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통장 콘서트 - 가정경제의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 이야기
이광구 지음 / 정보와사람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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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경제의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 이야기’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돈’과 ‘돈을 계획해주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돈!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개도 안 물어가는 돈이 도대체 뭐길래 우리들은 그렇게 돈을 좋아하는 것일까. 그렇게 누구나 돈을 좋아하지만 그 좋아하는 돈을 어떻게 ‘잘’ 벌고 ‘잘, 계획성 있게’ 쓰는 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은 흔히 ‘먹고 죽을래도 그 놈의 돈이 없다’고 한다. 마치 돈이 적어서 아무것도 못해 불행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당장 지갑을 열어보라, 통장을 열어보라. 돈이 정말 없는가. 아니다. 얼마간의 돈이라도 우리 누구나 돈이 있다. 이 책은 그 돈(비록 적을지라도!)을 어떻게 관리해야 그 돈이 제대로 쓰이고 돌아가는지 그 길을 열어주는 책이다. 
우리가 돈에 대한, 돈 관리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만 하고 있다면 돈이 많고 적고는 중요하지 않다. 여기 나오는 재무상담사들의 재무상담에 관한 이야기들과 그들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적어도 돈과 우리 삶에 대한 관계, 돈 관리에 대한 필요성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꼭 재무상담을 받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 책은 두 가지 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포도재무설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재무상담을 한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재무상담사들의 개인적이면서도 진솔하고 소박한 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즉, 기업을 바탕으로 한 ‘재무상담사’라는 직업에 관련된 이야기와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책 자체는 전체적으로 돈과 돈 관리 등에 관한 이야기부터 많은 사람들의 작은 에피소드들까지 시종일관 편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포도의 교육과정에 ‘아리랑 인생 곡선’이란 시간이 있다. 각자 살아온 과정을 곡선을 그려가며 이야기 하는 시간이다. (...) 나름대로 다 아픔과 부족함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 가방끈, 사회적 지위, 돈, 가문,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활이 중요하다는 걸 체득하게 했다. 열등감을 이겨낼 힘을 길러줬다. 아리랑 인생 곡선은 그 열등감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놓고 얘기하도록 하는 장치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면 그건 열등감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는 가치기준으로 자신을 잴 때 열등감은 뿌리를 깊게 내린다.’ 

처음에는 월 1천의 수입이 넘는 전문직 가정이나 자영업자들의 예가 나와 나 같은 피라미는 해당이 안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읽다 보니 파산신청을 해야 했던 사람들을 위한 부채클리닉까지 다양한 예가 나왔고 월 1천이든 1백이든 재무설계의 원리는 같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빚더미에 앉은 사람들에게 희망통장 얘기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또 버는 게 뻔한 월급쟁이가 무슨 재무설계냐는 식의 생각을 하고 있던 내게도 인식의 변화를 주었다.

“돈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도성입니다. 저희는 쓰지 않고 모으는 것이 꼭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쓰되 그것을 자신이 의식하고 쓰는 게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기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 하는 게 최선이 아니라, 의사 선생님의 삶을 더 풍부하게 하는 방향으로 기부도 활용되어야 합니다.”    

