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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신의 어떤 오후
정영문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처음에 이 책을 받자마자 벌어진 일 때문에 지금도 괜히 웃음이 난다.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었는데 잠깐 서류를 주러 왔던 수이씨가 책을 펼쳐 보더니 정말 그야말로, “헉!” 했다. 뭣 때문인가 했더니 작가 사진 때문이었다. 가운데 가리마를 한 긴 곱슬머리 때문이었을 게다. 근엄한 표정으로 언뜻 남미나 스페인계의 얼굴과 비슷하단 느낌을 받았다.
정영문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의외의 독특한 문체 때문에 처음엔 무척 신선했고 나중엔 좀 지루하단 느낌을 받았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문장들이 마치 인간 심리의 단절과 그 이어짐을 보여주는 듯했고, 평소에 보던 문장들보다는 한 단계, 아니 두 단계 정도 앞질러 달려 나가는 느낌이었다. 보통은 어떤 상황이나 심리를 표현하는 방식은 ‘이랬다’ ‘저랬다’ 등에서 끝나지 않는가. 그런데 정영문의 문장은 “이랬다. 그렇다고 해서 저런 건 아니었다. 그건 사실 요랬다.” 등등 마치 상황이나 심리를 좀 더 멀리 끌고 가는 것 같았다.
<브라운 부인>과 <목신의 어떤 오후> 등 모두 열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마지막 세편은 <동물들의 권태와 분노의 노래>라는 같은 제목에 서로 다른 소제목을 달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마지막 세 작품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동물들의 권태에 내 권태가 합쳐지듯이 질질 끌며 간신히 읽었다.
나머지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개인적인 인간들의 ‘표현되지 않는 개인성’을 나타내는 듯 싶었다. 즉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혼자 있어도 대화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씩 어긋나는 느낌이고 고립성이 느껴진 것이다. 그건 고독이나 외로움, 소외 그런 것과는 다르게 그냥 자신만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의 내면성 같은 느낌이었다. 그 내면성은 모두 각 개인에게 고유한 개인성이고 그 개인성은 다 표현되지 않는 것 같았다.
배경은 지루하리만치 고요하고 목가적이고 자연적이다. 그런 자연 속에 있는 인간 개개인도 하나의 배경처럼 처리되는 것이 독특한 문체와 맞먹는다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글이나 그가 그리는 세상이 우울하거나 절망적이거나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이 또 다른 독특한 점이었다. 무의미한 일상, 무의미한 생각, 무의미한 행위가 있을지언정 내용은 무의미하지 않고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과 세상의 느낌이었다.
‘계속 이어지는 닭 울음소리에 차츰 정신이 든 나는 가만히 누운 채로 그 소리를 들으며, 닭은 하루에도 여러 번 울지만 닭 울음소리로는 새벽에 우는 것만한 것이 없으며,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닭 스스로도 밤사이 자고 난 뒤 새벽에 처음 우는 울음을 최고로 여기며 그것에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조금 후에는 닭으로서는 새벽에 다른 닭이 자신보다 먼저 우는 것은 무척 김이 빠지는 일이며, 또한 다른 닭이 자신보다 더 큰 소리로 우는 것은 무척 맥이 빠지는 일일 수도 있다는, 다소 얼빠진 생각을, 어떤 커다란 위험에 처하게 되어 그것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빠르게 했다. 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약간 우습게 여겨졌고, 그래서 나는 기분이 몹시 좋았다. 나는 계속해서 누운 채로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