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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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한번 읽었을 때 소름이 끼쳤다. 뭐, 이런 작품이 다 있어… 찜찜하잖아. 좀 너무 하는 거 아냐? 이런 생각들이 스쳐지나 갔었다. 그래서 다 읽고 던져놓았었다. 내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한 작품집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다 며칠 후에 다시 훑어보았다. 아, 그런데 이건 뭐지? 이 깊고 깊게 느껴지는 작가의 시선, 그녀의 거친 손길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까지 함께 내게 깊은 흔적을 남기려고 다가오고 있었다.

이 작품집엔 수많은 삶에 대한 조롱과 진심이 함께하고 그 삶들은 왜곡과 과장을 통해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귀신과 삶과 욕망과 비뚤어진 성과 불완전한 완벽함과 이 사회의 부조리가 모두 함께 들어있다. 그래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던 첫 단편,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제목은 왠지 은밀할 것 같지만!) 빼고는 모두 읽는 내내 불편했던 것이다. 하긴 이 마음 따스해지는, 순수한 이야기보다는 끔찍한 다른 이야기들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그는 아내의 열정과 욕망에 넌덜머리가 났다. 끊임없이 꿈꾸고 욕망하고 추구하는 아내. 관광가이드에서 통역사로 여행사 경영자로 변모했고, 또 여전히 무언가를 새로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아내. 지칠 줄 모르고 달려드는 그 지긋지긋한 욕망덩어리.’  

이런 아내의 욕망에 비해 할머니의 발 사진을 찍어온 소년 J의 시선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모두를 싸하게 만든다.

‘다 닳아버린 발톱에 심하게 흰 발가락. 허옇게 살비듬이 일어난 발등과 시커멓게 죽은 복사뼈. 늙고 병든 발이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 삶의 지난한 과거와, 곧 걸음을 멈추게 될 조만간의 미래를 말해주는 두 발. 그는 녀석이 들고 온 한 장의 사진 속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진 속의 두 발은 단순히 늙고 병든 발이 아니다. 어느 추운 날 뜨끈한 국밥 한술 뜨는 순간처럼, 가슴 한쪽이 싸해지면서 동시에 훈훈해지는 뭉클함이 들어 있다. 그것은 노인의 발 어딘가 숨겨져 있는 녀석의 시선, 안쓰러움과 뿌듯함과 깊은 애정이 담긴 그윽한 시선 때문이다. 그에게는 이미 사라져버린 육체에 대한 다정함과 동정심. 그는 그 모든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삶은 고단하다. 원하는 대로 살 수 없기에 힘들기만 하다. 어렵던 시절, 구할 수 없었던 그 애를 어깨에 얹어놓고 사는 그녀는 울 수 없다. 아니 울어도 눈물을 흘릴 수가 없다. 그런 삶을 조롱이라도 하듯 그 애는 힘겨운 모두의 삶에 고단함을 더한다. 그녀에게 그 고단함은 삶의 힘이지만.   

‘눈물은 감정의 늪이다. 유약한 인간들만이 제가 만든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법이다. 눈물은 굴복의 다른 이름이다. 아픔과 고통에 대한, 조롱과 비난에 대한, 슬픔과 고독에 대한 굴복의 징표다. 나는 눈물 대신 오줌을 싼다.’

나머지 이야기들 가운데에서 이단뛰기에 성공하고 솔개뛰기까지 도전하는 우리의 위대한 알리, 땀 냄새로만 사랑에 빠지는 동시통역사 고모 얘기는 그래도 나았다. 진실을 밝히겠다며 늪에 도착한 남자, 봄이면 갇혀 지내야 하는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장롱에서 나오지 않는 여자 아이, 완벽한 독신의 삶을 위해 이름마저 우아한 애완견 비숑을 기르다 완벽한 배신을 당하는 불완전한 독신 이야기 등등 모두 찜찜하기 이를 데 없었다.(백가흠 냄새 나!) 물론 그 모두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의 실마리는 아마도 <내가 쓴 것>에 있지 않을까.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진 빚을 갚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외면한 세상, 내가 저지른 실수, 알게 모르게 저지른 세상에 대한 교만과 악행들, 그것에 대한 고백성사이며, 자기 반성이며, 죄사함이다. 세상에 진 빚이 없으니 자유로운 소설이 나온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만이고 자기합리화다. 어찌 이 세계에 무결할 수가 있겠는가.’

