기고 글을 쓰는 쪽이 어울리지 않을까 잠시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런 독자의 맘을 알았는지, '고백'은 그가 글만 쓰고 카와구치 카이지가 그림을 그렸다.


고백의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하다. 오와리 산에 오른 두 친구가 있다. 한 친구 이시쿠라는 부상을 당해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고 눈 앞에는 5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가 치고 있다. 도착했어야 할 제3 산장은 찾을 수 없다. 그래도 밤을 지새야 한다면 부상당한 이시쿠라는 죽는게 확실하다. 이제 자신을 포기하고 가라며 이시쿠라가 아사이에게 입을 연다. 사실 5년 전 산악부 사유리를 죽인건 자기였다고. 유일한 친구이자 임종을 지키는 친구 아사이에게 비밀을 털어 놓은 이시쿠라는 그동안의 짐을 털어 놓고 편안히 눈을 감는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것을. 이시쿠라가 모든 짐을 내려놓고 편안히 죽음을 준비하려고 눈(目)을 감으니 희한하게 눈(雪)이 그친다. 그리고 그제서야 둘은 멀지 않은 곳에 산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사이는 이시쿠라를 엎고 산장으로 가며 드디어 살았음에 안도한다. 이제 이야기는 기묘해진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살인 사건을 털어 놓은 친구와 그것을 들어버린 친구 사이에는 묘한 기운이 흐른다. 말한 친구는 들은 친구를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고, 들은 친구는 그 사실 때문에 말한 친구가 두번째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아닐까 두렵게 되었다. 


구조대도 당장 올 수 없는 외딴 산장에서 두 사람의 심리게임이 시작된다. 어느 누구도 선뜻 말을 꺼낼 수 없는 분위기. 의심하고 있는지 물어서도 안되고, 의심하고 있다고 말해서도 안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를 해석하기 위해 온 신경을 쏟는다. 적어도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아니냐는 살인을 고백한 이시쿠라에게 있는 것만은 확실히다. 


모든 것은 극에 달했을 때 그 색을 드러낸다. 후쿠모토 노부유키는 극한 상황에서 보는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카이지의 도박이라는 소재는 극한 상황을 짧은 시간에 보여줄 수 있는 적절한 소재이다. 어른들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려면 도박을 같이 해보면 된다는 것도, 극과 극을 오가는 순간 사람들은 가식을 벗고 가장 원초적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 '고백'에서는 실제로 죽음을 마주 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선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다시 죽음과 멀어졌을 때 생에 대한 욕구는 얼마나 원초적이 되는 지 보여준다. 생존을 위한 첫 번째는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타인은 배제시키는 것이므로 두 사람이 보여주는 미묘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이 둘을 도망칠 수 없는 한 공간에 몰아 넣음으로써 우리는 그들이 아닌 우리 자신의 욕망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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