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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제12회 '천상병 시상' 수상작 ㅣ 창비시선 310
송경동 지음 / 창비 / 2009년 12월
평점 :
시를 선택하는 기준은 마음에 와닿음, 따뜻함, 진솔함, 정화, 미사여구 배제 등이다. 감언이설이나 낯간지러운 시, 현혹하는 시는 참으로 부담스럽다. 송경동의 표현처럼 '오래 산 나무에 대한 은유로 가득찬 시들을 보면 벌목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나도 느낀다. 시인과 나는 동시대를 살았다. 그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공단 노동자로 살아갈때, 나는 운동권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 간직한 채 맹목적으로 한 남자를 좋아한 적이 있다. 물론 그가 나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도 하지 못하고 나만의 짝사랑으로 끝이 났다. 어렴풋하게 감옥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비시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붕어빵아저씨 고 이근재 선생님 영전에)
어떤 그럴듯한 표현으로 그려줄까
13년 동안 밀가루값 가스값 빼면
100원 벌었고 200원 벌었고 300원 벌었고를 헤아리며
변함없이 붕어빵만 구웠을 당신의 무미건조한 삶을
당신 옆에서 또 그렇게 순대를 썰고 떡볶이를 팔던
당신의 아내를
어떤 그럴듯한 은유로 보여줄까
2007년 10월 11일 오후 2시 일산 주엽역 태영프라자 앞
트럭을 타고 갑자기 들이닥친 300여명의 용역깡패들과 구청직원들에게
붕어틀이 부서지고 가판이 조각나고
조각난 리어커라도 지키려다
부부가 길바닥에서 얻어터지며 울부짖던 날을
어떤 아름다운 수사로 그 밤을 형상화해줄까
잘난 것 없는 죄, 못 배운 죄 억울해
붕어빵 순대 떡볶이 팔아 대학 보낸
자식들 마음 아플까봐 몰래 숨죽여 울며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여보, 미안해 여보, 미안해
부르튼 아내 손 꼭 잡은 채 잠들지 못했다는 그 밤을
어떤 상징으로 그 아침을 새겨줄까
뜬눈으로 새웠을 새벽 4시30분
일용일이라도 나갔다 오겠다고 나간 아침
일은 잡지 못하고 낙엽처럼 떠돌다
길거리 나무에 목을 매단 당신
당신의 죽음 앞에서
어떤 아름다운 시로 이 세상을 노래해줄까
어떤 그럴듯한 비유와 분석으로
이 세상의 구체적인 불의를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구조적으로 덮어줄까
송경동. 그는 참 감성적인 사람이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출신 대학, 소속등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들에, 바다물결에, 꽃잎에 흔들린다는 표현이라니.... 통쾌하다.
지극히 현실 참여적이면서도, 지극히 시인스럽다. 아 좋다!
붕어빵 아저씨에 대한 글을 읽으며 방관자적인 내 모습이 많이 부끄러웠다. 그들의 고단한 삶을 생각하니 먹먹해진다. 남겨진 부인은 어떻게 살아갈까? 자식들은..... 용역 깡패들과 구청 직원들은 죄의식은 느끼고 있을까?
도서관 아래 붕어빵을 파는 아주머니의 주름 가득한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그 분도 힘든 하루 하루를 살고 계시겠지.
금요일 오후 사무실에 앉아 그의 시를 읽으며 혼자 훌쩍거린다. 왜 세상은 착하게 사는 사람들을 벼랑끝으로 내몰까? 당연히 누려야할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왜 힘들게 하는걸까? 왜 구청 직원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로 인식되도록 하는걸까?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공무원! 말로만 더불어 사는 사회, 공정 사회가 아닌 모두 함께 잘 사는 사회가 되었으면......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