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Hopper, "Rooms by the Sea", 1951, Oil on Canvas, 29*40 inches, Yale Univ. Art Gallery, New Haven, Connecticut.

 

Pat Metheny_My Song

 

  이 그림을 처음 본 게 대략 10년 전쯤인 것 같다. 그후 마음에 들어서 회사 컴퓨터에 배경화면으로 넣어둔다든지 알라딘 서재에 걸어둔다든지 했었다. 아마도 호퍼의 그림들이 그렇듯 이 그림도 마음을 쓸쓸하게 하는 데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색감이나 질감은 따스한 쪽이어서 어떤 때는 큰 위안이 되곤 한다.

  알라딘 서재를 다시 열면서 호퍼의 그림들이란 페이퍼룸을 다시 연다. 이 서재의 이름도 "호퍼의 그림이 걸린 서재"가 아닌가. 다시 열면서 이 페이퍼룸에 링크돼 있던 음악들을 일일이 다 복구하였다. 얼마 후에는 링크가 끊어지겠지만 말이다.

 

  :: 자료 출처 www.shumto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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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Goya, Yard with Lunatics, 1793~94, Oil on Tinplate, 43.8*32.7, Meadows Museum, Dallas.

 

Medeski, Martin & Wood_Chubb Sub

 

  고야는 1792년경 병으로 귀가 멀게 된다. 이때 그이 나이는 47세. 고야는 귀머거리 신세가 되었지만, 더욱 왕성하게 창작에 몰두한다. 특히, 말년인 1819년경 '귀머거리집'을 사서 이사할 때까지도 궁정화가로 활약하는 등 이전과 다름없는 강인하고 활기찬 화풍을 유지한다.

  이 그림은 고야가 귀가 멀게 된 이후 얼마 안 되어 그린 것으로, 평소 스페인 왕정의 무능과 폭정을 혐오하던 화풍에 개인적인 고통까지 스며 있는 작품이다. "정신병자 수용소"란 제목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고야의 주요작들이 걸려 있는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있지 않고, 댈러스 메도우즈 미술관에 있다.

 

  :: 자료 출처 www.shumto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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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이 계속되어감에 따라서, 브레알은 진보적인 기호학과 신화학에 대한 자신의 야심을 잃어갔다. 그는 명상적인 관찰에만 몰두했고, 관찰되는 사람들의 빈약한 변명들만을 얻었을 뿐이다.(목적 자체가 그 관찰을 중립적으로 만들었다.) 오직 도자기로 된 찻잔의 뚜껑을 벗기는 손가락들의 리듬과 수증기를 내뿜는 꼭지에 핀 구멍이 있는 작은 찻주전자들이 있을 뿐이었다... 단 한 번의 분절 속에서, 여러 요소들 사이의 관계 속에 자리를 잡는다는 기쁨... 감각의 논리. 영원함 자체.

  행복은 말이 없다.  - 1권, 248쪽.

*

  1980년 12월

  정열이란 나이를 먹는다고 그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욱 투명해진다. 매정하게도 말이다. 정열은 과거를 모두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또한 피할 수도 있다. 당신은 그것을 제어할 수도 있다. (...) 그러나 나는 그러기를 원치 않는다. 나이는 쾌락을 즐기는 데 있어서 능숙함을 준다. 나이가 들면 숨을 돌리기 위해 멈출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이 때문일까, 분석 때문일까? 매순간은 팽창되고, 영원을 감싼다. 매순간은 또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은 속도로, 마치 늘어난 인생의 맛이 그것을 극도로 단축시켜버린 것처럼, 사라진다.  - 2권, 163쪽.

*

  1981년 6월

  행복은 완성된 현재이다. 그것은 어떠한 기다림도 아니다. 전적으로 지금, 이곳에서의 문제이다. 완벽한 원은, 그것이 크고 작든간에,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올바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예술의 지고한 증거를 요구했을 때 지오토가 그린 원처럼 말이다. 행복은 질(質)이다. 나는 그것을 양(量) 속에 가두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 2권, 167쪽.

  - 줄리아 크리스테바, <사무라이>, 홍명희 옮김, 솔,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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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Goya, "Little Giants", 1791~2, Oil on Canvas, 137*104, Museo del Prado, Madrid.

 

Govi_Torero

 

  1746년 출생한 고야는 본래 아버지가 도금장이인 미천한 집안 출신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고야는 어려움을 딛고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 환대받는 대화가로 컸다. 봉건시대에 있어 이런 출세는 대부분 당사자의 철저한 현실도피적 보신주의로 귀결되곤 하지만, 고야는 이와 달리 자신의 출신 배경을 늘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는 당대의 어떤 화가보다도 민중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

  이 그림은 고야의 중기작으로, 어린아이들이 무등을 타며 놀고 있는 모습을 유쾌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선을 끄는 무등을 타고 있는 소년들은 귀족의 아이들이며, 그들을 태워주고 있는 것은 하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이들 어린 하인들을 고야는 거인들로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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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1-17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천한 집안 출신이었던 것이 예술가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되는 게 아닐지.
물론 살 때는 죽도록 고달펐겠지만......

브리즈 2005-11-19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로서는 자산이었겠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야는 당시 국왕이었던 카를로스 4세 등 왕족과 귀족들로부터 총애를 받았다고 해요. 작품 곳곳에 이들에 대한 비판을 숨겨놓기는 했지만, 이러한 총애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고야의 작품을 볼 수도 있는 거겠죠.
 

 


F. Goya, "Blind Guitarist", 1778, Oil on Canvas, 260*311cm, Museo del Prado, Madrid.

 

Paco de Lucia, John McLaughlin, Al Di Meola_Manha de Carnaval

 

  고야의 초기작 "맹인 기타리스트"의 화풍은 그의 후기작들과 크게 다르지만, 초기작인 이 작품에도 그가 평생을 두고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약하고 누추한 민중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 있다. 두 귀족 부부와 자식의 앞에서 연주를 하는 맹인 기타리스트와 그를 둘러싼 군중들, 그리고 이들과 달리 황금빛으로 빛나는 귀족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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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1-15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비가 두드러지는군요.

브리즈 2005-11-16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
고야의 그림은 항상 대비가 뚜렷하고, 이러한 단순성이 그림을 더욱 힘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