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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기생충 열전 - 착하거나 나쁘거나 이상하거나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3년 7월
평점 :
기생충은 으레 숙주를 괴롭게 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그들이 숙주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눈치보면서 살아야할 땅에 들어가서 살만하면 터전에 불지르는 일을 자주 일으켰다면 기생충은 이미 절멸했을 지도 모른다. 다만 최종숙주가 아닌 거쳐가는 중간 단계일 경우에는 이야기가 좀 달라지긴 하지만 말이다. 책이야기에 앞서 표지이야기를 하자면, 칼 짐머가 쓴 '기생충 제국'의 표지에 보면 스타십 트루퍼스를 연상시키는 강력한 비주얼의 기생충이 등장한다. 독자가 그 점에 끌린다는 사실을 안 서민교수는 자신의 비주얼을 표지에 등장시키며 기생충을 이기려고 든다는 점때문에 불행히도 이 책의 별하나를 깎아 먹고 만다.
이 책에는 많은 기생충들의 이야기 나오는데 특히 나를 감탄하게 했던 것은 회충이 성충이 되기까지의 경로였다. 간단히 적자면, 사람의 입으로 들어간 회충의 알은 십이지장에서 깨어지며 유충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조금만 아래로 내려가면 목적지인 공장이 있지만 회충의 유충은 혈관을 타고 거꾸로 간으로 간다. 간에서 심장으로, 심장에서 폐로 가서 성장하고, 기도를 통해 식도에 이른 후에야 공장으로 내려간다. 이유라고는 '대단해 보이려고'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과정을 거치면 성충이 되고 짝짓기를 거쳐 20만 개의 알을 낳는다. 이 과정을 보다 보면 '너는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며,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던 안도현의 시가 생각난다. '구충제 함부로 먹지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죽을 힘을 다해 살아 보았느냐.'
모든 생명체가 개체의 생존과 종족의 번식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 중에서도 기생충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생존 과정에 뭔가 애절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 반드시 누군가의 몸을 거쳐야 하는 운명으로 태어나서, 종숙주까지 가기 위해 중간 숙주를 거치는 과정은 내 집을 사기위해 전세집을 전전하는 우리 운명에 다름 없다.
기생충에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 '연가시'라는 영화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일전에 곤충 다큐에서 여치의 몸에 들어가 있는 연가시를 본 적이 있는데 섬뜩하면서도 놀랍기도 했다. 평생을 곤충의 몸속에서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곤충을 물가로 데려가서 유유히 빠져 나오는 모습은 기생충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하고 오싹하게 만들었다. (물론 물가로 데려간다기 보단 사실은 물가에 갔을 때 나오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람에게는 연가시가 위력을 발하지 못하지만 메디나 충이라는 비슷한 기생충이 있다. 물벼룩의 몸속에 있다가 사람이 그 물을 먹을 때 몸속으로 들어와 성충이 되는 메디나 충은 주로 다리 쪽에 수포를 만들어서 발을 물에 담그게 한다. 그때 메디나 충은 수천 마리의 유충을 물에 쏟아 내는 것이다. 유난 물에 발을 담그고 싶어지면 둘 중 하나다. 기생충 아니면 무좀.
대부분 기생충이 인간을 최종숙주로 삼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톡소포자충 같은 경우만 해도 종숙주는 고양이이고 사람이나 쥐는 중간숙주이다. 특히 신기한 것은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를 덜 무서워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고양이 소변을 피하지도 않고 고양이 눈앞에 알짱거리게 만들어서 결국은 종숙주인 고양이의 몸에 안착하게 한다. 말라리아가 기생충이라는 사실도 놀라운데 게다가 사람은 또 중간숙주다. 종숙주가 모기이기 때문에 사람 몸에 들어와서는 꼼짝 못하고 눕게 만들어서 종숙주가 맘껏 빨아들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다. 책에서는 투요우요우 교수가 말라리아 백신 연구로 노벨상에 근접했다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 작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책을 보다 보면 결국에는 '날 것'을 먹지 말아야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다. 멧돼지 육회, 사슴피, 날 뱀 같은 것은 구하는 것이 안먹는 것보다 천 배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사서 걱정을 하게 된다. 서민 교수님은 겁은 잔뜩 주고 '야! 먹어도 안죽어'라고 깐족대는 방위 선배처럼 그렇게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한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손은 병적으로 자주 씻게 된다는 사실이다. 재미는 물론이고, '식자우환'의 진리를 몸소 느끼게 해줬다는 데에 이 책의 의의가 있다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