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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역시 문학상 수상작은 평범하지 않다. 제목만으로는 그저 상징적인, 사이버상의 결혼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이 있는 아내가 또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니 물론 지구상에는 폴리아모리스트(집단혼) 들이 엄연히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이곳은 전통적인 유교사상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대한민국이 아닌가?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짜증이 났다. 과연 계속 읽을것인가 말것인가로 한동안 고민했다. 지역신문에 서평이란걸 쓰면서 점점 더 도덕적이 되어 가는것도, 괜히 시간낭비 하고 싶지 않은것도 이유였다.
또한 책의 절반이 축구이야기로 전개되는 것도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4강 신화를 이룩하고 온나라가 월드컵열기로 가득찼던 2002년 전까지는 축구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물론 월드컵이 끝나면서 축구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다. 이번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그저 우리나라가 나올때만 관심을 갖고 관전을 했었다. 따라서 주인공인 덕훈과 인아가 관심을 갖는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축구 이야기도 별반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점점 빠져들었다. 두 남자를 좋아하는 인아의 심정도 이해가 가고, 결혼을 하고나면 관습때문에 설령 사랑에 빠질 만한 멋진 남자가 눈 앞에 나타나도 그저 바라 보다가 이내 돌아서고 말 나의 소심한 성격보다는 인아의 쿨한 성격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물론 두 남자를 지키기 위해 양쪽 집을 오가면서 온갖 집안일을 척척 해내는 인아는 픽션에나 존재하는 가상 인물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축구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축구에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든것을 보면 반은 성공이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들이 즐겁게 축구를 보는 방법도 소개한다 - 먼저 베컴이 나오는 경기를 보란다. 베컴의 잘생긴 얼굴과 킥을 할 때의 우아한 동작과 반짝이는 금발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카시야스, 리울, 지단을 보고 있으면 90분은 금방 지나간단다. 맞는 말이다. 나도 월드컵 기간중 잘생긴 선수들만 집중적으로 봤으니까......
대부분 이런 상황이라면 칼부림이 나거나 한 사람이 떠나는 것으로 막을 내릴것 같지만, 주인공 셋은 아이의 탄생과 앞날을 생각해 우리나라보다 덜 보수적인 뉴질랜드에 2층 집을 얻어 함께 살 생각을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참 대략 난감한 설정이고, 말도 안되는 설정일 수도 있지만 작가의 해박한 지식으로 그저 통속소설로 치부하기에는 왠지 미안해지는 고급스런 소설로 탄생하였다. 덕훈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중간에는 축구 이야기도 나오고, 처용가도 나오고, 호색한이자 바람둥이였던 카뮈도 나오고, 사르트르, 체 게바라도 나온다. 어쩜 이리도 절묘하게 연결될 수가 있는지.....다양한 역사적 인물을 접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지금까지는 접해보지 못한 발칙한 상상이지만 이 책을 덮으면서 왠지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벌써 세뇌가 된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