재무상담사의 덕목을 꼽아보면 고객이 편하게 이야기하도록 분위기를 맞추라, 고객의 수준에 맞게 잘 말하라, 수리능력과 봉사정신 그리고 종합하고 추론하는 덕목까지 갖췄거나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관심을 가져볼 분야이다. 아직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 있는 전문직, 재무상담사, 특히 이 책에 등장하는 상담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단순히 재무관리 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뒤에 큰 산이 버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떤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성심을 다해 인생에 대한 조언까지 해주는 상담사들이 바로 그 산이다(여기 나오는 상담사들도 그놈의 돈 때문에 별별 우여곡절을 다 겪은 얘기가 나온다). 
예전에 직장에 첫발을 디뎠을 때 돈에 관해 읽은 책 가운데에서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돈을 모으려면 우선 은행에 친한 직원을 만들어라가 첫 번째 조언이었다. 그 말은 은행의 이율이나 세금우대 등 ‘조건 좋은 상품들’을 항상 제일 먼저 접하기 때문이리라. 또 늘 쪼들리는 내가 우리 직원들한테 듣는 말, “제발 저축량 좀 줄이세요”라는 말은 결국 내게도 전문적인 재무설계 상담이 필요하다는 뜻이겠다. 그렇게 아끼고 저축하는 나조차도 재무설계를 받고 나면 그 상담료보다 더 얻는 게 많으리라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만큼 재무설계의 필요성에 설득 당했다는 말이다. 
돈에 관한 경제적인 이야기, 그 돈을 관리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제적이면서도 진솔해서 마음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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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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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탄탄한 스토리에 뛰어난 구성, 치밀한 추리, 게다가 적절한 상황 분석까지 마치 기욤 뮈소나 폴 오스터 등의 작품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이런 비교가 작가에겐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만큼 이 작품이 그동안 읽었던 세계적인 작품 만큼이나 작품성이 뛰어나고 세계 어디 내놓아도 전혀 빠지지 않을 만큼 보편성과 세계성도 띄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어디선가 읽었던 느낌,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그만큼 현실적이고 도회적인 요즘 이야기이기 때문이리라. 
실종이냐, 유괴냐, 가출이냐? 겉으로 보기엔 무탈하고 평온한 한 가정이 실은 속으로 처음부터 삐걱거리던, 불안정한 벤치 같은 가정이라는 사실이 아이가 사라짐으로써 온통 속살이 드러나면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구성원의 진실이 나타난다. 단 한번의 일탈이 삐걱거리던 벤치를 완전히 산산조각내고 만 것이다. 
자신만 불쌍하고 외롭고 자신만 바라보던 시선은 아이가 사라짐으로써 가족 구성원인 타인을 바라보고 미소 짓고 희생하게 되는 것, 그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되찾는 길인지도 모른다. 그럼으로써 겉으로만 무결한 불안정한 가정이 아니라 상처로 가득한 진정한 가족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가족들은 서로에게 외면의 예의를 지키고 겉으로 평화를 유지하면서 굳이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알고자 하지 않는다.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안위를 지켜주고 무관심이 자신을 보살펴주는 보호막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깔려있는 인종 간의 무지막지한 편견,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인지 아닌지 모르게 되는 남녀간의 관계,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이라기보다 단지 자본이 움직이는 흐름을 따르는 비밀 비즈니스는 우리에게 국가적인 이방인, 이질감과 소통이 불가능한 가정의 모습을 우리 앞에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엄마, 아빠, 누나. 그런 유의 혀 짧은 단어들에서 배어나오는 비릿하고 달착지근한 냄새는 그를 두렵게 했다.’ 가족의 둘째 혜성의 생각이다. 

‘이전의 케이스들과 다른 점이라면, 이번 남자는 그 말을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했다는 사실이었다. 소심한 남자는 전화로, 비겁한 남자는 문자메시지로, 그 정도 성의도 없는 남자는 연락두절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곤 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은 처음이었다.’ 가족의 첫째 은성의 생각이다. 

‘변화 없는 소소한 습관들은 언젠가 인생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것이다.’ 아버지의 생각이다.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랐었다. 타이베이의 어떤 연인들도 같이 가지 않는 곳, 남의 사랑을 시기하는 신이 있어 어떤 애절한 인연도 단칼에 갈라놓는다는 그곳, 지남궁에 이번에는 반드시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아직도 때가 아닌가보았다.’ (새)엄마의 생각이다.

‘누가 뭐라 해도 결단코 바뀌지 않는 것을 진실이라고 부를까? 알 수 없었다. 세상은 진실의 외피를 둘러쓴 악의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아이가 짐작하는 건 겨우 그뿐이었다.’ 막내 유지의 생각이다. 

