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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폴 뒤부와의 이 짧은 책은 일전에 읽은 <프랑스적인 삶>보다 훨씬 느낌이 좋은 책으로 다가왔다. 사실 얼마 전에 읽은 <나의 프로방스>라는 책과 소재는 같다. 쓴 사람도 쓴 이유도 다르겠지만 그 소재는 결국 오랜 시간에 걸쳐 집을 고치고 수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깨달음인 것이다.
<나의 프로방스>에서는 프로방스가 좋아 프랑스 남부지방에 정착한 영국인 부부가 집을 고치면서 프랑스 사람들, 특히 남부지방 사람들과 여러모로 갖은 일을 다 겪으며 그 지방과 사람들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면,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는 삼촌이 대저택을 유산으로 남겨주는 바람에 그 집을 수리해서 살려는 타네씨의 얘기이다. 이 책과 비슷한 느낌으로는 <원미동 사람들>에서 연립주택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집주인과 공사를 하는 인부들과의 관계를 그린 얘기가 있다. ‘경계’와 ‘의심’으로 시작한 집주인의 심리가 일군을 이해하고 고마움으로 변하는 심리가 기가 막혔었다. 세 권의 책 모두 소재도 같지만 하고자하는 얘기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어서 자연스레 떠올랐다.
소재는 같은 집수리이지만, 이 책에서는 주로 우리 일반인들의 세상과는 다른 공사판 세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집주인이 영국인이건, 프랑스인이건, 한국인이건, 집주인으로서 집수리를 맡기고 인부들은 공사를 하고 집주인이 공사대금을 지불하는 것은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집주인의 심리가 변하는 과정과 각양각색 인부들의 태도가 우리가 예상치 못하는 곳으로 흘러간다는 점이 재밌고 흥미롭다.
세상을 살면 살수록 이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다는 데에 적잖이 놀라게 된다. 나는 상식선에서 생각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예의가 다른 사람들한테서는 완전히 무시를 당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직장은 어느 정도 익숙해질 것이고, 취미로는 우리가 흥미를 느끼고 매력을 느끼는 곳으로 가게 마련이다. 그러다 우리의 흥미나 관심이 아닌 필요에 의해서 어느 세상과 접하게 될 때,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태도를 보이는 그곳의 세상에 놀라고 황당함을 느끼고 때로는 분노를 터뜨린다.
제목인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는 사실, 그런 다른 세상을 접하며 듣는 가장 흔한 말일 수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공사 태도, 대금 등 여러 가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타네씨가 듣는 얘기는 “당신, 농담해?”인 것이다. 타네씨는 농담한 것이 아니다. 이해가 가지 않으니 질문을 할 수밖에. 하지만 공사판 세상에선 그게 농담으로 들릴 정도로 일반인인 타네씨는 모르는 것이 많은 것이다. 모른다기보다 다른 세상인 것이다.
엄청난 견적비와 공사기간을 말하는 건축업자들과 십장들의 말을 뒤로 하고 알음으로 섭외한 지붕수리공은 제대로 일을 할 줄도 모르면서 되려 큰소리만 치고 일을 망쳐버린다. 일군들의 비위도 못 거스르며 ‘올가미 증후군’에 빠지는 것은 통과의례다. 글자도 모르는 일군, 광적으로 종교에 빠진 전기배선공, 계약금을 받고 약속한 날짜에 오지 않는 일군, 고개만 돌리면 사고를 치는 일군 등등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난다. 약속한 대금보다 더 많은 자재와 시간이 들었다며 대금을 올려 요구하는 건 보통이다. 하지만 평범한 세상에서보다 더 멋진 의외의 보석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도 바로 이런 곳이다. 타네씨가 경의를 표하기까지 하는 아랑그 영감은 그 위엄과 기품으로 타네씨를 감동시키지만, 사소한 실수를 치욕으로 여기며 일한 대가도 받지 않고 피한다.
여러 다른 세계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공사판에선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머리로, 이성으로 이렇게 저렇게 사는 방식보다는 그저 온 몸으로 이 세상을 벅차게 닥치는 대로 사는 것이다. “왜”냐고 아무리 따져도 소용없는 세계인 것이다. 타네씬 결코 완벽한 일군을 바란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평범한 일군을 원했을 뿐인데,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이 아닌 공사판이라 ‘특이한’ 사람들만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되려 타네씬 ‘신경과민’이란 병을 가진 사람이 된다: ‘집을 수리하는 내내 나는 나한테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생기느니 말썽이요, 찾아오느니 도둑놈들일 수가 있단 말인가.’ 타네씨가 그때는 깨닫지 못하지만 결국 ‘공사판이라는 이상하고 야릇한 세계’를 자신의 세계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혼자서 공사판을 벌이려면 우선 그게 과연 어떤 일인가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라는 면에서 그건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 셋을 관리하면서 곧 닥쳐올 세무조사에 대비하는 한편 이혼한 아내의 식구와 새로 결혼한 아내의 식구를 동시에 먹여 살리는 틈틈이 애인을 셋이나 - 그것도 갑상선 부종에 걸린 러시아 여자들로 - 거느리는 것과 거의 맞먹는다고 보면 된다.’
다른 세상을 다르게 알고 다르게 받아들이면 세상의 태클은 오히려 멋진 세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