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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과 세상 - 김훈의 詩이야기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4년 7월
평점 :
나이가 들면 옛 생각이 많이 난다고들 하던데, 바쁜 나날들 속에서도 예전에 읽었던 책이나 예전에 들었던 음악들을 다시 찾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과거의 나에 대한 태도는 “그때가 좋았어” 식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때는 그랬지” 식이 대부분이다. 즉, 회한이나 그리움처럼 나 자신에게 밀착해 생겨나는 감정보다는 무덤덤함처럼 스스로에게 거리를 두고 있을 때 만나는 허허로움 쪽이다.
하지만 과거의 내 모습을 생각하는 동안 어찌 아쉬움이나 회한이 없으리. 그때 좀더 열심히 했었더라면, 그때 좀더 용기를 냈었더라면 하는 해묵은 후회의 감정들은 때때로 가슴을 무겁게 한다. 그럴 때면 보통은 담배 한 개피를 피우며 연기에 풀어 날려보내고 말지만, 어떤 날은 담배 한두 개피로는 성이 차지 않아 머릿속이 제법 엉켜들기도 한다. 요즈음처럼 머릿속이 깊어져 생각이 자주 고이는 때는 더 그렇다.
나는 김훈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김훈의 소설을 두 권 갖고 있는데, 한 권은 어찌어찌 생긴 것이고, 한 권은 읽기 위해서 직접 구입한 것이다. 하지만, 두 권 모두 책이 생겼던 때에 읽을 시간이 마땅치 않아 읽을 기회를 놓쳐버렸다. 아니다,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김훈의 소설을 몇 장 읽었지만, 나는 더 읽어 나가지 않았다. 아마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김훈의 소설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쪽이냐면, 나는 김훈을 산문가로 기억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은 김훈의 첫 책으로, 지난 89년 처음 나왔고,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은 개정판이다. 15년 전에 나왔던 것을 최근 김훈의 인기에 힘입어 같은 출판사에서 다시 펴낸 것이다. 다시 펴냈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은 맞는 말이 아니다. 이 책은 89년에 나왔던 <내가 읽은 책과 세상>에서 시에 관한 부분들만 떼어내 '김훈의 시 이야기'라는 부제까지 달아 내놓은 축약판에 불과하다. 활자 크기가 작았던 당시에도 300쪽을 넘었던 책이기 때문에 분량을 줄이느라 그런 것 같은데, 나는 이것을 개정판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책은 책값이 1만1,000원이나 하는 축약판일 뿐이다.
대략 90년 초에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을 읽었던 것 같다. 그 전에 문예지와 한국일보 들을 통해 김훈의 글을 알고 있었고, 책을 읽으면서 한 줄 한 줄 김훈의 매끄럽고 아름다운 문장 속에 빠져들었다. 그 문장은 매끄럽되 찬란함을 갈구하지 않았고, 아름답지만 치장의 누를 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매끄럽고 아름다운 문장들 속에 숨쉬는 거센 자의식의 싸움, 그리고 그것을 감싸는 지적 성찰이 마음을 오래 끌었다.
그것은 작가나 시인의 자의식과는 다른, 그러니까 정형화된 형태를 띠지 않는 자의식이었다. 뒤늦게 나는 그것이 지식인의 자의식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또한 그 속에는 지식인의 자의식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김훈 특유의 자의식이 배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것은 독학으로 문학을 익힌, 즉 혼자 힘으로 세상을 익힌 자의 '죽기살기'였다. 그것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나는 새로 나온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을 축약판 운운하며 깎아내렸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김훈의 글들은 여전히 내 마음을 움직이며, 절판됐던 책이 다시 나오게 된 것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가령, 김훈이 미당 서정주의 시집 <질마재 신화>에 대해 쓴 글은 요사스럽다고 할 만큼 산문(山門)의 율법을 희롱하고 있는데, 그 솜씨는 김훈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이는 자신의 글을 통해 독자들을 미당의 시세계가 그리는 신화의 세계로 이끌고자 하는 무의식적 의도가 스며든 결과로 보이는데, 기실 이러한 글쓰기는 김훈의 글 곳곳에서 나타난다.
김명인의 시릍 통해 동해 바다의 상상력을 짚어보고 있는 글을 보면, 도입부에 동해 한류 이야기가 나온 후 칼날같이 찬 겨울바다에서 투망질을 하느라 손금이 닳아 없어질 지경인 뱃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고 나서 “이 바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명인의 시들은...”하며 글을 풀어간다. 이 글이 씌어질 당시에 비록 김명인은 뱃사람이 아니라 교사일 뿐이었지만, 김훈은 김명인의 시에 드리워진 바다에 대한 이미지나 상상력 속에서 이러한 생생한 동해의 숨결을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이나 작가가 표현해 놓은 세계에 자신을 완전히 내던진 후에야 몇 줄의 글을 써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김훈이 독학으로 문학을 익힌, 즉 혼자 힘으로 세상을 익힌 자의 죽기살기로 글을 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표현함으로써 익숙해지고, 표현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이해하고 경험한 세계와 그에 대한 성찰인 자신의 글을 합일시키고자 하는 노력 말이다.
산문의 정의 중 하나로 자신이 이해하고 경험한 세계를 온전히 기록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김훈의 산문은 그러한 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아울러 이는 비단 산문뿐만 아니라 문학의 의미이기도 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