하필 일요일 저녁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서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 새벽 4시까지 쉬지 않고 읽었다. 그만큼 대단하게 느껴졌고 흥미진진했다. 더구나 추리물이어서 도대체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만큼 스토리는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에서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다. 꽤 두꺼운 책이었지만 얼마나 긴박하게 읽었는지 모른다. 

‘진심을 다해 이 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말이 쓸쓸하게 와 닿는다. 그 말을 하지 않아도 이 작품 자체로 그 진심이 독자들에게 통할 거라고 믿는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이십 대가, 사랑과 연애가, 현실과 이기심이 도회적인 감성으로 잘 어우러졌던 전작들, 세 작품이 무색할 정도로 멋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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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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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팠습니다. 이 책을 읽고 밤새 아프고 회사에 갔다가 반차를 낼 정도로 아팠습니다. 이런 책, 정말 읽고 싶지 않습니다. 슬프다는 말로도 감동적이라는 말로도 충분하지 않은 책입니다. 울다울다 머리가 아파지고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프고 밤새 자다깨다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일개 독자가 이랬는데 이 작품을 쓴 작가는 도대체 뭡니까. 가슴에 얼마나 많은 대못이 박혔길래, 우리가 우아한 거짓말로 얼마나 우리 아이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길래, 우리 천지를 둑게 했을까요. 그 뒤에 남은 아이들, 가족들은 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요. 학교 다니는 아이를 가진 부모가 과연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요.  
처음엔 <완득이> 작가니까, 요즘은 왕따도 일상이고, 공부 스트레스에 자살하는 아이들도 있으니까, 학교 다닐 때 자살 생각 한번 안 해본 아이가 있을까, 그래도 대부분 결국엔 별 탈 없이 살아가니까, 하는… 이런 철없는 생각으로 책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지나가는 아이들이 모두 예사롭지 않게 보이네요. 
비록 천지의 자살이 전제되긴 했지만 <완득이> 작가답게 경쾌한 문장들, 가족간의 애증이 담긴, 유머 섞인 대화들로 시작한 책은 중반을 넘기면서 점점 더 마음을 조여오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천지는 유서 없이 둑었고,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으므로 어쩔 수 없었던, 아무렇지 않아 보였던 가족… 남은 사람들은 살아가야 하니까. “산다는 게 그렇게 좀스럽고 치사한 거야.”라는 엄마 말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서서히 드러나는 가족의 처절한 아픔, 서서히 나타나는 천지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남은 사람들은 더 아파집니다. 둑고 싶을 만큼. 하지만 그 마음을 안고 살아야 하는 아픔입니다. 우아한 거짓말을 한 벌로. 아무렇지 않아 보이던 천지의 마음을, 진심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벌로.  

“죽었다는 사실에 거짓을 섞어 진짜처럼 꾸며낸 이야기. 나에 관한 황당한 이야기의 시작에는 늘 화연이가 있었습니다.”  

천진한 얼굴로 벌이는 영악한 행동을 한 화연이, 당하기만 하는 천지가 답답하답시고 천지 마음에 못을 박는 미라. 아이들이 하기에는 너무 나쁜 일들이지만 그게 또 아이들이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요. 자기 마음에 안 드니까 어떻게든 상처 주고 싶은 마음, 사랑받지 못하는 초조함에 남에게 미움을 받게 만드는 행동, 같은 아이들이지만 그런 일을 당하는 천지의 마음에는 서서히 하나, 둘 못이 박히고 그 못은 점점 더 깊이 박혀서 그 누구도 빼낼 수 없는 깊이까지 들어가 버립니다.  

“그랬습니다. 그 순간에도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내 몸에, 겁이 났습니다. 점점 흐려지는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미안합니다. 이제, 갑니다.”  

