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다. <오래된 정원>의 강렬한 사랑과 이념의 정수 이후, 진흙 속에서도 진주는 역시 진주이듯, 정말 고운 진주가 바리데기라는 소녀를 통해 살아났다. 배경이 북한일 뿐, 이 이야기는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보편성의 극치이다. 영혼을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인물이지만, 인간다운 모든 면을 가진 보통의 인물이기도 하다. 독재체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인 세상이다. 약한 인간은 어디서나 짓밟히고 어떤 체제도 자신과 맞지 않는 인간은 핍박한다. 중요한 건 어떤 조건이든, 이 세상을 살아내는 인간 모두, 생명수를 알아보는 마음이다.
사람은 다 같다. 한번 태어나 살고 둑는 건 다 같다. 그런데 왜 내 잘못이 아닌데, 왜 내가 선택한 게 아닌데, 그런 부모를 만나고,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가. 왜 여자인 것만으로도 원죄인 인도에서 태어났는가. 왜 흑인으로 태어나 노예 생활을 했는가. 왜 부모 공양하고 제사를 모셔야하는 한국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는가. 따지기 시작하면 우리네 인생은 불공평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다. 왜 좀 더 좋은 조건과 환경에서 태어나지 못했는지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가장 큰 장점은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진보시키는 능력이 있다. 개인의 조건이든 사회적인 어떤 체제이든.
지독한 1인 독재 체제인 1980년대인 북한에서 바리는 태어났다. 여전히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는 일곱째마저도 딸을 낳자, 휑하니 집을 나가버리고 엄마는 아이를 숲에다 갖다 버린다. 그런 아이를,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살린다. 그렇게 한 소녀가 태어나 부자도 아니고 문명의 이기가 다 갖춰진 곳도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대가족 안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갑자기 밀어닥친 불행에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서로의 생사조차 모르게 된다. 체제의 불행과 가난은 약하디 약한 개개인에게 극도의 불안과 불안정성으로 다가온다. 더 이상 삶은 없다. 남은 것은 살아남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삶을, 인간을, 세상을 용서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북한 말, 찰지고 맛난 그 사투리 안에 내 어릴 적 정서가 다 녹아드는 듯 아름답고 고운 우리말을 상기시킨다. 수도권에서만 살았지만, 이 작품은 외국어, 외래어 그리고 이제는 인터넷 용어까지 판을 치는 요즘 세상에 맑은 샘물 같은 신선함을 주었다. 정겹고 따뜻한 분위기에 흠뻑 젖다가, 바리가 불행을 겪는 대목부터는 가슴을 쥐어뜯는 듯, 함께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때론 눈물을 쏟다가 바리가 보는 혼령들에게마저 애틋함을 느끼기도 한다.
한 점 옥의 티로 보인 부분은 결말이었다. 끝부분의 모든 세상 문제에 해답을 주는 듯한 그 시도는 좀 작위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어쩌면 현대의 이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정답 이상의 교훈이 될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보다 이 작품의 집약은 할머니가 바리에게 해주던 바리공주 얘기가 아닐까. 부모님하고 온 세상 사람들을 살려주려면 생명수 약수를 가지러 가야 한다.
‘저어 해가 저무는 서천 서역에 가믄 세상 끝에 약숫물이 있다구 그랬지비. 병든 나라 지나 물 건너고 산 넘고 가는 동안에 신령님들이 도와주고, 왼갖 사람 빨래 해주고, 밭 매주고, 시키는 천한 일 다해주고, 귀신 물리치고, 지옥에두 다녀오지. 지옥에 갇힌 죄인들 구제해주고 서천에 당도하니 장승이 기달리구 이서. 장승하고 내기 시행에 져서 살림해주고 아 낳아주고 석삼년을 일해 주어야 약수를 내주갔다구 허는 거이야. 저어 세상 끝이서 온갖 고난을 겨끄다가 돌아오는데 저승 가는 배들을 구경하지. 황천으로 흘러가는 배 위에 가즌 업보를 걸머진 혼백들이 타구 있대서.
할마니 생명수 얻은 거는 빠쳈다.
오오 기래, 할마니가 깜박했다. 생명수 약수를 달랬더니 그놈에 장승이가 말허는 거라. 우리 늘 밥 해먹구 빨래허구 하던 그 물이 약수다.
기럼 공주님이 헛고생 한거라?
바리야, 기건 아니란다. 생명수를 알아볼 마음을 얻었지비.
거 무슨 말이웨?
이담에 좀 더 살아보믄 다 알게 된다. 떠온 생명수를 뿌레주니까니 부모님도 살아나고 병든 세상도 다 살아났대. 그담부턴 바리 큰할미는 우리 속에 살아 계신다누. 내 속에 네 속에두 있댄하지.’
이 세상 모든 곳에, 어떤 체제하든, 인간은 모두 생명수와 함께 호흡하고 마시고 함께 살고 있다. 다만 그 생명수를 알아볼 마음을 못 얻었을 뿐… 정말 아름다운 작품,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황석영 선생님, 감사합니다… 어떤 삶을 살든, 어디에서 살든, 어떻게 살든, 생명수를 알아보는 마음을 얻으라고 일러주셔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