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딸인 나의 대녀 은혜는 몸이 불편하다. 태어나고 백일 무렵에도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눈을 맞추지 않았다.  깊게 쌍꺼풀 진 커다란 눈망울에 길다란 눈썹. 참 예쁜 아이였는데 10살인 지금까지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한다. 걷는것도 서툴고....

작은 아이도 어리다 보니 거의 집에서만 생활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편은 주말에도 출근을 하니 혼자 어린아이 둘을 감당하기 힘들어 자연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일요일날 별 스케줄이 없거나, 남편이 피곤해 하면 혼자 집에서 쉬라고 하고 은혜네 집으로 향한다. 오늘도  아침에 전화를 받고 점심 얻어 먹을겸해서 오후에  가서 놀았다.

친구는 직장생활을 하느라 피곤할텐데, 가정교육과 출신이라 그런지 요리를 참 즐겨한다. 함박스테이크,  불고기, 갈비찜, 잡채,  삼계탕 등등 먹을것이 늘 푸짐했다. 오늘도  미역국에 생선튀김에 브로콜리 무침에 계란찜에  이것저것 많이도 준비했다. 보림이 생일인것을 어찌할고~

아쉬운건 은혜도 몸이 불편하고 작은애 민경이는 4살인데 수줍음을 많이 타서 그런지, 보림 규환이가 참 심심해 한다. 민망하게 "엄마 집에 언제 갈꺼야, 심심해" 한다. 친구는 내심 민경이랑 놀았으면 하는데........놀아도 둘이서 놀고, 놀이터에 둘이서 연신 들락날락 한다. 민경이는 놀고 싶어 하는데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늘 집에 갈때쯤 되면 친해져서 당황스럽다.

내가 요즘 힘들어 하는 문제도 이 친구네 집에만 가면 사치스럽다. 보림이가 공부 좀 못하면 어때. 건강한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친구의 불행을 보고 나의 행복을 운운하니 좀 미안한 감이 들기도 하다. " 더 심한 중증 장애인도 부모의 노력으로  많이 좋아진다더라, 은혜도 좀 더 나아져야 되지 않겠니?" 친구에게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겠지만, 대모로써 한소리 한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나를 보고 오늘은 소리내어 웃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04-12-21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는 저도 안타까운데 은혜를 바라보는 세실님의 마음은, 그리고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타들어갈까요. 그래도 님을 보고 소리내어 웃었다니 위안으로 삼습니다.

세실 2004-12-2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마음이 아파요. 평생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그래도 다행히 하느님은 고통을 이겨내실 만큼만 주시나봐요. 그 부부 참 착하거든요. 그냥 감내하고, 순순히 받아들인답니다.