진심이 아니면 차라리 우리 아이들에게 말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이런 저런 겉만 예쁜, 우아한 거짓말을 하느니, “잘 지내니?” 그냥 진심 담긴 한 마디만 해야겠습니다.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여도 한번 더 바라보고 계속 지켜봐야겠습니다. 남은 많은 날들, 뭐든 할 수 있는 미래를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가 지켜줘야겠습니다. 
천지가 남긴 다섯 개의 봉인실은 모두에게 사랑과 미안함을 전하고 모두를 용서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부러웠던 언니인 만지, 미운 화연이에게는 용서를, 가슴 깊이 꽂히는 말을 참지 않았던 미라에겐 그 웃음을 기억하며 용서를, 그리고 자신에게 남기는 마지막 봉인실… 
이 책은 절 아프게 만든 책입니다. 하루 일당이 얼만데 회사에 반차를 내게 한 책입니다. 머리도 아프고 가슴도 찢어질 만큼 아프게 한 책입니다. 약 먹고 자고 나서야 조금 괜찮아졌습니다. 자식도 없는 노처녀도 이렇게 아프게 만든 책입니다.  

아이 가진 부모님들, 마음 단단히 먹고 읽으시길 바랍니다. 진심이 아닌 우아한 거짓말은 아이에게 세상을 포기하게 합니다. 진심이 담긴 말이 아니라면 우리 모두 차라리 입을 다물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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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11-25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곧 읽을 것이긴 한데 진달래님 리뷰 읽으니 왠지 겁이나네요.
전 그저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인 줄 알았는데. 아픈 건 싫은데...ㅠ

진달래 2009-11-25 13:20   좋아요 0 | URL
제가 좀 상태가 안 좋았는데..
하필 이 책을 읽는 바람에 무지 아팠습니다.
모르겠어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실지..
하지만 제겐 정말 너무 아픈 책이었습니다.

잘 지내시죠? 하시는 일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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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의 서사와 글맛, 말맛에 취해 한 달 이상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었다. 활자중독이라 글만 보면 무조건 아무 책이나 읽어대던 시절이었는데도 그 책을, 그 책은 차마 그냥 흘려보낼 수 없어서 읽고 읽고 또 읽었었다. 인간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운명까지 내 맘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었다.  

그리고 작가의 독서로 인한 생각과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사고가 들어있는 산문집엔 작가로서의 불안이 그대로, 날 것 그대로 들어있어 감히 안쓰러움을 느꼈고 작품보다는 김진규라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작가가 말했듯이 작가의 양지를 담은 작품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번 느낀 것은 정독은 개인의 성향일 수도 있지만 책 자체가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책과 함께 몇 달을 꼬박 보냈다. 정말 행복한 몇 달을…… 침대 맡에 놓고 두 번을 꼬박 읽었다. 책이 나오자마자 샀지만 금방 읽을 수는 없었다. 정말 맛난 음식을 아끼다가 썩혀 버릴 것처럼 난 이 책을 대했다. 그러다 드디어 심호흡을 하고 책을 잡았다. 한 번은 스토리, 또 한 번은 문장 맛으로 읽었다. 그리고 이젠 아무데나 펴서 다시 그 맛을 음미한다. 그렇게 읽고도 차마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책이 내겐 바로 김진규의 책들이다. 

왜냐고? 그게 단지 작가와 독자간의 궁합 때문만은 아니란 걸 안다. 그건 바로 이 책이 갖고 있는 힘  때문이다. 어쩌면 그 힘을 알아보는 게 내 취향인지도 모르겠지만.  

인물들과 온갖 삶의 서사를 보여주던 전작과는 달리 이 책의 스토리는 단순, 복잡하다. 공생원과 그 마나님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스토리는 단순하되 그에 얽히는 인물들과 그들의 삶, 운명 등으로 인해 복잡하게 보여진다. 단순, 소심해 보이는, 사회에서도 그리 성공도 못한 어느 정도는 찌질한 공생원,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부유하지만 풍만한 풍채에 왈가닥 같은 성격으로 겨우 시집 온 공생원 마나님의 사랑은 혼인한지 이십 년이 넘게 안 생기던 아이를 마나님이 임신함으로써 위기에 놓인다. 알다시피 조선시대의 사랑이 어디 우리가 요즘 말하는 사랑이던가. 그건 차원이 다른 애정을 말함이었다.  

