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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만찬 - 공선옥 음식 산문집
공선옥 지음 / 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전남 곡성, 나는 그곳을 모른다. 하지만 그 이름에서부터 고소하고 찰진 음식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오는 건 어찌된 일일까. 어쩌면 그건 내가 이미 공선옥의 글을 알고 전라도 음식의 유명세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친구들끼리, 가족끼리 그런 소릴 한다. 전라도에서는 아무데나 들어가서 음식을 먹어도 맛있고 경상도에서는 맛있다고 사람들이 데려간 곳도 맛이 별로라고. (경상도 사람들아, 용서하시라. 어쩌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전라도로 놀러갈 땐 한번도 도시락을 싸거나 먹을거리를 준비해가지 않는다.
공선옥이 우리에게 차려주는 행복한 만찬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어찌 보면 미쳐가는 요즘 세상의 먹을거리에 대한 일침이자 외침이고 또 어찌 보면 가난했던 그 시절에 먹었던 것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과 향수이다. 먹을 것도 많지 않았고 늘 허기졌기에 그것들이 더 맛났던 걸까. 그것들은 다만 과거의 전유물이었을까. 지금은 먹을 것도 많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늘었다. 하지만 우린 왜 더 해피하지 않은 걸까. 이 글을 읽으면 그 이유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부뚜막에 걸터앉아 물에 만 찬밥을 먹어도 해피했던 시절이 우리 누구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한 그릇의 쌀밥 속에서 나는 찔레꽃 향기를 맡는다. 쌀밥 속에 들어 있는 게 어디 향기뿐인가. 쌀밥을 보면서 나는 뻐꾸기 소리도 듣는다. 내가 밥을 먹으면 찔레꽃 향기와 뻐꾸기 소리도 함께 내 속으로 들어온다. 만날 여름만 계속되는 베트남 쌀보다 우리나라 쌀이 맛있는 이유는 아마 봄의 찔레꽃 향기와 뻐꾸기 소리, 여름의 매미 소리와 칡꽃 향기, 가을의 국화꽃 향기와 바람 냄새, 쓰르라미 소리들이 모두 그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글 속엔 그 옛날 우리 부모님의, 우리 시골의 모든 세월이, 시절이 녹아 있다. 고구마 밥에도 그 이름도 예쁜 보리밥에도 백날 묵어도 탈나지 않는 무시에도 가장 마음이 정갈해지는 가죽나무 잎 부각이 놓인 밥상에도 무욕의 음식 대사리탕에도 시커먼 토란잎 무침에도 짜고 짜진 시래기 된장국에도 세상에 쓴 것도 맛있다는 걸 제대로 알려준 머구에도 ‘꽃밭에 방애잎’에도 정다운 님에게 주고픈 솔들에도 밀가루 반죽을 도르르 말아 총총 썰어 끓인 돈부죽에도 열매도 맛있지만 잎도 맛있는 호박에도 달래 냉이 씀바귀 등의 봄나물에도 어린 시절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추어탕 메밀 딱주에도…
그게 바로 공선옥이 우리에게 차려주는 행복한 만찬이다. 공선옥의 펜 아래에 펼쳐지는 맛난 음식들이 맛나다. 그의 기억 속에서 나오는 음식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차곡차곡 떠오르는 추억이고 향수이다. 그 시절, 가난했지만 가난하지 않았다. 그 시절, 먹을거리가 없었지만 먹을거리가 없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계시고 그런 집에 나도 살고, 우리 모두가 살아서 우리 집 마당이 저리도 풍성한 것이로구나, 살아 있는 것은 참으로 고맙고, 눈물 나고, 가슴 뻐근하고 그런 것이로구나. 그리하여 나는 마당의 풍경들을 앞으로 보고, 옆으로 보고, 뒤돌아보고, 그러다가 다시 훔쳐보듯이 보고, 또 보고 하였던 것이다.’
고소하고 찰진 음식과 이렇게 따스하고 자연스러운 글에 또한 잔잔한 공선옥식 유머는 덤이다. 읽다 보면 눈가가 촉촉해지고 입안에 침이 고이는 동시에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도 공선옥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호박꽃도 꽃이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 호박꽃이 꽃이지 그럼 풀이냐? 나무냐? 좋은 일 생길 때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다고 좋아할 때는 언제고, 호박씨 깐다느니, 호박꽃도 꽃이냐느니 한단 말인가. 그런 사람은 앞으로 호박은 먹을 생각도 말아야 한다고 이 연사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인데 하여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