현실과 소설의 삼투압 작용이다. 더 이상 이 세상은 숱한 현실이 존재하는 곳만이 아니다. 허구와 과장 모두 들어있는 소설 속 세상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과 허구가 공존하는 세상, 이제 그 어느 것도 하나의 사실이고 하나의 상상이 아니라, 자연스레 왕래하는 세상, 어쩌면 그런 세상에 대한 작가의 시선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깊고 깊은 작가의 시선이 느껴져서 그런가.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고 장롱을 열어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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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밤길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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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공선옥의 단편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땐 공선옥 글의 참맛을 알지 못했다. 그게 너무나 후회가 될 만큼 이 작품집은 정말 보글보글 잘 지진 시골 된장찌개 맛 같다. 지지고 볶는 우리네 삶이 건더기 째, 진하고 못 생긴 된장 그 모습 그대로 들어있다. 가끔은 지겹고도 지겨운 악다구니까지도. 그런 게 우리의 삶이 아니겠는가.

공선옥의 이 글에는 사치와 허영이 들어갈 틈이 없다. 이 작품집에선 삶이 애잔하게 묻어나기도 하고 또 우리네 삶의 진한 슬픔의 냄새가 곳곳에서 풍겨져 나온다. 이런 게 삶의 연륜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운명으로 짝지어진 가족 구성원들의 정(情)과 일상, 그리고 심지어는 심한 투쟁까지도 우리 일상을 어찌나 구성지고 찰지게 잘 표현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깔끔하고 단아한 글맛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공선옥의 글에는 우리의 구질구질한 일상이 지겹도록(!) 더 잘 표현되어 있다.

명랑한 밤길을 비롯 모두 열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작품집은 읽으면 읽을수록 대도시의 뒷골목 어느 한 지붕 낮은 담장 안에서 흘러나올 만한 얘기, 읍내 어느 한 귀퉁이에서 벌어질만한 얘기, 한적한 곳에서 낯모르게 벌어질만한 자잘한 일상 얘기 등이 들어있다. 숭악하게 째리고 소리 지르는 노인부터 되바라질 대로 되바라진 소녀까지 이기적이고 평범한 우리를 모두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생각만 해도 심란한 집으로 재깍재깍 귀가하고 싶진 않았다. 도대체가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것을 가지고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사는 집으로 칼같이 퇴근해준다는 것 자체가 굴욕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그저 그들, 돈 벌어다주는 사람의 노고 같은 거야 제 알 바 아니라는 듯 안하무인으로 주는 돈은 잘도 받아먹는 사람들한테, 그나마 싫은 소리 안하고 돈 벌어다주는 것으로 내 의무는 다한 거다,라고 나를 두둔했다.’

이러한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래도 가족에 대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정이 여전히 따스하게 흐르고 있다. 이기적이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타인에 대한 배려가 숨 쉬고 있기에 어쩌면 우리의 삶은 정말 살아볼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작 울어야 할, 울고 싶은 아버지는 딸에게 울지 말라고 달랜다. 

‘우냐? 울지 마라 악아, 울지 마. 애비 혼자도 추석 잘 쇤다. 울지 마. 악아, 시방 달 뜬다. 울지 말고 달 보거라 이. 달 보고 울지 마라, 악아. 영석이도 하루종일 울다가 이제 달 보고 안 운다. 너도 달 보거라. 달 보고 울지 마라.’

아, 우리 인생은 왜 이렇게 슬픈 거냐 말이다. 왜 이렇게 마음 한 구석 싸하고 눈물이 절로 흐르는 거냐고. 왜 우리는 이렇게 나만 중요한 걸까. 왜 정상인(!)은 불륜도 사랑이라면서, 병신이 사랑해서 육갑하면 안 되냐고.

“응, 웬 병신들이 지들도 사람이라고 육갑을 하고 있대나 뭐래나. 나 원 참, 둘이 보듬고 와들와들 떨고 있드만.”