여러 가지로 소심할 수밖에 없는 공생원은 공처가이면서 좀생이지만 체면은 차릴 줄 아는 인물이다. 사랑이라기보다는 남의 것은 탐을 안 내지만 ‘자기 것’을 지키려는 인물이다. 맘에 들건 안 들건. 그에 반해 풍채가 큰 만큼이나 손도 큰 마나님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런 저런 일, 이런 저런 인물들하고 얽힌다. 이에 함께 얽히고설키는 용의자들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공생원의 마음, 이를 안 보는 듯 지켜보고 있었던 마나님……  

이 작품은 우리 인간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자 하지만 결국엔 감정적인 것에 어쩔 수 없이 휘둘리는 인물을 보여주고 있다. 속엣말 한번 시원하게 내뱉지 못하는 공생원이 안쓰럽고, 슬슬 떠보겠답시고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는 걸 보면서 함께 오금이 저린 건 어쩌면 내 안에도 공생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단순 복잡한 스토리와 함께 공감을 끌어냈던 건 각각의 인물들의 캐릭터와 심리였지만 날 더욱더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은 건, 바로 아름다운 한국말이었다. 어디서 그렇게 주옥 같은 말들을 찾아내는 건지, 단순히 써먹어야겠다나 알려주겠다 차원을 지나 진정 문장 속에서 녹아드는 그 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내 안에 안겼다. 그 말맛, 글맛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맛이다. 김진규, 최고다. 아이를 낳으려는 순간에 공생원에게 던진 마나님의 한 마디, 정말 최고 중의 최고다~!   

 

“당신 자식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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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의 그림 - 제6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14
문영숙 지음, 윤종태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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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에서 우리 조상의 기개를 보여주는 고구려 벽화를 보면서 알 수 없는 흥분과 열정을 느끼는 건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한반도를 넘어 만주까지 그 옛날 우리의 기개를 펼쳤던 고구려의 기상은 말을 타며 활쏘기와 수렵, 전투까지 그 벽화들에 잘 나타나 있다. 궁금한 건 그 멋진 그림들이 왜 무덤 속에 그려진 벽화인 것일까, 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우리 역사와 전통, 삶, 사랑과 함께 무연이라는 화공을 통해 이 책에서 생생하게 살아났다. 장백산의 깊은 숲 속에서 망혜 스승과 함께 속세의 삶과 떨어져 외로이 사는 무연은 어느 날, 사무랑을 목표로 무예를 익히는 젊은이들을 보게 된다. 그 기개를 따라 무연도 혼자 무예를 익히기 시작한다. 젊은 날, 고구려의 집사장이었던 망혜는 음모와 모함으로 순장된 무연의 부모를 대신해 갓 태어난 무연을 데리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장백산으로 향했던 것이다.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무연은 깊은 숲속에만 자신을 가둬두는 스승 몰래, 사무랑을 뽑는 동맹제 축제에 따라가게 된다. 하지만 추천장이 없어 무사 시합엔 못 나가고 되고 싶지도 않았던 화공을 뽑는 시합에 나가게 된다. 

무연을 찾아 산을 내려온 망혜 스승은 무연이 자신도 모르게 위험에 빠지기 전에 무연을 만나 무연에게 출생의 비밀을 얘기해준다. 부모가 어떻게 살았으며 어떻게 고구려의 마지막 순장자가 되었는지, 어떻게 자신은 살아남았는지 그 모든 얘기를 듣게 된다. 더구나 그 악연은 또 다시 자손들의 악연의 꼬리를 이어간다. 하지만 복수를 부르는 칼 대신에 무연은 예술로 승화시키는 붓을 든다. 

이야기가 얼마나 긴박하고 흥미롭게 전개되는지 읽는 동안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정말 단숨에 읽고 단박에 반해버렸다. 어린이, 어른 모두 즐겁게 읽고 우리 역사에 대해, 우리 전통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도 되었다. 재미와 흥미, 그리고 생각거리 모두 최고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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