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 보리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 자기 집을 스스로 짓는 일은 새가 자기 보금자리를 만들 때와 똑같은 합목적성이 어느 정도 있다. 사람이 제 손으로 살 집을 짓고, 자신과 식구들을 위해 간소하면서도 꼭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생산한다면, 새가 그런 일을 하면서 언제나 노래를 부르듯이, 사람도 시심이 깊어지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아! 우리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찌르레기나 뻐꾸기처럼 산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인용된 <월든>의 한 구절이다.
니어링 부부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어가면서 아직은 여러 가지 이유로, 혹은 미진한 결단으로 인해 드러나는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더라도 내 안에서는 끊임없이 큰 소용돌이가 일었다. 아름다운 삶이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렇게 사랑하고 이렇게 살고 이렇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구나.. 하는 충격으로 인해 어지러울 정도였다. 익히 알고 있겠지만 스코트와 헬렌은 많은 차이점이 있다. 스코트는 뛰어난 경제학 교수였지만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강단에서 쫓겨났으며 헬렌은 풍족하고 자유로운 가정분위기 속에서 자란 예술적인 성향이 높은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많은 차이점을 지닌 두 사람이 만나 이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다 아름답게 생을 마감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두 사람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지향이었다. 스코트는 헬렌에게 자상하게, 때론 거침없이 그녀에게서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끊임없이 글로 써서 그녀에게 보냈으며 그녀 또한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헬렌이 스코트에게 일방적으로 종속된 삶은 산 것은 절대 아니다. 스코트 또한 예술적 부분과 정신영역에 대해 헬렌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두 사람은 손수 농사를 지어 식량을 마련하고 벽돌을 구워 살 집을 지었으며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노동을 멈추지 않았다. 농사를 짓고 노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떠들썩한 파티를 즐기기보다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하러 다녔으며 이웃들과 연대하고 음악을 듣고 시를 짓고 악기를 연주했다. 자연 그대로의 단순한 자연식을 했으며 '생활의 질을 높이기보다 삶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

스코트가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고 준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흔 여섯의 나이가 되자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연결되어 있던 유기적 요소들이 이제 서로 떨어지려 하고 있네. 대체 누가 그 요소들을 강제로 계속 붙어 있게 하고 싶어하겠나?'라는 말을 하며 새로운 세계로 갈 준비를 하였다.

천천히 천천히 그이는 자신에게서 떨어져나가 점점 약하게 숨을 쉬더니, 나무의 마른잎이 떨어지듯이 숨을 멈추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다. 그이는 마치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시험하는 듯이 "좋 - 아."하며 숨을 쉬고 나서 갔다. 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갔음을 느꼈다..
곡기를 끊고 스스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 스코트의 임종을 지켜 본 헬렌의 기록이다. 그녀는 스코트가 평온하고 조용하게 삶에서 떨어져나갈 수 있도록 그의 곁에서 그를 안심시켰다. 그의 죽음 후에도 그녀는 그의 존재가 계속되고 있음을 느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슬픔 없이 그를 계속 사랑할 수 있었다.

이 책이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견 딴 세상 소리로, 실천할 수 없는 허무한 대안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맑은 정신으로, 주위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돌아보며, 자신이 추구해 온 삶을 반추하며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아름다운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비단 부부 사이가 아니더라도 사람 사이의 사랑은 어떠해야 하는지, 맹목적으로 매달려온 가치들이 정말로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위해 꼭 읽어야 할 감동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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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11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기를 끊고...스스로...
그 마른 몸과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술마시고 안 들어오는 남편 기다리고 있습네다.^^

balmas 2004-09-11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언젠가는 반드시 읽어볼게요.
추천도 한방 꾸욱~

superfrog 2004-09-11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로드님, 정말 아름다운 할아버지였죠?
흐.. 저 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려고 해요.
열심히 살아야죠, 열심히..

superfrog 2004-09-11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lmas님, 꼭 읽어보세요!! 님처럼 훌륭하신 분이 더 훌륭해지시려면 꼭 읽으셔야 한다니까요..!! 제가 보내드릴 수도 있다구요.. (헛, 추천은.. ㅎㅎ 감사합니다.. 에구.^^;;;)

chika 2004-09-11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란 말에 긴장하고 들어왔습니다. 오옷~!! 역시.. ^^b
오늘은 읽는 글들마다 찬성표하나씩을 던지고 가야할 운명인가봅니다. ^^

가을산 2004-09-11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보관함 직행입니다. ^^

chaire 2004-09-11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이라는 님의 말씀에 천 퍼센트 동감! 정말 훌륭한 책이지요! 월든보다 훨씬훨씬 재밌고!

반딧불,, 2004-09-11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지요??

진/우맘 2004-09-1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음...헬렌 니어링의 밥상에 대한 책을 읽고, 게으른 나에 대한 좌절에 몸부림쳤더랬는데....이것도....

superfrog 2004-09-12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직 안 읽으신 분.. 제발 읽으시길..

미완성 2004-09-12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금붕어님,
이주으 마이리뷰 다시 받으실 때가 온겁니다...
흙, 덩말 이번에야말로 도금해놓으셨던 비늘들은 벗기고 순금비늘만을.....ㅜ_ㅜ

짜고치는 추천아, 물러가라!
저는 진지하게 아름다운 추천을 드린 겁니다!!!!

superfrog 2004-09-12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아침에 일어나서 알라딘을 들어오니
멍든님의 멋진 코멘이 금붕어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여요!!!아, 비는 그치고 아름다운 일요일입니다요~~!!^^

비로그인 2005-04-1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겠습니다. 꼭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