‘사랑, 그까짓 게 다 뭐야, 사랑 없으면 어때……’라고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아픈 건 정작 사랑 때문이리라. 사랑은 그래도 이렇게 힘들고 슬픈 일상에 작은 빛이고 삶에 대한 희망 같은 거니까. 이렇듯 장애아 엄마가 하는 사랑을 지켜보며 딸은 때론 기가 막히고 때론 지긋지긋하다. 그러면서도 그 엄마를 위해 미역국을 준비하는 딸, 이런 지겹고 질긴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지독한 우정’인지도 모른다고 공선옥은 그리고 있다.

어쩌면 가족이란 건 떼어낼 수 없는 수족과 같아서 몸에 달려 있고 붙어 있을 땐 잘 모르고 함부로 대하다가 어느 한 기관이 잘못되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치유해야 하면서도 그 과정 동안 지독히 미워하고 투쟁하는 관계가 되어버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비뚤어진 관계는 다시 제자리로 돌리기가 힘들다. 무능력하면 무책임하게까지 되는 지독한 소용돌이 속에 갇혀 버리는 가장, 그 가장을 어찌 할 수 없는 가족의 엄마. 이런 마음, 저런 마음 다 내다버리자고 마음을 먹으면서도 결국은 또 다시 원점. 이게 바로 공선옥이 부끄러워하며 우리에게 보여주는 우리의 남루한 살림살이인 것이다.

공선옥,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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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리 홀 원작, 멜빈 버지스 지음, 정해영 옮김, 박선영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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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남성들이 힘차게 도약하며 백조의 날개를 퍼덕이는 춤을 본 적이 있었다. 정말 그랬다. 백조들이 하늘로 날아오를 때면 분명 그렇게 힘차게 날아올랐을 텐데, 그 동안 우리가 본 건 핑크빛 발레복을 입고 종종거리던 발레리나들뿐이었다. 어쩌면 정말 많은 백조들이 실제로 날아오를 땐, 빌리가 추었을 그 남성다운 발레의 도약과 더 가까웠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 이야기는 빌리의 이야기이다. 영국의 한 광산촌에서 아버지와 형은 광산 철폐에 대항해 파업에 참여하고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친구라고는 여자처럼 치장하기를 좋아하는 마이클 뿐이고 아버지는 하기도 싫고 잘 하지도 못하는 권투를 하라고 빌리를 떠다민다. 하지만 빌리는 여자 아이들이 하는 발레가 더 적성에 맞고 자신도 그걸 더 잘하는 것처럼 느낀다. 물론 마음속엔 남들이 뭐라고 할까라는 걱정 이전에 자신이 발레는 계집애들이나 하는 것이고 남자답지 못하다고 스스로를 더 채찍질한다. 그러면서도 발레에 끌리는 자신을 어쩌지 못하고 권투 대신 발레를 한다. 어쩌면 그 당시의 영국 사회에서 먹고 살려면 광산 일처럼 남성다운(!) 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누구나에게 각인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건 빌리의 아버지나 형 토니의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하지만 빌리는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점점 더 발레에 빠져들고 점점 더 어려운 발레 동작을 연습하고 한 가지를 해냈을 때 느끼는 기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발레 선생님의 도움도 있었고 친구들의 격려도 있었지만 빌리가 당시 상황을 딛고 일어서게 된 데는 친구들의 도움도 컸고 또한 배신자의 대열에까지 서려고 했던 아버지, 심지어 우격다짐을 하는 토니형 그리고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도움을 줘서이다.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이다. 빌리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처럼 그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시작할 때는 약간 몸이 뻣뻣해지지만…… 막상 춤추기 시작하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하나도 안 느껴지고…… 그래요. 마치 내가 공중 속으로 사라지는 기분이에요. 내 몸 안에 불길이 치솟고 난 거기서 날아가요. 마치 새처럼요. 마치 전기처럼요……. 그래요. 그건 전기 같아요.”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물론 난 영화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봤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빌리의 춤을 봤을 테니까. 새처럼 멋지게 도약하는 그 모습을 말이다. 그 모습은 아마도 단순한 발레 이상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모든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고자 노력한 소년의 모습, 그 모든 것이 들어있는 춤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 이야기는 한 소년의 대단한 성장기다. 남성들의 힘찬 백조의 춤처럼 멋진 성장기다. 흑백과 컬러로 중간 중간에 들어있는 그림도 약방의 감초 같고 청소년다운 반항기 어린 사고나 대사 모두 매력 만점이었다. 우리 청소년들도 부모님들도 모두 이 책에서처럼 함께 멋진 최고의 춤을 출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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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거짓말
기무라 유이치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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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사랑을 빼면 뭐가 남을까?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나이가 많건 적건, 여자건 남자건, 우리는 한번쯤 로맨스를 꿈꾸는 것 같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고 또 그래서 소설을 읽는 게 아닐까.

