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용하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금성출판사에서 나왔다. 몇년전에 기업활동을 너무 비판한다면서 일부에서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트렸던 그 교과서다. 가끔 울 학교에서 이 교과서를 쓰고 있는 걸 낡디 낡고 꽉 막힌 사고 방식을 가진 위에서는 인식하고 있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교과서를 채택하신 부장 선생님께 우선 감사드리고.
그런데! 근현대사는 그렇다치고, 나는 해방 이후의 우리 역사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고등학교 국사는 일제시대까지 배웠고, 그나마 20세기 이후의 역사는 대학입학시험에 잘 나오지 않는단 이유로 거의 기억에 남겨두지 않았다. 대학 가서는 그래도 우리나라 독립운동사 연구가로 한 명성하는 노교수에게 한국사 개론 강의를 들었지만, 그 시절 정년 가까운 교수님들이 대개 그랬듯이 강의다운 강의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게다가 교재는 토씨빼고 다 한문이라서 원서강독 예습하는 수준으로 옥편을 찾아가며 읽어야 했다.
이런 나도 7차 교육과정에서부터 갈라져나온 한국근현대사를 가르쳐야 한다. 게다가 요즘엔 20세기 대한민국의 역사도 수능과 모의고사에 가끔 등장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라니! 86 아시안 게임때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88 서울 올림픽 때는 강보에 쌓여있던 애들보다야 낫지만, 내가 30년 남짓 살아오며 접한 개개의 사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남에게 전달하는 게 쉽나. 전라도 출신 숙부들과 아버지가 광주5.18 얘기할 때도 여전히 난 옆에서 그림자같은 존재 취급을 당하고 있는 현실. 하긴 내가 끼어들 자격도 안되지만. 그리하여 공부 좀 해보자하고, EBS강사가 추천하는 근현대사 관련 도서 목록을 검토하고, 알라딘 북리뷰를 검토하여 이 책들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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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가장 맘에 드는 책이 강만길 교수의 [20세기 우리 역사]이다.
[대한민국사]는 3권이라는 분량이 부담스럽고, [한국현대사 강의]는 사료집에 더 가깝고, 빽빽한 활자와 편집이 그야말로 '대학 사회과학 교재'다운 인상.
사이버대학을 위해 쓰여진 강의록을 바탕으로 한 책이라는데, 구성이 교과서처럼 알기 쉽게 되어 있다. 26강의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는데, 내용은 교과서보다 좀더 자세하여 각 사건들의 뒷 배경과 진행과정을 보다 상세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굵은 활자로 1,2,3하고 번호까지 붙여서 마무리 정리까지 해주니, 얼마나 친절한 강의록인가. 20세기 우리역사를 체계적으로 또 알기쉽게 접근하게 해준다. 우선 교과서나 신문잡지, 역사 스페셜, 드라마 제5공화국 등으로 수박 겉핥기를 한 상태의 고등학생이라면 충분히 따라갈 만한 내용이다. 게다가 금성 교과서가 강만길 교수의 저작을 많이 참고하고 있는지, 교과서와 시각이 같은 점이 많다. 할수만 있다면 도서관에 이 책 40권쯤 구입해놓고, 부교재로 사용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줄을 치고 여백에 메모를 해가면서 읽은 것은 참 오랫만이다. 게다가 한달간 늘 들고 다녔더니 책이 금새 낡을까 걱정이 되네. 진정으로 공부가 되는 책이다. 애들과 이런 책을 읽으면서 우리 현대사 수업을 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와야 할텐데. 이 책을 본 다음에, 더 관심있는 학생에게는 [대한민국사]를 권하거나, [한국현대사 강의]에 수록된 관련 사료를 뽑아서 분석하게 한다면 금상첨화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