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공무원교육원 사서가  인근 초등학교 2~3학년 30여명을 대상으로 3일동안 독서교실을 여는데 하루만 강의를 맡아달라고 해서 오늘 수업을 했다. 

주제를 '연극놀이로 하는 독후활동'으로 정해 내 소개를 노래로 하고, 아이들에게 마임으로 꿈 표현하기,  연극관람 경험이야기로 부드럽게 진행을 하는데  초반부터 분위기가 산만했다. 남자아이들 4명이서 풍선을 잡는다고 왔다갔다,  2명은 서로 치고 박고  심한 욕이 난무한다. "이새* 너 나한테 한번 죽어볼래? 맞짱 떠 개새*....." 또 다른 2명은 책상을 발로 찬다.  완전 사고뭉치 문제학급에 부임한 선생님 같다...... 이 사태를 어찌하리오. 

독서수업을 10년 넘게 해봤지만 이렇게 엉망진창인 학급은 없었다. 아니 5~60명을 데리고 수업을 해도 다들  조용히 하건만 오늘은 일이 있어서 못오는 친구들이 많아 달랑 20명이었는데 불구하고 대체 왜 이런걸까?

"학생 이름이 뭐야? 자꾸 욕하고 싸우면 이따가 엄마 오시라고 할꺼야"..... "어차피 엄마 집에도 없어. 서울에 있어....." 한다. 할머니랑 생활하는데 전형적인 농촌이다 보니 농삿일하느라 바빠서 손자를 챙겨줄 시간이 없으시단다. 결국 산만한 이유는 사랑과 독서력 부족..... 미리 사서에게 이야기 들었더라면 준비를 하고 갔을텐데 아이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었으니.... 급하게  듣기로는 결손가정 아이들이 많단다. 휴...

결국 수업중간에 칭찬을 하기로 했다. "어머 우리 **이  발표 참 잘하는 구나. 와 멋지다. 선생님이 청주시내 초등학교 학생들 수업 많이 해봤는데, 우리 **학교 친구들이 더 잘하네. 똑똑한거 같아" " 와 **는 민들레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나중에 화가해도 되겠다....." 수업하는 내내 칭찬하기에 바빴다.

조금씩 마음을 열고 수업에 임하는 아이들. 하지만  3교시쯤,  아이들을 칭찬으로만 이끌었더니 서로 발표하겠다고 난리... 우연히 아이 등을 가볍게 치면서 "넌 조금 있다가 해" 했더니 발표하려고 가지고 나온 결과물을 내 앞에서 북북 찢더니... "에이 씨 안해. 안하면 될꺼 아냐" 하면서 자리로 돌아가서는 책상을 밀친다. ㅠㅠ

왜 이 아이들한테는 작은  꾸중이 상처가 되는 걸까? 왜 칭찬만 해야지 좋아라 하는걸까?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다고는 하지만 도가 지나치다. 발표를 안시켜도 문제, 다른 친구만 선물을 주어도 문제..... 이렇게 산만할 수가 있는걸까????????

지금까지 해본 독서수업중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시간은 길어 장장 4교시 수업.  그저 도망치고 싶어서 시계만 쳐다본 심정, 처음엔 잘 해보려고 무단히 노력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마는 자포자기 심정. 휴...

속상한건 처음에 꿈이야기 할때는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멋지게 마임을 하던  아이가 화를 낼땐 '건달'이 된다고 한다. 건달의 의미는 알고 말하는 걸까? 난 4시간의 수업만 끝나면 더이상 만날일이 없지만, 누가 이 아이들을 책임지고 끝까지 보살필수 있을까?

이 아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선생님 내일도 또 오세요. 다음에 또 와주세요. 재미있어요" 한다.  "선생님도 오고 싶지만 저 친구들이 선생님 수업 재미없어 해서 안올래... 너네 선생님 또 만나는거 싫지?" 싫은건지....좋은건지 대답이 없다.. 관심을 끌려고 그러는것일까?

진정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건 단순한 독후활동이 아닌, 원론적인 독서치료일텐데.... 아침에 단 10분이라도 매일 책을 읽어준다면, 따뜻한 눈빛으로 대화를 해준다면,  사랑이 부족한 아이들인데...... 소리 지르고, 화를 낸 나의 참을성 부족에도 화가 났고, 그 아이들이 그렇게 된 부모에 대한 원망, 선생님에 대한 원망도 하며 참 마음이 아팠다. 

엉망진창..... 독서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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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7-27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드셨겠군요.. 아니, 초등학교 2~3학년이라면서 왜 그렇게 험하죠?ㅡ.ㅡ;;;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선생님 말을 잘 들을 나인데...

세실 2005-07-27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제가 돌아버리는줄 알았어요...
그 사서는 "자신은 종교의 힘으로 버텼지 안 그랬으면 독서교실 자체를 포기했을거라고 하네요"
제 생각으로는 학교에서는 거의 방치를 하는듯 하고,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들었어요. ㅠㅠ
오죽하면 수업을 마치고 청주로 돌아오면서 "하느님 저를 이곳으로 보내신 뜻이 진정 무엇입니까?" 라고 기도를 다했어요. 흐흑......

클리오 2005-07-27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드셨겠네요..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도 굉장히 빨라서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많이들 힘들다고 하시더라구요. 어려운 문제예요... 휴.. (고생하셨어요. 푹 쉬세요.. ^^)

세실 2005-07-27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흐흑...넘넘 힘든 하루였어요. 하도 힘들어서 2시에 끝나고는 도서관 안들어가고, 나야나랑 시간이 절묘하게 맞아서 둘이 팥빙수랑 케잌 먹었어요~ (힘들땐 단걸 먹어줘야 한다는 나야나의 위로...참 고맙더라구요)
선생님들 참 힘드시겠어요....휴......
클리오님의 위로 큰 힘이 됩니다. 늘 감사해요~~~

줄리 2005-07-27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힘든애들 돌보느라 힘들고 속상하시고 그랬겠네요, 그리고 그애들 가르치시는 선생님들도 안되셨네요. 그래두 그 아이들이 가장 안된 아이들이죠. 필요한 관심과 사랑을 못받으면서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야 한다는거 참 슬프네요.

세실 2005-07-27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리님. 맞습니다. 젤 속상한건 그 아이들이겠죠.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요....
부모들의 무관심(하루만에 단정짓기는 그렇지만.....), 저같은 이해심이 적은 어른들 만나면서 많이 속상하겠죠. 휴......
한편으로는 그 애들과 조금 더 만나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싶은 맘도 들었어요.

데메트리오스 2005-07-2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나이 어린 초등학교 2~3학년생들이 저럴 줄은... 정말 너무 고생 많이 하셨어요. 세실님..오늘은 푹 쉬시고 힘든 일은 모두 잊으셨으면 좋겠어요.

세실 2005-07-28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메트리오스님... 그쵸? 저도 적응이 안되어서리....많이 힘들었어요.
아직도 마음이 무겁네요. 누군가 저 아이들을 잘 이끌어주어여 하는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