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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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가 자네 손에 들어갈 때쯤이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겠지요. 이미 죽고 없을 겁니다."

 

소설의 한 줄이 늦은 밤 정신없이 읽던 내게 훅하며 들어온다. 호흡을 고르는데 울컥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음이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겹겹이 쌓인 응어리가 어느날 폭발하였을까. 자살은 어쩌면 무책임한 회피 수단일수도 있겠다. 단 한사람이라도 믿어주고 지지해준다면 자살은 하지 않는다는데....그에게 부인, 친구는 어떤 존재였을까. 

 

얼마 전 기숙학원에서 재수하는 아이가 한 달 만에 휴가 나왔다. 아이는 마치 군대에서 휴가라도 나온듯 친구들을 모으고 밤마다 술을 마셨다. 그런 아이가 못마땅해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슬그머니 오더니 커피를 내려 준단다. 아이는 평소에 마시지 않던 드립 커피를 함께 마셔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친구중 한명이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자신없어 말을 못한다고 조언을 구했단다. 모태 쏠로인 아이는 그 친구에게 "네가 먼저 스스로에게 당당하도록 자존감을 키워. 그리고 당당하게 말해." 라고 했다는.

대학에 다니지만 과가 맞지 않아 방황하는 다른 친구에게는 "네가 하고 싶은 걸 찾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라고 했단다. 나는 내심 '잘 컸네. 그래 그렇게 긍정적으로 당당하게 살으렴.' 마음속으로 웅얼거렸다.

 

누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 주변을 되돌아보게 된다. 주변 사람중에 혹시라도 힘든 사람은 없을까 생각한다. 재수하는 아이는 기대 이상으로 잘 지내고 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병으로 고생하는 몇명이 있지만 이겨내려고 노력하며 모두 잘 지내고 있다. 설 익은 충고로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은 삼가야겠다.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을 읽고, 그 책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었다. 소설은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선생님과 유서'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주인공 '나'는 열다섯살 차이가 나는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 존경하며 삶의 멘토로 의지한다. 선생님은 도쿄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많은 책을 읽은 지식인이지만 작은아버지에게 재산문제로 배신을 당하고 친구에게 사랑 문제로 배신을 주며, 세상 사람과 단절한 채 은둔자로 살아간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지식인이 특별한 직업이 없이 마치 한량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독특하다. 

 

과거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려놓고 싶게 만들죠. 나는 미래에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서 현재의 존경을 거부하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감당하며 사느니 외로운 현재의 나를 감당하고 싶은 겁니다. 자유와 자립과 자아가 판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 대가로서 이 외로움을 감내할 수밖에 없지요.     p. 43

 

 

나를 만든 내 과거는 안간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의 일부이자 나 이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얘기라서, 과거를 거짓 없이 글로 남겨두려는 내 노력은, 인간을 아는 데 있어서 자네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헛수고는 아닐 것입니다.    p.282

 

선생님은 죽기전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고 싶은 '나'에게 자신의 과거를 반면교사로 삼으라며 유서로 들려준다. 선생님은 자신의 아픈 과거를 닮은 친구 K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그를 도와준다. 하숙집에서 K와 동거하며 둘은 동시에 주인 딸에게 사랑을 느낀다. 소심한 선생님은 주인 아주머니에게, 딸에게, 친구 K에게 말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결국 당돌하고 솔직한 K는 선생님에게 먼저 주인집 딸을 사랑한다는 말을 꺼낸다. 안절부절하던 선생님은 주인 아주머니에게 딸과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아주머니는 흔쾌히 허락한다. 친구 K와의 우정을 사랑 때문에 배신한 것이다.

 

K가 나처럼 오직 혼자라는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해 갑자기 자살한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p.275

 

자신은 의지가 약하고 결단성이 없어 도저히 장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니까 자살한다는 말과 더 빨리 죽었어야 했는데 왜 여태 살아 있었을까라는 의미의 문구가 있었을 뿐이다.           p.289

 

 

본가와 양가 가족 모두에게 버림받은 K는 어느새 '나'에게 많은 의지를 했다. 그 상실감은 얼마나 컸을까. 선생님이 작은 아버지에게 배신당한 아픔으로 평생을 염세주의자, 냉소주의자로 살게 했지만, 가장 친한 친구 K를 배신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죄책감은 결국 그도 자살에 이르게 했다.

 

나는 윤리적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또 윤리적으로 성장한 사람입니다. 나의 윤리적인 사고방식은 지금의 젊은이들과는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사서)는 공무원이 되기 전 사서직 채용 시험이 있다는 소식을 친구에게 들었지만, 그 친구에게 원서를 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시험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정보를 아는 사람이 유리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합격하고 그 친구는 떨어졌다. 한동안 친구에게 미안했고, 그녀는 내가 원서를 내놓고 말하지 않았음에 많이 서운해했다. 둘의 관계는 서먹해졌고 나도 한동안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했지만, 도덕적으로 지탄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인간의 도리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작가라고 한다. 고양이의 눈을 통해 인간의 게으름과 유약함, 허세를 말했듯이, 선생님의 입을 통해 윤리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친구 K의 죽음으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 선생님은 죽음에 이를만큼 잘못을 저지른걸까? K는 친구를 잃은 상실감보다 부모에게 버림 받고, 부모를 속이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선택했지만 암울한 미래 때문에 목숨을 버린 것이다. 

 

남아 있는 부인과 '나'는 얼마나 큰 상실감으로 평생 힘들게 살아갈까? 같은 과오를 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할까? 정당한 죄값을 치르고 거듭나기는 어려울까? 교과서적으로 권선징악을 논하기에는 변수가 참 많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니... 하고 싶은 말이 있을때 주저하지 말고 말하기, 타이밍을 잘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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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4-02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민하는 힘>, <마음>. 역시 우린 통한다니까요. 책 취향이 비슷... ㅋ

세실 2018-04-03 08:11   좋아요 1 | URL
제 텅빈 지식창고를 채워주는 느낌?
생각하는 힘을 키워줍니다. 느리게 느리게~~ 참 좋았어요^^
청주 놀러 오시라니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