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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모멸은 모욕하고 경멸하는 것, 즉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또는 무심코 격하시키고 그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 상대방을 비하하고 깔아뭉갬으로써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다. 그러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모멸감이다.‘
중학교 3학년인 아이는 자존심이 세다. 엄마의 눈빛이나 손짓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즉시 지적한다. ‘엄마, 못 알아 들을 수도 있지. 왜 기분 나쁘게 쳐다봐?’ 내 표정에서 모멸감을 읽은 것이다. 사회생활에서는 나름 밝은 미소로 인정받지만 가족에게는 짜증과 화를 잘 내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도서 ‘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김찬호 저, 문학과지성사)’은 내 가족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심하게 보낸 모멸감을 깨닫고, 내 마음과 행동의 습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모멸감은 5장으로 나누어 다양한 이론과 사례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각 장의 키워드(수치심, 모욕, 감정, 연민, 에고 등)에 어울리는 현악 사중주의 연주곡은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1장은 수치심, 모욕, 모멸감의 기본적인 속성에 대해 다룬다. ‘자살은 자신에 대한 폭력이다. 그 방향이 타인에게로 향하면 살인이 된다. 둘 다 바탕에는 복수심이 깔려 있다. 모멸감은 복수심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2장은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정서를 가리키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은 우리나라 언어, 신분제는 붕괴되었지만 신분 의식은 지속되는 심리를 다루었다. 자신보다 약해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반말과 폭언을 일삼는 사람의 내면에는 다른 곳에서 똑같은 차별을 당하고 모멸감을 느끼며 살았던 결과라는 점에 수긍이 간다. 3장은 비하, 차별, 조롱, 무시, 침해, 동정, 오해 등의 스펙트럼을 통해 모멸감의 구체적인 의미를 다룬다. 4, 5장은 인간적인 사회, 희로애락의 감정을 표출하며 사는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건강한 사회에 대해 말한다.‘희망의 인문학’의 저자 얼 쇼리스는 우리나라의 노숙자를 방문한 자리에서 첫 마디가“시를 좋아하시나요? 좋아하는 시가 있으면 알려주시겠어요?”노숙자들은 비록 답을 하지는 못했지만, 겉모습만으로 멸시와 차별의 대상이었던 그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해준 질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울림이 있는 시간이 되었다.
모멸감의 상반되는 말은 자존감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생활 습관이 중요하다. 미국에서 살인죄로 수감 중인 재소자들을 심층 인터뷰 했는데, 범죄의 진짜 이유를 설명할 때 “그 놈이 나를 깔보았다”는 표현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 한다.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주는 말 한마디는 때로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자존감을 키위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수첩에 적어 놓고 하루에 하나씩 실천해 보면 어떨까? 내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서는 나이 어린 사람에게 반말하지 않기, 품위를 잃지 않기, 내 감정의 주인이 되기, 타인에게 진정성 있게 대하기. 감사하며 살기. 그리고 또?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자기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해 무지하다. 또는 '터치 오브 라이트' 영화의 치에처럼 현실의 조건에 발이 묶여 있거나 유시앙의 경우처럼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자기 안에 있는 열정을 억누르며 살아간다.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이나 사회가 부여한 편견에 의해서 일정한 틀 안에 자신을 가둬두기도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그 굴레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다. 내가 보지 못했던 재능을 상대방의 눈으로 발견하게 되고, 삶을 나누는 가운데 새로운 꿈의 씨앗이 뿌려진다.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싹을 틔운다.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 p.254
언제부터인가 힐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치유는 단순히 상처를 어루만지는 위로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음의 새살이 돋아나기 위해서는 내면의 어떤 힘이 약동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소망과 가능성을 응시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을 꺼내어 존재의 날개로 펼칠 때 기꺼이 갈채를 보낼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우정과 환대가 곧 힐링이 된다. 살아 있음을 축복하면서 존재를 중심으로 맞아들이는 만남에서 우리의 생애는 고귀해진다.
p.259
중심잡힌 사람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모두 균형 있게 품고 있으면서, 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표현한다. 억울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노할줄 알고, 장례식장에서 슬픔을 나눌 줄 알며, 그러다가도 경사가 난 집의 잔치에 참석해서는 온 마음으로 축하를 해주고, 음악을 들으면 즐거움에 빠져들 줄 안다. 그런 사람은 건강하다. 어느 한 감정에만 매여 살지 않기에 인생이 풍요롭다. p.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