이 작품은 소박한 일본식 로맨스 소설이다. 할리퀸 문고에서처럼 멋진 남자와 예쁜 여자의 전형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알고 보면 그것에서 멀지 않다. (참고로 할리퀸에서 남자는 늘 구릿빛 피부의 부자 왕자님과 다를 바 없고 예쁜 여자는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알고 보면 최고의 섹시 미녀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로맨스는 꿈이다. 실제로 안 일어나도 누구나 꿈꿔볼 수 있는 로맨스. 하지만 꿈은 언제나 꿈일 뿐이다. 어느 평범한 여자가 길을 가다가 어느 부잣집 왕자님을 우연히 만날 행운은, 더구나 그 왕자님이 그녀의 평범함 속에 감춰진 보석을 단숨에 알아차리는 경우란 얼마나 드물 것인가 말이다. 

이 작품이 로맨스 소설이라는 것은 신인 드라마 작가라는 신분을 자의반(슬럼프로 인한 포기) 타의반(아무도 그의 과거를 묻지 않으므로)으로 속이고 작은 도시에서 바텐더를 하는 히사노리(실제론 나오키)와 그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라멘집 처녀 고토미의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의 싹틈, 신인작가의 비밀스러운 재기, 사랑의 오해, 그리고 사랑의 갈등이 해피엔딩의 결말을 맺으며 둘의 오해가 풀리는 단순한 구성은 심플하면서도 담백한 로맨스의 수순을 밟는다. 

대신 이 로맨스는 일방적으로 여자를 요트에 태우거나 최고급의 드레스를 선사해 상류층이 모이는 파티로 여자를 데려가는 황당한 로맨스가 아니다. 우산을 나눠 쓰는 것으로 시작하는 아주 소박한 사랑이다. 작은 도시의 바텐더와 라멘집 처녀라는 설정도 너무나 평범한 우리 같지 않은가.

이 로맨스는 또한 인간적이고 따스하다. 히사노리와 고토미의 아기자기한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작은 도시라도 누구나 어떻게든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통해 인간적인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천재적인 신인작가 나오키가 글이 써지지 않아 무작정 도망쳐 작은 도시의 바텐더 히사노리가 되어 오히려 글이 쓰고 싶어지는 것은 그러한 인생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 있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각자 자기에게 솔직하게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촌스럽고 보기 흉해도 땅바닥을 발로 밟아가며 걸어가고 있다. 그렇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인생의 맛이 진국이다.’

사랑은 그게 어떤 것이든, 누구든 나오키가 쓴 드라마 주제가에서처럼 그 모든 걸 감싸주는 게 아닐까.

‘나만 알았고, 속도 좁았고, 거짓투성이, 나였는데도 언제나 날 감싸주었던 사람, 그래 너뿐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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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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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속되었다. 퀴즈쇼에서 우승한 대가로.’라는 프롤로그로 이 작품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이 얼마나 재밌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시작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보기에 꽤 두꺼운 이 책이 정말 얼마나 재밌던지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행복해졌다. 인생의 우여곡절이 이보다 더 할소냐. 또한 권선징악을 이렇게 속 시원히 즐겁게 표현한 작품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알랭 드 보통이 우리에게 선배 철학자들의 철학을 통해, 우리가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우리에게 그 선의 대가가 오는 게 아니라는 걸 가르쳐도, 우리는 여전히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이렇게 착하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인생이 우리에게 그 대가인 행복을 선물하겠거니 기대하고 산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우린 또 다시 불행에 빠지고 세상을 원망하고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우리가 선하게 살다 보면 아무래도 불행한 일보다는 행복한 일이 더 많이 생기지 않는가. 선이란 건 그 결과를 꼭 기대하지 않더라도, 베푼 순간 이미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도 하니까.

