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kimji > 떠난 길,에서_28

휴일이면 이 도시는 아이스크림으로 녹아내린다
텔레비전은 설탕 덩어리로 변해버리고
비누와의 부드러운 사랑 흘러넘치고
질주하는 차바퀴 오렌지 향기를 날린다

휴일이면 종교도 배낭 속으로 옮겨가버린다
어느 일행에게 잘못 광야를 가리켜주는 것
산꼭대기에 올라 보트를 뒤집어엎는 일
외따로 격리된 환자 수를 헤아리는 즐거움

휴일이면 여전히 새똥은 동상을 모욕하고
술집은 금광처럼 번쩍거린다 공원에 가
먹이를 던져주는 일 그것은
다순한 여가에 지나지 않는다
비둘기들 급료는 이미 지불되었다

으레 그런 날이면 몇 개씩 회사가
죽어나간다 그건 아주 사소한 일이다
죽은 회사는 유니폼이 벗겨진 채
마네킹처럼 길 옆 모퉁이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누군가 급히 택시를 부른다
마네킹은 택시에 실린다 뒤트렁크에
다리 한 짝이 덜렁거린다 황황히 택시는 떠난다

ㅡ 송찬호, '休日', <10년 동안의 빈 의자>, 문학과지성사, 1994

 


휴일이었다.
죽은 이가 살던 집, 죽은 이가 만지던 먹과 벼루, 죽은 이가 쓰다듬었을
담벼락과 나무들과 우물을 보았다.
이미 죽은 이의 그림은 생경스럽도록 힘찬 획을 내뿜고 있었고
산 자들은 죽은 이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휴일이었다, 칠 일마다 돌아오는 하루 중에 하나였다. 

 


::: 20041017, 충북 청원군 운보의 집, Nikon ZOOM 500 AF
::: 음악 _ 이현의 농(二絃의 弄), 해금과 피아노를 위한 '파랑새' ('Blue Bird For Haegum And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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