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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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탄탄한 스토리에 뛰어난 구성, 치밀한 추리, 게다가 적절한 상황 분석까지 마치 기욤 뮈소나 폴 오스터 등의 작품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이런 비교가 작가에겐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만큼 이 작품이 그동안 읽었던 세계적인 작품 만큼이나 작품성이 뛰어나고 세계 어디 내놓아도 전혀 빠지지 않을 만큼 보편성과 세계성도 띄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어디선가 읽었던 느낌,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그만큼 현실적이고 도회적인 요즘 이야기이기 때문이리라. 
실종이냐, 유괴냐, 가출이냐? 겉으로 보기엔 무탈하고 평온한 한 가정이 실은 속으로 처음부터 삐걱거리던, 불안정한 벤치 같은 가정이라는 사실이 아이가 사라짐으로써 온통 속살이 드러나면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구성원의 진실이 나타난다. 단 한번의 일탈이 삐걱거리던 벤치를 완전히 산산조각내고 만 것이다. 
자신만 불쌍하고 외롭고 자신만 바라보던 시선은 아이가 사라짐으로써 가족 구성원인 타인을 바라보고 미소 짓고 희생하게 되는 것, 그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되찾는 길인지도 모른다. 그럼으로써 겉으로만 무결한 불안정한 가정이 아니라 상처로 가득한 진정한 가족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가족들은 서로에게 외면의 예의를 지키고 겉으로 평화를 유지하면서 굳이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알고자 하지 않는다.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안위를 지켜주고 무관심이 자신을 보살펴주는 보호막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깔려있는 인종 간의 무지막지한 편견,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인지 아닌지 모르게 되는 남녀간의 관계,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이라기보다 단지 자본이 움직이는 흐름을 따르는 비밀 비즈니스는 우리에게 국가적인 이방인, 이질감과 소통이 불가능한 가정의 모습을 우리 앞에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엄마, 아빠, 누나. 그런 유의 혀 짧은 단어들에서 배어나오는 비릿하고 달착지근한 냄새는 그를 두렵게 했다.’ 가족의 둘째 혜성의 생각이다. 

‘이전의 케이스들과 다른 점이라면, 이번 남자는 그 말을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했다는 사실이었다. 소심한 남자는 전화로, 비겁한 남자는 문자메시지로, 그 정도 성의도 없는 남자는 연락두절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곤 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은 처음이었다.’ 가족의 첫째 은성의 생각이다. 

‘변화 없는 소소한 습관들은 언젠가 인생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것이다.’ 아버지의 생각이다.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랐었다. 타이베이의 어떤 연인들도 같이 가지 않는 곳, 남의 사랑을 시기하는 신이 있어 어떤 애절한 인연도 단칼에 갈라놓는다는 그곳, 지남궁에 이번에는 반드시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아직도 때가 아닌가보았다.’ (새)엄마의 생각이다.

‘누가 뭐라 해도 결단코 바뀌지 않는 것을 진실이라고 부를까? 알 수 없었다. 세상은 진실의 외피를 둘러쓴 악의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아이가 짐작하는 건 겨우 그뿐이었다.’ 막내 유지의 생각이다. 

하필 일요일 저녁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서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 새벽 4시까지 쉬지 않고 읽었다. 그만큼 대단하게 느껴졌고 흥미진진했다. 더구나 추리물이어서 도대체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만큼 스토리는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에서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다. 꽤 두꺼운 책이었지만 얼마나 긴박하게 읽었는지 모른다. 

‘진심을 다해 이 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말이 쓸쓸하게 와 닿는다. 그 말을 하지 않아도 이 작품 자체로 그 진심이 독자들에게 통할 거라고 믿는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이십 대가, 사랑과 연애가, 현실과 이기심이 도회적인 감성으로 잘 어우러졌던 전작들, 세 작품이 무색할 정도로 멋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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