내가 생각하는 인도는 양 극단의 나라다. 한편에선 가난과 무지가 다른 한편에서는 수행과 초탈이 최첨단 IT 산업과 함께 공존한다. 또한 카스트 제도로 인한 극과 극 또한 기가 막히고, 대부분의 여자가 태어나는 것 자체가 죄일 정도로 끔찍한 상태에서 산다. 이는 가난한 남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가난하면 존재 자체를 위협받게 되는 특이한 나라가 바로 내가 생각하는 인도다.

프롤로그에서 이미 주인공이 퀴즈쇼에서 1000루피짜리 첫 문제부터 10억루피짜리 열세 번째 문제까지 모두 맞춰 우승해서 구속되었다는 건 말했다. 여기부터 의문이 제기된다. 어떻게 가난한 20대의 바텐더가 퀴즈쇼에서 우승하게 되었을까? 천재일까? 하지만 인도에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주인공이 천재라고 해서 퀴즈쇼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 그럼 왜 잡혀갔을까? 그 이유는 경찰들이 위의 의문들을 우리네 독자와 똑같이 가졌기 때문이고 10억루피라는 어마어마한 상금을 건 쇼의 특성상 그렇게 일찍 우승자가 나오면 광고 등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 의문과 이 결과에서부터 이 작품은 시작된다.

‘그들은 내가 끌려가는 이유를 구태여 알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찰 두 명이 내 오두막을 덮쳤을 때 나조차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존재 자체가 불법인 사람이 한치라도 더 차지하려고 몸싸움을 하고, 똥을 누려 해도 길게 줄을 서야 하는, 가난에 찌든 도시 변두리에 산다면 경찰에 끌려가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구속영장에 이름이 적히고, 경찰차가 붉은 경광등을 번쩍이며 찾아와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그런 일을 자초했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퀴즈쇼에 참가한 게 잘못이었다고! 그들은 내게 손가락질을 해대며, 부자와 가난뱅이를 구분 짓는 선을 절대 넘지 말라고 했던 다라비 어른들의 교훈을 일깨워줄 것이다. 결국 빈털터리 웨이터가 두뇌를 겨루는 퀴즈쇼에 참가해서 무슨 짓을 하겠는가? 두뇌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신체 기관이 아니다. 우리는 손발만을 사용해야 하는 천민이다.’

정말 읽어갈수록 기가 막힌다. 주인공은 변호사에게 첫 번째 문제를 맞히게 된 배경과 경위를 설명하는 것으로 얘기를 풀어나간다. 이야기는 열세 번째 문제까지 정말 손에 땀을 쥘 정도로 흥미진진한 주인공의 삶과 얽히고설키며 전개된다. 인도라는 나라의 특성, 고아로 버려져 여기저기 떠돌게 되는 주인공의 삶이 파란만장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끼어 이야기는 마치 속도를 제어할 수 없는 초고속 열차처럼 달려가는 것이다.

어찌 보면 주인공은 쉽게 그냥 세상에 운명을 맡기고 남들처럼(!) 살 수도 있었다. 불의에 눈감고 사랑도 포기하고 우정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면서 말이다. 약간의 머니에 행복해하고 먹고살 수만 있었으면 그냥 수십억 인구의 인도인들이 그렇게 살듯이 현세는 아무것도 아니니 그냥 사후 세상을 믿으며 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러지 않았다. 주인공은 불의를 참지 못했고, 우정을 소중히 여겼으며, 신의도 지킬 줄 알았고, 사랑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았다. 그래서 운명은 주인공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영웅이란 소리는 아니다. 그는 그저 선하게 살려고 애썼을 뿐이다. 그런 그를 운명은 그리고 세상은 모진 풍파의 파도 속에 휘감아버렸지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신념을… 그의 행운은 모두 그의 선(善)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 드러나는 진실들은 얽히고설켰던 매듭들이 하나씩 풀어지듯, 처음에 우리가 가졌던 모든 의문들에 대한 답을 준다. 역시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특히나 선이 승리할 때에는 더 더욱. 최고의 권선징악의 작품, 이보다 더 즐거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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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8 1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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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8 15: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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